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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기는 사실 백년전쟁 당시 영국의 아키텐등 노른자 땅을


프랑스에게 털리고 대륙의 아주 조그만 영역 만 남아있었던 때라


대륙진출은  가망이 없어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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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랑스 정계에서 용맹공 장이 이끄는 부르고뉴 파와


오를레앙 공작 샤를이 이끄는 아르마냑 파가 투닥 투닥 거리고 있었던데다


당시 프랑스 국왕으로써 중재자역할을 해야할 샤를6세는 무능했기에


당시 영국에게 재차 대륙 진출을 하게 할수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는데,


용맹공 장이 영국에게 헬프를 친거다.  그러니 헨리 5세입장에선 이게 왠꿀떡?! 이였던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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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5세>


여기서 프랑스땅에 대한 영국의 집착에 대해 의문이 들수있는데, 


당시까지만해도 영국은 본토만으로는 그저 그런 2류국가였고, 


인구도 150-200만에 지나지않는 소국이였던데다


상류층들은 아직도 정복왕 윌리엄 시절부터 이어져오는 프랑스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프랑스에 대한 야망이 강할수밖에 없었다. 


일단 프랑스땅 자체가 유럽에서 제일 비옥한 땅이란게 제일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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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리하여 영국 헨리 5세는 이 프랑스 내의 정쟁을 이용하여


프랑스 왕위권을 얻어서 프랑스 영국 두 곳을 통합할려는


야망을 가지고 1415년 8월 잉글랜드 군 1만명을 이끌고


프랑스에 상륙하고 항구도시 아르플뢰르에서의 공성전에서


많은 병력, 물자 그리고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정확히 9월 22일에 성을 함락하고 항복을 받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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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레앙 공작 샤를>


그리고 용맹공 장에게 서신을 보내어


'내가 프랑스 왕위의 적법한 계승자이니 샤를 6세 쌩까고 나를 도와라 ㅇㅋ?"


이렇게 나오자 용맹공 장은 처음에는 일단 실권부터 잡고볼까... 해서


도울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영길리 촌놈들이 프랑스를 지배하게 되는


시츄에이션으로 흐를게 뻔하였기에, 견원지간인 아르마냑 파와


유럽판 국공내전과 비슷하게 일단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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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헨리 5세는 자기 계획이 뒤틀리니 빡칠수밖에 없었지만


병력상 프랑스에게 열세였던데다, 이미 공성전에서 많은 병력과 시간을


소모한 것뿐 아니라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서 보급에 큰 차질이 생길수 있었기 때문에


일단 입맛 다시며 퇴각할려한다. 여기까진 프랑스에게 좋았다. 근데


퇴각하는걸 보고 기세오른 프랑스는 비록 아스플뢰르 성의 구원에 실패했지만


영국놈들이 프랑스의 조그만 거점인 칼레항구로 빠져서 


일부 병력은 남고 일부 병력은 영국 본토로 돌아갈려고 하는 찰나를 놓치지않고 


영국병력을 궤멸시키려 영국병력보다 2-3배가량이 많은 25000-30000명 가량의 군대로 추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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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입장에서는 여기까지만 해도 사실상 좆망 테크나 다름이 없었다.


물자도 비축된게 별로없었고, 무리한 공성전으로 병력도 소모되었었던 상황이였다.


그야말로 신이 헨리5세와 영국을 버리는가 하는 그런 순간이었는데


헨리 5세는 쉽게 말해 구국의 결단을 내린다.


어차피 도아니면 모가 될 상황이였기에


추격군이 칼레 포위하기전에 진을 치고


한판 프랑스군이랑 싸우자는 결단을 내린거다.


그리고 진을 친곳이 바로 아쟁쿠르였다.


프랑스군은 좀더 한타 병력을 더 모으기 위해서


기사들을 소집하고있었기에 좀더 시간 지연했다가 싸우자고 했지만


헨리 5세는 지금도 불리한 상황이였는데 병력까지 더 증강되면 


영국측에선 더더욱 답이없기에 '좆까' 라고 대답하고 10월 24일날


마침내 전투가 시작 된다. 전력차는 


영국군 6천명 : 프랑스군 3만명 5배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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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시작 당시 앞서 언급하였듯이 영국군은 식량 및 물자 부족에 시달렸고


병력 출혈이 심하였을뿐아니라 진영내에 콜레라등의 전염병까지 돌고있었기에


사기가 높지도 못하였다. 그에 비해 프랑스군은 현지 보급까지 되고있었고


영국군이 퇴각한다는 사실까지 겹쳐 사기가 충천해있던 상황이었다.


