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밀게는 처음 와보는데 전쟁사나 사소한 이야기도 여기 올려도 된당까?

되도록 원글 보는걸 추천한다 ! 

짤방있던글을 여기다 복사를 해왔고 브금업로드도 안되네 ㅡㅡ 미안하盧





2013년 5월 


어느 미국의 한 노병이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나서고 미 정부와 북한에게 방문 허가를 요청한다


미국 정부는 그가 북한에 갈수있도록 허용했으며 그를 동행시킬 인력도 붙여주었다


단.. 북한이 문제였다 .. 3월부터 대남 대미 도발을 시작한 직후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어갔다


그런데...


미국에 폐쇄적이였던 북한이 이상하게 그의 방문을 허락했다.


3월 NBA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먼 이후로 최초의 민간인 공식 방문자가 되었다  


더군다나 그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자 생존자중에서도 수훈자가 가장 드물다는 미국 최고의 훈장 명예훈장 (Medal of honor) 수훈자였다


북한의 입장으로썬 "미제 역적놈" 이라 불릴만큼 증오의 대상일텐데 그의 방문을 극진히 대접하겠다 밝혔다 ..


이유는 무엇일까??


1. 토마스 허드너 


Thomas hudner.jpg 

그 노병은 토마스 허드너 주니어 (Thomas J Hudner jr) 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예비역 대령으로  아주 숙련된 해군 파일럿이였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서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서 부시대통령 부자가 나온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고교 (보딩스쿨)를 다닌 엘리트였고 


41대 대통령 조지 H . W 부시 전 대통령과 동창이였다 


1941년 진주만 사태가 터지자 허드너와 그의 친구들은 (부시도 포함) 전부 해군에 자원 입대해서 일본군과 싸울 준비를 했으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허드너는 해군사관학교에 가길 희망했고 그 사실을 알고있던 지역 징집관이 찾아와 해군사관학교 입학을 추천했고 


그는 1942년 해군사관학교로 입학한다 


비록 그가 졸업하기전에 전쟁이 끝났지만 한국 전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1949년 해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7함대 소속 레이테 항모 (USS- Leyte)제 32전투비행단에 F4U 콜세어 조종사로 합류하게 된다


거기서 자신의 잊지못할 전우 제시 브라운 소위를 만나게 된다. 

미3.jpg 

2. 제시 브라운 


흑형조종사2.jpg 제시 브라운.jpg 


제시 브라운은 자신과 피부색이 다른 흑인이자 32 전투비행단 유일한 흑인 조종사였다 .. 


그는 허드너와 달리 미시시피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전기,수도도 없었고 화장실마저 없어 공중 변소를 사용할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그는 아주 우수한 성적을 가지고 있었고 오하이오 주립대로 입학 ROTC로 지원해 해군 파일럿 양성학교를 다닌다


훈련소장이 그에게 미 해군들은 흑인들이 조종석에 앉는걸 싫어한다고 포기를 권유했지만 그는 끝가지 포기하기 않고 조종사 교육과정을 이수한다 


그는 600명중 유일한 흑인이였으며 1948년 미 해군 최초의 흑인 파일럿이 되고


그해 그는 데이지라는 여성과 결혼해서 딸 1명을 가진 가장이였다 


조종사 학교에 있던 백인들과 레이터 항모의 동료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상대하지 않았지만


허드너만 유일하게 제시 브라운과 상대해주었으며 출격 훈련시에도 그를 파트너로 선택해 같이 나가게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그와 그의 전우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한국이란곳을 간다는 소식을 상부에게 듣고 


"Where is korea? " 란 궁금증을 자아냈다고....


3. 장진호 전투


1950년 10월 10일 한국에 도착해 10월 후반부터 첫 실전 출격에 나서게 되며 연합군들이 북진할수 있도록 기여했다


허드너 중위와 브라운 소위는 계속되는 연합군의 북진으로 전쟁은 끝날줄 알았지만 1950년 중공군의 참전으로 그 기대를 저버려야 했다


미 해병대 1사단은 장진호에서 생존을 위한 결투를 중공군과 치뤄야 했고 그와 제시는 그들이 안전하게 후퇴할수 있도록 공중지원을 하는것이였다

콜세어.jpg 

1950년 12월 4일 32 비행편대가 해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출격했다..


비행도중 브라운 소위의 떨리는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온다 


" 내 생각에 한대 맞은거 같다 오일 압력이 다 떨어졌어.. 추락할거 같아.."


