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스압/BGM] 군사적 관점에서 본  본 백제의 멸망사

제 1-1탄. 관산성 전투. 과연 신라의 뒷통수인가?

http://www.ilbe.com/1990768533

 


[정보/스압/BGM] 군사적 백제의 관점시각에서 본 백제의 멸망사

제 1-2탄. 백제와 대가야 그리고 왜(倭)의 삼각동맹과 신라의 한성 점령

http://www.ilbe.com/2041803634



[정보/스압/BGM] 군사적 백제의 관점시각에서 본 백제의 멸망사

제 1-3탄. 복수전의 서막 - 관산성 전투의 초기 상황

http://www.ilbe.com/2163761455



[[정보/스압/BGM] 군사적 백제의 관점시각에서 본 백제의 멸망사

제 1-4탄. 신라판 300인 굴산성 전투와 핏골전투

http://www.ilbe.com/2177508239



[정보/스압/BGM] 군사적 백제의 관점시각에서 본 백제의 멸망사

 제 1-5탄. 백제의 영웅왕, 구천에서 지다.

http://www.ilbe.com/2182092632



[정보/스압/BGM] 군사적 백제의 관점시각에서 본 백제의 멸망사

제 1-6탄 마지막편. 백골산 전투, 삼한의 판도를 바꾸다.

http://www.ilbe.com/2187510797



[정보/스압/BGM] 군사적 관점에서 본 백제멸망사 

외전. 대가야의 멸망과 왜왕 킨메이의 분노에 찬 절규

http://www.ilbe.com/2283414259









금욜 저녁 10시 즈음에 잘못 눌러서 싸그리 날라가 버렸盧;;;;;


임시저장한걸 가지고 다시 작성하다 잘못 눌러서 삭제해버리니까 걍 없盧..... 


어쩔수 없이 전에 작성했던 내용이 기억도 잘 안나고 해서 다시 새롭게 작성한다;;









전편 외전이 역사글이라서 ㅁㅈㅎ 폭격을 받았어. 이젠 그딴거 안쓰기로 마음먹고 걍 이번편에 첨부하려던 당시 전술,전략,병종 내용은 삭제하기로 했음ㅇㅇ;


전술,전략,병종의 내용 또한 ㅁㅈㅎ 주는 게이들이 보기엔 역사글이라고 볼수 있기에 다들 그냥 찾아보는게 좋을거 같다.

뭐.. 다 알고 있겠지만ㅋㅋ;


이번 외전은 거의 1달전에 댓글로 삼국시대 갑옷에 대해 물어보던 게이가 있어서 한번 삼국시대 각국의 방어구에 관하여 써보게 되었어.



이 글을 쓰면서 이바닥 본좌인 몇몇 블로거들의 블로그를 방문했는데도 딱히 갑주에 관한 전반적인 개요는 확인 할 수 없더라고ㅇㅇ;


결국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유물들의 보고서를 근거로 작성했으며, 귀중한 자료사진들은 앞서 말한 본좌들의 블로그, 출토사진들과 연구자료사진은 구글링과 홈페이지를 참조했다는걸 밝힐께ㅇㅇ





또한 너무 자세하게 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져서 나눠쓰게 되버렸다;;  한글로 정리해보니 자료사진을 빼고도 텍스트로만 300페이지가 넘어가게 되버리니 어쩔수 없이 3개로 나눠야 될거 같다. 원래는 1개의 게시물에 싸그리 써서 올릴라고 했는데 미안하다-_-;;


이번편은 고조선과 부여의 갑주에 대해 약간 맛뵈기(?)로 설명하여 한반도 갑주의 계보의 첫 시조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고 바로 고구려의 갑주와 병종에 대해 알아볼거야. 


외전 1개를 3개로 나누게 되버리니 시험이 얼마 안남았는데 미친거 아닌지 모르겠다 ㅅㅂ;;;;







무튼 사설이 길었다. 시작해볼께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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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어 삼국 중 가장 먼저 고대국가를 이룩하였어. 


고구려는 졸본에서 국내성과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며 영역국가로의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중국왕조와 동북아의 패권을 다툴 정도의 강대한 국가로 성장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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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최대 강역도

연한 갈색부분까지만이 최대 강역도라고 생각하면 편해

국뽕끼가 다분한 짤이지만 다른 짤들이 좀 퀄리티가 떨어져서;;




또한 그 영역을 점차 확장해 전성기 때 북으로는 송화강(松花江)유역, 남으로는 한강(漢江)유역과 경상북도 북부지역, 서로는 요하(遼河) 서쪽지역, 동으로는 연해주지역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였어.


고구려가 이처럼 강대해 질 수 있었던 원인으로 크게 전쟁과 교역 두 기능이 지적되고 있으며,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 등과 같은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전쟁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준다고 볼 수 있어.







전쟁은 그 목적이나 명분이 어떤 것이든 승리를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서는 뛰어난 전사집단과 성능 좋은 무기·무장이 필요한데, 무기,무장의 발달은 전술의 변화를 가져오고 전쟁의 성패를 좌우할 뿐 아니라 한 나라의 존속과 생존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는건 밀게이들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한번쯤은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봐서 써봤어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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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무장의 우수한 기술은 그 집단에 의해 전승·보완되었으며 이웃 집단 등에게도 채택되어 전파되었으며, 또한 제작기술의 개발과 계보적인 관계는 사회집단간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이해되고 있어.



한편 무기체제의 발전은 나아가 사회진화의 한 축과 연관되어 이해되고 있는데, 즉 무기류의 생산과 분배, 그리고 소유라는 측면에서는 이것을 당시 사회적 위계화의 수준과 통합의 범위와 관련시키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지. 그러므로 지역집단의 관계와 사회진화의 단계를 파악하는데 무기의 제작기술적인 계보와 생산, 소유의 양상이 지닌 의미는 중요하게 여겨져 왔어. 


그러므로 한국의 국가 형성기에 해당하는 고대의 무기연구는 문화의 복원뿐만 아니라 여러 정치체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국가사회로의 진화과정을 설명해내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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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자료로 고대 갑주는 삼국시대 신라, 가야지역의 분묘 부장품으로 많은 실물자료가 출토되었어. 따라서 한국 갑주 연구는 대체로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고구려의 갑주는 일찍이 고구려 벽화고분의 석실 내부에 그려진 기마행렬도, 전투도, 무사도 등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실물자료의 부족으로 영남지역에서 출토되는 자료의 검증을 위한 분석에 치중되는 경향이 강해.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남한지역의 고구려 보루에서 비록 갑주 일식은 아니지만 많은 양의 찰갑 소찰이 출토되었고, 중국 환인과 집안지역의 고구려 유적에서 갑주가 확인-보고되면서 고구려 갑주 연구는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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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갑주문화는 그동안 축적되어 온 벽화고분 자료에 기초하여, 최근 그 실물자료의 출토로 고구려의 갑주가 기본적으로 찰갑(札甲)이었음이 밝혀지게 되었지. 삼한 국가인 백제,신라,가야와는 좀 다른 양상이였어.



그러므로 이 글에서 고구려의 찰갑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볼거야. 




그동안 축적되어 온 찰갑 자료를 유적별로 정리하여 찰갑의 속성과 형태, 유형을 살펴봄으로써 고구려 찰갑의 실물자료를 정리하는데 일차적 목적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형식분류를 시도하고 시간적, 공간적 변화양상을 검토해볼거야. 


이러한 서술를 통하여, 고구려 찰갑에 대한 특징과 형식, 또한 변천과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쓰는거니 이해바라盧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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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찰갑을 연구함에 있어 실물자료를 관찰하고 그 제작방식을 함께 고려해야함은 당연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남한지역의 자료를 제외한 실물자료를 직접 관찰하기 힘들기 때문에 논문과 보고서의 내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어. 또한 이미 그 연결재료인 가죽 끈이 부식되고 출토 상황이 명확하지 않아 그 전체적인 형태를 파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지.


따라서 본 글에서는 제작방식을 제외하고 찰갑을 구성하는 소찰 각각에 대한 형태와 연결 구멍 배치에 주목하며 서술할거야.



이를 바탕으로 고구려 찰갑의 형식 분류와 편년을 시도할 것이며, 이로써 고구려 찰갑의 지역적 차이와 시간적 변화양상을 추론해 그 특징을 알아보는 것이 이 이글의 목적이라 할 수 있어. 또한 이를 통하여 고구려 갑주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ㅋ










그럼 본격적으로 삼국시대의 각국의 방어구에 대해서 알아보자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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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류트,이누이트,코디악 족의 골찰갑

(출처 무갑의 무기와 갑주 블로그)




지금까지의 발굴자료를 통해 보면, 고조선은 뼈,가죽,청동,철 등을 재료로 하여 다양한 갑옷을 생산했으며, 고조선지역의 청동기문화 시작 연대는 중국보다 앞서며, 독자적인 청동 합금 기술 또한 앞서 발달했기 때문에 갑옷 또한 이른 발전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계승해 발전한 동부여,고구려,백제,가야,신라 갑주는 우수한 제철 제강 기술로 인해 높은 품질의 투구와 갑옷, 개마(鎧馬:갑옷 입힌 말) 개발로 이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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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 노하심 유적 출토 종장판 투구 (부여계)

기원후 1세기 후반으로 추정 

(출처 동일)



부여는 고조선의 뒤를 잇는다는 정통성을 내세운 국가로, 그들의 갑옷과 무기는 고조선의 것을 계승하여 자체적으로 철갑옷과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동부여의 유적인 길림성 유수현 노하심유적에서 북방계통의 것과는 다른 고조선 갑편의 특징인 좁고 긴 장방형과 아래쪽이 둥근 장방형으로 된 어린(魚鱗:물고기비늘)갑편이 출토된 점을 볼때, 그 이유가 될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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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고조선의 갑옷 생산기술을 이어 보다 발달된 철갑옷을 활발히 생산했는데, 『양서(梁書) 동이열전 고(구)려전』에는 고구려인들이 옥저와 동예를 복속할 때 여러 무기와 함께 철갑옷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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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나라(모용선비) 중장기병 복원도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고구려벽화에 나타난 고구려 갑옷의 특징과 같은 시기의 중국 및 북방의 갑옷을 비교해보면, 고구려는 군대의 구성과 역할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디자인된 갑옷을 입었으며, 찰갑편의 형태와 크기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갑옷의 형식도 매우 다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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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형사가 조형한 광개토대왕의 흉상 피규어

경갑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으나... 100% 고증이라고는 좀.... 

