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의 황제 '신승훈'
진정한 대한민국 가요계의 레전드를 알아보자
어머니, 아버지 세대라면 신승훈을 모를리가 없지
올해로 데뷔 23주년을 맞으셨다
신승훈은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야
본인 곡의 90프로를 직접 작사 작곡하심
히트곡도 그 만큼 많으시고 학력도 충남대면 지식도 괜찮으신듯
90년대 초중반을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와 함께 나란히 하셨지
암튼 92년 SBS 인기가요에서 한국 기네스북을 세우지
14주 연속 1위
6집 타이틀곡 '지킬 수 없는 약속'으로 아시아 최단기간
앨범 1000만장 돌파
빌보드 인터네이셔널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고 이후에
최단 기간 1700만장이 넘는 앨범판매량 기록
한국가수로써 1700만장이라니.. 진짜 대단하네
또한 국내가수 최초로 연속 7장의 앨범이 밀리언 셀러를 기록
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기록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특히 엽기적인 그녀 OST
'I Believe'로 아시아에도 이름을 떨치고
현재는 일본에서 정기적으로 대형 콘서트를 열 정도
김동률, 윤종신에 대해서 위키백과에서 많은 기록을 봐왔지만
신승훈은 진짜 업적이 대단한거 같다
위키백과도 대단한게 진짜 신승훈 본인도 잊어먹었을 법한 그의 인생을
구체적이게 적어놓았어
활동[편집]
데뷔 전[편집]
신승훈은 충청남도 대전시 신안동(현 대전광역시 동구 신안동)에서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전 동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대전 동중학교(2003년 대전 우송중학교로 명칭 변경)에 입학했다. 중학생이 된 신승훈은 2학년이 되던 해에 당시 친구들과 Poets(시인들)이라는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학교 내에서 후원을 받으며 활동을 하려고 했으나 친구의 전학 등 여러가지 문제들이 겹쳐 결국엔 흐지부지 되었다. 하지만 이런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더더욱 커져만 갔다. 그러던 도중 같은 해 겨울방학 때 스케이트를 타지 못해 속상해서 펑펑 울던 신승훈을 달래기 위해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기타를 선물하였고, 이것이 결국엔 신승훈이 가수로 데뷔하게끔 해준 기폭제가 되었다.
[9]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충남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통기타 동아리인 '팝스우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훗날 1집에 실린 '두번째의 사랑'과 '그대의 마음은'의 작사,작곡 그리고 '그대여 안녕'이라는 곡의 작곡을 했던 백병교를 여기서 만나게 됐다. 그렇게 한창 대학생활을 즐기던 신승훈은 노래를 부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당시 유명했던 대전의 PJ카페에서 오디션을 보게 됐다. 당시 돈 맥클린(Don McLean)의 〈Vincent 빈센트[*]〉와 앨버트 하몬드(Albert Hammond)의 〈For The Peace Of All Mankind 포 더 피스 오브 올 맨카인드[*]〉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 즉시 합격해 신승훈은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86년 8월 23일 대전의 PJ카페에서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서서 그만의 무대를 가지게 되었다. 첫 무대를 가진후 꾸준히 인기를 얻던 신승훈은 3개월 뒤에 피크타임으로 옮기며 그의 재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이후로 신승훈은 다양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지도를 높였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인기몰이를 해 나가며 수 많은 팬레터 등을 받기도 하는 등 연예인 뺨치는 인기를 경험했다. 적어도 그의 고향인 대전에서 신승훈은 TV에 나오는 가수에 뺨치는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데뷔하기 전, 대전에서의 유명세에 힘입어 당시 성현기가 진행하는 대전MBC-별이빛나는밤에 보조 MC와 고정 게스트로도 출연하여 음악적 재능과 말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본인의 꿈을 키워나가고 이을 무렵, 신승훈은 본인이 직접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욕심에 작곡을 하기 시작했는데, 데뷔곡인 〈미소속에 비친 그대〉를 포함한 1집에 수록된 7곡이(이는 instrumental까지 포함) 바로 이때 작곡한 곡들이다. 