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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요약


롬멜은 어린시절 공부를 못해서 군인을 선택했고 자신의 즉흥적인 전략이 프랑스 침공때 절정을 달렸어


그대신 다른 사단 물자, 명령 거부, 월권행위, 진격로 새치기를 수도없이 저질러 동료장군들과 상관들은 롬멜을 정말 싫어했고 따로 보고서까지 올렸지만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롬멜이라서 그런 보고서들은 모조리 씹혀


롬멜은 프랑스 침공때의 성공으로 독일내에서 인기가 최고조에 이르고 총통 히틀러의 총애까지 얻으므로 두려울게 없었어


그렇지만 롬멜은 각국의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동료 장군들을 비하하는 발언들을 했고 동료들과 상관들로부터 점점 인망을 잃어가기 시작해



 





당시 아프리카 전선의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시작할께


1940년 6월 10일 서부전선에서 독일의 공격 성공에 힘입어 이탈리아는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를해 


그리고 무솔리니는 과거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처럼 무솔리니도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집트를 침공했어


9월 13일 리비아에 주둔하고 있던 이탈리아군은 독일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단독으로 이집트 국경을 넘어 침공하였지만 아무런 준비가 안되있던 이탈리아군은 당연히 성과를 내지 못했고


소련침공을 준비중이던 히틀러는 머리가 찌근찌근 아프기 시작하지


영국군의 반격아래 8주만에 이탈리아군을 쫒아내고 13만명의 포로와 400대의 전차를 포획 이탈리아군을 800km 서쪽에 있는 트리폴리로 몰아버렸어


히틀러는 초반에 '이탈리아 새끼들이 싸지른 똥이니 알아서 치워라'는 식으로 관망했지만


이탈리아 해군이 타란토 공습으로 개박살이 나고 지중해 제해권이 영국 손아귀에 들어오자 히틀러는 마지못해 북아프리카에 독일군을 참전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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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폴리에 하역되는 독일군 전차


히틀러는 자신의 '충견'인 롬멜을 1941년 1월1일부로 중장 진급과 2월 14일 아프리카 군단장으로 임명시키며 아프리카에 독일군을 보냈어


초기 아프리카 군단에는 전차부대가 없어서 마분지로 전차부대를 만들고 비행기로 먼지를 만드는등 기갑부대가 있다고 영국군을 기만했으나 


당시 공격계획이 전혀 없던 영국군은 그냥 후퇴했고 롬멜은 이탈리아 군이 잃은 영토를 다시 수복했지만 결국 상태는 다시 원점 제자리걸음만 하고만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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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을 위해 언제나 희생하고 발벗고 뛴다는 이미지를 위해 만들어진 홍보사진



롬멜은 여기서 자신의 유명세를 위해 세명의 인물들을 참모진에 포함시켜 자신의 주변에 머물게 했는데


그인물들은 자신의 선전사진과 영상을 촬영 시키기위해 배치시켰고 괴벨스는 그런 똘똘한 녀석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하지


1941년 3월 31일 롬멜은 상부의 전선유지 명령을 어기고 키레나이카로의 진격을 개시했고 작전은 성공했어


당연히 이탈리아군과 상의도없이 실시한 작전이였으므로 베를린은 놀라 뒤집어졌고 


4월3일 베를린에서 히틀러의 전언을 받아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임무는 당분간 지금까지 도달한 위치를 사수하고 북아프리카의 강한 영국군을 가능한 한 묶어두는 것이다'


그러니까 좀 깝치지말고 가만히 전선유지좀 하라 이거야 


그날 저녁 롬멜의 상관인 리비아군 총사령관 이탈로 가리발디 장군(이탈리아군)이 도착해서 즉시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만 


롬멜은 철저하게 이탈리아 상관의 말을 씹고 그냥 개돌하기 시작해


당시 영국군은 포로에게 얻은 독일군 무전기를 가지고 정보를 얻었는데 분명 현위치 사수 전선유지 바람 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는데 


