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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ㅆㅂ 남자라면 화력이지' 라는 명언을 남기고 韓민족을 화력덕후로 만든 선지자 고 최무선 장군...)




韓민족을 화력덕후의 길로 인도하신 선지자 고 최무선 장군의 화력사랑은 그의 아들 최해산에게 이어지고....

최해산이 만든 화포를 보자 마자 뿅가버린 King 세종은 그를 군기감의 책임자로 임명하고 韓민족을 포덕후로 인도하시니.....



는 개소리 뻘글임ㅋ






국x성 게이가 조선 화포의 자세한 사항을 알고싶다길래 

명나라 글 쓰다가 머리아팠는데 올타쿠나 하고 달려들어서 써봤어ㅇㅇ


참고로 이 글은 세종 10~26년 군기감에서 개발된 총통에 관한 정보로 작성했어ㅋ


왜 지금 포방부가 화력을 사랑했는가를 조상들에게서 찾아보자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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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주력총통은 천,지,현,황자총통이야.

특히 조선이 이러한 화포로 대규모 전면전을 벌인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에서는 특히 현,황자총통이 자주 운용되었어ㅇㅇ


사실 화력덕후인 조선군이지만 이러한 총통부대를 따로 편제해 대규모로 운용하지는 않았어

내가 쓴 조선 전기 조선군을 보면 기본 전술단위인 '여(旅)'에서 총통수를 꼭 운용하도록

경국대전에 명시하고 있었지만 세조 이후로 조선은 세계에서 유래없는 평화기에 들어가면서

군사력 증강을 하지 않았지.


하지만 군사력 증강을 하지 않았더라도 태종서부터 선조까지 약 200년간 

조선은 화포를 최대 3차례 계량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어ㅇㅇ


참고로 명종때 이르러 조선의 화포는 서양의 대포와 여러모로 비슷한 성능까지

끌어올리게 되는 기염을 토하게 되ㅇㅇ


물론 몇몇 부분에서 서양이 조선의 화포를 압도하지만 

조선의 화포만의 장점을 무시할수는 없었지ㅇㅇ

하지만 이 글에서는 서양의 대포와 비교하지는 않을거야 

그러면 너무 글이 길어지기 때문에 비교하는건 나중에 아주 자세하게 설명할께!











당시 화포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이 화포 주조에 들어가는 재료로 인해 서양과 동양의 화포 차이가

확연이 나는데 일단 조선의 화포를 알아보기전에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기록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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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08권 27년 6월 15일 (정사) 002 / 화포를 만들기 위해 깨진 구리그릇의 수량을 파악하게 하다


여러 도의 감사에게 유시하기를,

 

“화포(火砲)는 변경을 방어하고 적을 막는 무기인데, 본국에서 구리쇠가 나지 아니하여 이로 말미암아 화포가 많지 못하다. 이제 더 만들고자 하니, 도내 각 고을에 깨어진 구리그릇과 폐하여 없어진 절의 구리그릇을 빠짐없이 수량을 헤아려서 아뢰라.”

 

하였다.

 


세조 30권 9년 5월 29일 (정사) 001 / 군기감에 도둑이 들어 총통 6백여 자루를 훔쳐가자 부장을 거느리고 유동장의 집을 수색케 하다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황신(黃眘)이 아뢰기를,


 “어젯밤에 도적이 본감(本監)의 총통(銃筒) 6백여 자루[柄]를 훔쳐 갔으니, 청컨대 이를 찾게 하소서.”


 하니, 부장(部將)에게 명하여 군사(軍士)를 거느리고, 유동장(鍮銅匠)6134) 의 집을 수색하게 하였다.

 유동장(鍮銅匠) : 놋그릇과 구리 그릇을 만드는 장인(匠人).

 


선조 64권 28년 6월 4일 (을사) 002 / 군기시가 화포의 주조에 대한 대책을 건의하다







군기시가 아뢰었다.

 

“각종 화포를 주조할 일을 이미 계하하셨습니다. 종루(鍾樓)의 깨진 종이 반쯤 흙 속에 묻혀 있어 최근 인력을 많이 들여 캐내었더니, 5분의 2쯤은 녹아 떨어져 나가 간 곳이 없고 그 나머지는 대략 2만 근이 못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불로 달구어 분쇄해서 실어들여 쓰려고 하는데, 중기(重器)를 부수어 다른 물건으로 주조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물의가 있으니, 이 또한 일리가 없지 않습니다.

 

회암사(檜菴寺) 옛터에 큰 종이 있는데 또한 불에 탔으나 전체는 건재하며 그 무게는 이 종보다 갑절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져다 쓰면 별로 구애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훈련 도감도 조총을 주조하는데 주철이 부족하니, 그 군인들과 힘을 합해 실어다가 화포에 소용될 것을 제외하고 수를 헤아려 도감에 나누어 쓰면 참으로 편리하겠습니다.

