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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이오시프 아이유


로엔연방을 이끌던 블라디미르 지아가 떠나자 그의 뒷자리는 야심찬 가수인 이오시프 아이유가 차지했다. 정치무대에 데뷔한 아이유는 과감하고 강력한 계획경제를 실시했는데, 그 예로 앨범판매정책들이 있다. 하지만 아이유의 첫번째 앨범은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거둘 뿐만 아니라, 로엔연방에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래도 첫번째 앨범이 나쁜 성과를 거뒀지만, 나중에는 실패한 정책이 도움이 되기도 했으며, 또 아이유는 이 실패한 정책을 발판으로 더 나은 앨범을 발매하여 성공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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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제작을 지켜보고 있는 이오시프 아이유











II. 대공황


소녀시대는 1차대전중에 참전함으로써 승전국 지위와 혜택을 얻을 수 있었고, 다른 팬들에게 엄청난 양의 앨범들을 판매해서 엄청난 부를 거머쥘수 있었다. 그로인해 앨범생산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소녀시대는 전성기를 이루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또 수많은 가수지망생들이 소녀시대와 같은 아이돌가수가 되기 위해 '소녀시대드림'이라는 이름으로 SM엔터테인먼트에 찾아왔다.


이러한 소녀시대를 보면서 다른사람들은 소녀시대의 다음곡이 대히트를 칠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 반대로 소녀시대의 다음곡은 대히트를 치지 못했고, 그들은 크게실망했다. 그 결과로 '검은 금요일'이라고 부르는 10월 31일에 소녀시대의 SM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최저점을 찍었고, 그로인해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대공황은 소녀시대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에게도 무시못할 피해를 입혔다. 또 '소녀시대드림'을 꿈꾸던 가수지망생들은 좌절했고, 소녀시대는 다시 암흑기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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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의 주가 최저점을 찍은 날, 10월31일 금요일








III. 원더걸스의 對 대공황 정책


원더걸스는 1차대전의 연합국의 주요국가로서 다른 연합국과 마찬가지로 승전국 지위와 헤택을 얻을 수 있었다. 원더걸스의 무적함대인 '텔미'함대는 전쟁중에 큰 활약을 거두었지만, 원더걸스는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전쟁비용을 지불해야했다. 하지만 원더걸스도 소녀시대와 마찬가지로 1차대전이후 승전국 혜택을 이용하여 안정적으로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원더걸스에도 소녀시대에서 시작된 '대공황'이라는 먹구름이 다가왔다.


세계최강국인 원더걸스도 대공황은 피하지 못했다. 원더걸스는 대공황의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또 막대한 양의 국가재정을 지출해야했다. 그 덕분에 원더걸스의 국가재정은 거의 바닥이 나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더걸스는 하나의 승부수를 띄우는데, 바로 과감하게 신곡을 발표하는 것이였다. 여기서 나온 신곡이 'So Hot'하고 'Nobody'였다. 이 두 곡은 다행스럽게도 빅히트를 쳤고, 원더걸스의 부족한 국가재정은 해결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원더걸스는 엄청난 실수를 하게된다. 바로 원더걸스가 미국에 진출함으로써 자국시장과 미국시장을 하나로 묶는 이른바 '블록경제'라고 부르는 계획인데, 이 계획은 처음에는 성공적으로 보였지만, 나중에 원더걸스에게 큰 부작용을 안고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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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의 신곡 So Hot (상), Nobody (하)









IV. 아돌프 티틀러의 출현


소녀시대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다비치 공화국에도 영향을 끼쳤다. 아니 정말로 심각하게 악영향을 끼쳤다.


다비치공화국은 1320억원이라는 막대한 배상금을 갚기위해, 화폐를 지나치게 많이 생산하였는데, 이로인해 '하이퍼 인플레이션'현상이 나타났고, 화폐가치는 휴짓조각이 되버렸다. 또 상점에서 앨범 하나를 사기위해 1조원을 가지고와야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 다비치 공화국은 이러한 암울한 경제상황에 직면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대공황의 여파까지 다비치 공화국에 미치게 됐으니, 대공황은 다비치 공화국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 사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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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인플레이션 현상으로 화폐는 휴짓조각이 되었다. 코어인들이 화폐를 가지고 놀고있는 모습이다.


다비치공화국의 암울한 상황에서 코어지방에서는 한 정당이 생겨난다. 바로 '국가의지주의 티아라당(NWTPㅡNationalwille T-ara Party)'이다. 그 티아라당의 대표는 '아돌프 티틀러(Adolf Titler)'였다. 티아라당은 초기에는 과격한 소수의 집단에 불구했지만, 아돌프 티틀러의 연설과 희대의 선전가인 광벨스의 언론플레이 덕분에 다비치 공화국 제1의 정당으로 성장하게 된다. 또 티틀러는 다비치공화국의 대통령인 강민경 폰 힌덴부르크를 설득하는데 성공하고, 이에따라 강민경은 티틀러를 공화국 수상으로 임명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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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티틀러 (좌), 학생시절의 강민경 폰 힌덴부르크 (우)


티틀러가 수상에 취임하고나서 얼마있지않아 강민경이 물러나게된다. 그의 빈자리는 티틀러가 차지하였는데 그로인해 티틀러는 대통령직과 수상직을 겸하는 '총통'이라는 자리에 올라서게된다. 총통이 되고난 뒤 티틀러는 다비치공화국을 해체시키고, 코어 제 3제국인 티아라 제국을 성립시킨다. 티아라 제국을 성립한 뒤 티틀러는 본격적으로 연설을 통해 티퀴들을 선동시켰다. 그리고 광벨스는 언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티아라의 모든 일상생활의 좋은부분만 티퀴들에게 보여주였고, 티퀴들은 티아라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보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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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의 천재. 요제프 광벨스


다음은 티틀러의 유명한 연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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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티틀러는 티퀴 한사람 한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이겨낼수 있다고 말했고, 또 국가슬로건을 '의지'로 정하여 모든 티퀴들이 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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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 티틀러! (Heil Titler!)"


