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게이들아. 평소 눈팅만 하다가 오늘 처음 글 써보네

요즘 선거철이다 뭐다해서 선동자료도 많이 돌고 하는데 

제대로 알아야 이에 대해 반박을 하던가 하겠지?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별거 아닌 지식이나마 일게이들과 나누려고 해.

혹시 잘못된 점이나 의문스럽다싶은 거 있으면 바로바로 알려주면 좋겠어

서로서로 배워가면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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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장면 (~ 1961. 5. 17.)



가장 먼저 살펴볼 건 박정희 대통령 이전 시절이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자면 한국전쟁까지/한국전쟁 이후/4.19 이후로 글을 구성할까 해.



1-1. 한국전쟁 까지의 한국경제


(1945.8.15 ~ 1950.6.25)


John reed hodge.jpg

미군정청 사령관 존 하지.


1945년부터 1950년까지의 한국경제를 살피기 위한 정확한 자료는 거의 없다시피 

당시 중앙은행기구를 담당하던 조선은행은 일제의 식민지 금융기구였다보니

광복직후의 혼란기에 중앙은행으로써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 

파일:Bank of Chosen.JPG

이게 당시 중앙은행기구였던 조선은행이야.

광복 직후 중앙은행 업무를 담당했지만 인플레이션 통제도 실패, 금융관리 실패. 물론 경제통계집계도 실패.

결국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법에 따라 한국은행으로 개편되어 사라져. 

그래서 1950년 이전의 경제통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해. 6.25 전쟁동안에도 경제통계집계는 불가능했으니 사실상 1953년까지 없는거지.


독립직후 모든 나라가 그랬다시피, 이 기간동안 대한민국의 경제는 혼란 그 자체였어.

광복 이후 혼란한 와중에 조세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했고, 미군정은 화폐증발을 통해 재원을 얻었어.


화폐증발이 무엇인지 잠시 알아보고 가자.

예를 들어 정부가 도로를 건설한다고 치자, 거기에 드는 건설비용을 새로 발행한 원화로 지불한다는거야.

정부는 돈 안들이고 도로를 깔았고, 도로건설 노동자들은 월급을 받았지. 그리고 이에 대한 세금은 아무도 내지 않았어.

이렇게만 쓰고 보면 '정말 좋은거 아니야?' 할 수도 있겠는데 이런식으로 화폐를 남발하면 화폐가치가 떨어지겠지?


정부재원 조달문제 때문에 조선은행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없었어. 

매일매일 물건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조선은행은 돈을 계속 찍는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지.


거기에 스시맨들이 경영하던 공장, 기업 등은 어떻게 되겠어? 대부분 폐업했겠지?

이 때문에 물가도 치솟는 와중에 실업자까지 우수수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됬어.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 당시 한국 경제는 盧짱 옆에 있었다고 할 수 있어.

정부 수립하고 조선은행을 한국은행으로 개편하면서 경제를 정상화시키려 했으나...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괴가 남침을 시작했어. 결국 한국은행은 전비조달기구로 전락하고 말아. ㅠ

김일성 개새끼.


1-2. 한국전쟁 이후의 한국경제


(1953.7.27. ~ 1960.4.19.)


대한민국 제 1, 2, 3 대 대통령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승만


한국전쟁 당시의 경제상황에 대해서는 정말 자료도 없고 그래봐야 전시경제라 스킵하고 갈게.

북괴하고 싸우면서 다 부숴지고 깨져서 전후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거라곤 전쟁고아와 거지들뿐이었어.


20121119085936.png

당시 1인당 GNP가 67달러 수준이었으니까 상황을 알만하지? 그 당시 필리핀의 1인당 GNP가 195달러였어.


아 그리고, 1956년 통계에 비해 1957년 통계치가 확 다른게 보이지? 저건 단순히 1957년부터 GDP통계를 한국은행이 전담해서 그래.

이전까지는 재무부에서도 통계를 내고, 기획처에서도 내고, 한국은행에서도 내고 해서 통계값이 정확하지가 않아.


결국 전후 한국경제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현상유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그 당시 미국의 해외원조정책은 현물원조 방식이었어, 금전적 지원을 하는 대신에 필요한 물품을 직접 공급하는 형식이야.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 하냐면, 모든 물건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결정되잖아?

그런데 수요는 일정한 상태에서 현물원조에 의해 공급량만 늘어났다고 생각해봐. 그럼 물건 값이 떨어지겠지?

특히 이 당시 미국산 농산물이 많이 들어왔고 이 때문에 농촌경제가 완전히 붕괴해버려. 

당시 한국경제 구조는 3차 산업이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는데, 이는 3차 산업의 발전에서 온 것이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산업은 盧짱곁으로 가고, 미국의 원조물자를 받아 이를 분배하는 유통업만이 살아남게 되어서 그런 거야.

여러모로 전후 경제상황은 아주 끔찍한 상태였어. 다시 한번 김일성 개새끼를 외치고 가자.


그래도 그 당시 이승만 정부는 여러가지 일을 해냈어. 우선 정부수립 이후 진행중이던 농지개혁사업을 1957년부로 완성해.

이로써 대한민국에서 지주제를 뿌리 뽑는데 성공했어. (물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지주들이 몰락했다는 점도 이에 기여했지만)

이로써 이후 형성될 자본들이 농업분야보다는 공업분야에 투입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고 볼 수 있지.

또한 1957년부터 미국의 무상원조정책이 유상차관형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이승만 정부는 경제자립을 위한 계획수립에 착수해.

이로써 만들어진 것이 경제개발 3개년 계획으로 1962년~1965년에 착수할 예정이었지.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의 경우, 미국의 원조물자를 대체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했고, 이 때문에 농업진흥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여.


1-3. 4.19 이후의 한국경제

(1960.4.19 ~ 1961.5.16.)


장면


문제는... 4.19 혁명으로 인해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실행해야할 이승만 정부가 사라진거야.

그래도 경제문제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기에 장면 정부에서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1) 만들어.

여기서 잠시, 박정희 정부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에 대해,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을 베꼈다.. 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좀 있는데 말이야.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1)은 이승만 정부의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계승한 것임을 알아둬야해.

농업진흥, 수입대체를 목표로 하는 이승만 정부의 계획을 계승한 걸 베껴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정책이 추진됬다? 이건 소설이지.

공과 과의 구분은 확실히 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분명히 경제에 대해서는 공을 세우신 분이 맞다.


사실상 장면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는게 워낙 정권 자체가 단명했던데다가

대부분의 경제 정책, 경제 상황이 이승만 정권 후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미국의 원조정책 변화에 따른 생필품 공급에 차질,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입대체산업육성을 꾀하기만 하다가 5.16으로 실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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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조가카 이전의 시대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라 

얼마 안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드네.

다음 시간에는 원조가카의 경제개발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60~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통계수치도 신빙성 있어지고

자료도 쓸만한게 많아지니까 그때부터 제대로 살펴보자고.


나는 국내 경제지표는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에서 가져오고, 

해외지표는 http://www.tradingeconomics.com/를 주로 쓰는데 더 좋은 거 있으면 서로서로 공유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