하지만 멋...멋지다 하앜하앜




가장 큰 차이는 목 부분의 처리인데, 다양한 여밈새의 경갑으로 귀밑까지 보호하게 되어 있어서 고구려 갑옷의 우수함을 엿볼 수 있지ㅇㅇ


또한 고구려의 말갑옷도 그 생산 시기가 중국이나 북방지역보다 적어도 2세기 정도 앞서고 있어. 후대의 고구려 군대 개마들은 말투구까지 모두 철갑으로 무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유이지ㅇㅇ










Ⅰ. 고구려 찰갑 출토 유적의 검토


과거 고구려의 영역이었던 환인 및 집안 일대와 북한지역, 남한지역에서 고구려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와 그 보고서가 발간되면서 고구려의 실용갑주인 찰갑의 실물자료가 출토, 보고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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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대표적인 고구려 보루인 아차산 보루 상상도


대부분 산성과 보루, 그리고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찰갑 일식의 온전한 모습으로 출토된 예가 없고 모두 낱개의 찰갑 소찰로 발견되어 완전한 모습을 그려보기에는 어려움이 따라ㅇㅇ;


그러나 고구려 벽화고분에 묘사된 갑주 자료를 통하여 어느 정도 그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으며, 고구려 찰갑의 출토 유적은 그 지역에 따라 환인 및 집안지역과 북한, 남한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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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녀산성 전경


우선, 환인 및 집안지역의 찰갑 출토 유적으로는 환인 오녀산성, 무순 고이산성, 심양 석대자산성 등의 산성과 집안 만보정242-1호분, 산성하151, 159호분, 우산하41, 992, 3319, 3142호분 등, 마선구2100호분, 천추총과 태왕릉, 칠성산211, 871호분, 최근 보고된 JSZM0001, 145호분 등의 고분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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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창 대평리 제 2호 집터


북한지역에서는 북창 대평리 유적, 평양 정릉사지, 농오리산성 등의 다양한 성격의 유적에서 고구려 찰갑이 출토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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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남한지역에서는 주로 보루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한강유역의 홍련봉 제1, 2보루와 아차산 제3, 4보루, 시루봉보루, 용마산 제2보루 등과 연천 호로고루, 양주 태봉산보루 등에서 고구려 찰갑이 확인되었어.

이처럼 고구려의 찰갑은 약 28개의 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고분 부장품뿐만 아니라 실제 사용 유적에서 절반 가까이 출토된 것이 특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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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고구려 벽화 고분으로 알려진 안악 3호분 벽화


한편 갑주가 묘사되어 있는 벽화고분은 약 15기이며, 분포지역상 크게 집안지역과 북한지역의 대동강유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집안지역의 벽화고분으로는 마선구1호분, 통구12호분, 삼실총, 장천1호분이 있으며, 북한지역 대동강유역의 벽화고분으로는 안악2, 3호분, 덕흥리벽화고분, 감신총, 약수리벽화고분, 팔청리벽화고분, 쌍영총, 대안리1호분, 개마총, 동암리벽화고분, 태성리1호분 등이 있어.





환인 및 집안지역 고구려 갑주 관련 유구 일람표.jpg

환인 및 집안지역 고구려 갑주 관련 유구 일람표





이 일람표에 작성된 각각의 갑주 조각들과 유물등을 통해 세세하게 쓰고 싶지만 그렇게 되버리면 태그많다고 안올라갈거 같으니, 나중에 백제멸망사 시리즈 말미에 내 블로그 주소를 올릴테니 그때 그기서 보는것도 좋을거같盧ㅋ;


친목밴이니 일단 나중에 알려줄께ㅇㅇ; (이것만  70페이지 분량;;;)
















고구려 갑주가 묘사된 벽화고분


고구려 벽화고분은 중국 환인·집안지역과 평양·안악 일대 대동강 유역에 주로 위치하고 있으며, 약 106기의 벽화고분이 알려져 있어. 

이 중 갑주가 묘사된 벽화고분은 약 15기이며, 분포지역상 크게 집안지역과 북한지역의 대동강유역 주변의 벽화고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

이러한 벽화고분에는 다양한 갑주가 묘사되어 있어 실물자료와 함께 고구려 갑주문화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인식되며, 따라서 이글에서는 고구려 찰갑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는데 있어 고분벽화에 묘사된 갑주를 살펴볼거야.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아.




갑주가 묘사된 고구려 벽화 고분 일람표.jpg

갑주가 묘사된 고구려 벽화고분 유구 일람표



갑주를 착용한 무사는 묘도입구를 지키는 무사도(武士道)나 현실의 벽면 또는 연도의 벽면에 그려진 행렬도(行列圖), 그리고 전투도(戰鬪圖)·공성도(攻城圖)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 중에서 행렬도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 


고분벽화에 묘사된 갑주의 표현 방식을 살펴보면, 감신총 무사의 갑옷은 표현방식이 사선과 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유기질제갑으로 추정되고 있어.


덕흥리 고분 벽화.jpg


또한 덕흥리 고분벽화에 묘사된 개마무사의 갑옷을 살펴보면, 상부는 갈색의 저고리나 조끼모양을 하고 있지. 



덕흥리 고분의 개마무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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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에서 덕흥리 고분을 바탕으로 고증한 당시 개마무사 

시기상 100년 차이가 나므로 약간 다르게 봐야 되겠지만 고구려의 다양한 병종을 본다면 중장기병이 아닌 중기병일 가능성이 다분함.



러한 갑옷의 형태에 대하여 중국 남북조시기의 대표적인 갑옷인 명광개(明光鎧)로 추측한 견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판갑※으로 추정하고 있어. 


※하지만 고구려의 갑주 유물에서 내가 못찾았을 경우 or 판갑이 발견된 적이 없기에 일단 이글에서는 대표적인 갑옷인 찰갑에 대해서만 설명함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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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신총 고분 벽화 중 일부


또한 하부의 경우 사선과 횡선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감신총에서 보이는 갑옷표현과 같음으로 유기질제로 추정하고 있지.


복천동 고분에서 발견된 가야 종장판주.jpg


부산 복천동 고분에서 출토 된 가야 종장판주


따라서 고구려에는 실물자료로 출토된 찰갑뿐만 아니라 포제, 혁제와 같은 유기질제갑이나, 판갑 등 여러 종류의 갑주가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렇게 고분벽화에는 종장판주와 만곡종장판주, 소찰주 등의 주와 함께 다양한 갑옷의 형태가 표현되어 있어 고구려 갑주의 여러 양상을 설명해주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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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벽화에 묘사된 무사는 보유무기의 종류나 형태뿐만 아니라 갑주의 형태나 착장부위에 따른 표현 방법도 다르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갑주 착용의 차별성은 안악3호분의 행렬도에 잘 나타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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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한 개마무사.jpg

이화여대에서 고증한 안악 3호분 개마무사



먼저 마차를 탄 주인공의 양 옆으로 열을 지어 행렬하는 개마무사는 주(冑)와 경갑(頸甲)을 착용하고 온 몸을 찰갑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띌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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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에서 고증한 안악 3호분 창병(극병)


반면 개마무사의 앞에서 긴 창을 들고 행진하는 창수는 경갑(頸甲)을 착용하지 않고 다리부위를 감싸는 갑옷의 표현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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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한 환도수.jpg

이화여대에서 고증한 안악 3호분 환도수

칼을 창으로 표현한것, 대퇴갑을 생략한것만 빼고는 고증이 완벽함



또한 주인공의 바로 옆에서 환두도를 어깨에 걸머지고 행진하는 환도수는 창수와 마찬가지로 경갑(頸甲)과 상박갑의 표현이 생략되었고, 상부와 하부의 대퇴부만 갑옷으로 방호하고 있는 모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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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한 부월수.jpg



그 뒤를 따르는 부월수는 아무런 갑옷도 착용하지 않은 채 행진하고 있는 모습이야.


고구려의 보병은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중장보병(重裝步兵)과 그렇지 않은 경장보병(輕裝步兵)으로 나뉘는데, 화면에 보이는 부월수는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지 않아 경장보병에 속함을 알 수 있어. 


이들의 외관을 구체적으로 점검해 보면, 머리에는 무관용 책(幘 : 뒤의 운두가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솟은 것을 무관용 책이라 함)을 쓰고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다다는게 보이지?


바지는 무릎 아래의 종아리 부분을 천으로 따로 묶어 단단하게 고정시켰으며, 도끼는 실제 전투용 무기로 사용되지만, 예로부터 권위를 상징하는 의장용 성격이 강한 기물이기도 하였다는걸 볼때, 이 벽화에서 도끼는 의장행렬때 사용했을거라 생각해.





