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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31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총선(5월 10일)에 의거해 제헌 국회가 수립된다.

한반도 백성들은 이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권을 행사하게 된 선거지.

원래 이 선거는 UN총회의 결정에 의해 한반도 전역에서 치뤄지기로 되어 있는 선거였지만


↑김일성


북한이 UN 선거감시위원단의 입북을 막았고, 결국 선거는 남한 지역에서만 치뤄지게 되었어.


이때 북제주군(지금 제주도 제주시)은 제외되었는데, 왜냐면 4.3사건의 여파로 선거를 진행할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

따라서 이 지역은 1년 뒤에 선거를 하게 되


선거 결과 무소속이 가장 많았고 독촉(독립촉성국민회)와 한민당(한국민주당), 족청(민족청년단) 등이 그 뒤를 이었음

이때의 정당은 지금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과 같은 정당이라기보단 그냥 정파의 성격이 강했다

대체로 독촉은 친 이승만 계열, 한민당은 이승만을 '비판적 지지'하는 보수 세력으로 송진우, 김성수, 윤보선 등이 바로 한민당이었어

족청은 이범석이 이끌고 있었고.


나중에 독촉과 족청은 대체로 자유당으로 흡수되었고 한민당은 민주당이 되었어

사실상 지금의 양대 정당 구도는 이미 이때부터 만들어진거야

하지만 한국은 꾸준히 나름대로 의미있는 세력을 가진 제3당, 제4당이 존재해왔기 때문에 양당제와 다당제를 왔다갔다한 나라라고 할수 있지


하여간


이 국회의 초대 국회의장으로 당선된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야


부의장은 나중에 이승만과 경쟁하게 되는 신익희가 맡았고

↑신익희

참고로 한글 표기법이 개정되기 전인 당시에는 '신익히'라고 표기했음. 북한은 지금도 그렇게 쓰지


이때 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은 당시 국회의원 중 목사였던 이윤영 의원에게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해주십시오" 라고 부탁했어



불교 천도교 대종교 천주교 신자들이 피꺼솟했겠지


이윤영 의원 본인도 깜짝 놀랐다 함

이런 자리에서 자기가 기도할 수 있는건 큰 영광이긴 하지만 자기가 하면서도 떨떠름했던거지

물론 일부 의원들이 항의한 것도 당연하고


어쨌거나 이렇게 국회가 구성되고, 6월 초에 국회헌법기초위원회가 만들어져서 헌법 초안이 작성되었어


이 헌법 초안을 작성한 사람은 바로 제헌국회의원이었던 유진오 박사였어

유진오.jpg

이분의 경력이 참 특이한게

일제강점기에는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 좌파 문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친일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는 분이지

또 해방 이후에는 우파 인사로 활동했어


어쨌거나 파란만장한 분이지만 당시 최고의 법학자에 속했던 것은 분명해



이 헌법 초안은 의원내각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고 여기에 대부분의 정파가 동의했어


그런데 헌법기초위원들이 윽엑윽윽 하면서 열심히 헌법을 작성하고 있는 곳에 갑자기 이승만 국회의장이 등장했어


"뭐? 의원내각제? 으워언내에각제에?"


이승만의 아주 강력한 반대로 결국 헌법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게 되었고, 이후 제2공화국 시기의 1년 정도를 제외하고 대한민국은 계속 대통령제 국가로 이어져오게 되었지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제헌헌법은 완전히 대통령제도 아니었어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이며 국가 원수고 그 밑에는 부통령이 있으니 미국식 대통령제를 채택하기는 한건데,


대통령과 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한다는 점은 사실상 의원내각제에서 의회가 총리를 선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어


또 부통령 외에도 국무총리를 두었고, 국무원(지금의 국무회의)은 단순한 대통령 보좌기관이 아니라 내부에서 투표로 의결해서 결정하는 기구로 만들었어


그러니까 국무총리나 장관들 다수가 반대하면 대통령이라 해도 행정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거야


그래서 어찌보면 의원내각제처럼 보이기도 한거지



"대통령제일수도 있고 의원내각제일수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냐면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면 독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고, 또 비록 의원내각제는 포기하지만 그 기능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던거지


그러나 이런 간보기식 결정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어


대통령의 독주를 막으려고 채택한 이런 어중간한 헌법이 오히려 대통령의 독주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던거지


왜냐면


1. 아무리 국무원 내에서 총리나 장관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이들에 대한 임명권 자체가 대통령한테 있음


자기 뽑아주는 사람한테 반항할수는 없잖아?


