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x2P5B

 

 

 

image

 

 

당신이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결코 이상 속 그대를 품에 안은 정복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앞에 놓인 한 주체의 불완전, 그대의 추한 모습 구석구석까지도 보듬어 사랑하겠다는 그것은 차라리 성숙에 가깝다.

 

우리가 오늘날 미디어에 비치는 사랑의 예쁜 모습들만을 바라보고 그를 꿈꿀 때, 현실은 고무줄처럼 당겨 절명의 순간 따끔히 우리의 살을 때린다.

썸머와의 사랑이 그녀와 나 우리 둘의 것이 아닌 아주 개인적인 환상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사랑은 고통스런 쓰라림으로 다가왔다가 성숙을 주고 떠난다.

 

영원한 사랑이란 근본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것.

지독한 사랑은 삶의 모든 조화를 부서뜨리고, 온 신경을 다른 타자에게로 집중시켜 한 존재의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만약에 썸머 역시도 그를 미치도록 사랑했다면, 그들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맞았을까

둘러싼 현실 모두 어둠속으로 뒤로한 채 둘만 남은 세상이 과연 낭만으로 가득 찬 곳일까?

 

 

 

오늘날 미디어가 각종 조건만남과 연애지침서로 약속하는 ‘안전한 사랑’에는,

마치 위험한 정글에 홀로 떨어진 사람을 격려 하는듯한 걱정과 조심성, 그리고 개인적 상처들로 전하는 경험의 위로들이 가득 들어차있다.

 

사랑이 아주 치명적이고 무서운 독이라도 되는 양, 무한히 신비한 타인이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예측 불가능한 것이어서

 젊은이들의 사랑에는 가이드가 등장한다.

이들의 목적은 위험한 사랑의 상처에 노출된 개인에게 ‘상처입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제시하는 것.

사랑은 아주 필연적으로, 고통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위험을 거세당한 사랑이라는 것은, 타자에게서 비롯되는 시련이나 진실된 온갖 경험들에 대한 회피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안전을 약속받은 사랑이 배반하고 자신의 편의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타인에 대한 포기는 너무도 쉽게 이루어진다.

수없는 연인들이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데에는

아픔에 대한 지속적인 도피와, 사랑의 쾌락을 향하는 반복적 잘못들이 곳곳이 녹아있다.

사랑이라는 경험은 언제나 무시무시한 아픔을 낳는다.

 

 

image

 

 

왕가위의 고통스러운 <해피 투게더>가 주는 감정적 쇼크 중에 하나는. 멜로의 장르를 공유하는 영화가

연인의 사랑을 얼마나 로맨틱하지 않게 그려낼 수 있는가에 대한 놀라움에서 온다.

 

첫 장면부터 몸을 섞는 두 남자의 ‘동물적’ 사랑을 카메라는 관능도, 동정도 없는 시선으로 멀찍이 바라본다.

나레이션의 주인공은 아휘, 다시 시작하자는 말로 자꾸만 아휘를 잡아당기는 즉흥적인 사랑때문에

담담한 목소리에는 깊은 상처가 묻어있다.

 

퀴어시네마가 될 뻔한 영화는 전형적인 연인의 사디즘과 마조히즘,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두 인간 사랑의 역사를 흑백필름으로 비춘다.

헤어지자고, 다시 사랑하자고 말하는 것도 언제나 보영이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 떠난 아르헨티나에서 연인은 이과수폭포로 향하다가, 그들이 가진 패턴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헤어진다.

홍콩에서의 삶을 뒤로한 채 떠나온 그들이 서로를 한 번 더 잃게 되면서 이번에 그들은 나락에 던져진다.

질 나쁜 사랑의 패턴을 반복하기라도 하듯이, 탱고 바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아휘 앞에 자꾸만 나타나는 보영은 자기 파괴의 궤적을 달린다.

 

 

 

결코 이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은데, 보영이 그저 말없이 그 앞에 등장해서 아휘는 고통의 기억을 다시 살아야만 한다.

이들 사랑의 첫 순간은 달콤한 것이었을까,

떨치고 떨치는  말에 피투성이로 집 앞에 나타난 보영을 아휘는 마지못해 안아낸다.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보영을 데려온 아휘의 아파트 안에서 다시 사랑의 장이 시작되며, 영화는 컬러로 바뀐다.

 

 

image

 

 

손이 나으면 다시 이과수 폭포에 가자는 보영을 씻기고 먹이며 아휘의 삶이 잃었던 활기를 되찾는다.

좁은 아파트는 눅눅한 공기와 이, 그리고 불평불만만 해대는 보영으로 가득한데

어쩐지 그는 힘들지 않아 보인다.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아 자꾸 떨어져 자는 아휘를 끌고 보영이 폭포로 향한다.

몇 걸음 가다 돌아왔지만 추운 공기에 아휘는 금방 감기에 걸려버린다.

 

날개가 꺾인 그를 돌보던 시간이 아휘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다.