약수리 고분벽화.gif


이러한 차이로 보아 계층에 따라 방호부위와 갑주의 제작소재, 형식 등에서 차별성을 갖는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는데, 약수리벽화고분과 덕흥리벽화고분의 행렬도 역시 안악3호분과 같이 무사의 계급과 역할에 따라 갑주의 표현에서 차이를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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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실총 벽화에 나오는 갑옷을 입은 무관 or 중장보병


고증한 고위 무관.jpg



따라서 이러한 표현의 차이와 유기질제로 추정되는 갑옷이 묘사된 점을 미루어 보아 철제와 같은 금속제 갑옷은 일부계층만 무장하고 상당수의 병사들은 포(布), 혁(革), 나무 등과 같은 유기질제 갑옷을 착용하였을 가능성이 있어. 그러므로 고구려 갑주의 계층성과 차별성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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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중장기병의 표현 방법과 대열의 차이가 전술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는 견해가 제시되었어.


안악3호분의 행렬도에는 중장기병이 등장하는걸 봤을거야. 이는 고구려에 중장기병이 처음 도입되었을 당시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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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도에서 병종의 배치를 분석해보면 중장기병은 주로 호위병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걸 밀게이들이라면 단박에 알아챌거야.




약수리 고분벽화.gif



그러나 5세기 전엽으로 비정되는 약수리벽화고분의 행렬도를 살펴보면 하나의 독립된 중장기병편대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는 중장기병이 호위병에서 강력한 군사집단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어.


이처럼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갑주의 모습으로 고구려의 갑주문화뿐만 아니라 계층성과 전쟁수행방식 또한 추정해볼 수 있지ㅋ;










고구려 찰갑(札甲)의 형식분류



단계별로 고구려의 갑주 자료를 마주(馬冑)와 마갑(馬甲), 주(冑)와 찰갑(札甲)으로 나누어 간단히 살펴보고 찰갑을 대상으로 각각의 찰갑 소찰에 대한 형식분류를 시도해볼거야. 고고학계의 기준에서는 약간 부족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 예전에 쓴 교양 레포트와 여러가지 멋진 논문들을 참조,인용하여 써봤어ㅇㅇ





1. 속성 및 분류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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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한 고구려 찰갑 



고구려의 갑주는 작은 소찰을 수십 매~수백 매를 연결하여 전투시 활동성을 극대화 하도록 만든 찰갑이 기본을 이루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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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찰혁결법(상하 연결방식)

출처는 이 방면 본좌인 무갑님의 블로그에서 펌


찰갑의 재로로는 나무, 뼈 등의 유기질제나 동, 철 등의 금속제가 사용되는데, 이들 소찰을 연결하는데 가죽과 같은 끈으로 묶어 연결시키는 방법(革結法)과 못으로 리벳하여 고정시키는 방법(鋲留法)이 있어. 찰갑에서는 주로 혁결법이 사용되고 있지ㅇㅇ



고구려의 찰갑 소찰은 주로 장방형 얇은 철판으로 만들어졌으며, 현 상태에서 이들의 결구 방식은 알 수 없으나, 아차산 제4보루에서 피혁흔이 남아 있는 찰편이 출토된 점으로 보아 가죽끈으로 연결하여 제작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따라서 찰갑 소찰에는 가죽끈의 연결을 위한 10개 내외의 구멍이 배치되는데 이러한 구멍을 통해 개별적인 소찰이 연결되고 갑옷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한편, 소찰은 찰갑의 착장 부위에 따라 단순히 편평한 것(平札)과 가운데가 잘록하고 긴 것(腰札), 크기가 매우 작은 소형 소찰 등 여러 형태의 것이 있는데, 이들이 어느 부위에 사용되었는지는 출토 상황에 의해 파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봐ㅇㅇ


이 글에서는 갑옷의 각 부위별 명칭에 대해서는 송계현(1988)의 논문을 참고하여 밑의 자짤처럼 부를테니 딴지 ㄴ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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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의 각 부위별 명칭






기원전 37년부터 668년까지 과거 고구려의 영역이었던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중·북부 지역의 고구려 유적에서 출토된 고구려 찰갑을 대상으로 그 형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각각의 유형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지 살펴볼거야.


찰(札)의 형태에 대한 분석은 대상이 되는 각 개체의 평면, 단면 등 입체적인 형태의 유형 분류를 기본으로 구멍의 수나 배치 모양 등 축출 가능한 모든 요소를 선별하여 분석할텐데, 이러한 분석을 위해 유물을 선별하는데 있어 출토지가 명확하고 원형의 확인 및 추정이 가능한 실물자료만을 그 대상으로 하였어.


또한 소찰의 각부 명칭은 여러 보고서 및 논문에서 통일되지 못하여 혼란스러운 면이 있으므로 이글에서는 일단 세부 명칭을 다음과 같이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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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찰의 부분 명칭









2. 찰갑 소찰의 형식분류




1) 마주(馬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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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하 992호분 전경 사진 (1915년)



마주로 추정되는 철제 편들은 우산하992호분에서 출토되었어. 


총 6점이 확인되었으며, 모두 편 상태로 출토되었으나, 비교적 큰 3점은 부위의 추정이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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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하 992호분에서 출토된 마주 6점


하나는 윗짤의 2번인 마주의 챙부이며, 폭 25㎝, 높이 14㎝로 중앙하부에 반원형의 철판이 덧대어져 있고 양쪽 가장자리에도 못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가장자리의 못은 귀가리개를 부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다른 하나(숫자 2번 바로 위)는 챙부와 직접 연결되는 상판이며, 또 다른 하나(3번)는 상판에 연결되는 측판으로 추정되는데, 나머지 것들은 장방형의 구멍이 있는 것※, 그리고 소형의 철판을 못으로 덧댄 것이 있는데 이는 가죽 끈을 연결하기 위한 장치로 추정되며 볼가리개의 가능성이 제시되었어.

※ 신라와 가야의 마주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정확한 부위를 알기 어렵盧


삼실총 벽화 중 공성도.gif


마주로 확인된 실물자료는 우산하992호분이 유일하나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표현방식으로 마주의 유형을 파악해 볼 수 있는데,  마주가 묘사된 고분벽화는 마선구1호분, 삼실총, 통구12호분, 안악3호분, 약수리벽화고분, 덕흥리벽화고분, 쌍영총, 개마총 등이 있어. 또한 고분벽화에 묘사되어 있는 마주는 챙부의 표현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반원형(半圓形)과 삼엽형(三葉形)으로 나누어 볼 수 있어. 



안악 3호분 기병.jpg


357년으로 비정되는 안악3호분과 5세기 전엽으로 비정되는 약수리 고분 벽화에 묘사된 마주의 챙은 반원형으로 귀가리개가 표현되어있지 않으며, 상부에 장식도 없어. 따라서 이것을 고구려의 초기 마주의 특징으로 보는 견해가 제시되었는데, 난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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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후엽으로 비정되는 마선구1호분과 5세기대 이후의 고분인 삼실총, 통구12호분, 쌍영총, 개마총의 벽화에 표현된 마주의 챙은 상부의 장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으나 모두 삼엽형이야. 하지만 408년의 덕흥리벽화고분의 마주는 챙이 3개의 능형판(菱形板)으로 구성되어 있어 반원형의 챙과는 다르지만 5세기대 이후의 삼엽형 챙과는 3매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사해. 이에 따라 고분의 시기로 볼 때 4세기 후엽~5세기 전엽에 마주의 형태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제시되었지ㅇㅇ


또한 반원형에서 삼엽형으로 변화하는 것을 덕흥리벽화고분 이후로 보고, 이와 같은 변화를 4세기 후엽~5세기 전엽에 중장기병이 호위병적 성격에서 벗어나 기

마전사단으로 변화한 것과 관련짓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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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하 992호분 출토 마주 확대짤



우산하992호분의 마주는 챙에 귀가리개를 부착한 못의 흔적이 남아있으므로 삼엽형의 챙으로 볼 수 있지만, 우산하992호분은 338년으로 비정되므로 4세기 전엽에도 삼엽형의 마주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여. 또한 중장기병이 기마전사단으로서의 성격을 가지지 못한 시기의 유적인 우산하992호분에서 이미 삽엽형의 챙이 출토되었다는 점과 기마전사단으로의 성격을 갖고 있는 약수리 고분 벽화에서 반원형의 챙이 보인다는 점에서 좀 더 자세한 조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지. 


즉 반원형과 삼엽형 챙부의 시간적 차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며, 같은 시기에 유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거야.



이에 대하여 우산하 992호분은 왕릉급으로 추정되며, 안악3호분의 묘주※는 상대적으로 신분이 낮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챙의 차이는 중장기병의 신분적인 차이에 의해 결정되었을 가능성이 제시되었어ㅇㅇ;


※안악 3호분은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永和十二年’이라는 기년문자를 통해 축조연대가 357년임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무덤의 피장자에 대해서는 美川王(300~331), 故國原王(331~371), 그리고 前燕에서 고구려로 망명해 온 冬壽 등 논란이 있다.




이처럼 고구려의 마주는 실물자료가 많지 않으므로 비교 대상이 없어 고분벽화에 묘사된 표현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지.


그 결과, 고구려 마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시간적인 변화양상이라기보다 현재로써는 장식적 요소로 파악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 할 수 있을거 같아ㅇㅇ








2) 마갑(馬甲)


태왕릉 출토 마갑소찰.jpg


광개토태왕릉에서 출토된 금동 마갑소찰



마갑으로 추정되는 소찰은 마선구2100호분, 천추총, 태왕릉, 우산하3319호분 등에서 출토※되었어.


※ 상방하방형의 비교적 크기가 큰 찰갑 소찰은 영남지역에서 출토되는 갑편으로 미루어 보아 마갑의 소찰로 추정된다. 


이러한 마갑 소찰을 살펴보면, 그 형태는 상방하방형으로 상변과 하변이 모두 직선에 가까운 완만한 호형이고, 하변으로 내려갈수록 폭이 약간 좁아지는 역사다리꼴을 띠는 것도 있어. 모두 220점 정도가 출토되었는데, 그 길이와 소찰 형태에 따라 3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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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갑소찰의 형식분류



A형식은 마갑 소찰 중 가장 많은 수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110여 점에 달해.