안절 부절 못하는 그의 기체를 보고 그는 제시에게 착륙할곳을 찾거나 비상탈출해라고 권유했지만


착륙할만한 평지도 없으며 장진호 특유의 첩첩산중인 험난한 구조  때문에 비상탈출해도 생존할거란 장담을 할수가 없었다


잠시후 험난한 산속에서 유일한 평지를 찾아낸 브라운 소위는 바로 비상착륙을 시도한다


그 이후 허드너 중위는 레이테 항모에게 구조 헬기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며 남아있던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브라운 소위를 지키기위해 저공비행을 하며 중공군을 차단하려고 노력했다.


1 서클 돌고 2서클을 돌째 제시의 비행기 동체에서 미묘한 움직임이 보이고 제시가 드디어 칵핏을 열고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30분이 지날동안 구조 헬기는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제시가 그 자리에 계속 가만히 있는걸 이상하게 본 허드너 중위는 


부서진 기체에 신체가 끼여있을거라는 추측을 하게 되고 큰  결정을 하게 된다


"나도 내려가겠다, 계속 선회하면서 엄호 부탁한다" 

 

한 동료들은 "흑인 한 명 구할려고 무모한 행위를 하자마라 " 라 하면서 그의 행위에 비난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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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드너는 근처 평원에 비상착륙을 했다 

미6.jpg 

그는 발로 브라운 소위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하는데 예상 그대로 동체에 부서진 잔해에 다리가 끼여있었다


브라운 중위는 추위로 인해 거의 의식을 잃을 지경에 처한다


허드너는 바로 브라운 소위에게 자신의 목도리와 장갑 헬멧을 끼어주고 체온유지를 시킬려고 안간힘을 썻고


동체에 불이붙는 바람에 주변에 눈을 뿌려서라도 불을 진압시켯지만 언제 폭팔할지 모르는 긴장감을 가져야했다..


1시간이 지나 석양이 질 무렵 결국 구조 헬기가 왔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헬기 조종사 워드 중위와 함께 잔해들을 옮기려고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날이 깜깜해지자 워드 중위는 이 헬기는 야간비행장치가 없다고 이만 철수하고 다음날 다시 오자고 허드너 중위를 설득한다..


허드너 중위는 고민하던중.. 브라운 소위가 허드너 중위를 부른다


"톰 내가 만약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면 데이지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줘"


허드너 중위는 다시 답변한다


"물론 친구, 만약 네가 죽더라도 내가 반드시 널 찾으로 올께 "


대화가 끝이날 무렵 브라운 소위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고 그 모습을 본 허드너중위는 워드 중위와 함께 철수한다


레이테 항모로 돌아온 허드너 중위는 큰 절망감에 빠졌다..


씨숀 함장이 이 사실을 알고 브릿지로 그를 불러 그에게 


"아주 용감한 행동이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될 행동이야" 라는 말과 함께 그에게 명예훈장을 추천하고


1951년 1월 그는 다시 본토로 돌아온다.. 



4. 명예 훈장 (Medal of honor)

Thomas hunder recipient.jpg 

트루먼 대통령도 이 사실을 알고 즉시 명예 훈장을 수여하기로 한다   


1951년 4월 허드너 중위 가족과 브라운 중위가족이 모두 백악관로 모인다 

데이지 허드너.jpg 데이지 악수.jpg 

허드너중위는 수여 즉시 데이지에게 브라운 소위가 말했던 말을 전달하고


데이지는 죽음을 무릎쓰면서까지 남편을 도울려 햇던 사실에 감사를 전했다 


인종간 차별이 심하게 존재하던 1950년대에 이 사건은 양 인종간에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그는 언젠가 다시 브라운 중위를 본토로 대려 오겠다는 결심과


향후 브라운의 딸을 지원해주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데이지 딸.JPG 


(브라운 소위 딸과 허드너 중위)


5. 62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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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너 중위는 2013년 전 까지도 북한에 들어갈려고 각종 노력을 펼쳐왔으나 북한이 미국에게 굉장히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국가라서 쉽지 않았다..


특히 1994년때 방북 가능성이 있었지만 영변 사태로 인해 기회가 날라가버리고 지미 카터가 방문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결국 19년이 지난 2013년 88세가 되서 북한 정부와 인연이 있던 재미 교포의 도움으로 방북 허가가 가능했고고 지난 7월 방북이 성립되었다


그의 방문 즉시 제시 브라운 중위의 유골을 찾아서 미국으로 가져올수 없었으나 


그의 사연을 안 북한에서는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을 재개시킨다 발표했다


 

-3줄 요약 -


1. 지난 7월에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던 한 노병이 북한에 찾아갔다

2. 한국 전쟁때 같이 싸웠던 동료의 유골을 찾으로 방문했다

3. 찾지는 못했지만 북괴가 찾아주겠다고함


P.S 민주주의를 위해 몸바쳐 싸운 두 참전 용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조선일보 칼럼 참조-

-구글 이미지 펌- 

-위키피디아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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