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일게이들아..

 이때까지 일베에서는 뻘글이나 댓글만 달았었는데

 추석이라 시간이 생겨서 첫번째로 정보글을 쓰려고 한다.

 부족한 정보글이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면 좋겠어..

 

1. 서론

 

 

중국은 최근 빠른 경제 성장과 더불어, 자국의 국방력 증가에도 매우 열을 올리고 있어.

2004년에는 2000억 위안, (전년 대비 +11%)

2005년에는 2400억 위안, (+ 12.6%)

2006년에는 2800억 위안, (+14.7%)

2007년에는 3500억 위안 (+17.8%)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2년에는 무려 국방비에 6600억 위안을 쏟아붇고 있어.

 

 표를 보면 알겠지만

씨발 아주 마오쩌둥 모친 부친 전부 출타해도 모자랄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국방비를 증액시키고 있어

 

게다가 위 표처럼 이대로 가면 2020년대 후반~ 204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 국방예산을 추월한다는 예측까지 있으니

정말 엄청난 속도로 국방비를 증액시키는건 분명해.

 

그리고, 당연히 중국이 보유한 탄도미사일도 이 국방비 증가 추세를 따라서 그 수가 증가하고 더욱 발전할거야.

그리고 중국의 미사일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주변국의 분쟁국이나, 중국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내에 있는 국가들은

중국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게 될거야. 그래서 앞으로 중국의 탄도미사일은 세계 안보에 축이라면 축, 걸림돌이라면 걸림돌이 될 거야.

그래서 오늘 중국의 탄도미사일과 개발 역사에 대해 1~2편으로 나눠서 글을 써보려고 해.

서론이 좀 길었지?

 

2. 1950년대 이후 중국의 탄도미사일의 개발 역사

 

1950년대의 중국의 탄도미사일 개발 역사는 간단해.

쉽게 말해서 소련 등쳐먹으면서 탄도미사일 기술을 쌓은게 바로 중국의 탄도미사일 개발 역사야.

그리고 지금 이 개발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해.

 

세계사 시간때 졸지 않은 게이라면

1949년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나고

모택동개씨발새끼가 이끄는 공산당 정권이 중국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꺼야.

 

그런데 이 중국은 한국 전쟁 이후로 미국과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던 상태였어.

미국은 중국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을 암시해왔고, 괌에 핵폭탄 나를수 있는 폭격기인 B-29를 배치하는 등

미국이 슬슬 중국에 대한 견제를 하고 있던 시기가 바로 1950년대였지.

 

그래서 모택동개씨발새끼는 미국의 견제에 대항할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핵 개발에 박차를 가했어.

그런데, 일단 핵을 개발하려고 하면 관련된 장비가 있어야하지 않겠노?

그리하여 모택동개씨발새끼는 전삼강이라고 하는 핵물리학자에게 돈을 쥐어주고 핵 장비를 구매하도록 시켰어.

 

 

그리고 전삼강은 이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핵 장비를 구매해서 중국으로 가지고 와.

이레느 졸리오 퀴리.

 

ㅇㅇ 맞아. 마리 퀴리의 장녀인

 '이레느 졸리오 퀴리'와 남편 '프레데리크 졸리오 퀴리'가 전삼강이 핵 연구 장비를 사는데 큰 도움을 줬어.

 퀴리 집안의 흑역사盧?

 

쨋든 이렇게 해서 핵 장비를 갖춘 중국은 핵 개발의 타당성과 실용성 등을 검토하여

1956년 4월 모택동은 "중국은 핵무기가 필요하다! " 라고 선언하게 되고

한달 뒤 '국방부 제 5 연구원' 이라는 연구실을 설치해서 핵과 탄도미사일 연구를 시작해.

 

그리하여 베이징 근교에 소련이 제공한 연구용 중수로 건설이 시작되었고

1956년 9월에는 역시 소련이 제공해서 2기의 소련 R-1 미사일을 중국이 구매하게 되었고

그리고 1957년 10월에는 또 소련이 원자탄 샘플 2기와 R-2 미사일 과 기술 데이터를 중국에 고스란히 넘겨주고

 R-12의 비행시험이 끝나는대로 설계도까지 고스란히 넘기겠다고 약속해.

 

소련 호구남 ㅍㅌㅊ?