총 길이 약 9.8~12.0㎝, 폭 4.6~6.8㎝ 두께 0.1㎝ 가량의 장방형의 찰(札)인데, 폭 5.0㎝를 기준으로 2개의 소그룹으로 구분이 가능하나 전체적인 형태나 구멍의 배치는 동일해. 이 형식에 속하는 소찰은 마선구2100호분에서 68점으로 가장 많은 개체가 확인되었지. 전체적으로 장방형을 이루는데 상하의 폭은 차이가 없이 일정한 편이야. 


구멍의 배치는 상변 중앙에 세로로 1열 2공, 측변의 좌우 상단부와 하단부에 각각 세로로 1열 2공의 구멍이 배치되었고, 또한 하변에는 가로 1열 2공의 구멍이 배치되어있으며, 찰(札)의 중앙에 하나의 현수공이 추가로 타공된 형태도 있어ㅇㅇ




B형식은 약 83점으로 길이 7.5~8.0㎝, 폭 3.8~5.0㎝, 두께 0.1㎝ 가량으로 하변이 짧은 역사다리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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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게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


이 형식에 속하는 소찰은 마선구2100호묘에서 78점으로 가장 많은 개체가 확인되었지ㅇㅇ


구멍의 배치는 대부분 상변 중앙에 세로로 1열 2공, 측변의좌우에 각각 세로로 1열 2공의 구멍이 배치되었고, 또한 하변에는 가로 1열 2공의 구멍이 배치되어있어. 한편 찰(札)의 중앙에 현수공이 추가로 타공된 형태와 하변의 구멍 바로 위로 중앙에 1공이 추가된 형태도 있으며, 측변에 구멍이 없는 것도 보여. 






C형식은 모두 36점이 발견되었는데, 길이 5.0~6.9㎝, 폭 5.0~6.0㎝, 두께 0.1㎝ 가량으로 방형의 찰(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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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형식의 소찰은 전체적으로 방형을 이루는데 상변은 직선에 가까운 호형을 이루며 하변으로 내려갈수록 약간 좁아지는 형태인데, 구멍의 배치는 상변 중앙에 세로로 1열 2공, 하변 중앙에는 가로로 1열 2공의 구멍이 뚫려 있으며, 측변의 중앙에는 세로로 1열 2공이 배치되어있지. 또한 소찰의 중앙부에 1공이 추가된 경우도 있어ㅇㅇ


이러한 마갑의 특징은 상방하방형의 소찰과 역사다리꼴 소찰 모두 수결공이 중앙에 있다는 점이야. '어떰? 좀 흥미롭지 않음?'은 고고학 계열이아니면 현기증 나는 내용이겠지? ㅋㅋ;;


현재까지 확인된 마갑 소찰은 모두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며, 이러한 마갑 소찰은 A,B,C형식이 같은 유적에서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서 부위별 형식으로 추정되고 있어. 




일본 오타니 고분에서 출토된 마갑.jpg

1957년 일본 오타니 고분에서 출토된 마갑



가야와 일본에서 출토된 마갑의 예로 보아 A형은 신갑, 역사다리꼴의 소찰 B형은 흉갑 또는 경갑(頸甲)으로 추정되는데, 또한 C형은 방형으로 경갑(頸甲)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 중 A형식과 B형식이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며 출토빈도도 높고, 방형의 소찰은 일부 유적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현재까지 A형식과 B형식은 경갑(頸甲)으로 마갑을 구성하는 기본 소찰로 인식하고 태왕릉에서 출토된 방형 소찰은 방어부위의 확장이나 마갑 형태의 변화에 따라 여러 형태의 소찰이 추가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지ㅇㅇ





무경총요.jpg


군사적 관점에서 본 중국 최고의 3대 병서중 하나인 무경총요

라고 올렸는데 무경총요전서의 요약집인 조선의 무경절요짤을 올렸盧...;; 미안하다;




우리나라의 자료는 아니지만 북송시대의 『무경총요』에 마갑도가 있어



무경총요에 수록된 마갑 자료.jpg



부위별로 면렴(面簾), 계경(鷄頸), 탕흉(蕩胸), 마신갑(馬身甲), 탑후(塔後)로 구분되어 있어 마주를 제외한 마갑이 4부분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고구려 벽화에 나타나는 마갑 3부분.jpg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마갑의 조립구성을 살펴보면, 4세기 중엽의 안악3호분 기마무사도에는 2부분, 5세기 중엽의 쌍영총 기마무사도는 3부분, 5세기 후엽의 삼실총 기마무사전투도에는 3부분 등으로 구분되어 묘사되어 있지. 



개마총 벽화.jpg


개마총 마갑도


또한 5세기 후엽의 개마총 마갑도에는 고갑의 뒤쪽에 분리된 부분이 있으며, 고갑이 2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마갑이 세분화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점차 부위별 구분이 확대되어 가는 것으로 파악 할 수 있는데, 비교적 수량이 많은 태왕릉과 마선구2100호분의 마갑소찰을 비교하면 태왕릉의 소찰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소찰이 부위별로 세분되어지는 것으로 그러한 상황이 벽화에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지ㅋ




한편 마갑 소재와 관련하여 개마무사가 그려져 있는 모든 벽화에서는 찰갑형태의 마갑이 보여.


약수리 고분벽화.gif


짤이 너무 작아 안보이는 게이들은 한번 구글에서 찾아보는것도 좋을거 같盧 ㅋ



다만 안악3호분과 약수리벽화고분에서 찰갑과 혁갑으로 추정되는 표현이 동시에 나타나는데, 찰갑과 혁갑의 비율은 같아. 또한 혁갑이 그려져 있는 벽화는 안악3호분과 약수리벽화고분 외에 5세기 전엽으로 편년되는 감신총 무사도가 있지. 그리고 5세기 중엽 이후의 벽화에서는 혁갑이 보이지 않아. 


이를 고려하여 5세기 전엽까지 찰갑과 혁갑이 함께 사용되다가, 5세기 중반 이후에는 혁갑보다 찰갑의 비중이 더 높아졌다고 추정 할 수 있지 않盧?. 따라서 일각에서는 5세기 후엽에 마갑구성의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시되었어ㅇㅇ








3) 주(冑-투구)


아차산에서 출토된 고구려 종장판주인 복발.jpg


아차산 제 4 보루에서 출토된 고구려 투구인 복발



현재까지 발견, 보고된 고구려 주(冑)의 실물자료로는 아차산 제4보루에서 출토된 복발 1개와 소찰 52매의 소찰주, 홍련봉 2보루에서 소찰 3매, 용마산 제2보루와 오녀산성에서 각각 소찰 1매 그리고 마선구2100호묘와 태왕릉, 천추총, 우산하3319호분, 산성하151호분에서도 찰주의 편으로 추정되는 소찰들과 정릉사지 우물에서 출토된 주(冑)와 농오리산성 및 고이산성에서 출토된 종장판주 등이 있어.


또한 집안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주의 실물자료로는 마선구2100호분, 우산하3319호분 등의 ‘S'자형 소찰과 태왕릉의 소형 찰편이 발견되었다고 해


이를 살펴보면, 마선구2100호분의 소찰은 모두 11점으로 완전한 것은 1매뿐이지;;


길이 18㎝, 폭 1.2~2.1㎝이며 전체적으로 ‘S'자형을 이루나 하단부가 꺾여 있는 형태인데, 상부의 형태로 보아 만곡종장판주의 소찰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져.






태왕릉의 소찰은 14점으로 모두 파손되어 그 완전한 형태를 알 수 없으나, 하단의 최대 넓이가 2.1㎝로 마선구 2100호분의 ‘S'자형 소찰과 동일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해. 이러한 만곡종장판주의 특징은 세장한 주체의 찰과 함께 소찰의 볼가리개이며, 소찰은 상원하방형이고 상부 중앙에 수결공이 있어. 


따라서 마선구2100호분의 ‘S'형과 함께 출토된 소형 소찰과 태왕릉의 소형 소찰은 주(冑)의 볼가리개와 수미부(首尾部)의 소찰로 보는 견해가 제시되었지.






한편, 철제 소찰과는 별도로 마선구2100호분와 천추총에서는 금동제의 소찰이 출토되었는데, 마선구2100호분의 금동제 소찰 중 소형의 소찰은 전술한 철제 소찰과 형태와 크기가 흡사하여 주와 관련된 볼가리개와 수미부의 소찰로 추정하고 있어. 또한 천추총의 금동제 소찰은 모두 3점이 출토되었으며, 그 양상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마선구2100호분과의 유사점이 있어, 주의 볼가리개와 수미부의 소찰로 추정하기도 하지ㅇㅇ 



합천 옥전 23호분 만곡종장판주.jpg


합천 옥전23호분에서 출토된 만곡종장판주



천추총에는 주체의 소찰이 없으나, 마선구2100호분에는 철제 만곡종장판주의 소찰이 있으므로 금동제 소찰은 부분적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한 예로 합천 옥전23호분 출토 만곡종장판주를 들 수 있어


왜냐하면 주체 상부의 복발은 금동제품이며 볼가리개와 수미부의 소찰 중 제2단 소찰이 모두 철지금동장소찰이기 때문이지.


또한 마선구2100호분의 주가 합천 옥전 23호분의 주와 동일한 형태일 가능성 또한 제시되었어.




