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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Steps From Hell -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OST, 박진감, 웅장, 위엄, 박력)
글을 시작하기 앞서, 군도(軍刀)란 무엇일까?
군도(軍刀)는 군대에서 사용하는 칼이란 의미야.
현대에서의 군도(軍刀)는 전투용 목적이 아닌, 상징용 목적이 강해.
우리나라에서도 고위 장교들에게 군도(軍刀)를 수여하는데, 그게 바로 삼정검이야.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삼정도라는 이름으로 준장 진급자에게 칼을 하사했는데(대통령 퇴역시에도 대통령에게도 주는 것으로 알고 있음),
민좆뽕 쳐먹은 노무현 정부가 삼정도는 너무 서양식이 아닌가? 라고 해서 양쪽면이 모두 날이 있는 삼정검으로 바꿔서 하사해.




서양 근대 영화를 보면 칼을 차고 다니는 장교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

[영화 패트리어트의 한 장면, 대영 제국군 기병대가 전열의 붕괴로 혼란스러운 미국군을 공격하는 모습]
현대전에서 각종 기관총과 전투기의 등장으로 사실상 칼을 뽑아 돌격하는 근대 기병대는 무의미해졌어.
1-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 진영을 향해 칼을 뽑아 돌격하는 폴란드 기병대가 있었긴 했지만, 거의 전멸하고 말았지.
* 칼로만 무장한 것은 아님(창과 총으로 무장한 폴란드 기병대도 있었음)

[폴란드 기병대가 사용한 사브르라는 검]
그래서 2차 세계 대전에서는 거의 총기 개발에 주력하며, 검과 관련한 전술은 착검(총검) 전술에 국한되어 훈련을 받았지.
하지만 일본군은 그러지 않았어.
군 장교들부터 부사관, 그리고 전쟁 후반에는 개인 사병들에게도 군용 도검을 지급했는데, 또한 이와 관련한 정식적인 훈련 교법까지 있었어.
일본은 메이지 유신(서구화) 이후로 폐도령을 발휘했는데, 이는 민간의 도검 소지를 금지하는 정책이었어.
모든 것을 서양식으로 만들겠다는 '탈아입구(아시아를 탈출해 서구를 추구함)' 정책을 표방한 근대 일본 제국은 군대와 장비 역시 서구식으로 개편했지.
그리고 일본 제국군 정식 도검도 서양식 군도인 '서양식 세이버'를 채택했어.

[일본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에서의 아키야마 요시후루, 청일 전쟁에서 지휘도를 들고 일본군을 지휘하는 모습]
* 아키야마 요시후루(일본국 육군 장교) : 러시아의 코샤크(코삭) 기병대를 격파한 일본의 전쟁 영웅(진격의 거인 작가가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함) <조선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는 일본국 장교>
하지만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서구 문화의 풍조가 크게 퇴색하였어.
게다가 일본이 만주 침략과 만주국 건설,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서양 세력에 대한 배척이 강해졌으며,
국수주의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일본은 기존의 서구식 세이버 군도가 아닌, 전통적 일본도로 군대 도검을 다시 채택했어.
그리하여 여러 전선에서 일본군은 총기와 함께 군도를 통한 전쟁 수행을 하는데, 미국에게 항복하면서 패전하자,
미국은 일본군 도검의 상당 부분을 용광로에 집어넣었어.
군도를 사용하는 계층은 일반적으로 장교, 부사관, 육군 기병, 보급대, 헌병이었어.
여기서 통칭상 구군도와 신군도로 나뉘는데, 메이지 시대 때 사용했던 서양식 세이버 도검이 구군도야.
그리고 전통적 일본식 도검이 신군도야.
앞으로 편의상 구군도와 신군도로 부를께.
1. 일본군 도검의 상징적 역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본군 도검의 이미지는 '제국주의의 망령', '사무라이'라고 할 수 있어.
또한 지나친 국가주의에 따른 국민들에 대한 충성 요구와 관련한 이 모든 파시즘적인 요소들이 일본군 도검에 담겨있다고 생각하지.
또한 2차 세계 대전은 너희들도 아시다시피 기관총과 탱크, 그리고 각종 전투기가 난무하는 대규모 전투의 양상을 띄는 전투야.
그런데서 도검을 착용하고 싸우는 것을 보고 시대 착오적인 도구라고 생각하지.
중세 - 근대 시대에는 서양에서도 널리 도검이 사용됬는데, 이것은 장교 권위의 상징으로써 사용되었지.
보병은 총을 착용하고 거기에 착검 형태의 검이 있기 때문에 보병에게는 일반적으로 도검을 사용하지 않았어.
근대 서양에서는 기병대들은 보병들과는 달리 칼을 착용하였는데, 이것은 밀집 대형의 전투에서 퇴각하는 적을 기병대로 쓸어버릴 때 유용했지.
위에서 언급했지만 장교들이 착용하는 도검은 전투용이 아니라 상징적인 목적, 즉 '지휘도'의 역할이 강했고 이는 일본국도 마찬가지였어.
일본국에서도 상징용 목적으로 패용하였지만, 점점 갈수록 실전용 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겨우 이와 같은 요구에 부응해서
실전용 도검을 널리 보급시키지.
하지만 상대는 미국군의 강력한 화기였고 이 앞에서는 일본군의 도검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어.
그래서 태평양 전쟁의 전쟁 결과를 집계하면 일본군의 피해는 미국군에 비해 무척이나 많음을 확인할 수 있지.
한국 현대사에서도 도검을 사용한 예가 몇 가지 있어.
1) 김석원 장군은 일본군 도검의 무늬인 육군 삼련앵에서 태극 무늬로 군도의 무늬를 바꾸어 사용함, 당시 한국 전쟁에서 군도는 필요하지 않다는 평이 대다수였고 미국 고문관도 이를 지적했지만, 김석원 장군은 끝까지 군도를 고집하였고 최전방에서 군도를 들고 전쟁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함
2) 한국 전쟁 때 제6 사단장이었던 장도영 장군은 용문산 전투에서 빨갱이에게 포위당하자 자기가 차고 다녔던 긴 칼로 할복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김용태가 도검을 빼앗고 설득하여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음
3) 제3 사단 연대장 김종원 중령은 여수 반란 사건 때 부역 연루자 수백 명을 여수 국민 학교 운동장에서 일본군 도검으로 참수한 경력이 있음
- 김종원 중령은 잡혀 왔던 청년들을 보고 "이놈들에게 칼 시험이나 해보겠다."면서 들고 다니던 일본도로 한 청년의 머리를 내리침, 그리고 계속 칼을 휘둘러 7명의 청년을 죽임. 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칼 참수형 ;; 한국 전쟁 때는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많은 공훈을 세움.
출처 : 엔하위키
당시 한국 전쟁에서의 한국군 장교들은 일본 제국 육군에서 일한 지휘관이 많다 보니 도검을 상당 부분 착용한 장교들이 있었어.
그래서 미국 지휘부는 전술적 차원에서 이를 지적하였고 그 이후에는 도검 착용이 쇠퇴하였지.
2. 일본군 도검의 전술적 측면 - '반자이 돌격'
소련에는 '우라 돌격'이 있다면 일본에는 '반자이 돌격'이 있지.
반자이는 '만세!'라는 뜻인데,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면서 돌격하는 일본군의 특이한 전술이야.
당시 일본이 사용한 소총은 아리사카 소총이었지.

