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 시에서 사업을 하던 한국인의 아들로 태어나 소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들과 함께 대한민국에 귀국, 부모의 고향인 경상북도 대구시에 정착하였다. 학창 시절 그는 학업 성적은 우수하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든지 몰두하는 성격과 함께 뛰어난 손재주를 가졌다는 평을 들었고, 이러한 손재주가 훗날 그가 기업인으로 활동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3] 대구 성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4] 독립교회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성경학교를 수료하고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 때 권신찬이 담임하는 교회에 출석하면서 권신찬으로부터 신임을 얻고 이후 그의 딸과 결혼하였다.[5] 1981년 12월 권신찬과 함께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설립하였다.[6]
기업 활동[편집]
1974년 무역업체인 삼우트레이딩을 인수하여 기업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유병언은 1979년 구약성경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유대인 지도자 모세의 이름을 딴[2] 주식회사 세모를 설립, 건강식품, 선박제조, 자동차부품, 건설 등 9개 계열사를 거느린 종합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86년에는 전두환 전 대한민국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한강 유람선 사업권을 취득하여 주목을 받았으나, 1990년 태풍으로 타 회사 유람선이 떠내려와 세모 한강 유람선을 받아(아파트에서 시민이 촬영한 영상이 아홉시 뉴스에 그대로 공개됨) 일가 친척을 포함한 승객 15명이 실종되기도 하였다.
이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과 연루되면서 1991년 구속 수감, 오대양으로부터 자금을 받은 부분에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교회 신도들의 헌금을 횡령하였다는 혐의는 유죄로 인정되어 이듬해 징역 4년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하기도 하였으며, 1995년에는 세모에서 해운사업부를 분사시켜 자회사 세모해운을 설립하고 서해안과 남해안 20여개 항로에 총 27척의 여객선과 화객선을 운항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연안여객선업체로 성장시켰으나 이후 무리한 투자 후유증으로 경영난을 겪다가 1997년 부도 처리됐다.[6][7][8]
부도 이후[편집]
부도 이후 세모의 해운 사업은 1999년 3월 그의 아들들에 의해 설립된 청해진해운으로 승계되었으며, 경상남도 고성군에 있던 세모의 조선사업부는 2005년 7월 주식회사 천해지로 분사하였다. 이후 유병언은 기업 활동을 중단하였고, 한동안 대한민국에서 행방이 묘연하였다.
논란[편집]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의 모기업 아이원아이홀딩스 계열사 명단에 아해라는 이름의 기업이 올라있는 것이 확인되고, 청해진해운의 모기업 아이원아이홀딩스 대주주인 유병언의 둘째 아들이 아해 국제사진전을 주관하는 '아해프레스'의 대표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미국에서 활동중인 사업가 겸 사진작가로 알려진 '아해'라는 인물이 유병언과 동일인물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었고,[9] 이는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