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외적으로도 평론가들의 글을 동네 똥개마냥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기 바쁘다. 이런 동네북 취급을 받는 데 가장 큰 이유로는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용어들이 범람하고 있어서인데
이는 '비평용어'와 '일상어'의 차이 때문일거다.

나는 우선적으로 이 두 어휘간을 상하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둘 다 적재 적소에 위치되어야 할 하나의 도구로서 걍 다른 쓰임새 딱 그정도로 볼 뿐이다.
서로의 왕래가 드물어 낯선감에 일상어는 일상어대로, 비평용어는 비평용어대로 서로를 밀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바.

영게에서 그 왕래의 물꼬를 틀면 어떨까 싶어 이렇게 똥글 싸고, 글을 퍼왔다.
재밌게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글에 포함된 다른 낯선 것들이 또 다른 물꼬를 여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하루 되라 영게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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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진성이란 용어의 원래 의미는 외견상 사실적이거나 진실해 보이는 정도나 질을 의미한다. 이것은 고대인들이 이야기에 대해 요구했던 '그럴듯함', 혹은 '있음직함'이라는 개념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용어인데, 이것이 주요한 문학용어로 등장하게 된 것은 구조주의 문학이론가들에 이르러서다.

어떤 사건들의 연쇄, 혹은 그것을 통해 꾸며진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일련의 사건을 일관된 전체에 맞추면서 텍스트의 틈새를 채워 넣은 독자들의 능력에 의존하는데, 조나단 컬러는 이를 소쉬르 용어를 빌어와 서사적 능력(narrative competence)이라고 정의한다. 말하자면 어떤 관련 상황을 택하거나 구축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이 핍진성이란 환상은 비단 독자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관습에 의존하는 문화적 현상이다. 한 사회에서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른 사회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지거나 해석되지 않을 수 있으며, 또 같은 사회라 할지라도 시기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상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구조주의자들은 이 핍진성이라는 것을, 해당 작품보다 선행했던, 한 사회 내의 적합한 행동의 텍스트들에 의해서 누적적으로 확립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박진감 혹은 생생함이라는 용어로도 불려지는 이 핍진성은, 현실반영의 원리를 금과옥조처럼 견지하는 리얼리즘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문학성을 기법과 동일시하는 러시아형식주의자들에게서는 그리 높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형식주의 이론가인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문학작품이 어떤 외적 현실을 지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대상을 생소화(예술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미적 기능에 부수적인 효과의 하나로 간주하고 이를 동기부여(motivation)라고 부른다. 이 견해에 따르면 동기부여가 되어 있는 핍진성 있는 작품은 예술적인 생소화라는 미적 변용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높은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김경수)

[네이버 지식백과] 핍진성 [Verisimilitude]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1.30, 국학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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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영게에서 자주 까이는 일본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오글 거린다', '연기가 어색하다' 등의 낯설다는 인상이 주를 이룬다.
이게 거부감의 요인이 되는 이유가 바로 '핍진성'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해서 인데.

일본문화와 한국문화의 차이로 인한 핍진성의 정도가 달라 발생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서양영화의 경우는 넘쳐나는 헐리우드 영화에 자주 노출되다보니 익숙해져서 핍진성이 있다고 생각되는거고
일본영화는 접할 기회가 적다보니 핍진성이 부족하다 여겨지고, 이게 곧장 영화 몰입을 방해하게 되는거고...

뭐 그렇다고.
여자앞에서 아는척 하기 딱 좋음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