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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슈타인이나 구데리안에 묻힌 독군 장성을 하나하나씩 파헤쳐 보자고 쓴다!


첨엔 망설엿는데 용기준 게이들에게 고마워!


부족한게 많겟지만 넓은 아량으로 봐주길 앙망한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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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풍고글을 착용하고 찍은 사진(이때 모델은 엄청나게 힘든 상황이였어)







풀네임  Otto Moritz Walter Model(오토 모리츠 발터 모델) 


1891년 1월 24일 ~ 1945년 4월 21일


독일 국방군 장성으로 최종계급은 원수까지 오르고 무장친위대가 아닌 국방군 소속으로 순수 실력으로 히틀러의 신임을 얻은 


총통의 소방수, 동부전선의 수호자, 방어의 사자 라는 별명을 얻은 발터 모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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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왼쪽 인물이 발터 모델이야 머리에 기름 좔좔 바른 다른 귀족 장성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모델은 다른 프로이센 귀족 배경집안의 장성들과 달리 독실한 루터교 신자인 음악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어


히틀러가 은근히 프로이센 귀족 장성들을 싫어했는데 모델의 이런 출신이 나중에 그의 진급에도 한몫을 했지 않나 싶어 


아무튼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김나지움을 다니며(김나지움은 독일의 인문계 교육기관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라틴어와 역사,시에 관심을 가진 그저 문돌이 였을뿐이야


그러다 모델집안이 새로 이사온 지역이 포병대대 주둔지 였고 자연스레 장교를 아버지로 둔 급우들을 만나며 영향을 받게되지


주변에 군부대밖에 없고 아버지가 행보관 이나 간부급인데 놀데가 어디있겠노? 군부대밖에 없겟지


자연스레 모델은 육군기지 훈련하는걸 구경하곤 햇어 이때의 절친이 한스-팔렌틴 후베 상급대장으로 


(모르는 게이들이 많을텐데 1939년 폴란드 침공당시 연대장이던 사람이 소장으로 진급해서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가하고 이후 시칠리아에서 미군을 상대로 ㅆㅅㅌㅊ는 방어전을 펼친 장군이야)



아무튼 어린나이에 군인들을 보며 영향을 받은 모델은 졸업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베를 비롯한 친구들과 그냥 보병에 입대를해버려


쉽게 생각해서 고졸 수능 만점 500에 450점찍고 대학안가고 바로 군대간거라고 생각하면되


이런 인재가 알보병으로 죽겟노? 당연히 사관후보생 추천받아서 장교로 임ㅋ관ㅋ 


이때부터 이제 모델은 필연인지 우연인지 엄청난 인연들을 맺게되


1차대전 당시 보병장교로 베르됭 전투솜 전투에 참전해 철십자 훈장 1급을 받고 이때 오스카 폰 프로이센 왕자(빌헬름 2세 황제의 5번째 아들로 당시 대령)

가 깊은 인상을 받아 장군 참모 과정 이수를 주선해줬어


이 당시 빽없고 머리 좋은 군인들의 출세가도가 보장되는 길이 바로 참모였어 참모진만 들어가면 인맥도 넓히고 귀족출신 장군들을 보좌하며 여러 경험도 해볼수 있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오스카 왕자의 부관까지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하게되고 잡은 기회를 잘 살린 모델을 눈여겨본 한스 폰 젝트가 오스만 제국 파견시 연락장교로 동행하게 되었어

(지금도 그렇지만 젋은 장교가 외국에 파견되는건 곧 자신의 경력에 엄청난 이점이 되는거야)








여기서 한스 폰 젝트가 누구냐! 잠깐 알아보고 넘어가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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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폰 젝트는 베르사유 조약에 묶인 독일군의 잠재력을 보존하여 제3제국의 폭팔적인 군비증강의 초석을 마련해준 인물로 2차대전 독일군의 아버지라고 불려

 

육군과 해군을 내각의 노예로 만들어버린게 아닌 대통령 직속으로 달아버려서 이게 민간인 출신 정치인들의 개입을 막고 프로이센 전통의 '작전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한 조치였는데


결국 이게 독일 국방군의 통합군 체제로 넘어가는데 상당함 걸림돌이 되버려 OKW와 OKH 가 따로노는 일도 만들어져 버리고


이런 영감이지만 그가 가장 우려했던게 소련과의 전쟁이였고 콧수염난 오스트리아 잡놈새끼가 젝트가 우려했던 일을 저지르고 말아버려



 


