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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느 시점에서인가 미국을 동경해본 일이 있을 것만 같다.

지구 어느 곳 보다도 활성화된 케이블 TV와 광범위한 영화시장,

 이 속에서 재생산되어온 미국의 이미지란 정의와 평화, 다이나믹한 삶의 에너지가 녹아드는 유토피아.

 

오늘날 미국이 초강대국의 이름을 갖게된 데에는 헐리우드의 역할도 적지 않다.

 

이미지의 시대라는 요즘사회에서 경험의 이미지화는 동시적이라 부를 만큼 아주 빠르게 진행된다.

기록하기와 드러내기라는 후기자본주의 문화트렌드는 티비와 영화라는 매체를 거쳐, 오늘날 sns라는 활화산을 뿜어내며 그 정점을 달리게 되었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경험들이 끊임없이 과거의 이미지로 순환되는 요즘에도,

 헐리우드의 이미지 권력이 어느 개인과 집단보다도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이 흥미롭다.

 

 

 

전 세계인이 굶어도 결코 굶지 않을 것이라는 그들의 주된 상품은 꿈과 쾌락, 캘리포니아식 평온과 안락감이다.

헐리우드가 쌓아올린 허구의 이미지는 스스로 단단히 응고되어 제 2의 아메리칸 드림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허나 외부에서 바라보는 대상의 이미지와, 내부인이 인지하는 대상은 항상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2001911, 모두가 아는 그 사건이 cnn을 통해 전세계로 생중계되며 소위 아메리칸 드림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미국이 쌓아올린 허구의 이미지는 현실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대책 없이 무너져버렸다.

 

우리가 대상에 대해 갖은 이미지는 가상의 현실일 뿐, 실제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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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송에서 모 개그우먼이 농담 삼아 말하길, 길가에 누워자는 거지도 잘생겼다는 나라가 있다.

 

음식, 풍경, 유흥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져 대학생들이 돈푼모아 떠나는 유럽여행 코스에 결코 빠져본 적 없다는 나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같은 희대의 관광장려 영화를 탄생하게 만든 나라,

바로 이탈리아다.

 

 쌓여진 이미지처럼, 그곳은 과연 환상으로 가득찬 나라일까.

 

사실 헐리우드에서 비추는 이탈리아는 항상 긍정적인 이미지인 것은 아니다.

스콜세지나 코폴라같은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폭력의 이미지들은 물론 그를 바라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즐거운 오락이 되주기도 하였으나, 

불같은 성미의 이탈리아인들에 대한 편견을 키우는데 한 몫 하기도 했다.

특별한 일 없이도 빈틈없이 잘 차려입고, 신선한 식재료와 음식의 맛을 음미할 줄 아는 이들의 풍습은,

복잡한 요즘 세상에 휴식의 미학을 선사하는 동시에, 살짝은 재수 없다싶은 고상함을 지니고 있어

중독적인 시선을 흘기기에 넘치지 않다.

 

 

서양 문명의 요람이라는 남부 유럽, 그리스로부터 시작한 철학과 예술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창궐이었다.

실용적이던 그들이 믿음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와 노래의 미학은 극에 달했다.

콜로세움과 트라야누스 기둥, 중세 로마네스크를 거쳐 르네상스에 꽃을 피운 문명의 전성기는 아직도 찬란하게 로마를 수놓고 있다.

 

싸움과 싸움, 사색과 사색을 거쳐 오늘날의 문화로 천천히 걸어온 이탈리아인들에게

 격동하는 현대사회는 남들과 보다 깊은 의미를 가지리라.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오랜 분열의 역사를 경험한 이들의 민족주의는 무솔리니의 바람을 만나 더 큰 파시즘으로 맹렬하게 흔들렸었다.

 

<더 그레이트 뷰티>영화의 처음 등장하는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저서 <밤 끝으로의 여행> 구절이

고되고도 먼 길을 걸어온 이탈리아의 운명을 부르는 것 같기도하고,

한순간 꿈같은 주인공의 인생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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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나타나는 로마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고상하고 지적인 공간, 그 자체다.

 

그런데도 로마인들에게 찬란한 유산이란 그저 삶 옆에 기대인 사물일 뿐, 이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이는 오직 관광객뿐이다.

 

여행 코스에서 이탈한 일본인 여행객이 흥분된 표정으로 로마의 도시를 내려다보다가, 그 아름다움에 경도당하기라도 한 듯이, 쓰러져버린다.

 빛나는 조각과 성스러운 음악이 마치 장례식의 미사처럼, 도시 위를 고요히 떠돈다.

 

 

로마의 오늘을 말하는 이 야심찬 영화의 주인공은 40년 전 위대한 문학을 써냈던 작가 제프.

 간간히 잡지에 기고하는 활동을 할 뿐 그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그가 몰두하는 것은 파티, 지식층과 사업가, 로마의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쾌락이다.

 

65세가 된 그에게 자리에 누우면 떠오르는 유년의 열정, 사랑, 순수는 이제 향수로 간직될 뿐 되찾기에 너무 늦어버렸다.

어떠한 미련도, 추억도 없이 그저 음악에 몸을 흔들 뿐.

성대하게 열린 제프의 생일파티가 마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말초적인 자극, 관객의 어깨마저 들썩일 만큼 정신을 놓아버린 흥분이 마치 MTV세대의 전시장처럼 펼쳐진다.

집에 돌아온 제프의 천장 가득,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바다가 들어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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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리조또보다 전자레인지에 한번 데운 음식을 더 좋아하는 제프는 로마의 어느 전통적인 관념과도 거리가 먼 인간처럼 보인다.

 

허나 애써 보려고 하지 않더라도, 로마 젊은 세대의 기형성은 두드러지는 것.