이 외에도 신승훈은 꾸준히 이문세 대전 콘서트,[10] 양수경〈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등의 코러스에 참여하기도 했다.[11]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보여주던 신승훈은 가수가 되겠다며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다. 자기 이름이 크게 쓰여진 앨범 하나 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신승훈은 객지인 서울에서 그렇게 고생아닌 고생을 하다 서울 가리봉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당시 생긴 병 때문에 결국 다시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대전 엘브즈에서 음악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작사가 신재각에게 보낸 데모 테이프가 인연이 되어 당시 서울 강남 일대에서 10년동안 DJ로 활동하고 있었던 김창환에게 우연히 신승훈의 곡이 들어간 데모테입이 흘러들어가 다시 한 번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9]그렇게 다시 서울로 올라간 뒤, 본인의 자작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 준비를 하기 시작해 신승훈은 1990년 11월 1일에 데뷔하게 되었다. 원래 1집은 1990년 10월에 발매가 되나 첫 방송을 앞두고 신승훈이 결막염에 걸리는 바람에 그 여파로 이튿날 스케줄까지 취소가 됐다. 그리고 그 이후로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과, 고르바초프의 제주도 방문으로 연이어 결방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11월 1일 방송 데뷔를 하게 되었다. [12] 이는 신승훈이 존경하는 故 유재하, 故 김현식이 작고한 날이기도 하다. 신승훈은 훗날 자신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은 자신이 데뷔한 날짜에 작고한 유재하, 김현식 선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13]
그의 1집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자작곡 7곡을 포함(이는 instrumental까지 포함)해 총 10곡이 수록되었다. 당시 〈날 울리지마〉는 1집에 실렸으나 현재 편곡한 상태로 2집에 수록돼 발매되고 있다.
데뷔 후[편집]
1990년 11월 ~ 2000년 3월 13일 이전까지[편집]
- 1990년 가요계에 혜성같이 등장해 당시 신인이었던 신승훈은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인 그의 1집 앨범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이듬해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차지하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또한 이 앨범은 무려 14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리며 데뷔 앨범으로는 처음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14] 타이틀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뿐만 아니라 〈날 울리지마〉로 역시 골든컵을 수상하기도 했던 1집 음반은 그에게 제2회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제5회 대한민국 노랫말 대상, 아름다운 노랫말상〈미소 속에 비친 그대〉, 골든디스크 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15]
- 1992년 2집 《보이지 않는 사랑》은 신승훈에게 발라드의 황제란 수식어를 붙여준 앨범이었다. 도입부에 베토벤의 가곡〈Ich Liebe Dich 이히 리베 디히[*]〉(그대를 사랑해)을 삽입하여 대한민국 최초로 대중가요에 클래식을 접목한 〈보이지 않는 사랑〉은 발매 직후 파죽지세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SBS 인기가요에서 '14주 연속 1위'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고, 신승훈은 이 기록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뿐만 아니라 〈가을빛 추억〉, 〈우연히〉, 〈영원히 사랑할거야〉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명실상부 톱가수로 인정받게 되고, 마침내 골든디스크 대상의 영예까지 얻으며 92년을 당당히 신승훈의 해로 장식했다. 92년 12월에는 지난 6월 콘서트의 실황을 담은 비정규앨범 Live를 발표했다.
