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koZCp
대한민국은 진짜 여러면에서 익사이팅하고 스펙타클하며 간담이 서늘한 나라이다.

한쪽은 어둠속에 존재하고 한쪽은 대낮같이 밝다.

한국전쟁의 잿더미에서 세계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운 도시로 변화되었지만...

그 아름답고 세계적인 도시안에는 수많은 좀비들이 존재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요즘같이 좀비들이 다시 들끓기 시작할때면 광우뻥좀비 이전에 좀비 원조인 효순 미선 좀비사건이 생각난다.
참고로 나는 효순 미선학생의 죽음에 대해서 비하하거나 시비거는 바는 아니다. 그 두학생의 죽음에 대해선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점 분명히 말하고 얘기를 시작할까 한다.
그때 촛불시위와 더불어 한참 난리였었다.
광우뻥 촛불시위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때..........
1. 왜 그렇게 됐는지 혹시 알고있는 게이들이 있는지 묻고 싶고
2. 그 뒤에는 어떠한 세력이 있는지 알고있는지 아는 게이들이 있는지 묻고 싶기 때문이다.
3. 이 모든것을 설명해주기 위함이고 이것은 오늘날의 좌좀들의 철도노조들의 촛불폭동 스탈과 비슷하게 나타나려하기 때문에 한번 알아보자는 뜻이기도 하다.
4. 사실 미선효순사건 하면 머릿속에 떠올리는것이 안타까운 죽음이라는것 뿐 그날의 폭동은 왜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때는 2002년 우리나라 4강까지 갔던 월드컵 광분하던 시기였다.
예선에서는 폴란드를 2대떡으로 발라주시고 미국과 1:1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우리나라 월드컵사상 최대의 성과를 내고 있었다.
마지막 3차선만을 앞둔 시점에 전국민이 광분해서 히딩크를 외치며 국뽕에 취해있던 시기에..
6월 13일 경기도 양주시에 살던 효순이와 미선이는 오전 10시 30분경 미국장갑차 교통사고에 의해 즉사를 하게 된다.
좌빨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지만 그리 크게 이슈화 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다음날이 우리나라와 난적 포루투칼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좌좀을 이기는 국뽕ㅍㅌㅊ?
국뽕에 취해 4강까지 올라간 시점이 6월 29일이였고 결승전이 있던 6월 30일까지는 별일이 없었다.
그런데 국뽕에서 깨어나니 좌좀들이 제정신이 드는거 아니겠노?
7월달로 접어드니 슬슬 다시 언론에서 효순이와 미선이를 들먹거리기 시작했고 선동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미쿡AUT!!
그런데 그 숫자는 미비했고 별일 없이 그런데로 넘어갈 수 있었던 이사건이 크게 좌좀들에게 선동하며 불지른 일이 생긴다.

당시 법무부 검찰 3과 과장이였던 유재만이라는 검사가 있었다. 까보전은 기본이다 . (법무부 소속이다. 청와대 소속이란 뜻이다.)
이 작자가 갑자기 미군 사병의 재판 관할권을 한국으로 넘기라고 미군에 따져 물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종북 친북 세력들이 위아더월드가 되어 촛불로 일어섰고 반미시위가 엄청나게 퍼져나갔다.

주한미군철수, 국정조사를 외치고 각종 종교단체부터 시작해서 폭도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온다.

해외파 좌좀들은 다음은 뉴긔? 하고 같이 합세해주는 센스를 보여주자...

이에 신난 국내파 좌좀들은 부시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백악관 서버다운 운동을 벌인다. 대.다.나.다.
그러자 미국 당국의 고위층의 사과와 부시대통령의 간접사과를 받아낸다.
그러나 이를 두고 부시가 사과를 했느니 안했느니 좌좀들은 또 난리를 친다.

