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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그걸 바라신다!
(Deus Lo Vult)








로 시작한 십자군의 거룩한 원정은 마침내 성지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그 대단원이 막이 내렸어. 전쟁이 끝나자 1차 십자군 대부분은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 영웅으로 환대받았지. 구세주의 땅을 탈환하기 위해 적지를 뚫고 3년간 3천 킬로미터를 행군한 이 용사들의 이야기는 이 후 수세대 유럽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예루살렘 정복 당시 제일 먼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진입했으며, 예루살렘 왕국 제 1대 통치자가 된 십자군 지휘관, 고드프루아의 위업과 서사시와 노래로 영원히 기려졌어.


이 전쟁으로 예루살렘 왕국,  에뎃사 백작령, 안티오키아 공국, 트리폴리 백작령이 탄생하였고, 이 나라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십자군 국가의 역사가 시작해. 하지만 특별히 이 중 3나라의 종주권을 가진나라는 예루살렘 왕국이므로 예루살렘 왕국, 특히 통치자들을 중심으로 십자군 국가의 역사를 살펴볼까해.












1대 통치자 고드프루아 (1099~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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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은 참고로 레몽이다. 고드푸르아 아님



처음부터 고드프루아가 예루살렘의 통치자가 될 수는 없었어. 오히려 십자군 총사령관이자 가장 부유하고 세력있는 '툴루즈 백작 레몽'에게 통치자 자리가 제일먼저 주어졌지. 하지만 그는 거부했어. 그가 겸손해서라기보다는, 레몽은 물질적, 전략적 위치상 어떻게든 고려해도 자기밖에 왕이 될수밖에 없음을 알고있었기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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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고드프루아. 예루살렘의 1대 통치자



하지만 그가 거절하자 권력의 자리는 고드프루아에게 주어졌어. 고드프루아는 짐짓 거절하지만 결국엔 그가 전쟁속에서 탄생한 예루살렘 왕국의 1대 통치자가 되었어. 그는 일반 병사들에게도 신망을 얻은 인물이라고해. 하지만 정작 그가 권력을 잡게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상대적으로 다른 제후들로부터 가장 '견제'를 작게 받아서라고해. 즉 눈에 띄는 사람보다는 무난한 사람이었던 까닭에 그가 1대 통치자가 될 수 있었지. 또한 레몽은 고드푸르아처럼 신망받는 인물이 아니었다고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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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탑




자기에게 권력의 자리가 주어지지 않은 레몽은 격노하고, 예루살렘 도시 안의 요새인 '다윗의 탑'에서 농성을해. 당시 요새를 점령하지않고서는 도시를 지배할 수 없었기에 고드프루아에게는 특히 심각한 문제였다고해. 하지만 레몽이 이슬람교도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요새를 알바라 주교의 휘하에 맡기고 협상하러 나갔다가, 주교가 배신을하고 그 요새를 고드프루아에게 넘겨버렸어. 또다시 분노한 레몽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서 떠나지만, 이집트 대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누그뜨리고 군대를 돌려. 그리고 '아스칼론 전투'라고 불린 이 전투에서 십자군은 이집트 대군을 괴멸시키고 그제서야 성지 예루살렘을 당분간 안전하게 확보 할 수 있게되었지.



하지만 이 전투 직후에 1차 십자군은 대부분 떠나버려.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오로지 (십자군 원정에 의해 탄생한) 안티오크 공작 보에몽 1세의 사촌인 탕크레드만이 남았고, 병력도 고작 3백명의 기사와 2천여명의 보병들만있었지.하지만 무슬림들간의 내분이 워낙심했던 까닭에, 예루살렘 주변지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성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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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크레드. 그는 안티오크 공작인 보에몽 1세의 사촌





위에서 언급한 탕크레드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에 위치한 '티베리아스'를 수도로 갈릴리 지역을 손에넣고, 예루살렘의 봉토로서 '갈릴리 공작령'을 소유하게되었어. 또한 배를 만든다고 늦게 출발한 베네치아 공화국의 함대가 도착하면서 병력은 10배 이상 늘어났고,부유한 항구도시인 '아크레'를 점령코자 포위공격하다가 그만 고드푸르아가 죽어버리면서, 베네치아 군대는 하는 수 없이 아크레대신 '하이파'라는 도시를 점령하고 귀국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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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해를 돕기위한 지도야. 예루살렘 북쪽으로 보면 갈릴리 지역이 보이지? 그리고 동북쪽으로 '다마스쿠스'가 보이는데 이후 기독교와 무슬림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놓인 도시야. 그래서 그런지 역사도 파란만장하지.






