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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글을 시작하기전에 여러분들의 환상이 깨진다고 민주화를 주지 마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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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요하네스 오이겐 롬멜(Erwin Johannes Eugen Rommel)

1891년 11월 15일 ~ 1944년 10월 14일


제2차세계대전의 유명한 장군 속칭 '사막의 여우'로 불리며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장군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장군은 이전에 서술했던 발터 모델과 마찬가지로 귀족집안 출신이 아닌 융커(평민)집안 출신이야


롬멜은 1891년 11월 15일 브렌츠와 맞닿은 하이덴하임에서 교사였던 엄한 아버지와 루츠가문의 자애로운 어머니를  태어났어


근데 교사에 교장까지 했던 롬멜의 아버지는 도시에서 꽤 유명인사에 여유가 있을때마다 자식들에게 지식을 즐겨 확인 했는데


롬멜이 꼴통공부도 잘 못하자 아버지와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고


어느날 롬멜은 글라이더에 빠지면서 항공역학에 빠져들었는데 항공역학의 근간은 수학이고 롬멜의 아버지가 수학 덕후였어


그래서 다시 사이가 좋아진 롬멜과 롬멜의 아버지는 롬멜이 비행기를 좋아해서 엔지니어로 취직하려고하자 급구 반대하며


'수학실력을 살려 교사가 되던지 아니면 군인이 되던지 해라' 라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받고


롬멜은 1910년 3월 바인가르텐에서 뷔르템베르크 왕실 제6보병 연대 국왕 빌헬름 1세 제 124보병사단에 사관후보생으로 지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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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관생도일 시절(오른쪽 두번째)


맨왼쪽 막내 게르하르트는 나중에 오페라 가수가 되었고 왼쪽 두번째 칼은 성공한 치과의사가 되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맨 오른쪽 누이 헬레네는 슈투트가르트의 발도르프 학교에서 미술과 수공예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어




이후 롬멜은 평생의 동반자였던 루시 마리아 몰린을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지는데 나중에 롬멜은 다른여자를 만나 오입질을 하고 74를 하여 애를 배게 했는데


이런 사연은 이 글에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이정도로 하고 넘어가도록 하면 될거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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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당시의 롬멜 목에 있는 푸어 르 메르테는 롬멜이 겨우겨우 얻어낸거야





롬멜은 1차대전 마스 강변과 베르됭 서쪽 지역 아르고지방, 보게센 산맥, 루마니아와 이탈리아 등지에서 싸움을 벌였어


이때 롬멜의 보병 지휘 능력은 예사로운게 아니라 두번의 심한 부상을 거쳐 중위로 진급했고 1,2급 철십자 훈장을 받은뒤


이후 마타주르 산에서 기습을 강행 하루 만에 포로를 3200명 넘게 붙잡고 산 정상을 점령했어


물론 이 전략은 나중에 위험성이 매우크고 모든것을 다걸어야 했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결과가 좋으니 뭐 어쩌겟어?


헌데 이런 롬멜의 올인전략은 나중에 큰 부메랑이 되서 돌아오지


그리고 1차대전때부터  롬멜은 항상 자신과 휘하 병력들에게 가혹하게 채찍질을 하며 가혹하게 다루었다고 해


나중에 마타주르 산 점령 소식이 알려지고 포상이 내려와 그건 바로 황제가 내리는 푸어 르 메르테 훈장이였는데 


그게 이상하게 자신한테 안오고 듣도보도 못한놈한테 들어가버려


롬멜은 바로 연대장에게 찾아가 노발대발했는데 연대장은 그저 진정시키려고만 했고 롬멜은 빡쳐서 황제의 군 통수부에 진정서를 넣어버려


결국 황제의 명령을 정정할순 없고 '견해의 차이가 있다'식으로 잘못을 부드럽게 수정한뒤 롬멜에게 훈장수여됬어


종전후 롬멜은 전역을 하지않고 바이마르 공화국군에 남아 군생활을 하다가


푸어 르 메르테 훈장 서훈자이므로 정예장교 선발명단에 포함되어 참모장교를 육성하는 대학교추천서가 들어갔지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못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참모를 싫어했던 롬멜은 추천서를 거절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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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34년 고슬라의 롬멜 대대를 사열하는 히틀러