이외에도 고이산성과 농오리산성에서 각각 종장판주 1점씩이 출토되었으며, 정릉사지 우물 밑바닥에서는 강판으로 만든 주(冑)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구려에 다양한 주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그 주변지역의 주(冑)와 함께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한 대목 중 하나이지ㅇㅇ





아차산에서 출토된 고구려 종장판주인 복발.jpg


한편 고구려 주(冑)의 실물자료 중 하나의 개체인 것으로 보이는 소찰주의 소찰이 출토되어 주목되는데, 이는 아차산 4보루에서 출토된 것으로 복발(覆鉢) 1개와 52매의 소찰로 이루어져 있어.


복발은 소위 몽고발형으로 반구형이며, 평면은 타원형에 가까운 말각삼각형으로써 전면이 좀 더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는데, 복발의 하단부는 마치 차양(遮陽)처럼 짧게 벌어져 있고, 여기에는 1.5~2.0㎝ 간격으로 작은 구멍이 2개씩 뚫려 있어 가죽 끈을 이용해 다른 소찰들과 연결하도록 하였던 것으로 보여. 



복발에 연결되었던 소찰은 모두 52매가 확인되었으나, 출토 시에 이미 주(冑)의 원형이 파괴된 상태였기 때문에 전체 형태의 복원이 쉽지 않다고 하더라ㅇㅇ


소찰은 두께 0.2㎝ 내외의 얇은 철판을 이용해 외형을 제작한 후 각 테두리 중간 부분에 2개 혹은 1개씩의 구멍을 뚫은 것이 대부분인데, 홍련봉과 용마산, 오녀산성에서 출토된 것도 이와 비슷한 형태야.



이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아래와 같은 짤이야.






아차산 제 4보루 출토 찰주소찰의 형식분류.jpg


아차산 4보루 출토 찰주 소찰의 형식분류




이짤에 대해 설명해 보자면 



A형은 그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외형과 구멍의 배치 면에서 비교적 일관된 정형성을 보이고 있어. 


대체로 소찰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한 개의 구멍이 있고 나머지 세 변에는 각각 세로로 1열 2공의 구멍을 가지고 있으며, 일부 추가로 구멍을 더 뚫은 

것들도 있어. 


이 소찰들은 가로, 세로 방향에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있는데 그 정도가 대체로 비슷한 것으로 보아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형태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또한 이들 중에는 2~3매가 함께 부착된 채 출토된 것들이 있어 이를 통해 본래의 결합방식을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구멍 간의 관계 등이 자연스럽지 않아 이들이 폐기된 후 퇴적과정을 거쳐 현 상태로 남게 된 것일 가능성도 고려해야 할거 같아. 


은 형태의 소찰들은 홍련봉 제2보루에서도 확인되며, 환인 오녀산성 서문지에서도 1점 출토되었는데 아차산 제4보루 출토품에 비해 다소 큰 편에 속해.






B형은 전체의 1/3 가량을 차지하며, 그 형태가 매우 독특하고 개별적이어서 특정 부위에 부착되었던 것이라 생각되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하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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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일부는 변을 따라 등 간격으로 4개씩의 구멍이 뚫려있고 한쪽 변 약 0.6㎝ 정도를 바깥쪽으로 꺾었으며 나머지 세 변에는 역시 세로로 1열 2공의 구멍을 중간지점에 뚫은 형태이지


보존처리 과정에서 이러한 소찰에 부착된 일부의 녹편이 복발의 차양에 부착되어 있는 녹의 일부와 들어맞는 것이 확인되어 이들이 복발과 직접 연결되는 최상단에 배치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 아차산 제4보루의 다른 지점에서도 같은 형태의 소찰 2점이 확인되었지. 





C형은 다른 소찰에 비해 넓고 길며, 두 점 밖에 출토되지 않아 좌, 우 볼가리개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최근 경기도 양주시의 태봉산보루에서도 지표조사를 통해 같은 형태의 소찰이 확인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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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주(冑)의 출토 예는 많지 않지만 벽화에 묘사된 것으로 그 모습을 어느 정도 추정해 볼 수 있는데, 벽화라는 한계 때문에 세부적인 변화상을 알 수는 없으나 주를 중심으로 그 변화상을 살펴볼께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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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冑)는 종장판주, 만곡종장판주, 소찰주로 구분될 수 있는데, 감신총, 안악3호분, 안악2호분, 약수리벽화고분의 주가 종장판주이며, 쌍영총의 개마무사가 착용한 주는 만곡종장판주야. 


이와 같은 종장판계주와는 다른 형식의 주가 삼실총 2실 서벽의 무사와 통구12호분의 무사가 착장하고 있는 주(冑)이지. 주체가 종장판이 아닌 방형의 소찰로 표현된 주로서 아차산 제4보루에서 출토된 소찰주와 동일한 주(임의대로 방형소찰주로 명명;)로 볼 수 있어.


벽화에 묘사된 양상만으로만 판단하면 압록강유역의 주는 소찰주, 대동강유역의 주는 종장판주로 구분되어지지만, 한강유역의 아차산 보루에서도 소찰주가 출토되었고, 우산하41호분에서 종장판주의 장찰로 보이는 소찰이 있으므로 지역적 구분은 무의미한 것으로 보는편도 좋을거 같아.


또한 지역적인 차이와 함께 시기적인 변화도 제시되었는데, 특히 집안의 벽화에 묘사되어 있는 소찰주가 5세기대 것임을 들어 고구려 갑주가 종장판주에서 소찰주로 변화하였다고 해석하여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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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영총 우마차행렬도에 나오는 개마무사

자세히 보면 뿔이 달려있는걸 확인 할 수 있음



또한 감신총, 안악3호분, 약수리벽화고분, 덕흥리벽화고분 등 4세기~5세기 전엽의 종장판주에는 주체의 좌우에 뿔과 같은 것이 묘사되어있지 않으나, 통구12호분, 삼실총, 쌍영총, 안악2호분 등의 주에는 주체에 뿔과 같은 것이 묘사되어 있지. 따라서 소찰주, 만곡종장판주 등의 새로운 형식의 주가 제작되면서 주에 있어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어.



마선구 고분.jpg


마선구 고분군



그러나 이에 대하여 4세기대의 마선구1호분에 묘사된 개마무사가 소찰주를 착용하였을 가능성과 4세기대의 대동강유역 벽화고분의 주인공들이 주로 선비계에서 망명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에 널리 유행하던 양식과 통하고 있어, 이들 벽화의 내용을 모두 고구려 문화의 본래의 것으로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견해가 제시되었어


즉, 집안지역의 벽화에 보이는 소찰주는 5세기 대에 새로 나타난 신형식이 아니라 전국시대의 소찰주에 그 맥락이 닿아있는 것으로서, 압록강유역에서 초기부터 발달한 형식이라는 것이지.


그러므로 집안지역에서는 전국 갑주 계통의 소찰주 문화가 본류를 이루고 있으며, 대동강유역에서는 한 대 이래 동북아지역에 널리 확산되어 있던 종장판주 계통의 것이 유행하였다고 추론 할 수 있어. 이들이 낙랑고지에 대한 정치적 통합 이후 점차 고구려 문화의 본류에 흡수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대목이지.


따라서 고구려 주(冑)는 그 등장 배경이 지역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구려의 문화로 통합, 발전되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난 생각해.










4) 찰갑(札甲)



고구려의 찰갑은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출토된 예는 없으나, 환인, 집안지역의 고구려 유적과 북한지역, 그리고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 보루에서는 많은 수의 소찰편이 출토되었어. 


형태가 불분명하거나 마갑, 찰주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있으나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찰갑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방형의 소찰들이지.


이 중 전체 길이와 형태를 확인 할 수 있는 개체만을 대상으로 하여, 상변과 하변, 그리고 단면 등의 형태와 크기, 또한 구멍의 배치 상태 등을 고려하여 찰갑의 형식 분류를 시도해 보았어.



고구려의 찰갑을 구성하는 소찰은 크게 두 가지의 평면형태와 약 3가지의 단면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구멍의 배치는 자세한 사항을 파악하기 어렵고, 다양하나 일정한 정형성을 가지고 있어. 이러한 찰갑을 구성하는 제요소들 중 가장 유효하다고 생각되는 속성을 중심으로 소찰의 형식을 분류해 보았는데, 우선 평면형태의 속성 중 하변과 상변의 형태의 조합을 중심으로 크게 Ⅰ, Ⅱ, Ⅲ형식 분류하였어.


간단하게 설명해볼께ㅇㅇ





Ⅰ형식


상변이 반원형이고 하변이 방형인 상원하방형



Ⅱ형식


상변이 반원형이고 하변은 양모서리를 재단한 역사다리꼴인 상부반원형



 Ⅲ형식


상변이 직선형이고 하변이 양모서리를 재단한 역사다리꼴인 상부직선형






이렇게 크게 3가지의 평면 형태로 분류된 소찰은 각각 크기와 단면형태, 그리고 구멍의 배치에 따라 다시 3가지로 세분할수 있는데 자세하게 설명해 볼께ㅇㅇ






(1) Ⅰ형식

 


Ⅰ형식은 상원하방형으로 상변이 둥근 원형이며, 하변은 직선에 가까운 방형이다. 길이와 단면 형태에 따라 다시 3가지 유형으로 세분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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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갑의 형식분류 - Ⅰ형식



Ⅰ-A형은 그 크기가 길이 2.2~5.8㎝, 폭 1.6㎝~3.6㎝ 두께 0.2㎝ 가량의 소형 찰(札)이야. 


크기에 따라 두 개의 소그룹으로 구분이 가능하나 전체적인 형태나 구멍배치는 동일해. 이 형식에 속하는 소찰은 주로 집안 지역의 고분에서 확인되었지.


전체적으로 장방형을 이루며 단면형태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평찰이나, 안쪽으로 약간 휜 활형을 이루는 것도 있는데, 구멍의 개수와 배치는 개체별로 차이가 있으나, 확인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일정한 정형성을 보여.