 

그런데 이렇게 친해보였던 소련과 중국사이의 외교도

1958년 이후로는 갑자기 사이가 안좋아지기 시작했어.

 

 

 

 

 

(모택동개씨발놈과 흐루쇼프)

 

 

 

 

당시 소련의 당수였던 흐루쇼프는 모택동을 슬슬 경계하기 시작했고

흐루쇼프가 "핵 전쟁에서는 승자가 있을수 없다" 라고 하면서 중국의 핵개발에 대해 간접적으로 반감을 드러내자

모택동은 "어떠한 핵 전쟁에서도 중국 인구의 반은 살아남을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끝은 아니다! " 라고 대답해 명언을 남겼지.

 

소련은 중국에 대한 핵 무기 기술 전수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1959년 원자탄 관련 기술을 더이상 제공할수 없다고 통보를 보내.

그렇게 해서 중국 내에 있던 1343명의 소련 기술자들이 모두 소련으로 철수하게 되어 버려.

 

 

하지만 소련이 철수했다고 해서 중국의 미사일 개발이 중단된건 아니였어.

소련이 떠나기전까지 소련이 몇년간 전수해줬던 기술이 중국의 미사일 개발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거든.

 

 

결국 소련이 김머중처럼 퍼주고 퍼주다가 지들 스스로 '더이상 못퍼주겠소! ' 라고 했지만 결론적으로 중국만 이득을 본 셈이지 ㅋ

 

쨌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중국이 어떻게 소련의 기술을 쪽쪽 빨아먹었는지를 설명했지만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중국이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미사일 기술에 대한 이야기야.

 

 

 

 

 

 

3. 1980년대 전 중국의 탄도 미사일 개발 역사

 

 

(1) DF-1, DF-2, DF-2A

 

 

1958년부터 1964년까지 중국은 원자폭탄을 개발하면서

소련에게 받았던 R-2 미사일의 후속 미사일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

그리고 이 미사일이 핵폭탄을 운반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지.

이 후속 미사일을DF-1이라고 칭하고 최대 탑재중량은 1500kg에다가 최대사거리 2000km를 목표로 삼고 개발했지.

그러나 DF-1을 개발하는 도중, 소련이 관련 기술 이전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기술 이전을 거부해 버려.

그렇게 해서 DF-1 개발사업은 계속해서 개발이 지연되지.

 

결국 1960년 중국과 소련사이의 관계가 더더욱 악화되자

중국은 지연되고 있는 DF-1보다 더 빨리 개발할수 있는 탄도탄을 급하게 요구했어.

그렇게 해서 개발을 시작한게 DF-2 인데,

 

 

DF-2는 최대탑재중량은 1500kg에다가 최대사거리가 1200km이어서

성능과 기술부분에서는 DF-1보다 떨어진 모델이었지.

 일본의 미군기지를 염두에 두고 만든 미사일이야.

 

 

df2beiji.jpg

박물관에 전시된 DF-2의 사진.

 

 

뭐 그래서 중국은 DF-2를 손쉽게 개발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개발을 시작했는데

막상 개발을 진행하다 보니 DF-2의 개발도 그렇게 만만한게 아닌거야.

 

결국 DF-2의 비행시험이 한 번 실패한 후, 대대적인 설계 변경을 통해 DF-2의 최대사거리는 1050km로 줄어들게 되었지 ㅋㅋ

그래서 사거리가 조루가 되어버린 DF-2를 보완하기 위해 중국은 DF-2A의 개발을 시작했어.

 

게다가 때마침 중국은 무거웠던 핵장치의 경량화에 성공하였고

DF-2A의 개발이 완료되자 DF-2A에다가 핵탄두를 얹어서 비행시험과 폭발시험에 성공하게 되.

 

중국은 '제 2 포병'이라는 독립적인 미사일부대를 창설하고 거기다가 DF-2A를 배치하면서

중국은 핵미사일 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되지.

 

모택동 개씨발놈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졌노?

 

 

지금 배치되어있는 DF-2는 없어. 모두 퇴역

이게 DF-2A의 사진이야. 중국 최초로 배치된 핵미사일.

 

(2) DF-3

 

 

 

 

DF-3은, 사실 다른게 아니라

DF-1의 개발이 지연되자, 아예 개발목표를 상향 조정해 사거리를 2500km 와 탑재중량을 2000kg으로 바꾸고

이름을 기존의 DF-1 에서 DF-3으로 바꾼거야.