이 상황만 두고 보면 어떤 사람이든 프랑스의 승리를 점칠것이고


실제 전투 초반에는 그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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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은 숲으로 둘러싸인 좁은 지역의 개활지에서 벌어졌고,


프랑스측에선 프랑스 기사들이 영국의 장궁병에


안습하게  쳐발린거를 잘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 강력한 플레이트 갑옷으로 무장


및 말이 활에 공격맞아 조종이 불가능해져 낙마하는걸


방지 하기 위해서 하마하여 걸어서 진격했다.


이 전략은 효과가 상당해서 영국의 장궁병들은


프랑스군에 크게 피해를 주지못하였다.




허나....



과유 불급이라고 했던가.


사기가 너무 충천한것과 동시에 할아버지 아버지등이


영국군에게 죽었다는거에 복수심이 불타올라서


헨리 5세가 영국군의 장궁병에게 시킨 도발행위에


그대로 낚여서 총사령관이던 샤를 달브레가


지휘하고 있던 프랑스 기사단들은


그야말로 떼지어서 '땅크로 영국새끼들 대갈통을 날려버리겠어'


란 기세로 제멋대로 무질서하게 어택땅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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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좁은지역에 과도하게 밀집된


프랑스 기사단들은 자기들끼리 방해되어서


무기를 휘두를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프랑스 궁병대 또한 무력화 되어버렸는데


자기네들 선봉이자 주력인 기사단 등에다


활을 쏠수도 없는 노릇이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봉이었던 기병대들은


그야말로 영국 장궁병들의


먹잇감이 되어 화살비를 맞으시고 


거기에 덤으로 영국군의 나무말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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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의 기사들을 낙마시켰고


덤으로 전날 내린 비로 지면이 미끌미끌해졌는데


말들이 밟고 지나가자 진창이 되어버렸고


결국 다수의 프랑스 기사단들이 또 낙마하였는데


과도하게 몰려들었던지라 후방에 있던 기사들은 전열도 못갖추고


이 낙마한 아군들을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


게다가 장궁병에 대항할려고 입은 플레이트 아머는 오히려


무게가 너무 무거워 낙마한 인간들이 뻘에서 더 빠져나오기 힘든


효과를 창출하여 더더욱 전사자만 늘어나게 해주는 꼴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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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무용지물이 된 프랑스 기사단들 뿐 아니라


프랑스 중보병의 롱소드나 폴암등의


중무장은 당시 좁은 지형에 과도하게 밀집되있는 곳에서


무기 휘두를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게 했고


영국군의 단검이나 손도끼 망치 같은 빈약한 무장에


개털렸다. 영국군의 전술은 중무장한 프랑스 보병을 


여러명이서 진창에 빠드린뒤 단검 및 망치 세례로


하느님 만나게 해주는거...안습하다.


 

결국 영국군과 싸우기도 전에


지들끼리 밟고 밟아서 프랑스 기사들은 압사당해버렸고


영국 측에서 전통적으로 써먹던 화살세례가 먹히지않자


궁수들은 순식간에 무기 스왑을 시전. 진지 구축하는


망치 도끼 들고 영국 궁수들이 기사들과 프랑스 중보병들을 


복날 개패듯이 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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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국 궁수들은 숲에 숨어서 화살 날리다가, 


프랑스군이 혼란에 빠져들자 전쟁 전리품 획득을 위해서


일부 궁수애들이 단검들고 프랑스 기사들 육포 뜨기 시작하고


거기에 숲 양편에 있던 전 영국 궁병대들이 프랑스 군을 둥글게


감싸는 형태로 열심히 육포를 뜨고 망치로 


대가리에 못질을 하고 털어먹기 시작했다.


여기에 프랑스 궁수대는 쇼크에 빠진 아군들 탓에


별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무용지물화 되어갔고, 


그리고 후방에 조금남아있던 기사대들은


아군의 절망적인 상황을보고 열심히 달려와보나


화살비에 말들이 날뛰어 낙마하고 영국군에게 도륙당하셨고


그나마 후퇴에 성공했던 프랑스 병력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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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달브레님의 명복을>


도와준답시고 쳐 오는 2진-3진에 깔려 뒤지고


도망치지 못해서 뒤쫒아오는 영국군에 뒤진다.