이런일이 왜 벌어졌는가?
부시는 토마스 허바드 주한대사를 통해 슬픔과 유감을 간접적으로 표명했다.
이를 두고 조선 동아 중앙신문은 사설을 통해 사과를 받아냈다고 기사를 썼으나, 좌좀들은 사과라는 단어가 부적절하며 표명이 너무늦게 나왔고 진정성이 없다고 또 지랄하면서 선동은 이어져 갔다.
결국 이사건은 SOFA개정을 이끌어 내고 일단락 지어진다.
기억하기도 싫은 지난날의 좌좀의 촛불시위였다.
그러면 얘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사건 당일 팩트를 조금 더 확실하게 확인해 보도록 하자.
그날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됐던 효순이와 미선이는(지방 자치단체장 선거일) 김다희라는 친구집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고 있었다.

(오늘날의 현장도로)
편도1차선의 좁은 지방도로에 갓길을 걷고 있었고 더구나 그길은 산을 깎은 바로 아래길이라 내리막과 오르막이 심한 사고위험이 높은 길이였다.
좀 더 넓고 평탄한 길이였다면 아마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다.
차량 행렬은 선두안내차량1대 병력수송장갑차, 사고차량인 M60AVLM, 그리고 일반 공병궤도차량 3대, 후미안내차량 1대 총 7대가 가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브래들리 M2/M3 브래들리 기갑 전투차량 5대가 오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차량끼리 충돌할 가능성은 높아졌고 차량들은 충돌을 막기위해 주위를 살피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옆으로 틀었고 사고 차량도 역시 같이 급작스럽게 옆으로 트는 과정에서 효순이와 미선이를 발견하지 못하게 된 사건인것이다.

(당시 기종 차량)
당시 미군의 증언을 들어보면..
앞서가던 니노병장은 여중생을 보았다. 그러나 1.2M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었고 통산장애까지 겹쳐 워커병장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워커병장은 정지신호를 보지못했다.
[참고]
니노병장은 7대차량행렬중 2번째 가던 장갑차에 타고 있던 자다.
워커병장은 7대 차량행렬중 3번째 가던 장갑차에 타고 있던 자로서 사고차량이다.
진술내용으로 보아..
결국 차량거리를 넓게 두고 움직였던것도 아니고 앞 장갑차의 신호로 움직여 지는것인데 장갑차의 높이나 차량간격등을 봤을때 통신장애로 인해 신호도 못받았을 뿐아니라 미쳐 대처를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도로상황 및 재현 )
그래서 유가족측은 항의를 시작했고, 미군측은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사단장과의 면담을 이뤄지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조의금과 따로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장례식 이후 사단장과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나중에 대규모 촛불이 일어날때 이또한 좌좀들의 풀발기의 원동력이 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으나
그당시 밝혀진 일인데도 풀발기하는데 어쩌겠노?
면담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번역상의 실수였다.
6월 19일 한미 합동조사 결과가 발표되었고 이번사고는 '결코 고의적이거나 악의적이지 않은 비극적인 사고 즉 우발적인 사고 였다라고 발표하며 사건 일지를 발표하게 된다.
