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북괴와 종북들은 성공적인 동독의 대서독 간첩활동 과정을 그대로 답습중임
2.서독은 동독의 유화정책 뿐만 아니라 이적단체와 정당은 기본권마저 박탈했음
3. 햇볕정책을 하려면 서독의 이적정당,단체/간첩 징벌 정책도 차용해야함
4. 독일처럼 각종 법의 세부 조항으로 위헌 단체의 손발과 돈줄을 묶어야 한다. 서독은 동독을 대할 때 얼굴은 웃으면서 뒤로는 무섭게 칼을 휘둘렀다. 그러니깐 독일은 통일한 거다."
1.통독전의 서독의 햇볕정책과 동독의 대서독 간첩상황
통일 이전 당시 서독에서는 한국의 포용정책과 비슷한 '동방정책'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슈타지는 서독 정부의 이런 유화정책을 틈타 총리(내각책임제) 비서실 등 핵심 기관을 비롯해 서독 곳곳에 다수의 간첩을 침투시켰다. 당시 동독 간첩에 포섭된 서독인 가운데는 좌파 계열 정당원과 지식인이 많았다. 동독 전문 연구기관인 베를린 자유대학의 '동독 독재체제 연구협회'는 "당시 서독인들의 안일한 자세는 정부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화해정책을 적극 추진했던 것에 영향받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 한국과 유사점
70년대 초반 서독은 동방정책을 통해 동독으로 하여금 '접근을 통한 변화'를 유도하려고 했다. 일종의 한국식 햇볕정책이었다. 당시 서독은 동독 정부와 정치적 접촉을 크게 늘렸다. 그 과정에서 50년대 제정된 국가보안법을 유명무실하게 개정했다. 공산주의자와의 접촉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법이 더 이상 시대정신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는 않았지만 거의 사문화되다시피한 현 한국 상황과 비슷했다.
73년에는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되면서 서독은 동독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했다. 이후 서독에선 동독을 체제 위협 요소로 보는 시각이 사라졌다. 특히 서독인들이 동독에 있는 친지를 만나러 가는데 필요한 절차가 대폭 간소화되는 등 긴장상태가 크게 완화되면서 동독의 첩보활동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으로 남북 민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느슨해진 한국과 유사한 점이다.
당시 서독 주민들은 "공작활동은 모든 국가가 하는 것"이라며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때 동독은 첩보기관을 확대하고 서독에 대한 공작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 서독을 누빈 동독 간첩들
슈타지는 서독 곳곳에 손을 뻗쳤다. 정규직원 9만4300명에 17만4200명에 이르는 비공식 끄나풀(IM)을 동원해 각계각층에 침투했다. 총리실.정당.언론.문화계.스포츠계.학계.노동조합.군부.교회는 물론 서독의 정보기관에까지 파고들었다. 무려 3만여 명의 동독 간첩들은 서독 수도였던 본을 포함한 주요 도시에서 독일 통일(1990년) 전까지 40년간 고정간첩으로 암약했다.
간첩들은 서독의 정치인.정당원들에게 접근해 정보원으로 활용했다. 80년대 서독에서 형사 처벌된 499명의 동독 정보원 가운데 30% 선인 135명이 정당의 당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좌파인 사민당원이 42%로 가장 많았다. 이들의 동독 첩자들에 대한 협력은 대부분 정치적 신념에 따라 이뤄졌다. 한국의 '386세대 간첩단' 사건은 아직 전모가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보면 북한 김정일 정권에 동조하거나 반미.좌파세력과 가까운 인사들이 주요 포섭 대상이었다.
◆ 적발된 주요 사건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비서로 근무하던 귄터 기욤이 동독으로 국가 기밀을 빼돌린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휠제'란 암호명을 쓴 쿠르트 반트는 50년대 사민당에 침투해 암약했던 최고위 공작원이었다.
국방부 여직원 에리카 슈미트는 '에리히'란 암호명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관한 1216건의 기밀을 빼내 슈타지의 공적을 올려줬다. 서독 주재 외국 공관도 슈타지의 표적이었다. 미국 대사관 여직원으로 근무하던 독일 현지 직원 가브리엘레 알빈은 1479건의 기밀을 슈타지에 제공한 일급 첩자였다. 그는 '게어하르트'란 코드명으로 게파르트 장갑차와 중거리 미사일 퍼싱 등 군사 관련 정보와 서유럽 주둔 미군 동향에 관한 기밀을 보고했다.
독일 노동조합연맹(DGB) 집행부 부장을 지낸 귄터 셰어, '막스'란 별칭으로 불렸던 언론인 루돌프 메르커, '한스'와 '마르첼라'라는 암호명으로 등록한 부부 공작원도 대표적인 고정간첩들이었다.