탈리아 컨셉트라는 행위예술가는 자기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감상주의자에, 소설에 몰두한 바이올라의 아들 안드레는 어머니마저 경악스럽게 하는 정신병자로 등장한다. 제프와 관계를 갖는 오리에타는 공허한 페이스북 세대, 제프는 더 이상 이 의미없는 장단을 맞춰줄 인내심하나 남지 않았다.

처음 파티장 씬에서 등장하는 음울한 인상의 여자가 프루스트 스타일로 글을 쓰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이들과 자연스레 겹친다.

 아름다움 이면에 숨겨진 필연적 진실, 그림의 미학을 이야기의 맥박 속으로 흡수한 프루스트적문체는

이들에게 하나의 패션이거나, 괴벽스러운 우상으로 존재할 뿐.

 

기성세대라고해서 다른 것은 아니다.

할거 다 하고, 즐길거 다 즐겼으면서 신세대에게 나땐 그러지 않았노라고 비판의 잣대를 가하는 위선적 인물을 제프는 비웃는다.

그도 그럴것이, ‘속물이 되지 않기 위해 리얼리티 TV에 참여했고, 세상을 위한 노력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 스테파니아의 말은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다.

 단체 보톡스 시술처럼 보이는 나이든 향락객들의 집단체험도 거의 종교적으로 그려진다.

번지르르한 말 속에 든 이들의 삶에는 경험을 거듭하며 얻은 잔꾀와, 스스로를 다독이느라 생긴 가식이 잔주름으로 가득하다.

  

 

 

그럼 제프는 어떤가.

친구들이 입을 모아 게으르다라고 말하는 그에게는 순수주의자 로마노같은 열정도 없고, 스테파니아같은 타협도 없었다.

40년이 넘게 La Grande Bellezza, 위대한 아름다움을 찾아 세상을 헤멘 그에게 어느날 유년시절 첫사랑의 남편이라는 사람이 찾아오고 나서야, 제프의 삶은 전환을 맞는다.

내 아내가 당신을 한평생 사랑했노라 고백하는 그의 말이, 굳은살로 단단해진 제프의 심장을 푸욱 찌르고 도망친다.

궁극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어쩌면 처음 겪은 것들의 떨림, 그 압도에 있는 것이 아닐까.

라모나를 데리고 로마의 미술품들을 바라보는 제프의 표정이 외려 더 황홀함과 슬픔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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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며 순수한 사회주의, ‘진정한 의미의 복지국가를 실현하기도 했던 찬란한 이탈리아는 크고 작은 정치적 혼란의 반복과 자본의 둔화를 겪으며 천천히 몰락해왔다. 70년대 이어진 성장의 둔화로 주춤하던 유토피아는 거듭된 노력에도 불구, 좀처럼 일어서지를 못한다.

 

오늘날 세속화된 이탈리아의 문화가 세태에 대한 환멸에서 왔는지 아니면 존재에 대한 회의에서 왔는지 알 길이 없다.

우리는 다만 제프의 상태로 미루어보아, 그들이 지독한 허무, 결핍에 시달려 왔으리라, 추측해볼 뿐이다.

영원의 도시 로마에서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진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사실 이 문제는 비단 로마인의 것만은 아니다.

실존주의라는 질병은 어떤 백신을 통해 건강한 삶의 방식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종교계 파티에 초대된 제프의 기대와는 달리, 추기경이 하는 말은 상당히 유아적으로 지속된다.

귀부인들을 모아놓고 나눈다는 얘기는 고작 요리 비법 따위의 사소한 것들.

성녀라 불린다는 마리아 자매도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이긴 마찬가지다.

저녁식사에 초대된 관계자라는 사람이 자꾸만 마리아 자매의 말을 대신하고,

1971년 이후로 응답한적 없다는 관계자의 말은 또 한번 이탈리아를 연상시키며 모종의 좌절감을 선사한다.

 

허나 속단하지 마라, 영화는 이탈리아를 포기하지 않는다.

한 마디 한마디, 힘겹게 입을떼는 성녀의 말속에, 제프가 찾아헤맨 진실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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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안드레의 죽음 라모나의 죽음에 대하여 어떠한 구체적 설명도, 명확한 이유도 주고있지 않다.

 이들 죽음의 암시는 미약한 이미지적 힌트로만 드러나는 것이어서,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희미하게 하는 요소가 되어준다.

서커스를 배경으로 로마와 제프에게 작별을 고하는 로마노의 인사도 어렴풋하게 도시 로마의 죽음, 꿈같은 역사의 연상을 불러온다.

 

위대한 아름다움의 대답은 제프가 사진전시를 둘러보는 씬에서 벌써 주어진다.

아버지가 매일 매일 찍어 남겼다는 아들의 모습, 살아온 매일의 순간이 무수한 사진속에 담겨 찬란히 빛난다.

이면에 어떤 것이 있는가, 해답에 괴로워하기 전에 실존의 순간을 감사하는 것.

미래 없이 살아온 제프가 아이러니 하게도 현재의 아름다움을 포착하지 못한 모습이, 그 아름다움의 값어치를 잊고 살아온, 구겨진 로마를 살짝 들어 털어낸다.

 

 

격동하고 좌절해왔으나 여전히 빛나는 이탈리아처럼, 세상에 대한 환멸로 갇혀 살기에 존재는 너무도 찬란하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이탈리아에 대해 맞는 점이 있다면, 현재의 충만한 삶을 통해 즐기는 그들 정신, 그것이 한 존재에게 주는 효용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유행처럼 되어버린 실존주의도 그 본질은 삶에 대한 분노나 허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아가는 것. 삶을 열정으로 살아가는 것.

인간의 운명은 좌절이나 우울이 아니라, 뜨거운 삶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껴안는 것이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뒤편으로 인간 질병의 큐어(cure)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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