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이었는데, 시위가 늘 일어나고 있었다.
이 무렵에는 전경들이 SY44발사기를 이용해서 최루탄을 쐇다.
발사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맞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는데....
결국 한명 맞음. 전남 화순 출신으로 연세대 총학 간부인 이한열.
이한열의 장례는 민주국민장으로 치뤄졌고, 수많은 인파가 밀집하였다.
시위는 지속적으로 격화해갔다.
직장인들도 퇴근하고 참가.
최루탄 쏘지마
시청앞 광장이 민주화 됨.
1987년 6월 이었는데, 시위가 늘 일어나고 있었다.
이 무렵에는 전경들이 SY44발사기를 이용해서 최루탄을 쐇다.
발사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맞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는데....
결국 한명 맞음. 전남 화순 출신으로 연세대 총학 간부인 이한열.
이한열의 장례는 민주국민장으로 치뤄졌고, 수많은 인파가 밀집하였다.
시위는 지속적으로 격화해갔다.
직장인들도 퇴근하고 참가.
최루탄 쏘지마
시청앞 광장이 민주화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