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젊은 좌빨 문예인이었던 표도르는 한 정치 모임에서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하는 왕정주의를 반대하는 내용의 문서를 낭독하다가 적발이 되어 사형(총살형)을 선고받는다.
당시 28세였던 그는 동료 20명과 함께 세묘노프 형장에 끌려가 사형수의 옷으로 갈아입고 사형선고를 들어야 했다.
시간이 다가올 수록 점점 초조해지자 남은 시간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기 위해 하늘을 보기도 하고 동료들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공병학교 시절과 지병이었던 간질발작, 부모의 암살, 사회주의 운동으로의 열망 등 28년 자기가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너무나 불행하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건 어떻게 할 수도 없이 명확했다. 죽음 앞에서 어떠한 희망도 없었고 보이는 것은 집행병들의 제식과 총검들뿐이었다.
“이 세상에서 숨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그 중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데, 2분은 삶을 되돌아보는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는데 쓰고 싶다” (백치 중에서, 그는 이 문장에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 것 같다)
처형 1분 전 초조한 가슴은 뒤척이고 눈은 질끈 잠겨있다. 그때 멀리서 황제의 칙사가 달려와 흰 수건을 흔들며 기적을 알린다.
특별사면이었다. 관대의 황제의 명으로 사형에서 4년의 시베리아 유형 생활과 4년의 병사생활을 선고한다는 내용이었다.
훗날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렇게 회상한다.
"강도에 의해 죽게 될 사람, 이를테면 밤에 숲속에서 그의 목이 잘리게 될 사람도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형의 경우, 마지막 희망은 사라지고 명확성만이 남는다. 명확한 선고가 있고 도망칠 수 없다는 확신으로 온통 두렵기만 한 고통이 깃든다. 이보다 더 큰 고통이란 세상에 없다. 미치지 않고 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이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이처럼 상상할 수 없고 아주 쓸모가 없는 굴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형 선고가 낭독되고 이 고통을 맛보게 한 뒤 '자, 너는 사면되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 그렇게 당해본 자는 아마 알 것이다. 이러한 고통, 이러한 공포에 대해서 그리스도는 말했다. '인간을 그렇게 취급한다는 것은 위법이다'라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사건을 재탄생의 경험이라 여기게 된다. 죽음 문턱을 맛본 이후에 다시 삶에 던져진 것이다.
촉망받는 28세의 청년문인이 8년 동안은 어떠한 개인적 직업활동은 할 수 없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노??(거기다 옴스크의 감옥에서는 성서 외엔 일절 책을 읽을 수 없었으니 젊은 문예작가로서 리스크가 상당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또 이후의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죄와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백치, 악령 등 불멸의 작품들을 써내어 러시아 민족사의 영혼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유형생활 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공산주의자에서 슬라브색이 깊은 우파 성향을 보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어떤 위대한 과학자보다도, 심지어는 가우스보다도 더 많은 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아인슈타인
"도스토예프스키는 내가 유일하게 무엇인가를 배운 단 한 명의 심리학자다. 그의 작품을 만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행운 중 하나다." 니체
"도스토예프스키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러시아 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니콜라이 베르자예프
"그는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자리를 차지한다. [카마라조프 씨네 형제들]은 지금까지 씌어진 가장 장엄함 소설이고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세계 문학사의 압권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죽음의 문턱에 이르고, 다시 삶의 욕구를 얻게 되면 사람은 기적적인 극복의지와 삶에 대한 개척능력을 얻게 되는 거 같지 않노??
아까 하사관 자살 사진 일베간 것도 그렇고 죽고 싶다는 글들 보니 너무 안타깝다.
일게이들도.. 대다수 똑똑하고 잠재력있는 사람들인데, 죽느니 그 각오로 차라리 노력해서 자기 앞에 놓인 환경을 바꾸던가, 세상에 업적을 남기던가 했으면 좋겠다.
3줄요약
1. 좌빨짓하다가 걸려서 총살형 받음
2. 총알 먹기 1분전에 살음
3. 이후 산업화하고 불굴의 작품들을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