구멍의 배치는 상변 가운데에 세로로 1열 2공이 있으며, 하변에는 중앙에 하나가 배치되거나 혹은 가로로 2~3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경우도 있어.


측변에는 각각 중앙에 세로로 1열 2공의 구멍이 배치되며, 소찰 중앙에 하나의 현수공이 추가로 배치된 것도 있지. 



한편 마선구2100호분과 천추총, 우산하3319호분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금동제의 소찰이 확인되었는데, 이들은 주의 주체인 만곡종장판주의 소찰편과 함께 나타나 볼가리개와 수미부의 소찰로 추정되며, 따라서 Ⅰ-A형 또한 주의 소찰로 추정할 수도 있어. 


그러나 주의 주체가 함께 출토되지 않고, 주의 소찰로 인식하기에는 크기가 큰소찰이 대부분이므로 일부 소형 소찰을 제외하면 신갑(身甲)의 소찰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고 봐. 


또한 마선구2100호분에서 비교적 큰 금동제 소찰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주와 마찬가지로 찰갑 일부를 장식하는데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 할 수 있지.








Ⅰ-B형은 길이 6.8㎝~9.3㎝, 폭 1.9㎝~3.5㎝, 두께 0.2㎝ 정도의 장방형의 소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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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B형 역시 Ⅰ-A형과 함께 집안지역의 고분에서 출토되었으며, 그 단면은 평찰이나, 약간 휜 활형을 이루는 것도 발견되었지. 또한 위, 아래 변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꺾여져 있거나 한쪽 또는 양쪽 측변이 살짝 안쪽으로 꺾어진 것도 다수 확인되었어.


멍의 개수와 배치는 개체별로 차이가 있으나, 확인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일정한 정형성을 보여. 


구멍의 배치는 상변 가운데에 세로로 1열 2공이 있으며, 하변에는 중앙에 하나가 배치되거나 혹은 2개가 배치된 경우도 있어. 


측변에는 상단부와 하단부 외연에 각각 세로로 1열 2공의 구멍이 배치되며, 일부 횡결공이 추가된 소찰도 있으며, 또한 소찰 중앙에 하나의 현수공이 추가로 배치된 형태도 있어.





Ⅰ-C형은 Ⅰ형식 중에 가장 적게 출토되었으며 대부분이 손상된 파편이라 그 완전한 모습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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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크기는 대략 길이 10.5㎝~15.3㎝, 폭 1.6㎝, 두께 0.2㎝ 가량의 세장방형 찰로 Ⅰ-B형식의 소찰에 비해 훨씬 더 세장하며 측변의 중앙부가 약간 축약된 형태이지. 단면의 형태에 따라 2개의 그룹으로 다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아. 






첫 번째 형식은 단면이 ‘S’자인 것, 두 번째 형식은 그 단면이 ‘Ω’모양인데,  이러한 단면의 차이뿐만 아니라 길이와 구멍의 배치에서도 약간의 차이를 보여. 


구멍의 배치는 기본적으로 Ⅰ-A, Ⅰ-B, 형식의 소찰과 유사하나 장변에 뚫린 구멍의 개수가 더 많아. 상변 중앙에 세로로 1열 2공, 하변 중앙에 가로로 1~3개의 구멍이 뚫려있으며, 측변의 중앙이나 중앙부 아래 현수공이 있는 것이 있으며, 측변에는 Ⅰ-b형식과 마찬가지로 상하로 나뉘어 각각 2개씩의 구멍이 배치된 예도 있으나, 3개 혹은 4개 이상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도 있지. 



두 번째 형식인Ⅰ-c형은 그 단면의 형태로 보아 특정부위의 소찰로 추정되는데, ‘S'모양의 경우, 만곡종장판주의 찰일 가능성이 있으며, ‘Ω’모양은 가야와 신라의 예를 들어 상박갑, 요갑의 소찰로 추정해 볼 수 있는 형태야.









(2) Ⅱ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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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갑의 형식분류 - Ⅱ형식




Ⅱ형식은 산성하159호분과 우산하41호분에서 출토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총 156점의 찰갑 소찰이 출토되었으며, 대부분이 편이며 자세한 상황을 알 수는 없으나 상부원형으로 상변이 원형에 가까운 호형이고, 하변은 양쪽 모서리가 재단된 역사다리꼴을 띄는 형태야. 


그 길이와 단면 형태에 따라 다시 3가지 유형으로 세분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아.





Ⅱ-A는 길이 4.1㎝, 폭 2.1㎝ 가량의 소형의 찰(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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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은 상변 가운데에 세로로 1열 2공, 하변에는 가로로 1열 2공이 배치되어 있으며, 좌우 측변의 중앙에 각각 세로로 1열 2공의 구멍이 위치하고 있지.


또한 소찰의 중앙부에 현수공이 확인 할 수 있어.






Ⅱ-B는 길이 7.2㎝, 폭 2.1㎝ 가량으로 첫 번째 형식과 그 폭은 유사하나 길이가 길고 더 세장한 장방형을 띠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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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의 배치는 상변 중앙에 세로로 1열 2공, 하변 중앙에 가로로 1열 2공이 있으며, 좌우 측변의 상단부와 하단부에 각각 두 개씩의 구멍이 세로로 배치되어 있어. 


Ⅱ-A유형의 소찰과 마찬가지로 소찰의 중앙부에 현수공이 확인되며, 구멍의 배치 역시 첫 번째 형식과 같으나 측변에 1열 2공의 구멍이 추가된 것에 차이가 있으며, 이는 찰이 길어진 것과 관련된 것으로 추측 할 수 있어.






Ⅱ-C는 길이 10.5㎝, 폭 2.0㎝ 가량으로 일부가 결실되어 자세한 모습은 알 수가 없으나 기본적으로 Ⅰ-C형식의 소찰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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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Ⅲ형식




Ⅲ형식은 주로 환인 오녀산성과 남한지역의 보루에서 출토되며, 상부직선형으로 상변이 직선에 가까운 호형이고, 하변은 양쪽 모서리가 재단된 역사다리꼴을 띄는 것이 대부분이야. 그 길이와 단면 형태에 따라 다시 3가지 유형으로 세분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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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갑의 형식분류 - Ⅲ형식



Ⅲ-A는 길이 4.6~6.5㎝, 폭 2.1~3.6㎝ 가량의 소형 찰(札)이다. 길이 5.5㎝를 기준으로 2개의 소그룹으로 구분이 가능하나 전체적인 형태나 구멍의 배치는 동일해. 이 형식에 속하는 소찰은 주로 남한지역의 아차산 일대 보루에서 주로 출토되며 용마산 2보루에서 가장 많은 개체가 확인되었어.


전체적으로 장방형을 이루는데 하변으로 내려갈수록 약간 좁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하변은 양쪽 모서리를 재단한 역사다리꼴이 대부분이나 일부 완만한 호형을 이루는 경우도 있어. 남아있는 구멍의 배치는 개체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확인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일정한 정형성을 보이고 있지.



구멍은 상변 가운데에 세로로 1열 2공, 하변에는 가로로 1열 2공이 배치되어 있으며, 측변의 중앙이나 혹은 그보다 약간 위에 각각 세로로 1열 2공의 구멍이 위치하고 있으며, 일부 측변과 하단부가 만나는 모서리 지점에 각각 하나씩의 구멍이 추가로 확인되는 것도 있어. 또한 일부 개체에서는 소찰의 중앙부, 또는 상단과 하단에 하나씩의 현수공이 확인되기도 하지ㅇㅇㅋ



이러한 Ⅲ-A형식의 소찰은 소찰주에 사용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아차산 4보루에서 특이한 형태의 소찰주가 확인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찰갑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는 대목인거같아.







Ⅲ-B는 길이 7.2~10.7㎝, 폭 2.1~3.6㎝ 가량으로 첫 번째 형식과 그 폭은 유사하나 길이가 길고 더 세장한 세장방형을 띠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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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9㎝를 기준으로 대소 두 그룹으로 구분이 가능하지만 전체적인 형태와 구멍의 배치는 동일하지ㅇㅇ



이 형식의 소찰은 전체의 47%를 차지하며,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소찰이라 할 수 있어. 소찰의 상하 폭은 차이가 없이 일정한 편이며, 상변은 직선형 또는 완만한 호형을 이루고, 하변은 모서리를 재단한 역사다리꼴을 이룬 경우가 대부분이지.


구멍의 배치는 상변 중앙에 세로로 1열 2공, 하변 중앙에 가로로 1열 2공이 있으며, 측변의 상단부와 하단부 외연에 각각 두 개씩의 구멍이 세로로 배치되어 있으며, 소찰의 상단부와 하단부 중앙에 각각 하나씩의 현수공이 뚫린 경우도 있어. 


구멍의 배치 역시 첫 번째 형식과 같으나 측변에 1열 2공의 구멍이 추가된 것에 차이가 있으며, 이는 찰이 길어진 것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 할 수 있어.







Ⅲ-C는 길이 11.7~16.0㎝, 폭 2.9~3.4㎝ 가량으로 Ⅲ형식 소찰에 비해 훨씬 더 세장하며, 측변의 중앙부가 약간 축약된 형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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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5㎝를 기준으로 두 가지 형태로 세분할 수 있는데, 길이의 차이뿐만 아니라 구멍의 배치에서도 약간의 차이를 보이며, 구멍의 배치는 기본적으로 Ⅲ-A, Ⅲ-B형식의 소찰과 유사하나 측변에 뚫린 구멍의 개수가 많다는 점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어.