1933년 롬멜은 소령으로 진급 고슬라 보병 대대장에 임명 


당시 베를린에서의 권력 교체를 주의 깊게 지켜보던 그는 대대 임명식에서 


"우리의 제국 총통이신 아돌프 히틀러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서 힘주어 후빨했고 돌격대인 SA와 극심한 갈등을 겪고


SA의 반란 소문이 퍼지면서 제3제국군 지휘관은 다른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군사를 집결시키라고 했어


롬멜의 고슬라 부대는 6월 30일 기동훈련을 실시했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SA 지휘관과 반정부인사 85명이 학살됬어

(진실은 과연?)


1937년 '보병 공격술'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고 군대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사이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이목을 끌었고


1938년 마리아 테레지아 군사 아카데미의 지휘관이 되어 베를린에서 열린 국가정치학 강연회에 참석했는데


이때 아돌프 히틀러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었고 그날 자신의 아내인 루시에게 편지로 히틀러의 사상에 깊게 매료된듯한 내용을 써서 보내


1939년 9월1일 히틀러는 베를린의 오페라 극장에서 폴란드에 선전포고를 하였고 롬멜은 광적으로 찬동하는 내용의 편지를 또 아내에게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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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죽히죽



이윽고 롬멜은 1939년 8월부터 히틀러의 총통경호실장을 맡게 되었는데 


쉽게 생각하면 박정희 시절에 차지철이 자리했던 청와대 경호실장의 자리에 올라갔다고 생각하면 편해(물론 미친 힘을 가진 자리는 아니였어)


선전방송에 언제나 최선두로 나오는 롬멜의 모습과 히틀러는 그를 상황 회의에 참석하는걸 허락하였고 중요한 정보, 의견을 요구 하는 깊은 총애를 보여줬어


이당시 롬멜이 자신의 아내인 루시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하나같이 히틀러를 추종하고 찬양하는 내용을 쉴새없이 보내


히틀러의 총애를 받은 롬멜은 깊은 히틀러빠돌이가 되었고 바트 고데스베르크의 제7 기갑사단의 지휘권을 받아


보병 출신이 전차부대의 지휘권을 받은게 꽤 놀라웠는데


당시 롬멜은 폴란드 침공을 보면서 처음에는 독일군의 빠른 진격속도가 루프트바페 덕분에 이루어 졌다고 생각했는데 


총통경호실장을 하면서 지켜본 구데리안의 기갑부대를 보면서 생각을 고쳤고 보병전의 전문가에서 기갑전의 전문가로 빠르게 변신을 하였어


프랑스 침공때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것 마냥 자신의 상관이던 4군단장 귄터 폰 클루게의 '절대 돌파하지 말 것'이라는 명령을 씹고 


그냥 기습을 해버려 롬멜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들은 여러차례 있었는데


뫼즈강을 도하하기 직전에는 최전선에서 혼자 미친듯이 설치며 돌아다니다가 결국 한개의 보병대대를 자신이 직접 지휘하며 


그때 자신의 직속상관인 헤르만 호트에게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해


"옆사단이 자꾸 밍기적 거리는데 그럴꺼면 차라리 자신의 7사단에 모든 장비를 주십쇼!"


동료장군인 하르클리프는 당연히 미친듯이 화를내고 헤르만 호트는 이런 미친소리를 해대는 사단장을 보며 잠시 당황했지만 롬멜의 요구를 들어주고 하르클리프를 달래주어


이게 잘 이해가 안가는 게이들이 있다면 한국군으로 예를 들어볼께


"소대장님! 제 동기 김OO가 작업 좆도못하고 동작도 느려서 작업 진행이 더딘데 저놈 그냥 작업 안시키고 제가 다하겠습니다!"