아파트 공동 부엌에서 추는 푸른 빛 그들의 탱고가 그리움에 불꽃을 지피자 지켜온 균형은 무너져 버린다.

 

찰나의 쾌락에 빠져든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어 폭력에 휘말린 아휘는 탱고 바에서 나와 다시 중국 식당에 일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다시 지도를 펼쳐 이과수 폭포로 가기위한 여행을 준비한다

 

 

 

허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뜨거운 오후처럼 흐르던 에로티시즘은 아주 잠시동안 머물었다 흐려지는 것이다

행복하지 않아 집을나왔다고 말하는 소년에게 동화감을 느끼고 잘해준 것이

다시 보영과의 관계를 어지럽힌다.

 

보영이 떠나 버릴까봐 불안한 아휘가 다시 날카로워지고

일련의 사건들과 상대가 가진 기질에 의해서 나의 연인은 내 것이 될 수 없는 고통을 안긴다.

 

미약한 힘으로도 기우뚱 대던 그들의 관계가 불안과 집착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문 앞에 칼을 만지작대며 서있는 아휘의 모습이 징그러워 보영은 돌아누워 버린다.

검은 물 위를 떠다니기는 보영도 마찬가지다.

 

 

image

 

 

마치 헤어짐을 끝냈을 때처럼, 보영이 떠나는 과정에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던 아휘가 다시 생활을 되찾기 시작한다.

 

희미하게 성 정체를 드러내는 소년의 밝음으로 아휘는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은 쉽게 떠나는 것이 아니다.

돈을 모아 남극으로 떠나기 전 함께 술을 마시던 소년이 지구 끝에 그의 슬픔을 두고 오겠다고 말하며 녹음기를 내밀고

아휘는 참아왔던 눈물을 흩뿌린다.

 

사랑에 지쳐버린 아휘는 잠깐의 포옹 후, 소년을 놓아준다.

 

끝난 사랑의 외로움을 막연한 섹스로 달래던 그는 이제 떠나온 홍콩에서의 잘못을 되짚는다.

그는 이곳에 사랑이라는 미약함으로 도망쳐온 것이 아니다.

 

사랑은 때로, 지나온 잘못에 대한 구원이자 함정이어서, 아휘는 도살장에서 일하며 속죄하고 또 속죄한다.

멀리 돌아온 지난 삶을 지구 반대편에서 거꾸로 비추어보며

보영의 전화도 방문도 이제는 피하게 된다.

 

 

 

홍콩으로 떠나기 전 아휘가 홀로 이과수 폭포를 들렀을 때야 그는 비로소

그곳이 결코 보영과 함께 도착할 수 없는 공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보영이 아파트로 돌아가 홀로 그들의 시간을 되돌리지만

아휘는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대양의 바로 아래에 선다.

 

붉은 빛으로 맴돌던 사랑이라는 악몽적 사이클이 파랗게 홀로 서며 종말을 맞고

바다의 끝은 한 인간의 새로운 시작을 부르며 심연으로 사라져 간다.

 

남극으로 떠난 소년과의 인연도 무수한 가능성을 남긴 채 그는 집으로 돌아간다.

담배 연기처럼 자욱하던 집착적 사랑은 가장 공격적이고, 악몽적인 측면의 배출구가 되어 두 사람의 삶을 무겁게 당겼다가 놓아준다.

 

 

image

 

 

세상에 발생하는 비이성 모두를 사랑과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가두기에

인간의 관계는 너무나도 많은 감정들을 포함한다.

보영에게 사랑이 쉽게 버리고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아휘에게는 저지른 잘못으로부터 도망쳐오는 돌파구이자 죄의식이었을 것이다.

 

허나 사랑은 결코 초월적인 무언가가 되어 줄 수 없다.

폭포가 상징하던 이상적 사랑의 관계라는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거나,

홀로 도착할 수밖에 없는 성숙의 공간이다.

 

영원히 너를 사랑할거야 라는 노래의 후렴구도 수많은 나의 감정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무책임한 약속이다.

 

정체성에서 벗어 나오기 위해 우리는 사랑해야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운명의 적힌 것이 아닌 하나의 사건이어서 우리는 이 우연을 충실히 지속해야 한다.

 

 

 

라틴 문학의 환상이 담긴 왕가위의 멜로는 한 번 더 가깝지만, 만져질 수 없는 사랑의 속성 그대로를 드러낸다.

낙인과 함께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져버린 공간에서 그들 관계의 실패는 더 어두운 그림자로 다가온다.

 

보영이 성숙을 만나 스스로 행복해질지 우리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갈라진 그들의 삶은 이제 다른 궤도를 걷게 될 것이다.

세상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한 인간의 역사도 지나고 부서진 후에야 그 속의 의미를 깨닫는다.

 

한 사랑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객은 완전한 수동성에 갇혔다가 나오면서 그 진실을 대면하고,

진정한 사랑에 대하여 생각한다.

 

왕가위의 영화가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이유는 아마도, 이 사랑의 종말을 드러내는 방식의 압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