눈앞에서는 독일군이 공격을 하고있으니 뭐가 뭔지도 모르고 처맞고 있었어


1941년 4월 9일 롬멜은 토브룩에 도착하여 일부는 토브룩 포위 일부는 이집트 국경으로 전진 하는 멀티태스킹을 펼치며


정찰도 안하고 토브룩을 기습공격했어 근데 알고보니 토브룩엔 이탈리아군이 만들어놓은 요새들이 있었고 10일동안의 쉴틈없는 진격에 


타는듯한 날씨, 목마름에 지친 병력들 밖에 없었어


거기다 롬멜은 새로 도착한 15기갑사단장에게 "앞의 이정표까지 가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걸세"  


15기갑사단장은 별 생각없이 차를 몰았고 어느 건물에 도달하자 영국군의 총탄이 그에게 쏟아졌고 15기갑사단장은 그자리에서 즉사햇어


즉흥적으로 전략을 쓰던 롬멜이 실수를 저지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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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브룩전투 당시 영국군 소속으로 싸우던 호주군


롬멜은 토브룩 공세를 취할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어 사전에 지형을 철저히 탐색하지도 않고 병력이 보충될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았으며


포병과 공군의 지원이 확실해질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았어 롬멜의 단점을 슬슬 보여주는 구간이지


토브룩에서의 지속적인 공세가 실패하자 독일군 총사령부에 아프리카에서 롬멜의 지휘역량에 대한 불평불만이 접수되기 시작 


독일 군부내에선 프랑스 침공때의 용맹한 롬멜을 다시금 평가하기 시작했고


당시 국방부 인사부장이었던 보데빈 카텔은 롬멜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어


"탁월한 용맹과 굳은 결단력은 인정하지만 때때로 사태를 조망하는 능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곧 거두어져야만 하는 명령을 내린다. 그것은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자세하게 살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사려되어야 할 점은 지금까지 충분히 능력을 인정받은 노년의 군 지휘관들을 대하는 그의 딱딱하고 냉정한 태도와 그 장교들의 명예를 건드리는 행동이다"


이렇듯 베를린에서의 지지도 슬슬 깎아먹기 시작했고 북아프리카에서도 영국의 RAF(Royal Air Force 영국공군)가 독일군의 바닷길을 틀어막기 시작했고


항구를 끼고있던 토브룩과 이집트 국경엔 영국군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어


롬멜은 자신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내가 입대한 이후로, 요즘처럼 걱정을 많이 한적이 없었던 것 같소"라고 보냈어 몹시 심란했겠지


베를린의 프란츠 할더 독일 육군 참모총장은 자신의 대리인인 프리드리히 파울루스(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 사령관 맞음)을 아프리카로 보내서 상황을 보고토록 하고 


'그 미쳐버린 군인을 저지시키도록 한다' 라는 말도 전했어


이런 최악의 상황속에서 영국군은 '배틀액스'라는 작전명으로 공세를 시작했고


롬멜은 아라스 전차전에도 사용한적이 있는 88mm포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영국군의 공세를 저지시키는데 성공


자신의 위신도 다시 세울수있게되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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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딸이 선물로 보낸 숄을 목에두른 롬멜


롬멜의 엄청난 자기 관리와 참모진에 배치된 선전기자들은 본국으로 롬멜의 신화를 거침없이 쏟아냈으며 


괴벨스는 그런 충실한 지휘관을 '민족 영웅'으로 재탄생 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


롬멜의 인기는 다시금 최고조를 달리게 됬고 다시금 펼쳐진 영국군 공세 '크루세이더 작전'을 성공적으로 막은뒤 


토브룩에 공세를 펼쳤는데 또 실패하고 말아 롬멜은 크게 상심하고 간부들의 말을 다씹고 아무말도 하지않아


이때 롬멜은 기갑군단의 병력을 다 소모해버리고 남은건 후퇴밖에 없었어 1941년 12월7일 후퇴를 시작하게 됬지


그런데 하루전 1941년 12월 6일은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의 반격이 시작됬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미 10월부터 라스푸티차(러시아에서 토양이 뻘밭으로 변하는 자연현상)에 독일군은 붙잡혀 있었고 얼마 지나지않아 히틀러는 미국에도 선전포고를 하는 