- 1993년 신승훈이 애초에 감상용 앨범이 아닌 콘서트용 앨범으로 기획한 3집의 〈널 사랑하니까〉는[16] 1,2집의 성공을 발판으로 공중파 활동은 대폭 줄이고 전국 투어 라이브 콘서트를 열어 일반 대중들과 더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앨범이다. 특이점은 라이브 콘서트 위주의 활동에 전념하느라 TV출연을 거의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KBS 가요톱텐에서 〈널 사랑하니까〉라는 곡이 상대 곡을 바꿔가며 11주 연속이나 2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로미오 & 줄리엣〉, 〈소녀에게 (Hey Girl)〉, 〈처음 그 느낌처럼〉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가요계에 신승훈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는 앨범이 되었다. 또한 여세를 몰아 2집의 〈보이지 않는 사랑〉에 이어 2년 연속 골든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였다. 93년 5월에는 홍콩 최고 스타 유덕화와의 조인트 콘서트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 1994년 연말에 발표한 4집은 신승훈표 발라드의 저력을 대중들에게 확고히 각인시킨 앨범이다. 신승훈이 직접 프로듀싱 작업에도 참여를 하는 등 앨범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R&B, 하우스, 댄스 등 다양한 장르를 담아내어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면서 지난 3집 앨범보다 더 성장한 면모를 보였다. 이전까지 음반을 3장 이상 연속으로 히트한 가수가 없었기 때문에 신승훈 역시 한물 간 가수일 것이라는 주위의 편견을 비웃듯이 그 당시 댄스 음악 붐이 불어닥치던 상황에서도 타이틀곡인 〈그 후로 오랫동안〉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신승훈 발라드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신승훈이 직접 배우 김지호를 발굴해 낸 뮤직비디오로도 유명하며 신승훈 스스로도 자신의 자작곡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으로 꼽기도 했다.[7] 그 후에도 〈오랜 이별 뒤에〉, 〈사랑 느낌〉, 〈어긋난 오해〉등을 히트시키면서 골든컵을 연이어 차지하였으며 그 해 4번째 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했다.
- 1996년 오랜 고심 끝에 발표한 5집은 이미 데뷔 앨범때부터 싱어송라이터로서 능력을 인정받아온 그가 처음으로 전곡을 작사, 작곡했을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의 프로듀싱까지 맡은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4집 앨범에서부터 여러 장르를 선보이기 시작한 그는 5집 앨범에 재즈부터 모던 락, R&B, 맘보등을 수록하여 발라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장르를 작곡,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중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고 음반 발매 6일만에 백만장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17] 특히 타이틀곡인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은 사별을 주제로 한 곡으로, 14인조 오케스트라 선율의 웅장한 스케일에 신승훈 특유의 애절한 목소리가 잘 어우러져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18] 이 타이틀곡으로 댄스곡 일색이었던 가요계 속에서 5집 앨범으로 활동한지 불과 1주만에 가요 톱텐 1위 후보로 올라 세간을 놀라게 하였으며,[19] 3주만에 가요 톱텐 1위를 차지했다.[20] 또한 〈내 방식대로의 사랑〉으로 그해 여름에 맘보 열풍을 일으켰으며, 〈운명〉 역시 잇따라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마침내 그의 단일 앨범 최다 기록인 247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Your Song"이란 곡은 미국 R&B계의 샛별이었던 '존비(Jon B)'가 한국 방문길에 올랐다가 우연히 기내에서 《KBS 빅쇼》에 나오는 신승훈을 보고 그의 목소리에 반해 직접 작사, 작곡하여 신승훈에게 선물하고 같이 듀엣까지 한 곡이다.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스타와 한국가수가 직접 듀엣을 불러 그 당시 많은 화제가 되었다. [21]이 시기에 신승훈은 한 연예주간지로부터 최초로 '국민 가수'란 칭호를 선사 받게 되었으며,[7] 대중가수로서는 최초로 3일 연속 세종문화회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22] 또한 신승훈은 대관 심사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 카네기홀 대강당에서 96년 10월 12~13일 양일간 라이브 콘서트를 개최하게 되어 열정을 가지고 세심하게 준비를 했으나 현지 기획사 주최측이 공연 전 날 지불해야 할 대관료를 완불하지 않은 만행을 저질러 공연을 하루 앞두고 콘서트가 무산되는 가슴아픈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23]
