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우언라이 (주은래)
1898년 3월 5일 (중국) - 1976년 1월 8일
경력
1949.04~1976 중국 공산당 총리
1949.04~1958 중국 공산당 외교부 부장
1936 혁명군사위원회 부주석
1931 광시성 소비에트구 군사부장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참여한 중국 역사학자들은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설정하려 할 뿐만 아니라 고조선과 발해도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설정하려 하고 있다. 역사 진실과는 전적으로 배치되는 황당한 역사왜곡이다. 마침 고(故)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가 이런 유의 역사왜곡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 자료가 있다. 1963년 6월 28일 북한 과학원 대표단이 그를 방문하자 저우 총리는 한중 관계를 세 시기로 구분하면서 '두 민족의 역사적 관계' 시기, 중국 문헌 기록은 대국(大國) 쇼비니즘에 빠져 객관성이 결여된 불공정한 기록이 많다고 지적했다.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이 진실에 부합되지 않으며 이는 중국 역사학자들이 대국주의, 대국 쇼비니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데 기인한다. 조선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 송화강유역, 투먼강 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과 조선문헌에서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민족 발전을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토된 문물에서 증거를 찾는 것이고 이것이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다. 경박호 부근은 발해의 유적이 남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민족의 한 지파였다는 사실이다. 발해는 조선의 역사이다. 또 진ㆍ한나라 이후 빈번하게 요하유경을 정벌했으나 이것은 전쟁이 실패하자 돌아왔을 뿐이지 분명한 침략이다.
당나라도 전쟁을 치렀고 또 실패했으나 당신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 그때 여러분 나라의 훌륭한 장군이 우리 침략군을 무찔렀다. 서기 644년 양만춘 고구려장군이 안시성에서 당 태종의 침략을 무찔렀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 역사학자들이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하고 심지어 조선족은 ‘기자자손’이라는 말로 억지로 덧씌우기도 했는데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말이냐"
즉, 쉽게 말해서 고조선사와 고구려사, 발해사는 모두 우리나라의 역사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역사학자들의 역사왜곡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외에도 그는 북한의 고고 발굴작업에 대해 고구려 및 발해 유적을 발굴할 수 있도록 허락하기도 했었다. 예컨대 1963년 8월부터 1965년 8월까지 3년 동안에 걸쳐 중국 동북지방의 고구려 및 발해 유적 등을 대상으로 진행된 북한과 중국의 공동 고고 발굴작업에서 당시 최용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저우언라이에게 간청해서 저우언라이가 이를 허락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