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 아니다.

중공인민해방군의 원수 계급을 받은 장군들 중에서도 엄선된 10명의 원수들.

10 Great Marshals of the People's Liberation Army

 

저 군복은 중공 건국 후에 제정된 원수 제복.

 

 

주더(주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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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의 신해혁명에 가담했고 군벌 토벌에 가담.

공산주의 혁명에 감명을 받고 모택동과 의기투합. 그 후 게릴라전의 전문가로 활약하며 개국공신이라 불릴 정도.

그러나 문화대혁명 때 실각, 살아서 복권됨.

 

 

 

펑더화이(팽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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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사람을 아낄 줄 알아 군부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한국전쟁 때 화력을 열세를 딛고 국군과 미군을 격파하여 1.4후퇴를 하게 만듦.

문혁 때 실각. 끝내 병사. 죽은 후에 복권됨.

 

 

 

린뱌오 (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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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유학파 출신의 인텔리. 인민해방군 최고의 야전사령관이라 불리웠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부상 후유증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못해서 린뱌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명이었던 선배 펑더화이가 발탁되었다.

중공 건국 후에는 기회주의자가 되어 문혁을 열렬 지지하고 권력에 다가섰으나 쿠데타를 모의.

쿠데타 모의가 실패로 돌아가자 몽골로 탈출하려다가 비행기가 폭발하여 폭사.

10대 원수이긴 하지만 린뱌오의 복권은 안되었음. 아마 될 일은 영원히 없을 듯.

 

 

 

류보청 (유백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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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해방군 최고의 지략가로 알려졌다.

서양에서는 2차세계대전 기간 당시의 중국 최고 명장 3인방을 뽑을 떄 린뱌오, 류보청, 그리고 국민당군의 바이충시를 꼽는다.

전투 중의 부상으로 눈을 하나 잃었다. 그래서 별명이 독목룡. 즉 애꾸눈의 용.

자신에게 엄격한 인물로 친구 덩샤오핑은 "저 친구가 하는 일이란 딱 세가지 뿐이다. 독서, 생각, 그리고 군대 지휘"라고 말할 정도였다.

군율에 엄격했고 인민해방군 창설의 주역을 맡았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도 류보청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군대를 지휘할 때마다 입버릇이 "검은 고양이든 노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돼"였다.

워낙 군부 내의 신임과 명망이 두터웠고 또 본인이 정치권력에 철저히 무관심하였기 때문에 문혁 때에도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허룽 (하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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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더와 비슷한 시기에 모택동과 의기투합. 그리고 국민당과 싸우면서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문혁 때 실각. 결국 감옥에서 옥사했다. 사후 복권 되었다. 

 

 

천이 (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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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파로 프랑스에서 같이 유학하던 저우언라이(주은래)를 만나 공산주의 혁명에 가담하게 된다.

군사적 재능도 있었지만 상하이 시장으로도 활동하는 등 실무 능력도 있었다.

문혁 때 옛 동지 린뱌오에게 배신당해 실각. 문혁에서 살아남았고 복권되었다.

 

 

뤄룽환 (나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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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뱌오의 부장으로 일하면서 두각을 드러내었다.

린뱌오가 세운 수많은 공들은 뤄룽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뤄룽환의 재능을 눈여겨보게 된 마오쩌둥에 의해 만주쪽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뤄룽환이 만주 지방에 진군했을 때 모택동은 인민재판을 열어 지주계급의 학살을 지시했으나 뤄룽환은 만주의 민심을 잃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였다.

문학이 시작되기 전에 암으로 사망.

 

 

 

시샹첸 (서상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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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독립군 장교를 양성하기도 한 황푸군관학교 출신.

워낙 용맹이 뛰어나 국민당군과의 전투에서 마오쩌둥조차도 포기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마오의 절대적 신임을 얻게 되었다.

문혁에 극력 반대하던 입장을 고수했고 특히 린뱌오 일당에 정면으로 맞선 몇 안되는 인물. 전력으로 덩샤오핑을 구해내기도 하였다.

1979년의 베트남 침공 때 작전을 입안하였으나 작전이 참패로 끝나면서 일선에서 물러났다.

 

 

 

네룽전 (섭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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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을 위한 군사고문으로 참여한 바 있다.

문혁 때 실각하였으나 나중에 복권되었다.

신식무기 및 핵무기 개발을 주도한 인물.

베트남 침공 당시 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참여했으나 베트남에서의 패배로 역시 일선에서 물러남.

 

 

 

예젠잉 (섭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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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방을 체포하여 문혁을 끝낸 것으로 유명한 인물.

대장정 때 마오쩌둥을 구해낸 일이 있었다. 그 일로 마오의 개인적 신임이 대단했다. 이는 그가 문혁에서 피해를 입지 않았던 비결이었다.

문혁 때에는 사인방에게 동조하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는 중립을 지키며 군대 실권자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죽자마자 군대르 일으켜 사인방을 체포하고 문혁을 종결지었다.

그후 실세 중의 실세가 되었으나 여전히 중립을 지키는 태도로 일관하여 중공 내부의 안정을 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