 

결국 DF-1과 달리 DF-3는 개발이 매우 성공적으로 끝나서 역시 제2포병에 배치되었지.

DF-3은 필리핀의 미군기지를 염두에 두고 개발한 미사일이야.

요즘 업그레이드된 DF-3는 사거리가 개선되어 사거리 2800km를 찍었고, 이름은 DF-3A

 

현재 DF-3A가 많아야 16대 정도로 추정하고 있어.

DF-3의 모습. DF-2와 비슷하게 생겼지?

 

(3) DF-4

 

 

 

DF-4는 원래 괌의 미군기지를 염두에 두고 4000km대 사거리를 목표로 하고 개발을 했지.

원래 DF-3과 같은 탄두를 사용했지만, 사거리가 늘어난 만큼 더 무거운 탄두가 필요함을 깨닫고

탄두부터 새로 만들어서 개발을 시작했지.

그런데 이때 소련과 중국사이에 국경분쟁이 발생해.

 

중국이 먼저 선빵을 날려서 소련군 58명이 노짱을 따라가버리자

소련이 이에대한 보복으로 우수리에 있는 중국군을 공격하여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가 나왔어.

이로 인해 중-소 관계가 매우 악화되어 버렸지.

(실제로 이때 소련이 중국에 대한 핵공격을 고려한적도 있다고 하네.)

 

중국은 이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서 소련을 견제할 필요성이 생기자

DF-4를 모스크바를 염두에 두고 사거리를 4500km로 상향 조정하면서

자체 길이를 45cm 증가시키는 등 다시한번 대대적인 설계 변경을 거치지.

 

하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이 더 급해진 중국은 DF-4보다 DF-5의 개발을 우선시하면서

DF-4는 예상보다 늦게 배치되.

그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DF-4도 성공적으로 제2포병에 배치되지.

배치시 사거리는 4750km로 당초 예상을 뛰어넘었어.

 

 

현재 DF-4는 많아야 12기정도 배치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자세한 숫자는 기밀.

DF-4의 사진이야.

 

 

(4) DF-5

 

 

 

 

DF-5는, ICBM, 즉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개발되었어.

사거리가 1만 2000km로,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수 있도록 개발되었지.

이 미사일은 중-소 관계가 악화되자 1980년 최대사거리 시험이 끝나자 마자 제2포병에 배치해.

어지간히도 급했나봐 ㅋ

 

 

그리고 1986년 '우주산업부' 와 제2포병대는 DF-5를 업그레이드하기로 계약했고,

사거리는 +1000km, 탑재중량은 +200kg 으로 업그레이드에 성공해 DF-5A라고 이름붙였지.

 

 

현재까지 DF-5는 퇴역하고 , DF-5A는 약 20기 배치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자세한 숫자는 역시 기밀.

DF-5의 사진.

우리가 DF-1, DF-2(A), DF-3, DF-4,DF-5만 딱 놔두고 본다면

중국의 탄도미사일 개발이 상당히 조직적이고 깊이 생각한 결과처럼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최고지도부는 미사일만 만들라고 지시만 했지

구체적인 미사일 운용 교리 같은건 정하지도 않고 그냥 미사일을 만들기만 한거야 ㅋㅋ

최고지도부나 연구소나 이 돌대가리새끼들은 1980년대까지 미사일 운용 교리에는 관심이 없었던것으로 보여.

 

그래서 중국은 핵 전쟁 시나리오같은건 만들지도 않았고

핵미사일을 외교에 써먹지도 않았고

별다른 배치계획도 만들지 않았어 ㅋㅋㅋㅋㅋ 병신들

 

 

그리고 이 DF-1부터 DF-5까진 모두 액체로켓 미사일이었고

발사 준비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어.

중국도 나름 발사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리 줄여도 최대 2시간에서 최대 5시간까지 준비해야 했지.

(나로호 발사하는거만 봐도 액체로켓은 발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걸 알 수 있었지?)

 

 

게다가 중국은 미사일 조기경보시스템따윈 없었기 때문에

적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일단 처맞고 몇시간 뒤에' 미사일을 발사해야 했어.

.... 그리고 이게 1980년대 까지야.

 지만 1980년대 이후 부터는 중국의 전략도 바뀌기 시작했어.

 

 

 

 

 

자세한 이야기는 2편에서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