2. 대통령에 대한 제약들이 오히려 대통령으로 하여금 초헌법적인 선택을 하게 함


국회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서 이승만 대통령은 자기의 국민적 인기에 의존하려 했고, 결국 전쟁 와중에 부산에서 정치 파동을 일으키기도 했어

부산 정치파동에 대해서는 나중에 쓰도록 할게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발췌개헌 등을 거치며 개정된 헌법들은 더 대통령에게 권력을 주는 형태로 가게 되었지




또 헌법 초안은 국회를 양원제(민의원, 참의원)로 구성하려 했지만 이승만의 반대로 이 역시 단원제가 되었어


그래서 마찬가지로 제2공화국 시기를 제외하면 한국은 쭉 단원제 국회를 갖게 되었지



그리고 원래 헌법 초안에서 유진오 박사는 '인민'이란 표현을 썼다고 해


그런데 윤치호의 사촌동생이자 윤보선의 숙부(나이는 비슷했음)였던 윤치영이란 국회의원이 있었어. 가문빨 ㅆㅅㅌㅊ?


이 사람이 '인민'이란 표현에 반발하고 나서.


"인민은 빨갱이들이 쓰는 말인데 유진오 너 빨갱이임? 스탈린 개새끼 해봐"


이 때문에 '인민'으로 할지 '국민'으로 할지를 두고 국회의원들끼리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결국 '국민'이 채택되어 지금까지 오게 되었어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인민'이 더 오래 쓰인 말이 맞아.


옛날부터 인민이란 말은 백성, 사람 등의 뜻으로 쓰여왔어


'국민'이란 말은 근대에 와서 생긴 말이지


그래서 유진오는 나중에 "윤치영때문에 좋은 단어를 북한한테 뺏겼다"고 말했다고 해


어쨌거나 지금은 국민이란 말을 우리가 잘 쓰고 있으니까 된거 아니겠니



그리고 제헌헌법을 만들때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어


바로 친일파 문제였지



친일파들을 단죄하기는 해야하는데, 불소급의 원칙 때문에 친일파들의 행위를 단죄할 수 있는 헌법이나 법률이 없었던 시점의 행위는 처벌할 수 없었던거야


그러니까 친일파들은 "우리가 친일 할때는 그게 불법이 아니었는데 무 슨상 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거지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헌법 부칙에 이런 조항을 넣었어.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


이 조항으로 인해 반민족행위처벌특별법을 만들 수 있었고, 반민특위가 구성될 수 있었어


물론 다들 알다시피 악질 친일파들에 대한 청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친일파 전체를 처벌할 수야 없는 일이겠지만, 악질적이고 상징적인 친일파 몇명은 처벌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야. 



어쨌건 이런 우여곡절 끝에 1948년 7월 17일에 드디어 제헌헌법이 만들어지게 되. 



이게 바로 제헌헌법 첫장의 모습이야. 


그리고 3일 뒤인 7월 20일에 헌법에 의거해 국회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하게 되. 


이때 투표 방식이 굉장히 특이했어. 


직접 입후보해야 하는게 아니라 국회의원의 추천으로 후보가 될 수도 있었어. 


이때 나온 후보가 총 4명인데 이승만, 김구, 안재홍, 서재필이지. 


김구는 대한민국 수립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국회의장 후보와 대통령 후보에 올랐었고, 심지어 서재필은 미국 국적자인데도 후보에 올랐어. 


그리고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이승만의 당선이었지. 


이승만은 200표 중 180표, 즉 91.8%를 차지해 대통령에 당선됐어. 

득표율만 보고 이슨만 아니냐고 물을 게이들이 없길 바래.


부통령에는 이시영이 당선되었어. 



1950년의 이시영

(고승덕 아님)


이시영은 유명한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동생이야. 이회영 뿐만 아니라 온 집안이 독립운동에 투신해서 아주 고초를 겪었던 집안이기도 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대표적인 가문으로 불리는 집안이지. 이시영 본인도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했어.



이렇게 대통령과 부통령을 모두 뽑은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드디어 정부를 수립하게 되었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뼈대가 되는 헌법은 이렇게 만들어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