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1941년 2월 11일 일본 교토 시 에서 사업을 하던 한국인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가 패망한 직후인 1945년 8월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귀국, 부모의 고향인 경상북도 대구에 정착하였다. 학창 시절 그는 학업 성적은 우수하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든지 몰두하는 성격과 함께 뛰어난 손재주를 가졌다는 평을 들었고, 이러한 손재주가 훗날 그가 기업인으로 활동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3] 대구 성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4] 미국인 독립 선교사 딕 욕(Dick York)이 운영하는 성경학교를 수료하고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62년부터 권신찬(權信燦, 1923년 ~ 1996년)이 대구에 개척한 교회에 출석하면서 그로부터 신임을 얻고 1966년 그의 딸 권윤자와 결혼하였다.[5] 1972년에는 미국 국제 복음주의 동맹 선교회(TEAM) 산하에 있던 공산권 선교 방송국인 극동방송에서 설교 프로그램을 맡고 있던 장인 권신찬의 추천으로 극동방송 부국장 자리에 올랐으나 이들의 설교 방식과 신학에 비판이 제기되어 1974년 권신찬 및 추종자 10여명과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6] 1981년 12월 권신찬과 함께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정식으로 출범시키고 전도인으로 활동하였다.[7]

기업 활동

 

 

 

 

 

이명박은 1941년 12월 19일 일본 오사카 부 나카카와치 군 카미무라의 이명박 당선자는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이충우씨의 4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이 당선자 가족은 일제패망과 함께 조국으로 귀국했는데, 돌아오는 귀국선이 대마도 앞에서 난파돼 가진 것을 모두 잃었다. , 이때 이충우는 창씨개명으로 쓰키야마(月山)씨를 썼다.[18] 일제패망후 1945년 11월 귀국하여 경상북도 포항읍에 정착했다.

이명박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귀국 후에도 아버지는 목장일에 종사했고[19] 어머니는 과일행상에 나섰지만[19] 당시 한국은 모두가 가난했고 4남 3녀까지 둔 마당에 생활고는 해결되지 않았다. 원래 호적에 아버지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각각 이덕쇠, 이상정(李相定)으로 돼있었으나 이충우, 이명박(李明博)으로 바뀐 기록도 보인다.[20]

포항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한국 전쟁이 터졌고 미군의 폭격으로 바로 위의 누나와 귀국후 갓 태어난 막내를 잃었다.[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