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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용씨는 IQ210의 천재로 

3살 반에 4개국어를 하고

6살에 미분방정식을 풀었다고 한다.


요즘 흔히 알려진 바에 의하면 (본인도 이렇게 주장)

8살에 NASA의 초청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핵물리학 학석박사를 따고

나사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다가 갑자기 천재라고 주목받는 삶이 싫다고 한국에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남들처럼 검정고시를 보고

일부러 눈에 안 띄려고 지방대인 충북대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튀는 놈을 받아주지 않는 한국 사회 때문에

15년동안 교수도 못 하고 강의만 하다가

요즘은 공기업에 취직해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세계에서 인정받은 엄청난 천재가 한국의 후진성 때문에 묻혔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곰곰히 따져보면 앞뒤가 안 맞는 부분 투성이이다.

우선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 


'그렇게 대단한 천재가 왜 지방대에 간 것인가'


천재로 알려져 있던 김웅용씨가 국내에 나타난건 당시에 엄청난 뉴스거리였고

신문에서는 김웅용씨의 대입 검정고시 성적까지 공개했었다. 



영어는 백점만점중 60점 수학은 백점만점중 64점 

2천 7백명중 석차는 2천등이 넘었다.


흔히 '일부러 지방대에 갔다' 라고 요즘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위 기사를 보면 부모들은 분명히 '울대에 보내겠다. 천재를 점수로 평가할 수는 없다' 라고 하고 있다.

즉 김웅용씨가 지방대에 간 건 일부러 갔다기보다는 성적이 안 나와서 갔다고 봐야 한다. 




학부수준 양자역학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핵물리학이란 게 얼마나 미친듯이 수학만 푸는건지 알 거다.

학부수준도 저정도인데 박사까지 따고 나사에서 근무했다면 고교수학 따위는 틀릴래야 틀릴수가 없다.

하지만 결과는 64점이었다.

마찬가지로 5살때 4개국어를 하던 천재가 미국에 7년 있으면서 박사를 따고 나사에서 일햇는데

고교 영어를 60점 맞았다는건 말이 안된다.  


즉 저 성적을 받았다는 건 '미국에서 핵물리학을 전공하고 나사에서 일했다' 라는 게 구라라는 뜻이 된다.

평범한 IQ 100의 사람이라도 미국에서 핵물리학 박사를 땄고 7년 거주했다면 저 성적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럼 미국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일단 최근 본인의 인터뷰를 보자.

여기에서는 8살때 미국에 가서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11살부터 16살까지 5년간 나사에서 '핵물리학 분야'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인터뷰에선 말이 또 다르다. 

매주 3일동안 서부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3일동안 동부 나사 연구소에서 일했다고 한다.

폐쇄된 연구소에서 일한건 9년이라고 한다.

나사에서는 강력한 무기를 개발 하고 우주탐사도 연구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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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인터뷰에서는 '궤도를 수정하는걸 주로 계산했다' 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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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터뷰에서 말이 안되는 건 하나 둘이 아니지만 

제일 큰 건  핵물리학이랑 궤도계산은 아무 관계도 없다는 거다. 

즉 김웅용씨 주장에 의하면 김웅용씨는 핵물리학 박사 학위가 있는 우수한 인재인데도 불구하고

나사에서는 단순계산용으로 그를 착취했다... 가 된다.


이 주장이 먹히려면 김웅용씨는 당시의 계산기를 한참 뛰어넘는 계산능력을 가지고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본인이 검정고시 망한걸 변명하면서 이걸 부인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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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1분만에 푸는 고등학교 수학문제를 푸는데 10여분씩 걸렸다고 한다. 





그럼 진실은 무엇인가?


사실 김웅용씨의 진실은 80년대 초에 이미 대대적으로 밝혀진 바 있다.

당시 재야성향 월간지인 뿌리깊은 나무에서 3개월간 대대적으로 수사해서 표지기사로 실었다.

동아일보에도 기사가 나서, 당시 분들이라면 대부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거다.

한마디로 미국 석박사, 나사 선임연구원 이건 그냥 뻥이고

김웅용씨는 한국에서 근 10년동안 집에서 갇혀 살았다.

(당시에 증거로 출입국기록, 동네사람 증언들까지 다 나왔다)


김웅용씨의 부모는 둘다 교수였고 (건국대 물리학과/이화여대 의대 교수) 

당시 이공계 육성정책을 펴던 원조각하 정권에서는 김웅용씨가 한국 과학계의 아이콘같은 존재였다.

즉 국가적 차원의 언론플레이를 한몸에 받는 상황이라

유학이 실패했음에도 김웅용씨의 부모는 계속 더 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짤 오른쪽 아래를 다시 자세히 보면

아버지가 다 자백했음. 

'아이의 정상발육과 교육을 위해 그동안 외국에 유학간것처럼 해두고 집에서 가르쳐 왔다'



3줄요약

-김웅용씨는 어릴때 천재였음

-하지만 미국박사, 나사이야기는 구라였다는게 이미 80년대 초에 뽀록난 바 있음.

-이걸로 모든 의문이 설명됨, 괜히 실패한 천재 이야기가 나온게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