사실 이때만 해도 사회적으로 별관심을 못받았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한참 월드컵 국뽕에 취해있었을 때라..
여기까지가 사건 일지에 대한 자세한 팩트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좌빨검사가 미군에 선전포고를 하고 나라를 선동함으로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성공을 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에 종북 친북 세력과 말만하면 다 알만한 그 얼굴들 빠짐없이 다 나와서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그당시 누비던 얼굴들이 오늘날의 얼굴들이다. 틀려진거 하나도 없다.
효순 미선 해놓고 구글링해서 이미지 검색해보면 어쩜 그얼굴들이 하나같이 다 그얼굴들인지.. 친목은 밴아니겠노?
그런데 한번 여기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바가 있다.
미군병사가 개씹새끼 정신병자새끼가 아니고서는 산사람을 아침시간에 산채로 일부러 깔아뭉길 사람이 있는가?
이것은 정상적으로 누가봐도 사고였다는것은 엄연한 사실인데 그당시는 누가봐도 미국은 죽일놈이 되어 백악관 써버를 다운시키자고 하는 좀비가 되어있었던 시절이였다.
비명에 너무 잔인하게 꽃같은 나이에 죽은것은 안타깝지만 미국대통령보고 사과하라고 지랄을 하고 백악관서버를 다운시키자고 폭동을 일으키고 반미구호를 외치고 나라가 이건 비정상이 아니지 않는가?
내가 이 폭동의 도화선이 된 윤재만검사의 주장이 왜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 하느냐?
그당시 국민들은 국뽕에 젖어서 윤재만을 왜쳤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선동이라는것이다.
우리가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작전중 교통사고에 대한 사법 재판권은 어디에 있는것이 맞는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아직도 아리송하고 그래도 그당시 선동당했던 좀비들의 영향때문에...
아니면 효순이와 미선이에 대한 애절한 마음에 아리송한가?
그럼 뒤집어서 물어보겠다.
이라크나 아프칸에 파견된 한국군이 작전중 교통사고를 냈다면 과연 한국병사는 이라크법정에 서야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외국에 주둔하는 자국 병사가 작전중에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경우 현지법정이 아닌 자국법정의 재판을 받는다.
이것이 세계 모든 외국 주둔 군인들에게 공통된 경향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검사하나가 선동질하여 좌익세력과 함께 미국AUT을 외친사건이 되겠다.
이 당시때 미국AUT 선동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한번 살펴보면
사회 문화적으로도 많은 이슈거리를 만들어낸다.
윤민석이라는 가수가 있었는데 Fucking USA2라는 노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가사 참조 http://music.naver.com/lyric/index.nhn?trackId=1587689
세계적인 카수 싸이 이놈아도 그당시 조금 지나 한때 븅신같은 짓을 했는데..
디어 아메리커라는 노래를 만들어서 발표를 했다. 이런것들이 다 효순이 미선이 선동에 의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강남스타일 돌풍 이후에 디어 아메리카라는 노래를 발표했었다는 흑역사를 미국엉아들이 알고서 존나 갈구니까 바로 꼬리 내렸었지.