상황이 아주 씹창나게 돌아가고 있었지


결국 이듬해 트리폴리로 수송선이 온전히 도착하고 병력을 보충한 롬멜은 다시금 벵가지까지 점령했고


동부전선에서 혹독한 재난을 겪는 독일군에게 북아프리카의 승승장구는 한줄기 빛이되어 히틀러는 연설에서 북아프리카 군단의 진격을 선전했고 


롬멜의 인기는 절정에 달하여 라디오에서는 롬멜의 이니셜을 따서 노래까지 송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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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관과 함께 물을 마시는 롬멜, 롬멜은 항상 최전선에 병력들을 독려하며 뛰어다녔어


결국 마침내 1942년 6월 21일 토브룩은 독일군의 수중에 넘어갔고 베를린에서는 얼씨구나 하고


"궁핍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을 견뎌내어 민족의 승리를 일궈냈다" 는 식으로 선전을 시작했는데


토브룩의 점령을 북아프리카에 미적지근하게 개입하던 미국을 풀발기 시키는 촉매재 역할을 하게된걸 독일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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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영국이 북아프리카에서 처발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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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잼ㅋ





이제 롬멜은 이집트를 점령하고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이란을 거쳐 러시아 국경에 이르는 이 말도 안되는 작전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독일군은 보급도 씹창나기 시작했는데 엄청난 보급이 시작되는 북아프리카 연합군은 계산에 넣지 못했어


영국군은 4만명의 지원 병력과 1000대의 전차가 보충됬고 여기에 미국의 셔먼 전차 300대가 포함되어 있었어


당시에 셔먼과 호각으로 전투를 벌일수 있었던 독일군 전차는 4호전차 뿐이였는데 이때 독일군에는 30대 밖에 없었어


그리고 점점 북아프리카 군단과 영국군의 보급격차는 벌어지기 시작했고


롬멜이 필요로하는 보급량은 월 3만톤이 였으나 실제로 받은양은 6천톤에 불과했고 최소 480km에 떨어진 토브룩에서 트럭으로 수송을 받아야 했지만


영국군은 몇시간만에 보급을 받는 수준에 이르렀어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압도적인 물량으로 독일군을 처바른 영국군은 이제 역습을 준비했고


때마침 병을 앓고있던 롬멜은 본국으로 요양을 위해 귀국해


엄청난 보급을 받아 어마어마하게 불어난 영국군은 만성보급부족과 70퍼센트가 넘게 이질에 시달리는 독일군을 쉽게 제압했고


본국에서 제국원수로 진급하고 북아프리카로 도착한 롬멜은 돌이킬수 없는 상황에 이른 북아프리카군을 보고 


전선유지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씹고 병력을 보존시키며 후퇴를 했지만


연합군의 '횃불'작전으로 튀니지에 갇혀버렸고 지원을 요구하러 롬멜은 베를린으로 날아가 히틀러를 만나 병력 지원을 요구햇으나 


히틀러는 롬멜을 요양하라며 본국에 남기고 아프리카 사령관을 한스 위르겐 폰 아르님 상급대장으로 교체시켜버려(아르님 대장은 발터 모델의 9군휘하에 있었으며 화성작전때 성공적으로 수비작전을 펼친 장군이야)


결국 보급도 받지못한 북아프리카 군단은 영국군에게 항복을 해버리고 북아프리카 전역은 연합군의 손아귀에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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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 전선의 항복소식을 들은 뒤 1943년


롬멜은 북아프리카 군단의 항복소식을 듣고 정말 상심하고 우울해했어


히틀러는 달래주려고 훈장 쥐어줬지만 롬멜은 개의치 않았고 히틀러의 능력에 점점 의구심을 같기 시작해


히틀러는 히틀러대로 변방의 장교를 제국원수까지 키워줬더니 이제 할말 안할말 안가리고 깝치기 시작한다고 마음속으로 의심을 시작했지


이후 롬멜은 대서양 방벽의 지휘관이 되어 짧은 시간내에 방어능력을 많이 향상시켰어


임박한 연합군의 상륙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고 병력배치 때문에 룬트슈테트와 갈등을 빚었어


