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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이소로쿠 [ 山本 五十六 ]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제국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 , 


계급으로는 원수와 해군대장을 겸직했던 그는



당시 대본영의 주전파와 대립한 반전파로써


이미 1차대전이후부터 명실공히 최강대국이었던 1위 미국과의 전쟁을


결사반대했던점과 항공모함을 주력으로한 해상기동전의 가능성을 알아봤다는점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부내에서도 몇안되는 개념인사로 비치는 경향이있긴하다.



'하지만 결국 그정도의 식견정도가' 한계였던 인물이기도하다.



서양에서 '도고 헤이하치로' 를 명장으로 추대하지만


'야마모토 이소로쿠' 를 반쪽짜리 패장으로 평가하는것 또한


실질적인 전과나 치적부문에서 압도적으로 격차가 있기때문인데..

 



요컨대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경우엔 식견면에서는 상당히 유능해보이는 일면을 보이지만


직접 전쟁을 겪었던 미해군측에서는 야마모토 이소로쿠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지않는다.



이유는 바로 그가 지휘한 결과 미군에게 이렇다할 타격을 주거나 일본이 승전하지 못했기때문이다.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평가가 저하되는 가장큰 실책들]




1.진주만 공습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직접 작전계획을 수립해 본인이 일선에서 지휘까지맡은 


이 작전은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기습공격을 감행해 전쟁에 돌입하는


최고의 분수령이될 작전이었으며 


이때 미국의 태평양함대의 거점과 전력을 괴멸시키지못하면


일본해군의 미래가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초전이 곧 결전 그 자체였다.



이때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오늘날에도 자주 화자되는 


진주만공습시의 일본군의 실책 


으로 이미 어느정도 깊게파고든 밀덕들사이에서는 상당히 평가가 안좋은데,


크게 진주만공습의 실패점을 나열하면 다음과같다.




1-1 진주만 공습당시 진주만의 유류저장소를 파괴하지않음.


진주만공습당시 미해군측에서 가장 잃어서는 안될 제1거점이 바로 유류저장소였는데, 


이는 본국과 멀리떨어진 태평양방면 함대의 생명줄이나 다음이없었다.


만약 유류저장소가 공습으로 파괴당해 태평양방면의 유류공급이 중단되었다면


미해군은 엄청난 경제적,시간적 손실을 입고 태평양방면군에 대한 유류지원을 위해서


대규모의 수송선과 작전을 별도로 수립해야했을것이다.




이때 유류저장소가 파괴당한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다면,


유류공급이 끊긴 태평양방면 잔존병력또한 이동과 작전에 제한을 받게되므로 


미해군측이 함대를 재건하고 물자공급을 재개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잃으면서


태평양권의 주요거점을 모두 일본군에 점령당했을 가능성도있다.







1-2 진주만 공습당시 진주만의 항만시설과 도크를 파괴하지않음.


유류저장소와 더불어 미해군측의 최고중요거점이 바로 항만시설과 함선의 수리를담당하는 도크였는데,


이때 공습당시 항만시설이 거의 파괴당하지않고 온존히 보존되면서


일본해군측의 함재기공습으로 인해 대파,격침판정을 받았던 대형전함중


일부는 그대로 연안에서 인양해 도크로 옮겨져 수리되어 다시 부활하게된다.



뿐만아니라 미드웨이해전까지 활약하게되는 불사신 항모 '요크타운'도 이때 파괴당하지않은


진주만의 도크시설에서 불과 며칠만에 긴급수리를 통해 작전에 투입되는등,


진주만의 시설 그 자체를 파괴하지못한 일본군은 전쟁기간 내내 발목을 잡히게된다.






1-3 위와같은 주요거점등을 타격하지못했다는것은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정보전능력이 결여되었음을 의미

이미 2차세계대전은 인텔리전스 워(intelligence war) , 

즉 『정보전』시대에 돌입한 시기로 적군에 대한 정보수집과

타격목표를 확실히 파악하고 정하는것에 승패가 갈린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전장이었다.


단기결전(短期決戰)으로 태평양방면의 미해군함대를 굴복시키고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것이 최우선목표였던 일본해군측에서는

당연히 제1전인 진주만공습으로 사실상 미해군의 모든것을 끝장내지않으면

미래가없는 결전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직접 계획을 수립해, 작전까지 직접지휘했던

이 진주만공습에서 미국의 주요거점을 전혀 타격하지못한 실패한 작전으로 끝맺힌점에서

이미 그에 대한 미해군측의 평가또한 결코 좋을수없는것이 사실이고 현실이다.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해군이 가장 잃는것을 두려워했던것

'전함,항공모함' 이 아닌, '진주만의 시설' 그 자체였다는것을 몰랐다는것이다.

미국은 막강한 공업력과 자원을 바탕으로 최고의 생산력을 자랑하는 대국이다.

따라서 일본해군에 의해 초전에 태평양방면의 전력을 다수 잃더라도,

그정도는 다시 생산하면 그만일 나라가 미국이다.



하지만 진주만의 주요시설은 전혀 얘기가 달라진다.

수리공창과 항만인프라 시설, 유류저장설비와 전략물자등은

생산력차원을 넘어서서 재구축하는것에 상당한 시간을 요구한다.


당시 미해군측이 평가한 진주만내 주요거점의 재구축예상시간은 최소 연간단위를 요구하는

전략시설들이었으며, 이 시설들은 파괴당하더라도 단기간내에 복구가 불가능했다.

