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성동(金成東)ㆍ경민대학 관광경영과 교수 ] |  |
| 관광과 의식주 그리고 朴正熙 | | | | 관광의 기원은 인간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기에 여행을 통해 새로운 생활의 활력소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 일부 정치권을 비롯해 일부의 사람 등은 지나간 역사이며 현실이기도 했던 사실(事實)을 쟁론하며 배척하려고만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헐벗고 가난한 역사의 슬픔을 간직하며 살았던 지난 세월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더 더욱 한심한 것은 엄연한 과거의 역사까지도 이분법적인 접근 방법으로 코드화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좌초된 1950년대의 관광정책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구상에는 4명중 1명꼴로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으며, 2명중 1명은 절대적 빈곤(絶對的貧困)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절대적 빈곤국가로서 제3국의 도움 없이는 자력으로 살아갈 수 없는 형편이었고 설상가상 일제로부터 물러 받은 생산 시설은 남북 분단과 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6.25사변으로 인해 전국토가 초토화되는 큰 수난을 겪었다. 이러한 오욕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나라 관광산업은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게 되었다. 여행사인 조선여행사(1945)와 항공사인 대한민국항공사(1948)가 설립되었고, 외국항공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팬암사가 국내에 취항하는 등 외형적인 모습을 갖추어 갔다. 이후 교통부에 관광과(1954)도 설치되어 발전을 위한 기반을 다져 나갔다. 그러나 전후(戰後)의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민주당 정부의 무능력, 하루 평균 1,500회 이상의 학생데모로 정치·사회전반에 대혼란이 야기되자 국민들 저변에서는 생존권을 보호해줄 강력한 정부출현을 고대하게 되었다. 혹자는 朴대통령을 독재의 전형으로, 합법적인 정부를 무너뜨린 대통령으로 기억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외부적으로는 급박한 정치 안보 상황과 혼란스러운 내부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는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천연자원 하나 없고 인적자원이 한계에 이른 국가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 최상의 리더십은 바로 “국론을 일신할 수 있는 강력한 통제리더십”일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무시하고 한쪽 면만 보며 朴대통령을 평가 절하하는 일부의 자태는 한심할 뿐이다.
| | 기초를 다진 1960년대 관광정책 | |  | | <朴대통령이 야당의 반대 속에 추진한 경부고속도로가 1970년 7월 7일 개통됨으로써 ‘관광시대’가 개막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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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혁명 후 극도로 혼란했던 사회질서가 회복되고 朴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관광에 관한 최초의 법률이라고 할 수 있는 「관광사업진흥법(1961. 8.22)」이 제정·공포되었다. 즉 민간중심에서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외화획득의 지름길인 관광사업 육성의 초석을 다지게 되었다. 그 후에 이루어진 국제 관광공사, 대한항공공사 설립 등과 교통부의 관광과를 관광국으로 승격시킨 조치는 제도적 보완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외부적으로는 태평양지역관광협회(PATA: Pacific Area Travel Association, 1965) 제14차 연차총회를 개최하여 해외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여건조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고 야당과 일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朴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한·일국교정상화(1965)를 단행하여 일본의 자국민 해외여행자유화(1964)조치에 발맞추어 일본관광객을 받아들이는 등 우리나라 관광발전에 일대도약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관광호텔종사원 자격시험제도(1964)가 도입되어 서비스종사원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연공원법에 의해 지리산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1967)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60년대의 우리나라 관광정책은 朴대통령의 적극적인 지도력에 힘입어 활기를 띠면서 여건을 마련함과 동시에 기초를 다진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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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과 도약, 1970년대 관광정책 | |  | | <경주관광의 요람 보문단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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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관광정책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얻은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욱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경부고속도로의 개통(1971)으로 전국에 걸쳐있는 관광자원을 1일 생활권으로 앞당기는 효과를 보게 되었고 산재되어 있던 자원들을 개발하고 보전·발굴하는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朴대통령은 경제장관간담회(1975)에서 관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격상시키고 수출산업에 준하는 세제감면혜택과 금융·행정지원을 지시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였다. 뿐만 아니라 제도상으로도 종전의 관광사업진흥법을 폐지하고 관광기본법과 관광사업법으로 분리 제정·공포하였다. 이 시기에 외화획득을 위한 국제관광 진흥정책의 일환으로 국민관광을 활성화 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 또한 우리나라 관광사에 특이할 만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관광지 개발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이 있었다. 朴대통령 재임 중에 경주 보문단지(1973)와 제주 중문단지(1976)가 개발되었고,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1978년에 우리나라 관광 역사상 기념비적인 해외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하여 아시아에서 5번째 관광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관광수입 4억 달러라는 결실을 맺게 되어 관광입국으로서 기틀이 다져졌고 관광선진국으로 도약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갖춰졌다. 애석하게도 1979년 朴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변고로 인해 그 이후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관광발전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朴대통령의 경제·관광정책이 아시아게임(1986), 올림픽(1988), 해외여행자유화조치(1989), 월드컵(2002) 등의 대행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미래의 관광정책에 대한 제언 21세기의 관광산업은 성장잠재력이 매우 높은 유망산업으로서 각국은 외화획득과 고용창출을 위해 경쟁적으로 국가 전략산업의 일환으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우리와 인접한 국가들은 변화하는 관광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과감한 인적·시설상의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반해,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이벤트·전시용 투자라는 숫자 놀음에만 급급한 우리의 관광정책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나라의 관광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국토전체를 관광 그랜드 플랜화 시키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다양한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중복 및 과다투자로 이어져 효율성재고에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관광정책만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집중과 선택을 적절히 배분하며 통제해야 한다. 둘째, 관광자원의 역발상 정책을 펼쳐야 한다. 우리나라 관광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범정부차원에서 인접국인 일본, 중국 등의 관광자원까지 포괄하는 관광 상품을 개발, 중국과 일본을 찾는 외국관광객들을 우리나라로 유인할 수 있는 적극적인 홍보마케팅을 실시해야 한다. 나아가 관광 하드화 내지 소프트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있을 때만이 인접국에 비해 열악한 관광환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관광 질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중요한 덕목은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모든 조건을 갖추어 놓았다고 해도 한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 국민들은 지난 수년간 지켜보았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을 통해 朴대통령시대가 그래도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朴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향수를 읽는다. 그 향수는 훌륭한 리더십의 소유자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민족 생존을 책임질 지도자의 선택이 내년으로 다가 왔다. 기존의 지엽적이었던 선거문화를 온 국민의 지혜로 극복하고 새로운 국가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 朴대통령과 같은 지도자, 다시 한번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21세기 관광대국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지도자를 기대해본다. 필자약력 경기대대학원 호텔경영학과박사과정수료(관광학 박사) 경민대학 관광호텔학부 관광경영과 교수(현) 한국서비스산업학회 이사 세계합기도협회 자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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