2.해결방안
북한인권기록소 설립에 기여한 박광작 교수 인터뷰
서독, 위헌 판결 단체는 출판·집회 등 기본권 뺏고
위헌 정당이 이름 바꿔도 끝까지 추적해 해체시켜
동방정책 편 브란트 총리 동독엔 웃으며 대했지만 서독 공산주의자 다 솎아내
13일 박광작(69)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주최로 열린 '2012 안보정책 세미나, 반국가단체·이적단체,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를 앞두고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한·독경상학회 고문으로 있다. 1990년대부터 독일의 슈타지(비밀경찰) 피해 사례가 기록된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와 같은 시설 도입을 주장해 북한인권기록소 설립에 기여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 일문일답.
―독일은 서독 시절 '위헌 단체'를 어떻게 해체했나?
"독일에서는 위헌 단체와 정당이 서로 다른 제재를 받는다. 법적으로는 정당이 먼저 제재를 받았다. 1951년 서독 정부는 '사회주의 제국당'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서독 헌법을 위반한다고 판단한 후 연방헌법재판소에 정당 활동의 금지와 해체 신청을 제기했다. 이런 위헌 정당은 이름을 바꿔가며 살아남았지만, 서독 정부는 계속해서 위헌 결정을 내리며 추적했다. 결국 1956년 좌파 정당의 후신인 '독일공산당'이 해체됐다. 위헌 단체는 1964년 '단체규제법'을 통해 활동을 금지하고 조직을 해체했다. 서독 정부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파악한 공산주의자 영향하에 있는 6만명 이상의 회원으로 구성된 단체는 50개였고, 이들은 모두 해체됐다."
"서독의 기본법에는 '그 목적과 활동이 형법에 반하거나 헌법적 질서 또는 인종 간 이해 사상에 반하는 단체는 금지된다'고 돼 있다. 위헌으로 판결된 단체에 대해선 '기본권 상실 조항'이 마련돼 있다. 기본권에는 의사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교수의 자유,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서신·우편 및 전신의 비밀, 재산권, 망명자 보호권 등이 모두 포함된다. 우리나라처럼 이적단체인 범민련 남측본부가 성명서를 내는 행위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심지어 서독에서는 내란죄, 간첩죄 등을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된다. 이런 단체들은 딱 한 가지 법이 아닌 헌법, 형법, 단체법 등 여러 가지 법을 통해 해체된다."
"통일 후 20년이 지났지만 좌파당은 지금도 기민당, 사민당 등과 달리 정부 기관의 감시 및 사찰을 받는다. 이건 합법적이다. 지난 2010년 연방행정법원은 좌파당 총선 대책본부장이던 부도 라메로에 대해 감시·사찰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합법적이며 필요한 조치라고 판결했다. 좌파당 소속 의원들이 국가의 존립에 반하는 발언을 하면 면책권과 관계없이 바로 처벌을 받는다."
"불가능하다. 어떤 단체가 반국가적인, 위헌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하거나 행사를 할 경우 행사는 중단되고, 주최자는 경찰 조사를 받는다. 그리고 위헌 소지가 입증되면 그 단체는 해산된다. 단체의 재산권도 몰수돼 예산도 모두 빼앗긴다. 서독은 사상적으로 불순하면 교사뿐 아니라 우체부, 철도공무원 등 공무원 자체가 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72년 하이너 재미쉬 사건이다. 서독 정부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재미쉬라는 청년의 연수원 입소를 거절했다. 그가 대학 시절 '붉은 세포 법률'이라는 공산주의 학습단체에 40회 참여한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독일은 동방정책이 진행되던 1972년 8월부터 1976년 2월까지도 총 49만6700명에 대해 사상적 적격성을 심사했다. 재미쉬 사건도 그때 있었다. 빌리 브란트 총리는 동독에 대해 화해의 손을 내미는 듯했으나, 당시 서베를린 시장은 반공의 선봉에서 공산주의 세력들을 다 솎아 냈다. 그러니 서독이 통일을 주도한 거다. 독일은 이런 문제에 대해선 끈질긴 나라다. 독일 내 위헌 단체 감시 자료에는 한국의 범민련까지 스파이 첩보단체로 분류, 기록하고 있고 독일 내에서 활동하는 한국 통일전선부 조직에 대한 감시 사항이 보고서로 나온다."
"한국의 경우 이적단체로 판결이 나도 해체할 수 없다. 독일처럼 아예 단체를 해산시키고 활동을 못하게 감시해야 한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도 바뀌어야 한다. 국보법의 처벌 조항은 적용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독일처럼 각종 법의 세부 조항으로 위헌 단체의 손발과 돈줄을 묶어야 한다. 서독은 동독을 대할 때 얼굴은 웃으면서 뒤로는 무섭게 칼을 휘둘렀다. 그러니깐 독일은 통일한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