일주일이면 경항공모함을 찍어내고, 한달이면 전함을 찍어낼수있던 

미해군이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그 자체를 몰랐고, 이때문에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정보전에서 이미 패배하고있었던것이다.


뿐만아니라 그는 진주만공습당시 추가투입과 추가작전이 가능한

막강한 전력이 있었음에도 저러한 전략시설들을 타격하기위한 재공습을 지시하지않고

눈에보이는 전함,수상함전력의 격침만으로 만족하여 후퇴하는 최대의 실수를 저지른다. 

이 진주만공습에서의 실수를 뒤늦게 만회하기위해 

이후 일본해군내에서도 진주만의 재타격에 대한 논의가 여러번 언급되긴하나,

결국 일본해군은 다시 진주만을 공격하지못하고 패전한다. 








2.미드웨이 해전의 패배

이 또한 연합함대 사령장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입안한 작전으로써

알류산열도를 비롯해 광범위한범위의 태평양거점을

함대를 둘로 쪼개 동시타격하는 초고난이도의 작전으로 격발된 해전이다.


미드웨이 해전또한 태평양전쟁사에선 진주만공습,레이테만해전과 더불어

상당히 유명한 일전이기에 대부분 결과를 알고있겠지만,

미드웨이에서의 패배는 일본해군의 멸망을 의미하는 패전이었다.


이때 주력항공모함 아카기,히류,소류,카가 총 4척이 격침당한

일본해군은 항모가 주력으로 바뀌어버린 전장에서 돌이킬수없는 타격을 입었고,

함내에 탑승하고있던 일본 최고의 정예파일럿들이 모두 산화하면서

후속 파일럿의 양성이 불가능해지는 최악의 인적자원피해를 입게된다.

이때부터 일본해군은 공세주도적이었던 태세에서 제해권을 상실하고

수비위주의 작전으로 태세를 변경하게되었고,

세부적인 작전계획의 결점은 다음과 같다.



2-1  미해군측의 행동변수를 고려하지않은 낙관적인 발상으로 광범위한규모의 동시타격작전을 수립

미드웨이 침공과 연관된 연합작전은 규모자체가 태평양내의 주요거점을

동시타격하는것을 전제로하는 2개함대의 동시작전으로,


초기 작전계획의 의도대로 흘러갔다면 훌륭한 강공책이었겠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애초에 1개거점에 대한 일본해군전력의 총력전형태였다면

피해는 상당히 완화되었거나 원래의 예측대로 일본해군측이 승리했을것이고,

미드웨이가 되었든, 진주만이 되었든  주요거점을 잃기시작한 미해군측에서는

상당히 골치아픈 상황에 놓이게되었을것이 자명했다.


이미 일본군측의 암호문을 해독하는것에 성공한 미군측에서는

'설령 우리가 태평양방면의 일본해군이 어디로 움직일지를 알더라도,

 막을수있을지 의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몇배가되는 전력을 지녔기때문이다.'

라는 당시의 회고가있는데, 저 말대로 반쪽짜리 진주만공습이라곤해도

태평양방면의 미해군피해가 상당했기때문에 일본해군측이 총력으로 거점을 공격할경우엔

올걸 알더라도 막을수가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본군측에서 알아서 전력을 쪼개준것은 미군측에있어서 절호의 기회이자 활로였던것이다.

때문에 미드웨이로 침공할것을 미리 해독한 미해군측은 만반의 준비를 갖춰 반격할수있었다.





2-2 자국해군의 최대전력을 지닌 함대를 말아먹은 나구모 주이치를 임명한것 또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장군에게 요구되는것은 전장에서의 탁월한 지휘뿐만아니라

적재적소에 알맞은 인물을 배치하는 용병술(用兵術)또한 중요하다.


미해군측의 2배가넘는 항공모함전력으로 전투에 나서

아군항공모함 전함격침이라는 최악의 패전을 낳은 

미드웨이의 패장 나구모 주이치를 그 자리에 앉힌사람또한

바로 다름아닌 야마모토 이소로쿠이다.


이미 그는 용병술차원에서도 자국해군의 기량을 파악하는것조차 실패한것이다. 

때문에 2-1의 2개함대 동시타격이라는 무리한 작전을 펼쳤던것이기도하다.






총합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일본군부내에서는 돋보이는 식견을 지닌 인물이다.

미국이라는 거인의 저력을 두려워할줄 알았고,

새로운 해전의 패러다임의 가닥을 잡아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에겐 보는눈은 조금이나마 있었지만

이렇다할 실력이 없었다.



또한 그가 전쟁을 이끄는동안 일본해군은 승전이아닌 패전의 나락으로 계속해서 말려들어갔다.


결코 만만하지않는 상대였던 러시아와 그 발틱함대를 상대로 충분치않은 여건속에서도

역량을 발휘해 격파했던 러일전쟁의 도고 헤이하치로와 평가와달리 야마모토의경우 극과극으로 달리하는것또한

그의 지휘력 자체가 보잘것없었기때문이다. 


미해군측에서는 지금도 전쟁중의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판단에 대해 의문과 박한평가를 주고있다.

"당시의 일본해군은 막강한 전력과 기회가 있었지만 야마모토의 지휘는 그걸 전혀 살리지못했다."



국내와 일본쪽에서 일본의 명장으로 추대되는 인물이지만

정작 직접 맞싸웠던 미군측에서는 부족한전력으로도 귀신같이 싸워냈던 

독일장성들에 비해 굉장히 박한평가를 받는,

무능한패장,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이런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