위에서 언급했듯이, 고드푸르아는 그만 죽어버리지만, 고드푸르아에게는 확실한 후계자가 없었기에, 예루살렘을 두고 '누가' 뒤를 이을것인가에 대해 고드푸르아 생전부터 일이 생겼어. 제일먼저 선수를 친건 '다임베르트 주교'


그는 예루살렘의 총대주교가되어 예루살렘과 성지를 교회의 지배를 받아야한다고 굳게 믿었어. 고드푸르아로서는 달갑지않은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저항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했지. 그러다가 1100년 7월 18일에 위에 한번 언급했듯이, 고드푸르아가 사망해버려. 이 일로 다임베르트는 예루살렘 지배권이 완전히 자기에게 들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는 고드푸르아가 죽었을때 예루살렘에 없었어. 또한 예루살렘을 호락호락 교회에 넘길려하지않은 고드푸르아의 동지들이 고드푸르아의 동생이자 에데사 백작 보두앵 1세를 예루살렘으로 불러 그를 왕위에 올리게해.





2대 통치자 보두앵 1세 (110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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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두앵 1세. 적지 한가운데에 위치한 예루살렘 왕국이 100년간 존속가능했던 이유가 내 생각으로는 그가 이뤄놓은 영토덕분이라 생각.








위에서 보면 손쉽게 보두앵 1세가 왕이되는듯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쉽지않았어. 다음 얘기를 살펴보자.


보두앵 1세는 에데사에서 병력 500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내려오다, 갑작스런 무슬림의 기습공격을 받게되었어. 바로 다마스쿠스 영주인 '두카크'가 그의 위험성을 알고는 예루살렘으로가 왕위에 오르기전에 제거하기로하였지. 하지만 일은 두카크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가버려. 바로 '트리폴리' 통치자인 '카디 파크르 알 물크'야. '트리폴리'는 십자군이 도착하기도 전부터 다마스쿠스가 노렸던 도시로, 만약 보두앵 1세가 거기서 죽어버리면, 지중해 연안의 십자군 전체를 와해시킬뿐만아니라 새 십자군의 동방 진출 자체가 위태롭게될 수 도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의 도시또한 위험하게 되어버리지. 결국 그런 상황을 바라지않은 트리폴리 영주는 미리 기습 계획을 보두앵 1세에게 다 알려줘버려서 보두앵 1세는 이 기습공격에서 승리하고 1100년 크리스마스, 초대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1세가 왕관을 쓰게되. 본격적으로 예루살렘 왕국이 시작되는거지.


고드푸르아도 왕이나 다름없긴했지만, 보두앵 1세에 이르러서야 왕의 권력이 본격 갖추어졌으므로, 보두앵 1세부터 진정한 왕이라고 해도될거야. 아. 보두앵 1세가 비워두고온 '에데사'는 그의 사촌인 '보두앵'에게 줘. 그는 훗날 보두앵 1세를 이어 왕위에 올라 '보두앵 2세'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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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크 공작인 보에몽 1세. 배신을 밥먹기로 잘하는 인물



보두앵 1세가 에데사에서 예루살렘으로 오기전, 한가지 큰 일이 터지고말아.바로 '안티오크' 공작인 보에몽 1세가 북쪽 변경지대를 정비하기 위해 출정하다가 그만 전투에서 대패하고 그는 무슬림의 포로가되었어. 그래서 보두앵 1세가 주인 없는 안티오크을 확보한뒤에 예루살렘으로 왔지. 보두앵 1세가 왕위에 오른 다음 해, 1101년 십자군이 동방에 도착해. 이 1101년 십자군의 병력은 자그마치 1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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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등장한 레몽. 그의 십자군 원정 참전동기가 신앙과 명예였다고해.




