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1년 12월 10일자 B6면에 우석대학교 교양학부 ‘김두규교수의 국운풍수’란에 물길이 감싸는 환포(環抱)의 땅이 좋은 곳이라고 하였고 서경대학교 지종학교수는 장기면(현 공주시)은 강(금강)의 환포는 좋지만 물이 곧게 빠지는 결함이 있다(2011년 지종학 지음, 청와대입지의 재조명 226쪽)고 기술하였는바, 환포(環抱)를 만포(灣抱)로 표기하여야 옳다.
청나라 구봉(九峰) 조정동(趙廷棟)이 지은 「지리오결(地理五訣)」권1 간대지법(看大地法) 및 동3권 인기형괴혈법(認奇形怪穴法)에는 청룡 백호가 겹겹이 감싼 것을 환포(용사호사중중환포 龍砂虎砂重重 環抱,용호사환포 龍虎砂 環抱)라 하고 물이 여러 골짜기에서 나와 안산(案山)앞으로 활처럼 굽이쳐 감싸 돌아 흐르는 것을 만포<외산외수 층층호위전안면궁 만포 外山外水 層層護衛前案眠弓 灣抱, 혈전수 만포穴前水 灣抱, 唐나라 소문관학사(昭文館學士) 응천(應天) 복칙외(卜則巍)가 지은 「설심부(雪心賦)」2편 龍虎論>라 하였다. 따라서 물이 감싸 환포한다.
서거정(徐居正)의 영천군 제영(題詠)에 ‘뜰을 두르고 언덕을 감싸 도는 조그만 시내에(요체만환소소계繞砌灣環小小溪) 만줄기 푸른 대나무 가지도 나지막해라’의 구절에 언덕을 감싸도는 만환(彎環)이 나온다(「신증동국여지승람」영천군 제영조).
위와 같은 문헌근거에 의거 풍수용어 물이 굽이굽이(灣) 감싸(抱) 흐르는 만포를 산이 겹겹이 옥고리처럼(環) 감싼다(抱)는 환포로 구별도 하지 못하고 역겨울 정도로 잘못 표기함으로써 풍수학인 및 일반 독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졸필(拙筆)을 들었다.
이 참에 사족 하나를 달자. 대문은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고 왕릉의 신문(神門)은 왕의 영혼이 드나든다는 상징적 문이므로 신문에서 정자각까지 박석(薄石)을 깔은 길을 영혼이 거니는 신도(神道,「국조오례의」吉禮 拜陵儀조, 「정조건릉산릉도감의궤」에는 香御路라함, 명 13릉에서는 신로라고 함)와 임금이 다니는 어도(御道)로 구분 하는데 이를 임금이 능행차 때 참배하는 도로라는 뜻의 참도(參道)라고 일부에서 부르는 것(2009년 국립문화재연구소「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상지영서대학교 이창환 교수 왕릉의 입지편 54쪽외 4개 처,「한국민속 종합조사보고서」묘지풍수 편 47쪽에 최창조 교수는 참도를 正路와 步道로 구분)은 문헌에도 없는 잘못된 용어인데 신도와 어도를 참도로, 정로(正路)와 보도(步道)를 참도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표기이다. 종묘에서는 영혼이 북신문을 거쳐 남신문으로 들어와서 신로로 따라 걸어서 위패에 안주하는 상징성을 갖추고 있음을 첨언한다.
왕릉의 석상(石床)은 혼유석<魂遊石, 정조12년(1788) 예조참의 유의양(柳義養)이 지은 「춘관통고(春官通考)」길례(吉禮) 능침(陵寢)조>이라고도 부르는데 임금의 혼령이 현궁<玄宮, 봉분의 모양은 집을 본뜬 것이라고 공자(孔子)와 순자(荀子)가 말하였다(封者厦屋者, 壙壟其貌象室屋也, 「孔子家語」권9 終記解편, 「荀子」禮論편)>에서 나와 장명등(長明燈)에 불을 환하게 밝혀 놓은 상태에서 석상(어좌)에 앉아 문무백관(장명등 좌우에 문무관석 배열)과 보이지 않는 영원의 세계에서 정사를 논의하는 영혼의 숨결이 들리는 듯 한 상징성을 표현한 것(살아서는 왕궁, 죽어서는 현궁이라 함)을 전 서울대 지리학과 최창조 교수는 왕릉의 ‘상석(床石)은 능 제례 때마다 제수(祭需)를 진설(陳設)하는(실제로는 침전인 정자각에 진설) 제상(祭床)의 용도로 쓰인다’(1989년 문화재관리국,「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묘지 풍수 편 30쪽)는 것도 잘못된 표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