- 1998년 약 18개월만에 발표한 6집은 IMF의 광풍 속에 발표된 앨범이다. 신승훈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 편곡, 디렉팅, 프로듀싱까지 도맡아하며 앨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6집 앨범은 IMF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면서 밀리언 셀러와 스테디 셀러를 둘다 만족시키는 결과를 이뤄냈다.[4] 이와 함께 총 누적판매량 텐밀리언셀러(1000만장)를 기록하며 아시아 최단기간이라는 기록으로[4][5] 빌보드지 인터내셔널 라인의 표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선배가수 조용필이 먼저 1000만장을 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신승훈이 아시아 최단기간, 대한민국 최초로 정규앨범 판매량 1000만장을 돌파했다고 인정받고 있다. 특히 타이틀곡 〈지킬 수 없는 약속〉은 R&B 드럼 패턴에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 선율이 그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면서 절제된 감정으로 인한 애절함을 잘 표현하여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고개 숙인 너에게〉는 마이클잭슨, 스티비원더 등 세계적인 팝스타의 코러스를 맡은 흑인 여성 4인조팀의 하모니로 곡의 후반부를 장식해 주목을 끌었으며, [24] IMF라는 경제위기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노래가 되었다. 이 곡은 미국에서 녹음할 당시 현지의 정평난 음악관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그들로부터 자신들의 가수에게 이 곡을 부르게 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아 화제가 되었다. 한편 신승훈은 1998년 7월 탈세혐의 관련 뉴스가 보도되면서 검찰조사를 받았으나, 그 당시 소속사였던 '라인음향(現 미디어라인)'의 엉터리 회계 처리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데뷔시절부터 함께해 왔던 소속사 '라인음향'과 결별 수순을 밟았다. [25] 이 억울한 사건은 그와 그의 팬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안겨 주었으나, 동시에 신승훈과 그의 팬들 사이를 믿음으로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 예로, 당시 사건이 Feel 콘서트 전국투어의 마지막인 서울 앵콜 콘서트를 남겨둔 시점에서 터지는 바람에 콘서트 개최 여부를 두고 말이 많았으나,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신승훈의 확고한 의지로 콘서트 명을 《 '98 Faith 콘서트》로 바꾸어 강행하였다. 3일동안 진행된 이 Faith 콘서트에서 팬들은 신승훈에 대한 믿음 하나로 취소표 하나없이 객석을 가득 채웠고, 신승훈과 그의 팬들이 서로에게 큰 감동을 받으면서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25]
2000년 3월 14일 이후 ~[편집]
- 2000년 전 소속사에서 독립한 후 처음으로 발표한 7집 Desire To Fly High는 신승훈이 그동안 앨범 타이틀을 신승훈 스타일의 메이저 혹은 마이너 발라드로 내세웠던 것과는 다르게 신선한 월드뮤직을 표방한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삼으며 파격적인 장르의 변화를 시도한 앨범이다. 지난 10년간 가요계의 최정상 자리를 꾸준하게 고수하며 '발라드의 황제'라는 애칭과 함께 발라드계의 대부로 자리매김한 신승훈은 대중들이 신승훈 본인만의 색깔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발라드로부터 좀 더 새로운 모습을 원하고 있음을 느꼈고, 이에 7집에서 실험정신이 깃든 타이틀곡을 내세워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신승훈이라는 이름을 다시한번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타이틀곡인 〈전설속의 누군가처럼〉은 퍼커션(타악기)을 대거 도입, 소울풍의 흑인 코러스등을 활용하여 아프리카 음악 분위기를 선보였고, 이제까지의 그의 발라드 공식이었던 절정부를 강조하는 방식이 아닌 처음부터 고조된 멜로디라인을 사용하여 색다른 시도와 삶을 성찰하는 가사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경쾌한 분위기의 평키 뮤직인 '엄마야', 보사노바를 도입한 〈어느 멋진 날〉, 하우스 〈Forever〉, 신승훈표 발라드 〈가잖아〉, 〈이별 그 후〉등 다양한 장르가 사랑을 받았다. 