여하튼 다시 돌아와서


오스카 왕자와 젝트 장군이라는 빵빵한 연줄을 등에업고 장군 참모과정을 이수한뒤 대위로 1차대전 종전을 맞이할때까지 주요 전장과 참모를 모두 경험했고


부상에서도 살아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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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육군지휘부 병참 장교시절 (제일 왼쪽에 있는자가 모델) 


앞줄에 보면 힌덴부르크랑 루덴도르프장군이 있는게 보이지? 당시에 사적인 자리에서 빌헬름2세와 만난적도 있다고해




1차대전이 끝나고 모델은 군에 남을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어


장군 참모 과정을 거치고 빠방한 경력을 가졌지만 패전국인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에 얽매인것에 엄청난 실망을 했지


그렇지만 한스 폰 젝트가 선별한 4000명의 정예 장교 선발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포함된걸 안 모델은 전역 생각을 접어버려 

(나중에 이 4000명의 정예장교는 2차대전 전간기 독일군의 유럽 정ㅋ벅ㅋ에 엄청난 공헌을해)


그리고 모델은 대규모 기동훈련에서 '상급 지휘관에 걸맞는다'라는 높은 평가를 받게되


이후 로스베르크 보병대장의 참모로 근무하는데 이때 로스베르크 대장의 전술에 감명을 받고 나중에 동부전선에서의 탁월한 방어전을 보여주게되지


젝트 장군이(젝트 장군은 어떻게 보면 모델의 젋은 장교시절 성공의 발판을 마련해준 인물이야) 소련과 체결한 조약 으로 6주간 소련에 머무르며 


기갑부대를 활용한 기동전 교리를 배우고 소련군 무장 수준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기도해

(이 당시 많은 정예장교들이 소련장교들과 교환식으로 파견을 나갔는데 이때 제출한 보고서들이 바바로사 작전때 엄청난 도움이되)


여담으로 이때 교환된 장교들중에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라는 대위가 있는데 소련에서 만슈타인 교환으로 온 장교가 '게오르기 주코프' 얄궃은 운명의 장난이지?


소련에서 돌아온뒤 스페인 내전때 루프트바페의 연락장교로 갓다가(나중에 이걸로 그의 나치성향이 매우 논란이되)


병무국 기술장교로 구데리안의 기갑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진보적인 모습도 보여줘




대망의 1939년 폴란드 침공당시 독일군 4군단 참모장이였던 모델은 폴란드 남부 침공 계획을 입안했고 이러한 공적으로 중장으로승진 16군단 참모장으로 옮겨가


1932년 중령이였던 사람이 불과 7년만에 육군 중장으로 승진 엄청나지? 물론 그때 독일군 장교들의 승진속도가 엄청빨랏지만 모델은 조금 독보적이였어


16군단에서도 프랑스 침공당시 마지노선 우회 공격을 성공시키며 이후 영국 상륙작전인 바다 사자 작전을 대비해 훈련을 하다가


계획이 취소 3기갑사단장이 되어 그의 커리어에 처음으로 야전지휘관이 되었어


모델은 처음으로! 병과에 상관없는 종합 훈련을 창안하여 실시했고 이는 선진적이였고 훗날 바르바로사 작전때 엄청난 진격속도를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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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초기 1941년 8월1일, 좌측의 3기갑사단장 모델과 우측의 하인츠 구데리안


1941년 6월 22일 독소전쟁이 시작되자 모델의 3기갑사단은 구데리안의 2기갑군으로 배속 되어서 주변의 실전 경력이 없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4일간 310km를 질주하며 소련군 14기계화 군단! 을 해체시킴으로써 개전 2주만에 훈장을 수여받아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모델은 1기병사단 지휘권을 얻게되고 


3기갑사단은 모델 집단이라는 별명을 얻게되


당시 프랑스 침공을 능가하는 엄청난 기갑전의 신화를 써내려간 구데리안 기갑군에서 모델은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고 실패하는 법이 없었어


이러한 무공을 인정받아 기갑대장으로 승진하지 (중장달고 2년만에 대장진급 ㅍㅌㅊ?)