 

대저 경기의 구리쇠는 병화에 산실되어 거의 다 사라진 뒤라서, 뒷날 많이 주조하여 군국(軍國)의 용도로 쓰려고 해도 구리쇠를 구할 길이 없을 것이니, 정말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경기도내 불탄 각 사찰에 버려진 종이 더러 있는데, 만일 관에서 거두어 관리하지 않으면 날로 사라져 없어질 것입니다. 경기 감사에게 행이(行移)하여 속히 조사해 숫자를 알아내어 계문함으로써 뒷날의 용도에 대비하게 하고, 종루에서 파낸 유종(鍮鍾)은 호조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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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구리와 주석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구리를 모아서 화포로 만들려고 하는 기록이야

이런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전반에 걸쳐 계속 나와


하지만 동양에는 대규모 구리 산지가 없어 그 결과 조선 조정은 무쇠로 만들려는 시도도 해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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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감 제조(軍器監提調) 이천(李蕆)이 아뢰기를,


“지금 전지(傳旨)를 받자왔나이다. 동랍(銅鑞)은 우리 나라에서는 나지 아니하옵기로 무쇠[水鐵]로서 화포(火砲)를 주조(鑄造)하려고 시험하여, 신이 심력을 다하여 계획하여 보았사오니, 무쇠의 성질이 강하면서 굳지 못하므로 불리기[鍊鑄]가 용이하지 아니합니다. 신이 들으매, 북방의 야인(野人)들이 무쇠 농기(農器)로써 연철(軟鐵)이 되게 해 가지고 군기(軍器)를 만드는 자가 많다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 기술을 알지 못하오니, 마땅히 예조에 명하여 우리 나라에 오는 야인에게 물어 보게 하시고, 만약 실지대로 고하지 아니하면 경성(慶城) 사람으로 야인에게서 배운 자도 많사오니, 마땅히 재주 좋은 자를 역마(驛馬)로 불러다가 전습(傳習)시키는 것이 좋겠나이다.”



하니, 예조에 내렸다. 


-세종 26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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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노력에 의해 현존하는 화포중 대부분이 철제화포로 전해 내려오고 이어


사실 구리가 희귀해서 가격이 올라 제조하는데 힘이 들었지만

서양 또한 완전한 철제화포를 만드는건 19세기 중후반에 들어서면서야ㅇㅇ


청동으로 화포를 만들면 인장강도가 쌔고 열을 받은후에 돌아오는 복원력이 우수했기 때문이지ㅇㅇ





이처럼 조선은 당시 세계적인 추세인 화포개발에 매진하였어ㅇㅇ


그 결과가 바로 이 글에서 설명할 총통류이지

그럼 한번 살펴보도록 할께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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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천자총통)







천자총통은 조선화포 중 가장 큰 크기의 주력대포 중 하나였어

문헌상으로는 세종7년인 1425년에 전라감사가 천자철탄자 1140개를 

새로 주조하여 바쳤다는 기록이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사실 태종때

 지자,현자총통이 이미 사용된것으로 보면 세종 이전부터 사용되었지


현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제원이 일정치 않았나봐ㅇㅇ

화포식언해에 따르면 중약선은 1조(條)를 쓰고 한번 발사할 때 

화약 30냥(1.1kg)을 사용하며 화약 폭발시 발사물에 작용하는 폭발력을

크게하는 격목의 길이는 주척으로 8촌(18cm)야.


발사물로는 두 해 묵은 나무로 만든 대장군전을 쓰는데 그 무게가 56근 3냥

(약 33.7~8kg)이며 사정거리는 900~1200보(약 960m~1.1km)에 이르렀어.


현존하는 천자총통으로 제원을 가늠할수 있는데 

명종 10년인 1555년 제작된 가정을묘명천자총통은 전체길이가 1.31m

통길이 1.16m, 포구지름 12.8cm, 무게가 296kg야


주로 육전보다는 해전에서 많이 쓰였으며 명종때 개발된 판옥선에 탑재되었어




몇년전 육군사관학교에서 천자총통을 제작해서 실험했는데

대장군전을 발사했더니 400m를 날라가 화강암 80cm를 뚫었다고 알려져있어

어떤걸 전제하에 실험했는지를 몰라 파괴력 부분은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盧;

확실한건 화약의 양을 기록과 마찬가지로 넣지 않고 1/2~1/3 줄여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현재 화약과 당시 화약의 차이로 인해 그리 쓴거 같아보여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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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총통은 조선군 대형화포 중에서 2번째로 큰 총통이야

조선 태종때 제작되어 사용한 기록이 있어

세종 27년인 1445년에 이르러 세종의 화약병기 계량정책에 따라

종래의 형태를 개량,발전하였어


발사체로는 큰 화살(箭)이나 탄환을 사용했어

신기비결 지자총통조에 의하면 한번포격에 화약20냥

중약선 5촌,중연자 60매를 구비해야된다 명시했고

화포식언에는 중약선 1조,화약 20냥,토격 3촌,조란환 200개나 

장군전을 쏠때에는 격목 6촌으로 장군전을 발사하면 800보(640m)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어.


