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png


< 농업 가능한 영역>



고구려3.png


고구려 지도


발해.png



간단하게 고구려는 현재 하얼빈 조금 위로 까지 진출한 수준인데


이게 당시 전근대 기준 농업 한계선이였음.


더 위로 올라가면 기본적으로 인간 살수있는 최북방의 한계선인


외몽골 지역(내몽골 위의 몽골)보다 위도가 더높아지는데(바이칼호 위도) 이쪽은 추위 잘버틴다는 러시아애들이


적백내전때 도망치다가 겨울에 집단으로 얼어죽어버린 그런 동네라 사람들이 거의 안살고


산다고 해도 수렵 혹은 유목 하는 부족들 조금인데(여기서 조금이란건 평균 수백-최대 1-2천명 정도의 인구)


그 애들을 관청놓고 직접통치할수도 없고(도망가버리면 끝이니)


결국 얘들을 고생해서 달래고 은사품내리고 해서 받는건


Screenshot_22.png


동물 가죽들 혹은 건포도 같은 말린 과일류 조금 정도 인데


이건 근현대 담비코트같은 사치품도 아님.


당시 이런것들이 얼마나 가치가 없었느냐를 볼수있는 사건은


한족왕조 3대 굴욕들 중 하나인 토목의 변에서 볼수있는데,


애초에 토목의 변이란거 자체가 명나라가 오이라트 조공 안받아줘서였지.


일어난건데, 당시 명나라는 지들은 가질거 다가지고있는데 오이라트는 생필품 및 사치품 안가져오면


굶어죽게 생기거나 혹은 귀족들이 사치품없다고 반란일으킬 기세니까.


명나라가 오이라트에게 몇백-몇천 kg의 가죽을 받으면서도


자기네들 하사품이 훨씬 더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니 "니네들 가죽 좀 가져오는거 줄여라"


Screenshot_20.png


고 한건데 이러면 가죽조공해서 물물교환으로 생계이어나가는데


걔네들 생활 안되니까 빡쳐서 명나라 침공한거고 그게 명나라 황제뻘짓으로


대박 터진게 토목의 변이였고. 결국 물품적 재화로써의 가치가 전혀 안나오고


지배할려면 오히려 고구려에서 군사배치하랴 거기 그래도 조그만 부족이지만


나름 있는 부족장들 회유하랴 행정 기관 설치하랴, 또 그런 행정기관 유지하려


관리들 녹봉주랴 이리 저리 훨씬 깨지는게 많으니 안먹는게 당연할수밖에.


인구는 많아봐야 1-2천명을 못넘는 요즘으로 치면 무인지대 수준이고.


실제로 보면 알겠지만 발해만해도, 동그라미 친 블라디보스톡 근방에서 동쪽으로


농업도 유목도 거의 불가능한 지역 부터는 흑수말갈등 이쪽 애들이 살던동네였는데 제대로 지배도 안됬거니와


Screenshot_21.png


간접지배로 자치권 다주고 그럼에도 얘들 반란일으키고 발해 수도까지 쳐들어오고


한 수준. 형식적으로 가끔씩 동물가죽이나 잡초더미 비슷한 수렵한거 세금이랍시고 받고.


그리고 서쪽엔 말안하다시피 훨씬 덩치가 큰 중궈가 있고


북쪽으로가면 어차피 돈도 인구도 없고 그리하여 사람도 안사는 동네니 전략적 요충지도 못되고


아무것도 없는 지역이니 당연히 강성해져가는 인구많고 고구려 원래땅보다 기름진 농토도 훨씬많은 


남쪽으로 가는게 위정자들로써 당연한 선택일수밖에 없고, 그 이후의 한반도왕조들은


소빙하기를 겪으면서 농업한계선이 더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남만주조차도 별로 먹을 의욕이 안생기게되고(물론 여진족의 저항도 거셌음.)


고구려2.png

<갈색 : 유목 초록 : 농업 파란색줄 : 소빙하기 이후 농업한계선>


이건 만주지역의 인구가 전역 통틀어 50-60만대로 줄어드는것만 봐도알수있음.


고대만해도 그래도 100만에서 최대 150만까진 조금 유지가능한 동네였지만


소빙하기를 겪으면서 인구 부양력이 훨씬 줄어들게 됨.


즉 조상들은 평화주의자도 그렇다고 땅 욕심이나 야망이 없어서도 아니고 멍청해서도 아님.


현대인 기준으로 보면 빙하지대인 시베리아만해도 지하자원부터 해서 탐나고 미련해보이기도 하고


왜 안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수 있다는건 분명함.


하지만 이건 20세기 중후반이후에나 통용되는 얘기고 19세기까지만해도 얼음덩어리였으니(알래스카가 슈어드의 냉장고로 불렸던것처럼)


당시 조상들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한거임. 한국이 땅부족하다고 사하라 사막 땅 수십억 달러 줘서 매각 안할려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