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 글에서 팔레스타인은 12년부터 인정받은 팔레스타인 국가가 아닌 이전부터 해당 지역에 명명된 팔레스타인 지방을 뜻함.
1. 이스라엘이란 단어가 가장 처음으로 등장한 건 이집트 메르헨프타하 왕의 전승비문에서임.(BC 13세기)
모세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가나안지방으로 탈출했지만 메르헨프타하 왕에게 다시 정복당하며
이때 정복당한 민족 중 하나로 전승비문에 기록됨.
2. BC 11세기 이집트의 지배력이 약화된 틈을 타 이스라엘 민족의 사울왕이 가나안 지방 토착민족인 필리시테인을
쫒아내고 이스라엘 왕국을 건국. 가나안 지방에 최초로 세워진 왕국. 도시국가규모 이상의 왕국을 말하는 것.
3. 이스라엘 왕국, 유데아 왕국으로 갈라져 독립적으로 통치되어오다 BC 722년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에게 점령.
BC 586년 유데아 왕국도 신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왕에게 점령. 이후 전국민이 포로생활.
4. BC 538년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바빌로니아를 점령하며 유대인들을 해방함. 가나안 지방에 이스라엘 왕국 재건국.
5. BC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이스라엘 왕국 점령.-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리삼 산에 성전건축을 허가받는 등 이스라엘 인들의 종교를 포함한 자치권 인정.
6. BC 323년 알렉산더 대왕 사망 후 휘하 장군 프톨레미와 셀렉쿠스의 권력다툼이 일어남. 프톨레미는 빠르게 이집트를 장악하고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지정한 다음 팔레스타인을 침공. 가자지구에서의 승리로 페키니아 해안에서의 통치권을 얻어냄.
이 시기 상당수 유대인과 사마리아 인은 리비아 동부로 강제이주. 남은 이스라엘인들은 게루시아라는 원로회에 의한 자치권을 인정받음.
당시 두 제국의 중심부에서 상당히 멀리떨어진 예루살렘은 매년 20달란트의 황실세를 조건으로 상당한 자치권을 보장받음.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가 황실세를 거부해 군사적 식민지화 될 뻔했으나 토비야 가문의 요셉이 14년간 황실세를 대납해 자치권회복.
7. BC 2세기 경 셀렉시드 제국의 안티오쿠스 3세에게 프톨레미 5세가 패함. 셀룩시드 제국이 팔레스타인 점령.
이스라엘인들의 자치권은 변함없이 인정.
8. 이후 안티오쿠스 4세는 이집트 원정실패로 인한 정치적영향력 실추를 만회하고자 강력한 헬라화 정책을 전 제국에 시행함.
이는 예루살렘 자치구 내부에도 영향을 미쳐 헬라주의자와 율법주의자 간의 갈등을 심화시켜 BC 167년 마카비 전쟁 발발.
마카비 전쟁에서 율법주의자인 유다 마카비가 승기를 얻어 예루살렘에서 제우스 신전을 파괴하고 실질적 영향력 행사.
같은 해 안티오쿠스 4세가 사망하고 10살배기 안티오쿠스 5세가 즉위. 섭정관으로 임명된 시리아의 리시아스가 유다 마카비의 반란군을 토벌하기 시작.
예루살렘 포위까지 갔으나 페르시아에서 리시아스의 정적 필립이 시리아를 공격해 급히 철군함.
8. BC 162년 안티오쿠스 5세가 암살당하고 데메트리우스 1세 즉위. 니카노르 장군에게 유대 반란군 토벌을 명함.
BC 160년 유대 반란군 지도자 유다 마카비 전사. 그 기세대로 유대 반란군을 완전히 없애려 했지만
유다 마카비의 후계자 요나단 마카비의 비상한 외교술로 나바티안, 로마, 스파르타와 유대반란군이 우호적인 관계가 되어 일시적 평화가 찾아옴.
요나단 마카비는 데메트리우스 1세보다는 안티오쿠스 4세의 아들 알렉산더 발라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유다의 통치자라는 호칭을 부여받음.
9. BC 587년 예루살렘 멸망 이후 444년 만에 유대지도자 시몬이 이스라엘 왕국을 세워 하스모니안 왕조를 79년간 독립적으로 유지.
10. 하스모니안 왕조는 내부에서 분열되어 외부세력인 로마를 끌어들이게 됨. 두 세력으로 나뉜 하스모니안 왕조는 로마의 폼페이에게 의존.
폼페이는 중재를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오는 듯 했으나 도착 직후 두 세력과의 협정을 무시하고 하스모니안 왕조를 해체시킴.
이후 로마 행정관에 의해 팔레스타인이 지배됨.
11. 로마 원로원과 평민파의 갈등이 심화되가는 가운데 폼페이가 BC 48년 암살당함. 유대교로 개종한 이두메인 안티파테르는 이때 카이사르를 지원해
로마시민권을 부여받고 유대 행정관으로 임명받음. 기원전 BC 40년 하스모니안 왕조 재건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패.
12. 팔레스타인 지방에서의 권력다툼 중 안티파테르의 아들 헤롯이 정적들을 제거하고 로마의 안토니우스의 후원과 원로원의 지지로 유다의 왕으로 임명됨.
잠깐 정리하자면 유다지방은 로마제국내에 편입된 자치왕국이 된거임. 그 왕이 유대교인 헤롯인거고.
헤롯은 하스모니안 왕조를 계승하지 않고 로마의 팍스 로마나를 받아들여 헤롯왕국을 부흥시킴.
13. 하지만 개종한 외국인이 통치자라는 점과 로마에 지나치게 충성하는 모습이 이전 유대왕국의 계승자인 유대인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함.