장군전의 무게는 29근 8푼(17.88kg)으로 발사할때 화약의 양은 20냥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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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총통은 3번째로 큰 화포로서

조선 태종때 개발되었어

신기비결 현자총조에 의하면 한번의 포격에 화약4냥 중약선 5촌 소연자 30매

화포식언해 현자총통조에 의하면 중약선 반조,화약4냥 격목 5촌으로 

차대전을 발사하면 800보에 이르고 탄환을 쓸 때에는 토격은 2촌을 써서

철환 100개를 발사하며 차중전은 화약3냥을 쓰고 그 거리는 1,500보(1.2km)에 이르러


현재 남아있는 기유남만철주조중 190현자 약입4냥은

총길이 95.9cm 통길이 89.9cm 그리고 입지름 15.5cm로 죽절은 통신에만 해놓고

약실에는 하지 않았고 손잡이가 통신에 하나, 통신과 약신을 연하여 하나있고

약실 후면에 선혈은 하나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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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 총통은 조선시대의 대형 총통류 중에서 천자,지자,현자 다음으로 큰 총통이야

세종 26년 군기감에서 화포를 시험하였는데 이때 황자총통과 천자총통 둘다 사격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이는 황자총통이 적어도 태종때 최해산이 총통을 개발 할 때에 

이미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내용이지ㅇㅇ


그런데 그 성능은 매우 낮아서 겨우 오백보(약 400m)를 넘지 못했다고 해

그러나 세종 27년에 있었던 화기에 대한 전반적인 계량을 통해 그 사거리가

800보(640m) 이상을 넘게 되었고 한꺼번에 화살 4개를 동시에 발사

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향상되었어.


결국 황자총통의 일반적인 형태와 제원은 1445년에 완성되었다 라고 볼수 있지ㅇㅇ





이때 황자총통은 국조오례의서례 병기도감조에 있는 삼총통과 그 형태와 크기가 매우 비슷했을거로 파악되.


기본적인 구조는 화약을 넣은 약통,격목이나 토격이 삽입되는 격목통,

총신에 해당되는 부리, 총통을 운반하거나 설치하기 위한 부이가 있고,

약통 끝 부분에는 이총통과 삼총통에 있는 나무 손잡이를 끼우기 위한 모병이 있어


포신의 강도를 높여주기 위한 죽절과 손잡이인 거금이 있으며

동차에 탑재되어 운용하므로 포미는 손잡이 용의 막대기를 꽃는 구멍이 없고 막혀있어

피사체로는 피령전과 철환을 주로 사용했다고 전해져ㅇㅇ





발사방법은 먼저 총통내부를 소제한 후 약선혈에 화약선을 꽂는 다음 

포구로부터 화약을 넣은후 종이로 덮고 가볍게 다져.

탄환을 장전하고 이를 흙으로 덮은후 힘껏 다지거나 또는 격목을

내려보내 이를 힘껓 다진후 전(箭)을 장전해.

그리고 나서 화약선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 방식이야.


신기비결 황자총조에 의하면 탄환 1개를 발사할때 

화약3냥, 중약선 5촌,소연자 20매라 하였으며

화포식언해 황자총통조에는 중약선 반조(半條),화약 4냥

격목3촌으로 피령차중전을 발사하면 1100(880m)보에 이르고 

탄환을 쏠때에는 토격은 1촌5분을 써서 철환 40개를 발사한다고 나와있어.



이 황자총통은 일총통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1993년 4월 전남 여천시 신덕동 백도 부근 해저에서 발견하여 지금은 

국립 그곳박물관에 소장중인 가정양내료동명 현자총통과 형태와 제원이

비슷하기 때문에 명칭의 변경은 자료의 축적을 좀 더 해봐야 할거같아ㅇㅇ








이 4개의 총통이 조선 전기 주력 총통이야ㅇㅇ

조선의 화포는 수가 많고 방대하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 자세하게 쓰진 못하고

나중에 임진왜란 발발 직전의 삼국 군사력 비교편에서 자세하게 쓸께


재미있게 읽어줬으면 한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