상변 중앙에 세로로 1열 2공, 하변 중앙에는 가로로 1열 2공의 구멍이 뚫려 있으며, 찰의 중앙이나 중앙부 아래에 현수공이 있으며, 측변에는 Ⅲ-B형식과 

마찬가지로 상하로 나뉘어 각각 2개의 구멍이 배치된 예도 있으나, 3개씩 또는 4개씩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도 있어. 


이 중 아차산 4보루에서 출토된 5점의 소찰은 중앙부가 꺾여 있는데, 이는 경갑이나, 요갑 부위로 추정되고 있지.







지금까지 쭉 봐왔다면 고구려 찰갑은 일반적으로 4세기 전엽~5세기 후엽의 집안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상원하방형의 찰갑 소찰이 5세기 후반 ~ 6세기 초반으로 비정되는 오녀산성과 남한지역 보루에서 나타나는 상부직선형으로 변화되어 가는 양상으로 추정 할 수 있겠지? 



앞서 분석한 이러한 Ⅰ, Ⅱ, Ⅲ형식은 이러한 고구려 찰갑의 시간적 변화를 증명하는 것으로 형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어.





Ⅰ형식은 집안지역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이러한 고분들은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중엽으로 비정되고 있어.


따라서 1형식은 비교적 이른 시기의 찰갑 소찰로 추정된다.




Ⅱ형식은 현재까지 집안 산성하159호분과 우산하41호분에서만 출토되었으나, 그 형식이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각각 4세기 전엽과 5세기 후엽으로 비정되고 있는데, Ⅰ형식과 함께 발생하여 비교적 늦게까지 남아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어. 



Ⅲ형은 환인의 오녀산성과 한강유역의 보루에서 출토되었으며, 환인의 오녀산성과 한강유역의 고구려 보루들은 모두 같은 시기인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반으로 비정되고 있고 있는걸 보면 주목할만 하다고 볼 수 있어. 즉 ,이는 찰갑 소찰의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지.










고구려 찰갑의 변화양상



이번에는 앞서 살펴본 고구려의 갑주 자료를 바탕으로 고구려 찰갑의 시,공간적 변화양상을 살펴볼께.


앞서 서술(전술)한 이야기를 종합하는 모습을 보일거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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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는 앞서서 살펴보았지만 챙부의 표현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반원형과 삼엽형으로 나누어지며, 357년으로 비정되는 안악3호분과 5세기 전엽으로 비정되는 약수리벽화고분에 묘사된 마주의 챙은 반원형이며, 4세기 후엽으로 비정되는 마선구1호분과 5세기 이후의 고분인 삼실총, 통구12호분, 쌍영총, 개마총의 벽화에 표현된 마주의 챙은 상부의 장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으나 모두 삼엽형이야.


한편 408년의 덕흥리벽화고분의 마주는 챙이 3개의 능형판(菱形板)으로 구성되어 있어 반원형의 챙과는 다르지만 5세기대 이후의 삼엽형 챙과는 3매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고 앞서 설명했지?


이에 따라 고분의 시기로 볼 때 4세기 후반 ~ 5세기 초반에 마주의 형태변화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어.


그러나 유일하게 마주가 출토된 우산하992호분은 338년으로 비정되므로 4세기 초반에도 삼엽형의 마주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므로, 반원형과 삼엽형 챙부는 시간적, 공간적인 변화양상이라기보다 현재로써는 장식적 요소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해ㅇㅇ








마갑은 상방하방형의 소찰로 현재까지 확인된 마갑 소찰은 모두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며 장방형인 A형은 신갑, 역사다리꼴의 소찰 B형은 흉갑(胸甲) 또는 경갑(頸甲)으로 추정되며, 또한 C형은 방형으로 경갑(頸甲)으로 추정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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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마갑이 안악3호분의 기마무사도에는 2부분, 삼실총의 기마무사전투도에는 3부분, 쌍영총의 기마무사도에는 3부분 등으로 구분되어 묘사되어 있는데, 벽화에 표현된 방식으로 볼 때, 마갑이 부위별로 구분되어 제작되었음은 틀림없으며, 앞서 살펴본 마갑의 형식은 부위별로 소찰의 차이를 상정할 수 있을거 같아.


또한 개마총의 마갑도에는 복갑(腹甲)의 뒤쪽에 별도 분리된 부분이 있으며, 고갑(尻甲)이 2단으로 이루어진 것 같으므로 좀 더 세부적인 부분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벽화에 묘사된 마갑의 상황으로 보아 점차 부위별 구분이 확대되어 가는 것으로 파악 할 수 있을거 같아.


비교적 수량이 많은 태왕릉과 마선구 2100호분의 마갑소찰을 비교하면 태왕릉의 소찰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찰이 부위별로 세분되어지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그러한 상황이 벽화에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도 추정 할 수 있지.








주는 종장판주, 만곡종장판주, 소찰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집안의 벽화에 묘사되어 있는 소찰주가 5세기대 것임을 들어 5세기 초, 고구려 갑주가 종장판주에서 소찰주로 변화하였다고 해석하여 왔지만, 4세기대의 마선구1호분에 묘사된 개마무사가 소찰주를 착용하였을 가능성이 제시되면서 고구려 주는 시간적인 변화보다는 지역적 특징에 따른 변화양상으로 이해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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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집안지역의 벽화에 보이는 소찰주는 5세기 대에 새로 나타난 신형식이 아니라 전국시대의 소찰주에 그 맥락이 닿아있는 것으로서, 압록강유역에서 초기부터 발달한 형식이라는 것이지.


또한 집안지역에서는 전국 갑주 계통의 소찰주 문화가 본류를 이루고 있으며, 대동강유역에서는 한 대 이래 동북아지역에 널리 확산되어 있던 종장판주 계통의 것이 유행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이 낙랑고지에 대한 정치적 통합 이후 점차 고구려 문화의 본류에 흡수된 것으로 추론 할 수 있어.


따라서 마주, 마갑, 주의 변화양상은 주로 고분벽화에 묘사된 갑주의 표현 방식에 따라 논의된 것으로, 그 실물자료가 부족하여 고구려 갑주에 대한 시간적, 공간적 변화양상을 상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기도 해ㅇㅇ;









찰갑은 고구려의 갑주의 기본을 이루며 가장 많은 실물자료가 출토되었지만, 찰갑 일식이 출토되지 않아 그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찰갑 소찰의 형태로 시기적, 공간적 변화양상을 살펴볼 수 있어. 


따라서 다음 절에서는 고구려 찰갑의 실물자료를 토대로 시기적, 공간적 변화양상을 살펴볼까해ㅇㅇ


앞서 고구려 찰갑 소찰의 평면상 상변과 하변의 형태에 따라 크게 Ⅰ, Ⅱ, Ⅲ형식으로 나누고, 세부적으로 크기, 단면형태, 구멍 배치 등을 구분해서 살펴보았지?


이러한 형식은 시․공간적인 차이와 변화가 엿보이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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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찰갑의 시,공간적 양상



1. 시간적 변화양상


고구려 찰갑의 시간적 변화는 형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3단계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어. 



Ⅰ형식은 집안지역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이러한 고분들은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중엽으로 비정되고 있으므로, 따라서 1형식은 비교적 이른 시기의 찰갑 소찰로 추정 할 수 있어.



Ⅱ형식은 현재까지 집안 산성하159호분과 우산하41호분에서만 출토되었으나, 그 형식이 뚜렷하게 구분되므로, 각각 4세기 전엽과 5세기 후엽으로 비정 할 수 있는데, Ⅰ형식과 함께 발생하여 비교적 늦게까지 남아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어.



Ⅲ형식은 환인의 오녀산성과 한강유역의 보루에서 출토되었는데, 환인의 오녀산성과 한강유역의 고구려 보루들은 모두 같은 시기인 5세기 후엽에서 6세기 전엽으로 비정되고 있음이 주목된다고 앞서 설명했지?. 이는 이 시기에 찰갑 소찰의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도 앞서 설명했어.


따라서 고구려 찰갑은 일반적으로 4세기 초반~5세기 후반의 집안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상원하방형과 상부원형의 하변의 모서리가 재단된 역사다리꼴의 찰갑 소찰로 보아 이 두 형식이 함께 사용되다가, 5세기 후엽~6세기 전엽으로 비정되는 오녀산성과 남한지역 보루에서 나타나는 상부직선형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으로  생각 할 수 있지.

 





2. 공간적 변화양상



우선, Ⅰ형식과 Ⅱ형식의 찰갑은 모두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Ⅲ형식은 산성이나 보루 등의 실제 사용 유적에서 출토되었어. 


이로써 부장용 찰갑과 실제 착용 찰갑의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고분의 연대와 산성, 보루 등의 연대의 차이가 뚜렷하게 구분됨으로 이를 공간적인 변화양상이라기 보다는 시간적인 변화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 할 수 있어.


즉 Ⅰ,Ⅱ,Ⅲ형식의 찰갑 소찰은 각각 4세기 중반에서 5세기 중반, 4세기 초반에서 5세기 후반, 6세기 초반의 양상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이는 시간적인 변화양상으로 생각 할 수 있지.











고구려 찰갑의 변천



고구려의 찰갑의 실물자료는 3세기 후엽부터 6세기 전엽으로 비정되는 고구려 고분과 산성 및 보루 등에서 출토되었어.


이번에는 앞서 설명한 형식분류와 시,공간적 변화양상를 토대로 고구려 찰갑의 변천을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볼께.





 


1단계는 고구려에 찰갑이 등장하여 보급되는 시기로 연대는 3세기 후엽에서 4세기 전엽으로 비정 할 수 있어.


이 시기의 찰갑 소찰은 집안지역의 고분 중 가장 이른 시기로 편년되고 있는 집안 만보정242-1호분과 산성하159호분에서 나타나므로, 따라서 3세기에 철제 찰갑이 보급되었을 가능성이 사학계 내부에서 제기 되어왔어. 