전차부대를 해안선에 배치하냐 내륙에 배치하는걸로 갈등을 빚었고


1944년 6월5일 폭풍우가 치는것을 보고 롬멜은 아내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독일에 가있었어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됬고 오전 7시에 롬멜은 붉은 체크 무늬 가운을 걸친채 아내의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지


30분뒤 하녀가 건네준 전화에는 전날 밤 연합군 공수부대가 글라이더를 타고 노르망디 해안에 착륙했고 새벽5시30분부터 적군의 함포가 독일의 해안에 불을 뿜은데다가 한 시간 후에는 연합군이 칼바도스 해안과 코탕탱 반도에 상륙했다고 떠들어댔어


롬멜은 프랑스 전선으로 복귀했고 방어 작전을 몇차례 해보지만 영미연합군은 교두보를 전투 끝에 확보했고 연합군의 상륙작전이 성공했어


결국 서부 전선 총사령관인 룬트슈테트를 방문해서 히틀러에게 현실적으로 이제 '우리는 좆망이고 총통이 결단을 내려야한다' 라고 얘기하자고 합의를 이뤄낸다음


히틀러와 식사를 하며 얘기를 꺼냈다가 


룬트슈테트는 건강상의 이유로 훈장준다음 짤라버리고 롬멜은 1944년 7월17일자로 서부전선 B집단군 사령관 자리에서 해임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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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7월 17일 공습을 당한 롬멜의 차량


해임되는 날 롬멜은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큰 부상을 입고 명목상으로 건강상의 이유로 해임됬지만 사실 히틀러의 총애를 잃고 좋은 건수가 걸려 해임된게 정설이야


이후 롬멜은 이전부터 연결되던 검은 오케스트라단(히틀러 암살조직)에 슬슬 발을 담구게 되고 


암살작전이 실패하자 히틀러는 관련인물을 모조리 잡아족친다는 라디오 방송을 롬멜은 병원에서 듣게돼


근데 사실 롬멜은 오랫동안 히틀러의 암살계획을 거부했지만 이미 롬멜은 히틀러 암살계획의 가담자에 포함된게 결과였어


주변인물들이 하나둘 게슈타포에게 체포되고 롬멜은 자택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체포를 기다렸어


1944년 10월 13일 롬멜이 집을 비운사이 총통 수석부관이던 부르크도르프 장군이 전화를 걸어 내일 낮 12시에서 1시 사이에 다른 장성들과 롬멜의 자택으로 방문한다는 사실을 전했고


롬멜은 이제 마지막 시간이 왔다고 직감했지


다음날 롬멜은 아침일찍 일어났고 11시경 사복을입은 게슈타포들은 롬멜의 집을 둘러쌓어


정각에 부르크도르프의 일행은 롬멜의 집에 도착해 그의 죄목을 낱낱이 얘기하고 두가지 선택권을 주었어


하나는 '자살' 하나는 '특별 재판'이였지


롬멜은 자신이 책임을 진다고 얘기하고 원수 지휘봉과 정모를 든뒤 집 열쇠를 아들손에 쥐어준 다음 부르크도르프의 차량에 탑승해


이후 차량은 군 병원에 도착했고 차디찬 시신의 롬멜은 '서부 전선에서 근무중 입은 부상에 따른 심장마비'로 사인이 실렸어


히틀러는 국민적 영웅인 그가 암살에 관련되어 불명예스럽게 자살했다는 내용은 독일의 위신을 위해 좋지 않다라고 판단해 영웅의 죽음으로 국장을 치뤄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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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멜의 생전 마지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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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후의 롬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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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멜의 장례식