일본은 이 아리사카 소총에 착검(검을 착용함)하고 돌격하는 전술을 취해 왔는데, 러일 전쟁 203고지 전투는 압권이었지.

일본군은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는데, 러시아군의 아나톨리 스테셀 총장과 로만 콘트라첸코 소장은 203고지에 엄청난 요새를 구축해버려.
무려 콘크리트 벽을 동원하고 거기에 맥심 기관총까지 설치해버리지.
하지만 일본군은 무식하게 강행 돌파해버려.
병사들은 소총에 칼을 꽂고 총을 쏘면서 무작정 돌격하고 일본군 지휘관들도 장교용 세이버 칼을 뽑아 고지를 향해 돌진한거지.
이 전투의 일본군 지휘관은 노기 마레스케였는데, 이 전투로 인해 노기 장군은 2명의 아들이 전사하였어.
그리고 일본군 1만 6천 명이 사망하였고 4만 4천 명이 부상을 당했지.
반면 러시아군 피해는 사망자와 부상자 합해서 3만 명이었어.
(203고지 함락은 포의 지원으로 러시아군의 고지를 무력화시키면서 함락시킨 것)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당시 일본군 수뇌부는 전쟁의 승리 요인을 '착검 돌격'이라 판단하고 이 전술은 이후의 전쟁에서도 보편적으로 활용된다는거지.



일본 제국의 리즈 시절인 1940년경(1941~)에는 이마무라 히토시 일본군 장교가 16군 사령관으로 부임하여
자바섬 공략을 지휘해 9일만에 10만이 넘는 영국군과 네덜란드군을 항복시키는 전과를 올리는가 하면,
맥아더 원수가 철수한 필리핀 지역에서 7만 명이 넘는 미국군과 필리핀군이 일본군의 강력한 화력과 반자이 시전에 견디지 못해서
일본군에게 항복(42. 4. 9)하는 일도 벌어져.
일본군은 여기서 '바탄 - 죽음의 행진'이라는, 이른바 식량도 주지 않고 무리하게 이동시키게 하여 많은 미국군과 필리핀군이 사망하였어.
그리고 일본군은 심심할 때마다 자신이 들고 있는 검으로 미국군의 머리를 자른다거나 인체에 손상을 입히기까지 했다고 해.