이처럼 각 문화 사회에 걸쳐 종북 좌파의 활동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효순이와 미선이를 이용했다.
효순이 미선이 촛불3주년 4주년 이런식으로......
지긋지긋하지? 그게 좌빨들이다. 노짱 지들이 죽여놓고 지금까지 빨아대는거 보소.
그 이외에도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너무많이 쓰면 씹스압이 될것이므로 경악할만한 사건하나로 퉁치려 한다.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교육자 상봉모임이 2007년 8.6~9까지 평양에서 있었다.
여기에 한국교원총연합회와 (한국교총) 전국 교직원노동조합 (전교조) 교육자 100명이 김포에서 북측항공기로 평양으로 방문하였다.
빨갱이들 ㅍㅌㅊ?
서로간의 열정을 확인하고 교육자들의 통일교육을 실천할 의지를 다졌다.
모란봉 중학교를 방문하였고 한교실에는 5년전에 미군의 장갑차에 압사한 남한의 신효순과 심미선의 사진과 졸업증서가 책상위에 놓여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제1중학교 김영식 교장 선생은 심미선 신효순 학생들을 모란봉 제1중학교 학생으로 등록하여 졸업장을 수여하였다고 밝혔다.

위의 내용은 모 신문사의 당시 방문 기사 내용중 일부를 편집한 내용이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종북좌파 진보세력이라는것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 미선이 효순이를 미군철수에 이용해먹고,
2. 평양 모란봉 제1중학교 2003년도에 4학년 1반에 등록시켜 팔아먹고, 2005년도에 명예졸업을 시켰다.
3.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는 좌파들이 동상을 세워 미군철수의 상징물로 이용할 생각이다.
피눈물나는 그들은 이유도 모른체 영면에 잠들지 못할 것이며 이 사실을 부모들이 안다면 대성통곡을 할것이다.
좌파 종북 진보세력이라는것들이 얼마나 끈질기고 철저하게 이용해먹고 선동하고 왜곡하고 날조하는지 보여주는 좋은사례이다.
2002년도에 있었던 사건이지만 이사건은 좌파종북 진보세력에게 있어서는 아직도 ~ing 이다.
끝으로 왜 ~ing인지 한가지 사건을 보여줄까한다.
올해 국감때 그러니까 두달전이다 10.24일이다.

과거 진보의 화신이었으나 현재는 보수의 아이콘이 된 김문수 지사에게 민주당 신기남 의원의 발언으로 촉발됐던 '경기도 현대사' 교육이 국감에서 불꽃튀는 설전으로 이어졌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김현이라는 민주당의원이 김문수지사에게..
'경기도 현대사에는 효순 미선 사건이 단순한 교통사고로 기술돼 있는데 실제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질의하면서 도발하였고..
김문수 지사는..
'근본적으로 교통사고라 생각한다'고 대답하자 김현은 광분하여 언성을 높여 미군 장갑차에 의한 사고인데 단순한 교통사고라고하냐??며 재차 물었다.
아니 이런 좆같은 이런 씨팔 미국장갑차면 교통사고가 아니고 북한 장갑차면 교통사고냐? 니미럴?
국적따라 사고처리 내용이 틀려지는거냐?
다음 말이 더 가관이다.
제주 4.3사건부터 5.18광주민주화 운동등에 대한 경기도 현대사 기술내용에 다분히 우편향적인 점을 지적하며 김지사를 압박했다.
할말이 없다. 대.다.나.다
4.3사건은, 빨갱이가 일으킨 봉기사건인데도 빨갱이가 일으킨 봉기라고 말하지 말란다.
7시관점에서는 그럴수도 있겠다.
끝으로 한마디를 하며...
이글을 마치려 한다.
효순과 미순의 학생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그러나 종북 좌익세력들이 항상 그랬듯이 시체팔이를 통해 항상 끝없이 이용해먹는다.
그들은 죽어서도 이유없이 이용당하고 있다.
그리고 무지한 사람들은 여기에 선동당해 좀비가 되어간다.

효순이와 미선이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
그리고....
아직도 대한민국 이 자유의 세계에서 반미를 외치고 싶은 이가 있거든...

(한국전쟁에서 희생한 미국병사들의 유해가 뭍혀있는 Arlington Nationl cemetery : 알링턴 국립묘지)
대한민국을 위하여 젊은 청춘을 이름모를 국가에서 붉은 피를 뿌리며 죽어가던 30,000여명의 미군이 있었음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들의 유해는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채 이땅 어딘가에 아직도 뭍혀있고 그 때문에 자유를 얻었음이다.
그당시 대한민국은 분명 120여개국에서 GNP가 꼴찌를 다투던 나라였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등록국가중 꼴찌에서 3번째인가 그런것으로 알고있다.)
지금은 아닐지라도 그당시 대한민국은 분명 듣보잡같은 나라였었다.
당신이라면 자유를 위해 듣보잡같은 나라를 위해 젊은 피를 뿌려주겠는가?
적어도 선동에 의해 통수나 때리는 홍어짓은 하지말자.
탁월한 이승만 대통령에 의한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없었다면 우리는 애시당초 공산권으로 갈 나라였다.
네줄요약
1. 광우뻥촛불 이전에 효순미선 촛불 좀비가 있었다.
2. 효순 미선이 사건은 군사작전 중 벌어진 교통사고였다.
3. 그당시 종북 좌빨의 선동은 광우병 촛불만큼이나 대단했었고 그 기간은 훨씬 더 길었으며 미약하나마 아직까지 진행형이다.
4. 좌빨은 언제나 선동질이다. 선동당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