동기를 그냥 대놓고 무시하는거지


어쨋든 롬멜은 뫼즈강을 건넜고 집단군의 '공격 대기' 명령을 쌩까고 자신이 직접 지휘하는 기갑 연대를 끌고 개돌했고 연료가 떨어지고  나중에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이 직접지휘한 기갑 연대를 제외한 나머지 전 병력은 아직 출발도 하지않은 상태였어 


롬멜은 '이거 좆됬다'싶은 생각에 사령부로 다시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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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지노선 언덕에 도달한 롬멜 1940년 5월




사령부로 돌아가는 도중에 교전도 안한채 온전히 병력이 있는 프랑스군을 보게되고 롬멜은 거기서 기지를 발휘해


'항복하라!'라고 외치며 돌아다녔고 통신개판, 상황전파 개판이던 프랑스군은 왠 장군이 혼자 지휘장갑차에 타고 당당히 항복을 요구하자


'이미 포위되어 망했구나' 라고 생각한 프랑스군은 그냥 그자리에서 항복해버리고 프랑스군 트럭 40대에 포로들을 꽉꽉 채워서


이제야 도착한 사단 참모부를 만났고 이 공으로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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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스 전차전 당시 지도



맹진격 도중인 5월 21일 독일군은 수월하게 진격을 하다가 아라스 계곡에서 역습을 당하게 되는데 바로 영국 원정군 직할 제1 전차여단이였어


임무 특성상 전력을 거의 온전하게 유지하던 영국 전차여단의 주력전차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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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전차! 였지


당시 독일군의 기갑전력으로 마틸다의 장갑을 뚫을 방도가 없었고(3호 4호전차도 초창기여서 화력이 약했음) 대전차포로도 뚫리지 않고


50대이상의 독일군 전차를 박살내는등 독일군을 유린하자 사단장인 롬멜이 직접 방공부대의 88mm 대공포를 끌고와 방어선을 구축하고 슈투카의 지원을 받아 


영국군을 섬멸시켜


이러한 영국군의 반격은 쾌속진격을 하던 롬멜에게 쇼크를 가져다 주었고 아라스 전차전당시 상대한 영국군 전차의 수를 5배이상 불려서 보고하자


히틀러와 OKH(독일군 총사령부)는 아직 영국군이 강력한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해서 됭게르크 철수작전에 영향을 주게 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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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승리퍼레이드 당시 1940년 6월




프랑스 침공당시 기발한 작전과 기지를 발휘해 포로를 대량으로 데려온점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명성치에 플러스 알파가 되어 유명인사가 된 


롬멜은 그를 주연으로 하는 영화까지 상영되고 자기 인생의 최대의 황금기를 맛보게 되지만


프랑스와의 휴전협정 이후 두명의 참모가 자신을 제치고 중장으로 진급한 사실에 자신의 아내에게 전방의 부대는 그저 총알받이라고 빈정거렸어


1940년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에 롬멜은 자신이 손수만든 7기갑사단 전투 기록 모음집을 붉은 가죽으로 씌워서 총통 지휘 본부로 보냈고


히틀러는 그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어


롬멜은 매우 기뻐하였고 또 아내에게 히틀러한테 칭찬받았다고 자랑했어


근데 그때 롬멜은 전령이 자신의 등뒤에서 한말을 전혀 듣지 못했지


"히틀러는 그 일지를 쭉 넘기기만 했고 내용을 전혀 읽어보지 않은 채 치웠으며 부관을 시켜 감사인사를 쓰게 했다"


이때부터 히틀러는 자신의 관심사에서 롬멜을 삭제한걸로 예측이 돼


왜냐하면 바바로사를 준비하고 있었거든







요약


-일단 롬멜은 히틀러 개빠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