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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재군비를 선언한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후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눈독을 들인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상당한 공업력과 전쟁 병기들을 보유한 준 강대국이었다

 

히틀러는 영국을 협박했고 영국 수상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체코슬로바이카를 얻는다면 그의 욕심이 멈추게 될 것이며

유럽에 전쟁은 없을 것이라 판단, 히틀러의 체코슬로바키아 점령을 용인한다

체코제 우수한 전차들과 비행기 및 병력, 공업 인프라가 히틀러의 손에 들어온다

이는 2차대전 초기 독일군 전력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독일이 프랑스와 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전력을 제공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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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저 먹게 된 히틀러는 자신감을 얻는다

그는 폴란드로 시선을 돌린다. 영국과 프랑스가 폴란드를 지지하고 있었으나

두 국가가 폴란드를 위해 독일에 선전 포고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히틀러는 믿는다

소련과 평화조약을 맺은 히틀러는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동시에 침공해

각기 점령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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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지도자 스탈린은 당연히 이를 받아들였고 히틀러는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전격적으로 침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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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츠 구데리안]

 

폴란드는 평야 지대 국가였으므로 기동전이 유리했다. 전통적인 섬멸전 이론에 따라

보급을 유지하며 적을 고립시켜 무찌르는 방식이 채택되었으나 하인츠 구데리안을 위시한

소장파 군인들은 그들의 새로운 전격전 이론을 실험하길 원했다. 그리하여 섬멸전 이론에 기동전을 가미한

전술을 선보이게 되는데 이 전격전 이론은 프랑스 침공 때 놀라운 전과를 안겨주며 최종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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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을 향해 돌격하는 폴란드 기병대. 폴란드 침공전 당시. 나치는 당시 독일군의 기계화 수준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런 사진들을 선전용으로 내세우며 폴란드 군의 무능을 강조한다]

 

폴란드는 절망적으로 저항했으나 9월 17일 소련까지 배후를 쳐들어온다. 결국 폴란드는 항복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즉각적으로 독일에 선전 포고한다. 히틀러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설마 두 국가가 선전 포고를 하리라고는 전혀 염두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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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선전 포고 후 그들간의 군사적 충돌은 없었다.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에 강화를 제의하나

거부당한다. 히틀러는 마침내 총통 지령 6호를 통해 프랑스 침공을 기정사실화한다

히틀러는 연합국이 방심하는 사이 기습을 가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나

참모진들이 그에게 제시한 구상들은 실망감만을 안겨주었다. 정규전을 개시한다면 1차대전의 그것처럼

지루한 참호전과 요새전, 소모적인 희생이 강요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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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폰 만슈타인]

 

독일 육군 중장 만슈타인은 독일군이 프랑스의 요새화된 국경 지대를 무시하고 벨기에 지역을 돌파해

깊숙이 전진한 후 벨기에로 모여든 연합군을 후방으로부터 포위 섬멸하는 기동전을 제시한다(낫질작전)

 

육군 원수 룬트슈테트를 비롯한 전통적인 군인들은 기갑부대의 단독 기동 등 이 제시안이

전통 교리에 어긋난다며 재가를 거부하고 오히려 만슈타인은 군부의 압력으로 좌천된다

분개한 젊은 장교들은 만슈타인의 제시안을 직접 히틀러에게 가지고 왔고 히틀러는 이를 그럴듯하다고 여기게 된다

마침내 히틀러는 만슈타인에게 직접 브리핑을 요구했고 제시안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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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슈타인의 제시안. 기습을 받은 연합군이 벨기에와 주위로 모이면

돌파한 군과 본토의 병력이 같이 포위 섬멸한다는 제시안]

 

독일군의 이러한 움직임을 벨기에는 눈치채고 영국과 프랑스에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주변으로

대규모의 독일군이 집결하고 있다는 경고를 보낸다

그러나 연합국은 경고를 무시하였으며 독일이 프랑스 마지노 방어선을 마주보는

국경 요새 지대 지그프리트에 막대한 방어선을 구축하였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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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5월 10일. 마침내 독일군이 행동을 개시한다. 대규모 군대가 벨기에를 전격적으로 침공한다

프랑스 침공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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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롬멜]

 

독일군은 성공적으로 벨기에 각 지역의 전략적 교두보를 점령한다. 독일군 최고 사령부는 진격 중지를 명령했으나

롬멜과 구데리안 등의 장군들은 최고 사령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단독적인 전략 판단으로 북부 프랑스 지역 깊숙이 진격해 점령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판단은 독일이 프랑스에 승리하는 밑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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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은 연합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동시에 마지노 방어선에 대한 공세 또한 개시한다

연합군이 정신을 차린 뒤는 이미 북부 프랑스 지역은 독일군의 수중에 떨어져 있었으며

군 또한 일부는 북부로 일부는 마지노 방어선과 남부를 향하는 등 우왕좌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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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트 철수 작전 이후 덩케르트의 모습. 영국군은 대부분의 물자를 유기한 채 간신히 병력들만을 본토로 옮길 수 있었다]

 

약 33만여명의 영국 프랑스 연합군은 북부 프랑스 덩케르트 지역에 고립된다. 만약 이들을 완벽하게 포위해 섬멸한다면

향후 영국 본토 침공도 노릴 수 있는 중대한 기회였다. 그러나 육군 원수 룬트슈테트를 비롯한 독일 군부에 의해 5월 23일 정지 명령이 떨어진다

독일 육군 최고 사령관 발터 폰 브라우히치는 덩케르트 지역에의 공격을 주장했으나

너무나 빠른 진격 속도에 한편으로 두려움을 갖고 있던 히틀러는 머뭇대다 결국 진격 정지 명령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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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트바페(독일 공군) 사령관 헤르만 괴링]

 

독일 공군 사령관 헤르만 괴링은 루프트바페가 도달하면 덩케르트를 쓸어버릴 수 있다며 히틀러에게 자신했고

독일 공군이 도달하는 이 3일의 시간은 연합군에겐 매우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영국은 군선은 물론 어선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선박을

덩케르트 해안으로 보내 33만명의 연합군을 무사히 철수시킨다. 이후 독일군이 덩케르트에 입성하였을 때는 텅 빈 도시와

버려진 군수 물자만이 가득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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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독일군은 프랑스 내륙에서 농성하는 연합군에 대한 공세를 계속했고

프랑스는 마침내 6월 25일 항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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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에펠탑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히틀러]

 

단 45일만에 프랑스를 점령하며 세계를 놀라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