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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왕내제관련해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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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왕내제 개념에서의 외국은 중국에 위치한 강대국들이라고할수있는 요-송등 특정나라에 제한하지않는다? 과연 이는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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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가? 외왕내제에서의 '외부' 란 개념은 사전적의미대로 모든 외부세력


주변 소국이나 여타 부족들을 포함해서 말하는것이 아니라


중국을 말하는거다. 애초에 외왕내제란 개념부터가 주변의 강대국(중국)의 압박때문에


칭한건데, 주변 소국들에게는 황제라고 거들먹거렸으니 고려는 외국에게도 칭했다면서 말하는건 의미가 없다는 소리다.


이것은 우리가 한국의 문화가 세계로 퍼졌다할때, 동남아와 동아시아 일부 지역가지고


'세계'로 퍼졌다고 말하는거나 마찬가지다. 일단 '사전적 의미' 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한국문화 열광도 일단 '세계' 니 '세계에 한류문화가 퍼졌다' 고 단언할수있는것인가?


2 고려침입당시의 몽골군의 군사력에 관해서 반박.




2-1 고려의 강성한 국력으로 이간계를 써서 멸망시키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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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들고오는 근거는 제후란 강성하면 신하로두기어렵기에 이간시켜서 양분되게 한다... 라는 내용이다.


과연 저게 고려가 너무강력해서 이간계로밖에 무너뜨릴수없다는 근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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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 의하면 당나라는 산둥반도에 위치한 평로 번진의 반독립국화를


막고 다시 당나라에 편입시키기 위해서


평로번진의 분열을 의도하였다, 이게 평로번진이 당시 너무나 강력해서


그런걸까? 이것은 로마제국이나 중국이나 해오던 전통적인


서로 내분을 통해서 보다 피해를 줄이는 전술이지. 


이기지 못할것 같아서 그런게 아니란거다.


그뿐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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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이가 들고온 근거에 대한 해석이고, 여기서 말하는건 오히려 나라를 쪼개자는 의미이며


원나라에서는 몽골왕공들과 분봉받은 귀족들인 제왕(諸王)같은 일개 영주보다


더 하대하고있다고 한다. 이것이 글쓴이 말대로 고려를 두려워해서 그런거라고 해석해야될까?


아니 그것은 글쓴이의 상상일뿐이다.




2-2 권황제 살리타이와 신라 중앙군 9서당관련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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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타가 이끈 군대가 권황제이기에, 강력했다고 한다, 그럼 과연 이말은 사실일까?


권황제란것은 대칸의 친정이아니고 다른 장수가 칸에게 명령받고 '정벌하라' 고 명령만 받으면


권황제라고 칭할수있었다. 


게다가 당시 살리타는 무려 황금씨족중의 핵심 징기스칸의 직계이자


대칸과도 분쟁을 일으킬정도의 지위였던 유럽원정의 선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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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나 무려 15만명이 동원된 훌라구에 비교하면 2-3류가 맞다. 


그럼 당시 살리타의 원정군대 구성을 보자.


살리타이의 1차 침공 당시 군대는 3만명 정도다.


당시 살리타이는 압록강을 건넌후 원정군을 셋으로 나눈다.


1만은 삭주-귀주로 향한 왕영조, 1만은 금에서 항복한 장수로 추정되는 우예르가 위주로 향하고


1만은 살리타이 자신이 직접이끄는 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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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 지도에 표시된 귀주성>


여기서 왕영조는 이름에서알수있듯이, 한인장수로써 '한인(중국 본토 한족)부대'를 이끌었고, 


우예르는 금의 연경에서 무칼리에게 항복한 여진계열 장수로써 


'여진-거란 혼성 부대'를 이끌고 쳐들어 왔었다.


그렇다면 9서당의 경우는 올바른 혼성군의 질에 대한 저하에 대해 반박 예시가 되는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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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혼성군으로 편성된경우에는 '거기의 지방 토호등의 지배계급등을 고위 군관직을 주고


그 지역의 '통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함' 이었다, 더욱이, 당시 통일신라는 큰전쟁이 없던 시기이고,


유목민이며 전쟁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며 피정복민을 정규군의 방패막이로 까지 내세운


몽골군과는 적합하지 않은 예시이다.



