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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의 최고권력자 자리였던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김형욱에대해 알아보자.
<중앙정보부장 김형욱과 이후락>
(좆간지 ㄷㄷㄷㄷㄷ)
김형욱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태어나 국민학교를 졸업한게 전부였지면
뒤늦게 공부를하여 육군사관학교(육사7기)를 졸업하고 조용하고 말없이 일처리를 잘해서 박정희 대통령의 눈에들고
1961년 박정희 김종필등과 함께 쿠데타를 기도하여 성공한후
1963년 중앙정보부 부장으로 취임하여 임무를 시작한다.
당시에는 중앙정보부가 남산에 위치하여있었고
그들의 업무는 대북 작전을 비롯하여 국내외 요인들을 대상으로한 암살, 납치, 공작이었고
자세한 업무는 지금까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남산에 위치했던 중앙정보부>
당시의 남한내 반공분위기가 어느정도였냐하면 남한 최고권력자였던 중앙정보부장마저도 조심해야할정도였다고 한다.
김형욱은 박정희 뒤에서 국가 권력 2위의 자리에서
박정희의 집권과 공산세력들을 저지하기위해 온갖일들을 다했다고 회고한바 있다.
그렇게 6년간 정보부장을 역임한 김형욱은 어느날 박정희가 정보부장을 그만두고 쉬라고 한말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던 김형욱은 바로 미국으로 망명
어느날 아침 자신의 책상이 사라진것을 발견한 김형욱이 자신도 암살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바로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설도있다.
미국에 망명한 김형욱이프레이저 청문회에 나가서 박정희정권을 비판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또 김형욱은 일본에서 회고록을 출판하였다. 이 회고록은 출간직후 밀리언셀러가되었다.
김경재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공동출판했다고 한다.
CIA에게 국가정보를 누설할것을 염려한 중앙정보부는
김형욱에게 미국과 공산국가를 제외한 제3국으로 도피하고 더이상의 폭로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당시 수백억대의 금품을 제공하겠다는 협상을 제안했다는 설이 있다.
그렇게 프랑스에서 중앙정보부와 협상을 벌였던 김형욱은 1979년 10월 5일파리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지금까지도 김형욱의 시신은 물론 생존했거나 죽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김형욱의 행방불명이후 그의 행방을 둘러싼 여러가지 설들이 나왔는데,
북한 납치설부터 시작하여, CIA납치설이 있지만
가장 신빙성있는 추측을 소개하겠다.
첫번째로 김형욱은 중앙정보부 요원에 납치되어 김포공항에 운송되어져
박정희각가하 직접 칼빈으로 머리통을 쏴죽였다는 설부터 시작하여
두번째 설로는 김형욱이 프랑스 파리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의해 암살되어져 사체를 찾지 못하도록 분쇄하여 유기하엿다는 설이 있다.
이 소문에 따르면 김형욱은 프랑스파리 호텔 근교에서 살해되어 파리 인근 농장에서 사체를 사료 분쇄기에 갈아서 닭모이로 주었다고 한다.
<이사진은 영화 파고의 한장면 분쇄기로 시신을 갈아버려서 인멸하는 장면임>
흥미로운점은 어느날 미국에서 김형욱의 묘로 추정되는 비석이 발견되었는데
김형욱이 태어났던 날짜와 이름, 행방불명된날짜까지 똑같은 묘가 미국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묘는 행방불명된 김형욱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의 가족들이 만든 가묘일뿐 이 무덤안에는 김형욱의 유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앙정보부의 최고권력자였던 김형욱의 행방은 지금까지도 알려져있지 않다.
한때 중앙정보부 최고 권력자였던 자가 제3국에서 행방불명되어져 지금까지 시신조차 찾지못한다는게 미스테리하지 않냐?
진실은 사라져버린 김형욱만이 알고있을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