이 7집은 신승훈의 마지막 밀리언셀러 앨범이 되었는데, 당시 음협엔 백만 장이 아닌 약 50만장으로 잘못 등재되어 있다. 이는 7집이 '신나라 뮤직'과 '유니버설 뮤직' 두 곳에서 유통되었으나 음협에서 한 곳만 반영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일어난 해프닝이다. 7집 발표 후 전국 투어 콘서트에 돌입했던 신승훈은 2000년 8월 20일 서울 올림픽 공원 야외무대에서 《Back To The Future》라는 이름으로 10주년 기념 서울 앵콜콘서트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연일 이어지는 폭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8월 26일로 공연을 1주 미루게 되었는데, 8월 26일 당일에는 전 주인 8월 20일보다 오히려 비가 더 쏟아지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신승훈은 감전의 우려등을 이유로 내세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번 연기한 공연을 또다시 연기할 수 없다는 그의 고집으로 무리하게 공연을 강행하였다. 폭우 속에 관객들이 얼마나 올까하는 불안감이 무색하게 하얀 우비를 입은 12000여명의 팬들이 공연장을 꽉 채웠고, 약 3시간동안 신승훈과 그의 팬들은 함께 비를 맞으며 공연을 즐겼다. 신승훈은 현재까지도 가수 데뷔 이래 가장 감동적이었던 사건중 하나로 이 콘서트를 꼽는다. 팬들 사이에서 일명 '826 사태'라고도 불리는 이 콘서트는 신승훈이 TV방송 출연보다 공연에 더 집중을 하는 계기가 되었고,[9] 훗날 'The Shin Seung Hun SHOW'라는 공연 브랜드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 2002년 신승훈은 본연으로의 회귀를 뜻하며 8집 The Shin Seung Hun을 발표했다. 8집에서 신승훈은 슬프지만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시인 김소월의 애이불비 정서를 신승훈만의 감정으로 표현해내며 앨범의 주요 테마로 담아내었다. 타이틀곡인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은 2집 타이틀곡이었던 〈보이지 않는 사랑〉이 떠오르는 곡으로 서서히 감정을 끌어올려 곡의 후반 절정부에 슬픔을 폭발시키는 형식을 선보였으며 여기에 신승훈만의 애절한 목소리가 더해져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또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 OST로 삽입되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크게 히트를 친 "I Believe"와 함께 〈哀而不悲 (애이불비)〉, <이런 나를>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8집에는 마지막 트랙인 13번 트랙 후에 공백을 두고 19번째 트랙에 "Thanks! My Guardian Angel"이라는 곡이 Hidden Track으로 실려있는데, 이 곡은 2000년 8월 26일에 열린 신승훈의 10주년 기념 콘서트때 같이 비를 맞으며 공연을 함께해 준 팬들로부터 받은 감동에 보답을 하기 위한 곡이다. 신승훈은 8집 앨범 발표 당시 최초로 1만여명 이상의 팬들과 함께 대규모 쇼케이스를 열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26][27]같은해 11월 신승훈은 92년 발표한 라이브 앨범 이후 처음으로 비정규 앨범인 The Legend - Special Album (The New/The Classic/The Festive)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그의 예전 히트곡들의 리메이크 버전들과 크리스마스 캐럴로 구성되어 있으며 "Why", 〈그대 떠나갈 만큼〉, "Always", 〈그대여서 고마워요 〉 이렇게 4곡의 신곡도 수록되어 있다. 특히 <그대여서 고마워요>는 유명 화장품 CF에 쓰여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28] 이 앨범은 사실 신승훈이 베스트 앨범으로 기획했으나 전 소속사였던 라인음향(現 미디어라인)에서 신승훈의 허락없이 신승훈 베스트앨범이라는 명목하에 2001년 10월 Endless Ballad로 Best Album이라는 이름을 붙여 발매를 해버렸고, 신승훈은 어쩔 수 없이 이와 구별을 하기 위해 Special Album이라는 이름을 붙여 발매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승훈에겐 The Legend - Special Album (The New/The Classic/The Festive)이 진정한 의미의 베스트 앨범이다. 