2-3 예구대왕이 이끌고온 몽골 침입에 관해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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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빨간줄로 밑줄을 그은 주치 카사르의 아들이란 부분 보이는가?


저기에 주목 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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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근거는 충분히 신뢰성 있는 근거를 들어야하지않겠는가?


바로 몽골인이 쓴 몽골사라고 할수있는 몽골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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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몽골비사 영어로 완역된 번역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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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징기스칸이 카사르를 죽이려하자 어머니 호엘룬이 말려서


겨우 살려주고 사실상의 권력과 지위를 대부분 박탈하고


황족들중에서 가장적은편인 1400명만을 카사르에게 분봉했다.


즉 사실상 징기스칸에 의해 '몰락에가깝게 힘을 빼았긴 왕족' 이란거고,


예구는 바로 이런 작자의 아들이였고 당연히 알수있듯이 


그렇게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는거다.




2-4 김방경 관련해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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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것을 들고오는것이 에러인 이유는


김방경이 나간 1차원정은 1274년으로


1259년 고려가 쿠빌라이에게 항복하고


난 한참 뒤다. 고로 애초에 이때는


고려가 몽골에게 두들겨맞는


군벌정권 시기와는 다른 시점이다.


게다가 이들은 제주도에서 상륙작전을 펼치며


최씨의 정예사병이었던 삼별초를 소탕한적도 있었던 고려군이다.


2-5 고려가 상대한 몽골군이 질이 떨어진다는건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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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고려에 비해 월등히 강력해서가 아니다? 당시 고려의 인구는 250-350만 추정이나, 금나라의 인구


4000-5000만이 넘어가고 있었고 남송조차 압박하던 동아시아의 패권국에,


 금은 야전에서 수만에 달하는 대규모 회전 또한 벌인적있으며,  중국내지에있는 거대한 성들을 공략못해


몽골군이 물러났을때 연경 남쪽의 지역을 금은 회복하기 까지 한적이 있었다.


 몽골이 금나라 침공할때는 대부분의 몽골 정규군 만호등을 데려갔고 전력을 다했다. 


그에 비해 고려는? 살리타이의 3만 이후 예구대왕의 1만이었고, 5차침입때 20만명이


넘는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또한  '쿠빌라이의 당태종도 꿇리지 못한나라의 태자가와서 항복하니... ' 라고 한 부분은 원문이 


"고려는 만 리 밖에 있는 나라로서, 당태종이 친정을 했어도 복속시키지 못했는데, 지금 그 세자가


내게 내귀(來歸)하니 이는 하늘의 뜻이로다!" 이건데, 이 발언은 당시 고려가 아리크 부케와의 내전중에 자기에게 항복함으로써


대외적으로 자신이 몽골의 대칸 이라는 정통성을 얻는데 유리하게 작용해줬기 때문에 일종의 립서비스를 한것이다. 


그렇다면 몽골군이 질이 떨어진다는건 추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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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여진 사람이란걸 언급하는게 보일것이다. 글쓴이는 혼성군이 질이 떨어지지않을거라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선 몽골비사, 집사, 그외에 몽골군사관련 연구 책 등을 근거로 하여 반박하겠다.


첫번째 몽골비사 에서 최정예부대인 케시크와 바토르에 관해서 나오는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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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최정예병이라고할수있는 케시크들은 실력있고 용모가 뛰어난자들이 뽑혔으며,


심지어 천호장들보다도 높은 등급이라고 칭기즈칸이 선언 하고있다. 


그리고 그다음 등급인 바토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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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아봐야 백수십명 수백명 밖에 존재하지않는 케시크와 다르게


수천명 단위로 이루어진 전장에서의 돌격병역할을 하는 부대들이였다.