1차 십자군 참전을 망설이다가 하지않은 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1차 십자군 원정중에 포기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다시 이 1101년 십자군에 참전했지. 이 후속 원정은 적지 한가운데에 위치한 예루살렘 왕국에게 아주 커다란 희망이었어. 점령지를 확대해 예루살렘 왕국의 존속을 보장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지. 더욱이나 1101년 십자군의 대장은 1차 십자군 주요 지휘관중 한명이자 예루살렘의 왕이 될뻔했던 '레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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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년 십자군의 진격로




하지만 이 1101년 십자군은 아주아주 대실패했어. 통일되지 못한 지휘체계와1차 십자군과 싸워 패배한 경력이있는 투르크의 술탄 '칼리츠 아르슬란 1세'가 1101년 십자군을 각개격파하면서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으며 1101년 십자군은 실패했어. 1101년 대장인 '레몽'은 300명의 병력으로 팔레스타인으로 내려오며 위에 언급한 '트리폴리'에서 트리폴리 대군과 맞딱뜨리게되. 여기서 다마스쿠스 군과 홈스 군도 참전해 레몽을 같이 무찌를려했지만 막상 레몽이 나타나자 다마스쿠스 군과 홈스 군은 도망쳐버려. 위에 언급했듯이 다마스쿠스 영주인 두카크는 트리폴리 영주가 일전에 보두앵 1세를 살려준 그 기억때문에 트리폴리를 배신해버려.


근데 전투는 레몽이 고작 200명을 이끌고 트리폴리 군을 공격해 7천명이나 죽여버려. 그 당시 60대였던 레몽 노익장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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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등장한 보에몽. 근데 사진에서도 느껴지듯이 뭔가 위압감이 느껴지지않냐?


1103년, 무슬림의 포로였던 보에몽은 석방되어 돌아오지만, 그는 또 군사원정을 했다가 거의 전멸하고, 그와 같이 원정에 나선 에데사의 보두앵 (보두앵 1세의 사촌)과 조슬랭은 포로로 잡히고, 보에몽 그만 겨우시 안티오크로 돌아왔지. 그리고 그는 이러저러한 일로 동로마 제국과 싸우기위해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다시는 안티오크로 돌아오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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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이해를 돕기위한 지도야. 예루살렘 왕국 바로위에 트리폴리가 보이지? 이제 거기 얘기할거야.




한편 레몽은 다시 돌아와 '트리폴리'를 공략해. 경험이 풍부한 십자군들이 레몽 주변에 모여들여 이 부유하고 중요한 항구도시인 '트리폴리'공략에 나서는데, 그만 포위가 오래가면서 1105년 2월 27일에 그만 레몽은 죽어. 하지만 트리폴리 공략은 레몽이 죽으면서 소유권을 놓고 문제가되었다가 1109년 7월 12일에서야 공략하는데 성공했지. 트리폴리 공략에 있어 보두앵 1세에게는 값진 승리였어. 그는 이미 1101년에 해안 도시 아르수프와 카이사레아를, 1104년에 아크레를, 1110년에 시돈과 베이루트를 점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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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에몽1세야. 중년인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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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왕국의 리즈시절. 보두앵 1세때 거의 이뤄놓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님.


보두앵 1세는 10년도 안되는 기간에 티레와 아스칼론을 제외한 팔레스타인 연안을 전부 점령한거야. 그 이후 이집트로 들어가 나일강 삼각주까지 진출했지만 병에 걸려 1118년 4월 2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상을 떠나.







개인적으로 그의 죽음으로 십자군 왕국은 '세대 교체'가 되었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그가 죽었을즘에는 십자군 왕국을 건설한 1차 십자군의 주요 지휘관인 고드푸르아, 보에몽, 레몽, 보두앵 1세, 탕크레드가 모두 죽었거든. 이제 십자군 왕국은 갈수록 강성해지는 무슬림의 공격에 대비해야하는 시기가 다가왔어. 특히 십자군이 여지껏 만났던 무슬림 세력중 가장 강한 세력, 이마드 앗딘 장기의 등장은 십자군 왕국에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왔지.





1줄 요약


십자군 원정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







글쓰느라 노무 힘드노.. 글 좀 수정해서 나중에 짤방좀 올려봐야겠다. 글 보완해야될거 있으면 좀 알려줘 게이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