결과적으로 이로 뒤진 프랑스군은 1만명


전사자의 대부분은 전방에 말뚝과 아군팀킬에


뒤진 기사들이였고 귀족들 다수도 죽었고 공작 3, 백작 5, 남작 90명이


죽었으며 총사령관인 샤를 달브레도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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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포로들>


그리고 전투 후반에 영국군도 실책을 저지르는데


당시 프랑스 패잔병들이 영국의 군수물자를 털어먹을려고 


고의적이라기보다는 우발적인 행동으로써 군수마차를 불싸지르고


영국의 경비병 몇을 살해하자 여기에 빡돌은


헨리 5세가 프랑스 포로들 전부를 학살 해버린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프랑스의 병력이 후달리게 하는 효과를


낳아 좋아보였지만 장기적으로는 프랑스 전역의 국민에게


압제자 학살자란 이미지와 함께 반영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므로


프랑스를 굴복시키기 힘드게 만드는 실책이 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이 전투의 결과는 그야말로


막대했는데, 프랑스군에게 추격당하던 신세인


헨리 5세는 프랑스 왕 샤를 6세 딸 카트린느와 결혼하여


둘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영국과 프랑스를 공동지배하는 왕이 되는것을


골자로 트루아 조약을 맺게 되고 프랑스 공주 데리고 영국본토로 귀환한다.


그런데 프랑스에겐 불행중 다행으로


헨리 6세가 태어나자 마자 헨리 5세가 하늘 나라로 떠나고


카트린느공주도 저 세상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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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아 조약>


그 결과로 당시 어린아이였던 헨리 6세였기에, 샤를7세는 트루아 조약을 무효로 하고


헨리 6세의 이중왕국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결과로 다시 전쟁이 터지고 이미 아쟁쿠르 전투에서


정예 기사단 다수를 소실해버린 프랑스는 전력차에서


영국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기 힘들었고 다시 뻘짓을 반복함으로서(...)


수도인 파리가 함락당하고 프랑스 왕은 ㅌ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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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 프랑스 보라 : 영국>


그러나 다 알듯이 프랑스의 성녀이자 구세주인


이분이 등장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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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


칼레를 제외한 전 프랑스 영역에서


영국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하고


프랑스의 재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하지만 한번 재미로 얘기를 꺼내보자면


헨리 5세가 갑자기 요절하지만 않았더라도 현재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것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합스부르크가(오스트리아)의 성장이 영국-프랑스의


반목이란 틈을 이용해 컸다는것과 프랑소와 등이 공공연히


신성로마제국 제위를 노렸다는걸 생각해본다면


영-불 제국이 합스부르크가를 억누름은 물론이요 후에 일어나는 부르고뉴 분할에서


부르고뉴(후에 나름 식민강국이되는 네덜란드 포함) 통째로 집어삼키고


신성로마제국 제위를 차지했을 확률이 높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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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제국>




그러면 자연스럽게 브란덴부르그(후에 프로이센 및 독일) 까지


최소 영향권 혹은 영토가 될수도 있는 노릇이다. 동시에 합스부르크 견제를 안받으니


북이탈리아도 프랑소와가 낼름했듯이 먹었을테고.


동시에 루이 14세때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서 스페인합병을


저지한 핵심국가가 바로 영국이었다는걸 감안한다면 그리고 영국의 따가리가 포르투갈이었다는걸 고려한다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영불제국 에게 합병당하면서 희대의 초거대 식민제국이 탄생했을수도있고


그 이전에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크는걸 아예 견제하고 독점적으로 식민지 개척을 했을수도 있다.


그리고 영국 자금 지원 없는 러시아나 여타 동맹국들은 그 이전에 혹은 그 시기에 좆망을탔을테고.


그야말로 헨리 5세가 요절만 하지않았다면  판도가 이리 됬을지도 모른다.


유럽 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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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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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1 영국이 사실상 프랑스에서 거의 손뗄시점에 프랑스 정쟁으로 프랑스 침공


2 프랑스 애들끼리 팀킬 자폭하면서 영국애들이 손쉽게 승리 그리고 조약으로 영국 프랑스 한나라 될뻔함.


3 근데 영국왕이 사망하고 프랑스왕이 조약을씹어서 다시 전쟁일어나서 영국이 이길뻔하지만 잔다르크로 역전함. 영불연합제국 성립은 f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