모스크바로의 미친듯한 질주가 갑자기 베르히테스가덴의 또라이에게 날아온 키예프로 방향전환 명령을 받아 막히자 측면이 노출되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키예프 포위망을 완성시켜


그리고 41년 10월 모스크바 20km 앞까지 도달하였으나 강추위와 소련군의 반격으로 후퇴를 하는데 모델은 여기서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무너진 규율을 세우기 위해 권총 한자루를 쥐고 HQ와 전선을 오가는 미친듯한 지휘를 보여줘



그후 1942년 1월 발터 모델의 커리어에 전설로 남을만한 1차 르제프 공방전이 벌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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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1월 르제프 전투의 부대 배치도야 빨간건 소련군이고 독일군이 소련군에 완벽하게 포위되어 있는걸 알수있지?


종전후 오랫동안 독소전쟁하면 쿠르스크 전투와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이 주 얘깃거리였는데 뒤늦게 세상에 르제프 공방전이 알려지고


소련 붕괴후 사료가 공개됨에 따라 모델이 더욱 굇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1942년 1월에 갑작스럽게 9군 사령관에 임명된 모델은 강추위를 도리어 이점으로 활용하면서 


후방에 강하한 소련 공수부대를 포함 수적으로도 4:1의 열세에 보급품의 부족이라는 열세인 상황에서도 


예비부대의 정확한 투입과 화력의 집중적인 운용으로 소련군의 모든 공세를 물리치고 최상의 타이밍을 잡아내서 도리어 반격을 가해 소련군을 궤멸시키는


레전드급의 활약을 보여줘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르제프 돌출부에서 주코프,이반 코네프,로코소프스키의 맹공격을 차례로 패퇴시키고 도리어 반격까지 가하는 위업을 달성하고 '방어의 사자(Abwehrlöwen)' 라는 명성을 떨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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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제프 공방전의 수훈을 인정받은뒤 찍은 사진 (감개무량하노?)


아까 맨처음 첫번째 사진에 모델에게 엄청 힘든 상황이라고 올린 사진있지?


그사진이 바로 9군 사령관에 임명될때 찍은 사진이고 이사진은 그로부터 1년뒤 모든 공세를 패퇴시키고 찍은 사진이야


르제프 공방전으로 모델은 '르제프 암흑의 나날(Rzhev Dark days)을 9군 영광의 날들(9th Army Glory Days)로 바꾸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라는 평을 얻고


후에 1943년 5월23일 벨리 전선을 시찰한 모델이 사령부로 귀환을 하다 파르티잔의 총격을 받는 일이 벌어져




1부끝


3줄요약


1.모델은 ㅆㅅㅌㅊ는 인맥과 스승을 만나


2.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3.르제프 공방전에서 화려하게 꽃피운다








게이들아 글쓰는게 이렇게 힘드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양이 너무 많아서 2개 파트로 나눠야 할거같다 일단 파트1은 '기승'이고 파트2는 '전결' 이런식으로 마무리 지을께


솔직히 말해서 국내 웹사이트에서 발터 모델에 대해 정리가 엄청 잘된곳은 엔하위키 밖에 없어서 거기 글을 거의 베껴오다시피 타이핑했어


그래도 최대한 내가 가진 지식안에서 설명을 도와주려고 애썼고 비판을 하려면 마음껏 해도 좋아


국내에서 2차대전 장군들하면 맥아더,패튼,브래들리,몽고메리,주코프 같은 승전연합국 장성들이 유명한데


항상 부족하고 노답인 상황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이끌어낸 국방군 장성들도 알아줬으면 해


독빠라는 점에서 나치빠라는 비난은 조금 아닌것같아


베어마흐트와 슈츠슈타펠은 뿌리가 다르고 면밀하게 보면 별개의 집단이야


슈츠슈타펠 즉 SS무장친위대는 그냥 정부지원 받는 총든 깡패새끼들이고


베어마흐트 독일 국방군은 2제국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부터 핏줄이 내려오는 혈통자체가 틀린 집단이야


나중에 OKH랑 OKW때매 지휘체계가 섞여서 개판나지만 애초에 근본은 다른집단이야


오죽하면 프랑스 침공때 아인자츠그루펜이 학살짓 하고 돌아다닐때 베어마흐트 내부에서도 '군법회의 집어처넣어야 하는데 히믈러가 쉴드 쳐준다 이 버러지같은 새끼들' 의견이 대부분이였고


게다가 독소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베어마흐트의 인종청소는 손에 꼽을 정도였어 왜냐하면 최전방 전선에서 주민들을 함부로 건드렸다간 피 보는건 우리다 


라는 사실을 지금 군필자들도 잘아는데 얘들이라고도 몰랐을까?


나치빠새끼들을 옹호한다는 욕을 할수도 있겠지만 드러난 팩트들을 알아줬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