이들이 바로 2등급 정도이며,


그리고 이번엔 몽골비사와 더불어 몽골역사 관련 원사료 3대사료중 하나인 라시드 앗딘의 집사를 근거로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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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대학에서 존 보일 교수가 출판해낸 라시드앗딘의 집사 영어 번역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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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번째 등급 경기병 타마다, 타마의 경우 보조 경기병대로써,


여진 거란 위구르 등 다수가 몽골족이 아닌, 여러 피지배 유목민족의 혼성부대로써


위의 부대들에 비하면 질이 많이 떨어지는 부대다. 보통 이들이 하는일은


보충적인 역할으로써의 지원 또는 피정복지 치안이란것만 봐도 위의


순수 몽골 편제로의 군사들에 비해선 질이 떨어진다는건 알수있다.


그리고 고려에는 여진장수로써 혼성부대를이끌었던 오야르 등의 북로군이나 예구대왕의 동방왕가병력은


몽골 중앙-정규군이 아니라 이 타마 쪽이라 보면 될것이다.


又有遼東之糺軍、契丹軍、女直軍


특히나 원사(元史)에서의 경우 요동의 군사들은 거란군과 여진군등의 혼성군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하고있다.


즉 고려를 침입한 동방왕가의 군대는 이쪽 계열과 밑에 설명할 한인부대라고 보면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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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나온 프레드릭 교수의 Imperial China 900-1800 에서의 중국과 유목왕조들에 관한


연구 서적을 근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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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4등급으로써 가장 하위인 케리크인데, 이들은 중국 한인등 농경민족을 보병 편제로써


따로 구성된 부대였다, 유목 경기병으로 동화되지 못하는 피정복 농경민족의


경우엔 케리크로 만들었다. 앞에서 왕영조의 부대의 경우는 이런케이스이다.


又各以漢軍及新附等軍戍焉


원사에선 중국에 위치한 왕조였다보니, 이런 농경민족의 군대를


 그냥 한군(漢軍)이라 불렀고, 이들은 보통 최하위라고볼수있는


성이나 마을을 지키는 진수(鎮戍)병에 속했다.




3 글쓴이의 저격 무시와 무한재업에 대해서


3-1 이미 저격을 받아서 부정확한 사실임이 드러난글을 계속 '정보글 리스트' 에 올려놓고 있다.


글쓴이가 올려놓은 고려의 국제위상 이란 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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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격받은 바 있으며, 그럼에도 글쓴이는 계속 정보글리스트에 저격받은글을 올려놓고있다.


3-2 잘못된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올리는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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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해놓고서,


이미 저격받은 부분' 고려가 강성해서 이간계로 갈라놓을려했다 등등' 그대로 다시 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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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답이없다.


3-3 한두번도 아니고 일베갈때까지 글삭제하고 또올리고식의 무한재업.(심지어 일베를갔고 저격을 한번맞았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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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똑같은 글이다.


놀라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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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달 초때도 무한 재업중이였다는거다.


3줄요약


1 고려의 외왕내제 개념에서의 외부는 중국에 한정된것이었음, 그리고  몽골의 고려에 대한 이간계정책은 고려의 강성한국력탓이아닌, 전통적인 제국들의 이이제이방식임. 글쓴이가 몽골군과 비교하는 예시로든 신라의 9서당은 몽골의 피정복민 군대 징병방식과 목적을 따져보았을때 비교하기에 타당한 예시가 아님.


2고려침입대장 예구의 아버지는 칭기즈칸에의해서 죽임까지 당할뻔했던 인물로 사실상 중요도가 매우떨어지는 왕족에 살리타이의 군대는 혼성군, 그리고 몽골군의 등급은 케시크,바토르,타마,케리크등으로 나뉘며 고려침입군 상당수는 타마 케리크등의 제2-3군 부대로 편성되어 왔음.


3 글쓴이는 서로 합의를 하고 내측에서 약속을지키면(이건 역사로보는 다문화문제점이란글에서 그의 글을 링크검으로써 먼저 내가 약속을 지켰다.) 지적을 하면 그에 따라 수용하기로 하였으나, 단순히 답변에 대해 부정 혹은 회피를 하며 잘못된 정보도 다시 올리고, 저격받은글을 정보글이라고 링크를 달뿐아니라 자기 글이 똑같은글임에도 무한한 재업을 하고있음.


일단 짤게에 올릴건데 밀게에 미리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