티퀴들의 단결력이 높아지자, 티틀러는 본격적으로 사실상 전쟁준비를 시작한다. 앨범판매를 위해 수많은 앨범공장을 만들었고, 또 그 앨범들을 빠르게 수송하기 위하여 아우토반(고속도로)을 제국 곳곳에다 건설했다. 그리고 티틀러는 SM조약(1차대전때 코어제국이 패배함으로써 승전국인 연합국과 맺은 조약ㅡ여기에 1320억원의 배상금, 군대제한, 주요지역의 중립화가 있었다.)의 불합리성을 주장하고, SM조약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1차대전 당시 코어제국과 제일 많은 전투를 벌인 동방신기의 뒤를 이은 에프엑스는 티틀러의 만행에 대해 크게 비난했지만, 원더걸스는 미국진출에 전념하는 바람에 소극적으로 대하게 된다. 원더걸스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티틀러는 더욱 강경한 정책을 펼쳤고, 끝내 티퀴군대는 중립화지역도 점령해버렸다!







V. 아이유의 대격변 (Большая чисткаㅡ예조프시치나)


아이유의 첫번째앨범정책은 실패로 끝났지만 다행스럽게도 대공황의 여파는 아이유의 철저한 계획경제체제와, 봉퀴들의 고립주의 덕분에 로엔연방까지 악영향을 주지 않았다. 덕분에 아이유는 두번째 앨범정책을 준비할 수 있었다. 두번째앨범을 발매하기 전에 아이유는 한가지 어찌보면 엄청나게 큰 일을 저지른다. 바로 '대격변'이라고 불리는 사건이였다. 대격변을 통해 아이유의 컨셉은 '어리지만 실력파 가수'에서 귀여운 컨셉으로 바뀌었고, 그러기 위해 로엔연방의 주요인사(특히 군부에서)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바꿔놓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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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앨범정책 홍보포스터 (좌), 2차앨범정책 홍보포스터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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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대격변. 이로인해 수많은 인사들이 조용히 제거되었다.


두번째앨범정책은 성공적이였다. 앨범생산량은 증가했고, 봉퀴들은 전에비해 먹고 살만해졌다. 두번째 앨범정책 이후에 아이유는 본격적으로 봉퀴군대를 정비하는데, 그로인해 로엔연방은 아이돌계의 변방에서 또다른 강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VI. 떠오르는 투매미


YG엔터테인먼트는 소녀시대처럼 1차대전중에 참전함으로써 손쉽게 승전국 지위와 혜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녀시대 대공황의 영향은 YG에도 영향을 끼쳤다. 급격하게 성장하고있던 YG경제는 대공황 때문에 추락했고, YG는 혼란에 빠졌다. 그러던 중에 혼란을 틈타 투매미라고 부르는 군부세력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게되고, YG의 정책과 사상은 극단적으로 변한다. 투매미들은 '지뢰주의'이라고 불리는 국가와 군대중심의 사상을 주장했고, 이 사상은 동방의 평화를 위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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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매미 군부의 수장. 산다라 히데키


투매미는 지뢰사상으로 지뢰들과 판녀들을 단결시켰고, 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투매미는 결국 카라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소녀시대를 비롯한 여러나라들은 지뢰들과 판녀들의 호전성에 대해 비난했지만, 투매미군은 무시하고 계속 카라와 전쟁을 벌였다. 심지어 지뢰들과 판녀들은 카퀴들을 대량학살하는데, 이 사건이 바로 '카퀴 대학살'사건이다. 또 투매미는 로엔연방과도 국경문제로 여러 전투를 벌인다. 하지만 지뢰군들이 패배함으로써 로엔연방과의 국경문제를 정리하고 양국간 불가침조약을 맺게된다.









VII. 뉴송 정책


소녀시대의 대공황은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소녀시대드림'이라고 불리는 아이돌양성은 중단됐으며, 수많은 소퀴들이 대공황때문에 실직자가 되었고, 심지어 소퀴들은 앨범배급을 받기위해 줄을 서야 될 지경이였다. 그러나 보수적인 SM엔터테인먼트 지도층들은 '자유방임주의'에 근거한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을 꺼려했으며, 이로인해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지못한 소녀시대의 경기침체는 더욱더 심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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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배급을 받기위해 줄을 서고있는 소퀴들


그러나 소녀시대에도 개혁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진보적인 대통령 후보인 프랭클린.K.태연벨트(Franklin.Kim.Taeyeonveltㅡ줄여서 FKT)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됐기 때문이다. 태연벨트는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가 방임만 해서는 안되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주의자들은 그의 진보적이고 과감한 정책에 반발했지만, 태연벨트는 반발을 무릅쓰고 개혁 정책들을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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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K.태연벨트


태연벨트'뉴송 정책(New Song Policy)'이라는 획기적인 정책을 통과시키는데, 이로인해 소녀시대의 신곡인 'Gee'가 나오게된다. 소녀시대의 신곡 'Gee' 나오자마자 빅히트를 쳤으며, 긴 시간동안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함으로써 소녀시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전성기때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소녀시대를 끝으로 '자유방임주의'는 몰락했으며, '수정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대두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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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송 정책의 핵심인 신곡 'Gee'의 홍보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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