또한 집안고구려왕릉의 보고자의 연대에 따르면 칠성산871호묘를 2세기대로 보고 있어 2세기 대에 이미 철제 갑주가 보급되었을 가능성도 있었지※.


※기원후 1세기대로 볼 수 있는 길림 유수노하심유적의 M56, M67, M97호분에서 종장판주와 함께 찰갑이 출토되었으며, 또한 낙랑의 부조세군묘(정백동1호분)에서도 수십 매의 소찰이 출토되어 고구려에 기원 전후부터 철제갑주가 보급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특히 신라, 가야 종장판주의 직접적인 원류를 길림 유수노하심유적의 종장판주와 연계시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후 중국 동북지방에서 갑주자료가 없고 4세기대 이후 조양십이대향88M호분, 조양나마동ⅠM5호분, 조양나마동ⅠM17호분 등의 고분에서 본격적으로 철제갑주자료가 나타난다.






2단계는 찰갑의 보급이 일반화되고 독자적인 갑주문화가 형성되는 시기야. 연대는 4세기 전엽~5세기 후엽으로 비정 할 수 있어.


전술한 찰갑의 Ⅰ, Ⅱ형식이 이에 해당하며 주변의 갑주문화의 수용으로 찰갑이 일반화되고, 이어 5세기 전엽부터 재지의 생산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생산체계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어.


1형식의 상원하방형의 철제 소찰과 2형식의 상부원형으로 하변의 모서리가 재단된 소찰은 출토 유구의 연대를 살펴보면 등장 시점이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이며, 소찰에 변화가 일어나는 5세기 후엽까지 함께 유행한 형태로 생각 할 수 있는데, 1형식의 소찰은 4세기 전엽~5세기 중엽까지 꾸준히 등장하지만, 2형식의 소찰은 각각 4세기 전엽과 5세기 후엽으로 비정되는 산성하159호분과 우산하41호분에서만 출토되었어


따라서 태클의 여지는 있으나 현 시점에서는 이를 Ⅰ형식과 함께 2단계의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봐ㅇㅇ







3단계는 고구려 찰갑이 소찰에 있어 변화가 일어나며, 독자적인 갑주문화가 발전하는 시기인데, 연대는 5세기 후엽~6세기 전엽으로 비정 할 수 있어. 


오녀산성과 6세기의 전엽으로 편년되는 남한지역의 고구려 보루 등에서 출토되는 찰갑 소찰로 보아 5세기 후엽대 이후 소찰의 제작에 있어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며, 그동안 상원하방형의 형태를 유지했던 소찰이 상부직선형이며 하단부의 모서리가 삼각형으로 재단되는 형태로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어.


이러한 변화는 소찰주의 확산과도 연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삼실총과 퉁구12호분에 묘사된 소찰주와 오녀산성과 아차산 제4보루의 실물자료는 그 변화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어.


전술한 Ⅲ형식의 소찰이 이에 해당하며, 그동안 상원하방형의 형태를 유지했던 소찰이 상부직선형이며 하단부의 모서리가 재단된 형태로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지.





이상으로 과거 고구려의 영역이었던 중국의 환인 및 집안지역과 북한, 남한지역에서 출토된 고구려 찰갑의 형태를 기준으로 형식을 분류하고 시․공간적 흐름과 변화과정을 살펴보았어. 


이러한 과정에 있어 실물자료를 관찰하고 그 제작방식을 함께 고려해야하였으나, 현 상황에서는 남한지역의 자료를 제외한 유물을 직접 관찰하기 힘들기 때문

에 논문과 보고서의 내용에 의존하여 도면에 나타난 평면과 단면의 형태, 구멍의 위치 등을 위주로 형식을 분류하였어.

















※정리



자. 그럼 이 긴 글을 정리하는겸 한번 다시 복습하는 차원에서 고구려의 찰갑은 3형식으로 분류한걸 마무리로 다시 한번 살펴보자ㅇㅇ;






Ⅰ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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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원하방형으로 상변이 둥근 원형이며, 주로 집안지역의 고분에서 출토되었으며, 길이와 단면형태에 따라 다시 3가지 유형으로 세분된다. 







Ⅱ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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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하159호분과 우산하41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여기에서는 총 156점의 찰갑 소찰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이 편이며 자세한 상황을 알 수는 없으나 상부원형으로 상변이 원형에 가까운 호형이고, 하변은 양쪽 모서리가 재단된 역사다리꼴을 띠는 형태이다. 길이와 단면 형태에 따라 다시 3가지 유형으로 세분된다.







Ⅲ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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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환인 오녀산성과 남한지역의 보루에서 주로 출토되며, 상부직선형으로 상변이 직선에 가까운 호형이고, 하변은 양쪽 모서리가 재단된 역사다리꼴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며, 길이와 단면 형태에 따라 다시 3가지 유형으로 세분된다.


이러한 형식은 각각 하나의 찰갑 소찰의 형태로 변화양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세분된 유형은 각 부위별 소찰의 차이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떠盧? 엄청 길게 썼지만 이렇게 정리해서 보니 좀 감이 잡히盧? 


3가지 형식으로 분류한것에 의거하여 고구려 찰갑의 변천과정은 찰갑 소찰 형식의 변화와 발전을 중심으로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어.





1단계


고구려에 찰갑이 등장하여 보급되는 시기로 연대는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반으로 추정되므로, 이 시기의 찰갑 소찰은 집안지역의 고분 중 가장 이른 시기로 편년되고 있는 집안 만보정 242-1호분과 산성하 159호분에서 나타나며, 따라서 3세기에 철제갑주가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측 할 수 있음.



2단계


찰갑의 보급이 일반화되고 독자적인 갑주문화가 형성되는 시기이며, 연대는 4세기 초반~5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므로, 전술한 찰갑의 Ⅰ, Ⅱ형식이 이에 해당하며 주변의 갑주문화의 수용으로 찰갑이 일반화되고 이어 5세기 초반부터 재지의 생산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생산체계를 갖추었던 것으로 볼 수 있음.



3단계


고구려 찰갑이 소찰에 있어 변화가 일어나며, 독자적인 갑주문화가 발전하는 시기이며, 연대는 5세기 후엽~6세기 전엽으로 추정됨. 


오녀산성과 6세기의 전엽으로 편년되는 남한지역의 고구려 보루 등에서 출토되는 찰갑 소찰로 보아 5세기 후반대 이후 소찰의 제작에 있어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며, 그 동안 상원하방형의 형태를 유지했던 소찰이 상부직선형이며 하단부의 모서리가 삼각형으로 재단되는 형태로 변화되었음. 


이러한 변화는 소찰주의 확산과도 연계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삼실총과 퉁구12호분에 묘사된 소찰주와 오녀산성과 경기도 아차산 제4보루의 실물자료는 그 변화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음. 전술한 Ⅲ형식의 소찰이 이에 해당하며 그동안 상원하방형의 형태를 유지했던 소찰이 상부직선형이며 하단부의 모서리가 재단된 형태로 변화되었음.





이제 전체적인 그림이 잡히盧?


이처럼 고구려의 찰갑은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징과 변화양상이 확인 할 수 있어. 


이는 고구려가 당시 주변국가와의 교류를 통하여 북방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고구려만의 발전과정을 거쳐 다시 주변 국가로 전파시켰음을 의미하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을 축약해서 고구려의 갑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짤로 나타 낼 수 있어.



고구려의 갑주.jpg












이상으로 과거 고구려의 영역이었던 중국의 환인 및 집안지역과 북한, 남한지역에서 출토된 고구려 찰갑의 형태를 기준으로 형식을 분류하고 시간적 흐름에 따른 변화과정을 살펴보았어. 이러한 과정에 있어 그 실물자료를 관찰하고 제작방식을 함께 고려해야하였으나, 현 상황에서는 남한지역의 자료를 제외한 유물을 직접 관찰하기 힘들고 출토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어 연결 방법을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해. 그러므로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갑주의 제작 기술복원에는 한계가 있어.


그 결과 어이없이 당나라풍 갑주를 입고 당나라군이나 백제,신라,선비놈들을 썰어버리는 스바라시한 고구려군 장수를 우린 TV 사극에서 볼 수 있었지.

 


앞으로 더 많은 실물자료가 축척되면, 그에 따른 정확한 복원을 바탕으로 변천과정에서 나타나는 형태와 그것이 기능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에 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며 무식하게 긴 이 글을 마칠께. 



다음 외전은 백제의 방어구에 관하여 알아볼께. 수고했다 게이들아ㅋ









3줄요약




1. 현재까지 발굴된 고구려의 갑옷의 대다수(거의99%)는 찰갑인걸 감안하면 고구려의 대표갑옷은 찰갑이며, 이는 고분벽화와 출토된 소찰등을 미루워 볼때 추론이 가능하고, 고구려의 갑옷은 고조선과 부여의 찰갑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론되고 있음.


2. 또한 고구려는 대규모 기병을 운용하였으며, 이러한 기병의 대표적인 병종은 개마무사로 지칭되는 중장기병대임. 개마는 본래 마갑과 마주를 총칭하는것인데, 고구려의 개마는 크게 출토된 마주로서 분류되는데 하나는 반원형 마주이며 다른 하나는 삽엽형 마주임.


3. 출토된 찰갑 소찰들을 볼때 시대별로 3가지의 찰갑이 존재하며, 투구 또한 시대별로 종장판주와 만곡종장판주, 소찰주로 변화하는걸 볼 수 있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심층면접이 얼마 안남았는데 미친듯..;;

그리고 이번에 수능보는 밀게이들 있으면 시험 잘봐라ㅋ 난 수능 다음날에 이틀간 심층면접ㅋ.....ㅅㅂ.....







※참고 문헌, 논문의 목록은 시리즈 말미에 적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