BC 4년 헤롯왕이 사망하며 헤롯왕국은 3개로 분할됨. 이후 로마는 유다, 사마리아, 이두메 지방을 황제가 통치하기로 함.
나라를 11개의 행정지역으로 나누어 각각 산헤드린이라는 유대인 자치기구를 설치. 이때까지 로마의 군사적 개입은 없었음.
로마는 세금징수와 사법권행사를 제외하고는 유대인들의 종교나 관습법에는 관여하지 않았음.
14. 26년 총독으로 폰티우스 빌라투스(본디오 빌라도)가 부임함. 빌라투스의 통치기간 중 유대인의 민심이 크게 동요했고
이는 예루살렘에 수로를 개설하는 공사를 할때 가장 크게 촉발되었다. 빌라투스는 이때 일어난 소동을 잔인하게 진압했으며
유대인 내부의 잠재적인 지도자들도 모두 처형했다. 이때 예수도 처형당함. 특히 사마리아의 광신적 종교운동을 잔인하게 진압했는데
이에 시리아 총독 비텔리우스가 책임을 물어 그를 소환했고 36년 빌라투스는 시리아에서 자살함.
15. 37년 칼리굴라가 로마황제에 즉위하고 헤롯대왕의 손자이자 자신의 친구인 아그립바를 유다의 왕으로 임명함.
아그립바는 헤롯과 달리 유대인들에게 지지를 받았는데 헤롯대왕의 부인인 미리암이 하스모니안 왕조의 적통이었기 때문.
아그립바도 그에 부응해 유대인들을 지지하고 초기 기독교인들을 탄압함. 야고보가 처형당하고 베드로가 감옥에 갇힘.
아그립바 1세는 44년 사망하고 2세는 이름만 남아 실질적 영향력이 없었다. 아그립바 1세가 마지막 유대왕국의 왕이었음.
16. 아그립바 1세 사망이후 다시 팔레스타인 전역은 총독에 의해 통치됨. 로마는 자치권과 종교적 관습을 보장하고 군사권과
세금징수권, 재판권을 가져감.
17. 해방노예 출신으로 팔레스타인 행정관으로 부임한 펠릭스의 무능함으로 팔레스타인 지방은 혼란에 빠짐.
로마 행정부에 충성하는 유대 지도부와, 충성하지 않는 지도부, 그리고 그 모두에게 비협조적인 기독교인.
유대인에 의한 기독교인 린치살해(스데반), 야고보에 대한 사형언도등 팔레스타인 지방은 혼란에 빠졌으며
그에 대한 로마의 계속되는 행정공백과 무능한 행정관들로 결국 유대 반란이 촉발됨.
18. 로마는 예루살렘에서 일아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에게 약탈권을 부여하는 한편 시민을 다독이려 했으나
팔레스타인 지방내에 깊어진 계급간 갈등까지 폭발하여 막을 수 없게됨.
19. 66년 겨울 네로황제가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팔레스타인 반란진압을 명령함.
68년 네로황제가 사망하고 잠시 반란진압은 주춤했으나 반란군 중 과격파인 열심당(Zealot)이 예루살렘 진입로를 차단하자
베스파시아누스는 다시 반란군에 대한 공격을 시작함. 69년 베스파시아누스는 자신의 군대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고
반란군 진압은 그 아들인 티투스가 이어 받음. 70년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점령.
20. 예루살렘은 완벽히 로마의 도시로 편입되었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자치권을 잃고 모두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함.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왕국은 이 시점에 완벽히 사라짐.
-----------------------------여기까지가 이스라엘 왕국. 즉, 유대인들의 왕국은 자치권을 인정받아 기원전 11세기부터 70년까지 팔레스타인 지방에 존재했음.
21. 132년 바르 코크바 반란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은 완벽히 로마의 땅으로 바뀜.
325년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며 팔레스타인 지역은 성지로 지정됨. 유대인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에 출입금지.
337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사망. 그의 조카인 율리아누스가 황제가 됨. 율리아누스 황제가 예루살렘에 유대교 성전을 재건하는 계획을 수립.
유대인들은 이를 크게 환영했지만 기독교인들은 황제의 기독교를 모욕하는 것이라며 반대함.
363년 유대인을 위해 성전재건공사를 시작했지만 지진으로 중단되고 황제가 중단시점 몇 주뒤 사망하며 완전히 무위로 돌아감.
이로 인해 로마제국내에서 기독교가 확실히 자리잡는 계기가 됨.
22. 410년 로마가 서고트족에게 패해 멸망. 비잔티움 제국만이 기독교 옹호국으로 남아 수많은 로마 유민들이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유입.
5세기초 예루살렘에는 수많은 교회가 세워짐. 완전히 기독교의 성지로 탈바꿈됨.
23. 6세기 유스타니아누스 황제는 유대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함.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독립에의 의지를 가지고 저항함.
614년 페르시아가 팔레스타인 변방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자 538년 키루스 2세의 유대인 해방을 기억하며 환영함.
페르시아가 팔레스타인에 완전히 이르렀을때 유대인들은 이와 연합하여 팔레스타인 지방을 탈환함. 이후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아 유대공동체 설립.
24. 617년 페르시아가 친유대 정책을 철회. 친기독교 정책으로 돌아서 유대인들을 탄압.
25. 625년 비잔티움 제국이 페르시아로부터 팔레스타인 탈환. 다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함.
26. 640년 아랍세력의 등장으로 팔레스타인에서의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대립은 끝을 맺음.
--------------여기까지가 비잔티움 제국까지의 이야기
세줄요약.
1. 기원전 11세기부터 70년까지 팔레스타인에 유대왕국 존재
2. 70년부터 640년까지 로마에 완전 귀속되어 기독교인VS유대인
3. 640년 아랍세력 등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