(바탄 - 죽음의 행진에서 희생자들의 유해가 담긴 관)
하지만 미국군이 본격적으로 동남 아시아와 남양 군도(섬) 방면의 섬에 개입하여 일본군 정벌에 나서게 돼.
여기서 일본군은 미친듯한 반자이 돌격을 시전해 미국군을 향해 공격하지.
하지만 르마노프 왕조의 러시아 제정과 청나라와 중국군에게 먹혔던 반자이 돌격은 미국군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지.
물론 태평양 전쟁 초반에는 상당 부분 먹혀들었어.
이런 일화도 있다고 하네.
미국군은 진영을 구축하고 일본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함성을 지르면서 일본군이 칼을 뽑아 돌격하였데.
거기에 넋을 잃은 미국군(소규모 부대)은 순식간에 진영을 내주고 많은 미국군이 도륙당했다고 하네.
또한 밤에 기습적으로 반자이 돌격을 시전하면서 미국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지만,
전쟁이 갈수록 미국군은 오히려 일본군의 반자이 돌격을 기대하였고 이는 일본군의 전사자만 늘어나게 해 일본군 병력의 감소를 유발하였지.

일본군의 반자이 돌격을 따라하는 천조국 성님들의 유쾌한 장난
그렇다면 정리해보자.
왜 반자이 돌격이 먹히지 않는 것인가?
1) 일본군의 백병전 전술은 '근대'식이지만, 미국군의 백병전 전술은 '현대'식임. 게다가 일본군이 백병전으로 다가와도 미국군은 화력으로 쓸어버림.
2) 신체의 차이 : 설상 백병전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미국군이 거의 발라버림(당시 일본인의 남성 평균 신체는 165cm, 미국은 175cm)
- 게다가 미국의 당시 신병 및 군인은 '대공황'이라는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들임.
(우리나라로 치환하자면 6.25 전쟁과 산업화 세대를 겪은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라는 의미)
3) 지휘부의 무개념 : 걍 반자이 돌격 시전이 미친짓.
(그나마 초기의 반자이 돌격은 기관총 사수의 보조적인 엄호가 있었지만, 전쟁 후반에는 그거 닥치고 걍 강행 돌파 시전)
4) 미국군의 우세한 화력 : 일본군 답없음.
5) 현대 전장이라는 한계(무슨 전근대 시대도 아니고 ㅁㄴㅇㄹ).
3. 일본군 도검의 사진.
출처 : 미스터 술탄의 블로그(http://zairai.egloos.com/5333199)
<구군도 : 유럽식 세이버 검>

육군 지휘관 도검.

해군 지휘관 도검(심지어 해군도...).
뭐 공군도 칼차고 비행기에 탑승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니... ㅁㄴㅇㄹ ;;

심지어는 계급의 구분도 있다.

쪽발이 제국군 해군 장교 단체샷.
<신군도 : 일본 전통식 도검>


4. 미국과의 본토 결전 당시 군도 훈련

일본이 점령했던 태평양의 여러 섬 지대를 미군이 거의 장악했을 당시의 일본군 병력 현황.
3백만 명이 넘는다(ㅡㅡ).
미군의 일본 본토 공격이 결정되면서 일본 수뇌부는 미국과의 장기 태세 항전, 결전을 결의해.
그리하여 규슈에 35만 명의 일본군이 배치되었으며, 이후에는 60만 명 규모까지 불어나 미군과 싸우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
맥아더도 G-2 보고서에서 경고하였는데, "규슈를 봉쇄하지 않으면 일본군은 우리(미국)의 예측을 능가하는 강한 전투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일본은 1945년 여름 중순까지 무려 8천 대의 가미카제 항공기를 완성하고 엄청난 회복 속도를 보이면서 본토 방어를 시작해.
미국 정보 당국은 관동 지역의 일본군의 상황을 파악했는데, 해안포와 다용도포, 그리고 대공포와 기관포 모두 합해서 1500문에 달한다고 보고하지.
그리고 235만 명의 일본군 병사가 해안 방위를 위해 미군의 주요 상륙 지점에 주둔하였고 400만 명에 달하는 추가 일본군이 편성돼.

미군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훈련받는 도쿄(수도)부 여성

죽창 훈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본은 수백만 명의 병력을 징집하여 본토 방어에 결의, 심지어 식칼과 낫까지 동원해 모든 백병전 무기로 미국을 잡으라는
관동군의 명령이 내려짐과 함께 학교는 휴교를 선언하고 제국의 모든 신민이 미국과의 전쟁에 동원돼.
미국 정보 당국은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면 우리 젊은이들의 상당 부분이 사망할 것이다."
라는 판단하에 원폭 투하를 결정하고 마침내 일본의 주요 도시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지.
그렇게 전쟁은 끝나게 돼.
뭐 그 이전부터 일본의 소총 생산 공장이나 군수 창고 및 생산 기지에 폭격을 계속 가하긴 했지만, 일본은 절대로 항복하지 않았지.
하지만 원자 폭탄이 투하되면서 일본의 천황은 정식적으로 항복하면서 전쟁은 끝나게 돼.
<3줄 요약>
1. 일본군의 도검은 크게 구군도(서구식 도검)와 신군도(일본 전통식 도검)으로 나뉘는데, 처음에는 지휘용 목적으로 사용하다가 이후 일본군의 정식 전술 교리로 채택되면서 태평양 전쟁에서 널리 이용됨.
2. 하지만 미국군의 강력한 화력과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도검 및 착검과 관련한 반자이 돌격은 전쟁의 양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군의 병력을 감소시키는 악요인으로 작용함.
3. 구시대적 발상과 지휘관의 무능은 병맛이고 까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