히틀러는 롬멜의 국장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대리인을 보냈는데


대리인으로 룬트슈테트를 지목했어


룬스튜테트는 개인적으로 싫어했던 롬멜의 추도사를 낭독하는게 불편했지만 노련한 육군 원수는 무뚝뚝하게 추도사를 읽었어


"지치지 않는 불굴의 전사는 국가사회주의적인 이념으로 충만해 있었으며, 그것은 그에게 힘의 원천이었고 행동의 기본이었다. 그의 마음은 총통을 향해 있었다"


이후 10개월뒤 독일은 항복을하고 유럽전선은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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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멜은 총통경호실에서 근무하며 히틀러와 친분을 쌓았고 이때의 친분은 훗날 자신의 승진가도에 엄청난 도움이 됬어


그러나 그는 당시 다른 장군들처럼 나치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신봉자는 아니였고 히틀러를 매우 유능한 지도자로 생각했어


히틀러는 당시 귀족출신에 엘리트 코스를 밟아 승진한 장군들을 싫어했고 이런 신흥 무관들을 총애했지


또한 프랑스 침공때부터 나타난 거의 병에 근접한 행동들은 많은 동료장군과 상관들의 눈쌀을 찌푸리게했고 각국의 기자들이 보고있는 가운데


동료 장군들을 무시하는 인터뷰도 하며 군부내에서도 아군은 커녕 적만 만들었지


아프리카전선에도 롬멜을 보낸거에 많은 논란이 있는데


-왜 1차대전때 이탈리아군과 싸운 롬멜을 이탈리아 군이 있는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보냈는가?


-이미 프랑스 침공때부터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수많은 월권행위를 저지른 장군을 보내는가?


-공격적인 성향이 다분한 지휘관을 왜 전선유지해야하는 전장으로 보냈는가?


이것이 대표적인 사유고 이것은 독일군 사령관이나 히틀러가 뒤져버려서 이제 밝힐수가 없는데 대체로 추측하는 바에 의하면 히틀러가 꼴리는대로 보냈다고 볼수있어


아프리카 전선에서도 전선유지하라는 명령을 쌩까고 미친듯이 돌진만 해댄 결과 보급선은 주구장창 늘어나있었고 교두보인 토브룩 요새마저 쩔쩔매며 함락시키는 마당에


결국 영국군의 물량에 처발리는 결과를 가져다주었어


거기다 이탈리아군을 무시하는 말을 많이했는데 이탈리아 장군들이 있는 면전 앞에서도 그런말을 내뱉고 이탈리아 장군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어


실제로 이탈리아군이 형편없었지만 진지 구축, 경계근무, 독일군 공세시 측면보호 같은 궃은일은 도맡아 하던게 이탈리아 군이였어


서부전선에서도 그의 지휘력은 다분히 의심되는게 많은데


노르망디 상륙직후 롬멜의 부상이후 귄터 폰 클루게와 발터 모델로 교체되면서 오히려 서부전선의 상황은 크게 안정되었고


저 둘은 프랑스 침공이후 영미 연합군과 한번도 싸워본적이 없는 장군들임에도 불구하고 롬멜보다 훨씬 나은 전과를 보여

히틀러의 총애를 등에업고 서부전선 총사령부의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자 참모들과 룬트슈테트는 매우 불쾌해 했으며


주지

많은 장군들은 롬멜을 비판했고 심지어 대인배라고 평가받는 헤르만 호트마저도 롬멜을 우회적으로 비판했어


노장 룬트슈테트는 롬멜을 '사단장 밖에'안되는 인간으로 평가했고 영국군 또한 '잘해봐야 군단장'이라는 평가를 내렸어


명령받고 싸우는건 잘하는데 이후 보급은 생각못하고 일을 처벌리고 결국 일이 잘못되면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고 다 옆 사단 장군들이 일을 못해서 처발렸다


는게 총론이야



이런 평가는 몽고메리나 패튼에게도 나오는데 몽고메리와 패튼에게는 아이젠하워라는 컨트롤 타워가 있었지만


롬멜에게는 히틀러라는 희대의 정신병자가 있는 마당에 


결국 독일은 이렇게 처망하고 만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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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저 븅신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