라인음향에서는 2001년 10월 Endless Ballad 이후에도 이 상태에서 표지만 바꾼채 2004년 4월에는 Shin Seung Hun The Best (Best & Best), 그리고 2008년 8월 21일에는 《불후의 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총 3장의 앨범을 신승훈의 허락없이 발매하였는데,[29][30] [31][32] 그 때마다 신승훈의 팬들 사이에서는 불매 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 2004년 신승훈은 9집 Ninth Reply를 발표한다. 앨범 타이틀처럼 자신을 오랫동안 사랑해준 팬들에게 그 사랑을 보답하고자 답장을 보낸다는 의미가 내포된 작품이다.[33] 타이틀곡 〈그런 날이 오겠죠〉, 〈두 번 헤어지는 일〉, 〈哀心歌 (애심가)〉등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프롤로그인 "East Side Story"에서 '애심가'로 이어지는 구성은 국악과의 접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실험정신이 돋보이는데,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가야금의 선율이 이뤄낸 절묘한 조화는 신승훈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한국적인 색깔을 잘 담아내었다.[34] 또한 데뷔 14년만에 시도한 첫 일본 진출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활동 반경을 해외로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2005년 7월 6일에 발표한 일본 데뷔 싱글앨범 I Believe(Single)는 오리콘차트 20위로 일본 시장 진입에 성공해 [35] 그 다음날 7계단이나 오른 13위를 해 많은 호응을 받았으며,[36] 2005년 8월에는 일본 첫 정규앨범 微笑みに映った君(Album), 2006년 4월에는 2번째 싱글앨범 僕より少し高い所に君がいるだけ~連理の枝~를 발표하며 일본에서의 입지를 넓혀 나갔다. 2005년 8월에 발매된 일본 정규앨범은 발매 당일 오리콘차트 15위를 하기도 했다. [37]
- 2006년 10월 신승훈은 10번째 앨범인 The Romanticist를 발표했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Dream of my life"는 7집 타이틀곡인 〈전설속의 누군가처럼〉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으로써, 가볍게 쭉쭉 내지르는 샤우팅한 창법을 사용한 〈전설속의 누군가처럼〉과는 다르게 잔잔한 저음에서 서서히 폭팔적 고음으로 가는 곡의 형태를 선보였으며, 차분하고 성찰적인 가사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 16년간 맑고 깨끗한 미성으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온 신승훈은 이제 자칫 대중들이 자신의 목소리에 질려버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고민에 휩싸이게 되지만[9] "Dream of my life" 곡의 초반부에 풍부한 감성이 물씬 풍기는 편안한 저음을 표현해 내면서 그의 목소리에 대한 고민을 여유롭게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독백을 하는 듯한 이 곡은 결코 과거의 영광에 갇혀 사는 가수가 아닌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진정한 가수가 되고자하는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10집 앨범으로 신승훈은 개인 통산 10번째 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하였다. 이로써 그는 이때까지 발표한 정규 앨범 10장 모두가 골든디스크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고, 역대 골든디스크 본상 최다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2004년 첫 일본 진출 이후로 일본 활동을 꾸준하게 해 왔던 신승훈은 2007년 3월 일본 굴지의 음반유통사인 Avex와 계약을 맺으며 오로지 음악성과 공연으로만 승부하여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온 일본에서의 그의 네임밸류를 당당히 확인시켜줬다. 2007년 12월 일본에서 발표한 스페셜 미니앨범 Shin Seung Hun Winter Special - 사랑이라는 선물은 오리콘 차트 15위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뤄냈으며 [38] 2007년 12월 20일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열린 The Shin Seung Hun SHOW - Christmas Miracle In Japan은 평일 오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1만여명의 관중이 공연장을 채워 성황리에 마쳤다.[39] 이후 2008년 3월에는 일본에서 비정규 음반 Special Edition을 발표하였다.
- 2008년 10월 7일 신승훈은 음악 인생의 전환점으로, 데뷔 이래 처음으로 시도한 프로젝트 앨범 '3 Waves of Unexpected Twist'의 첫 번째 음반인 Radio Wave를 발표했다. 신승훈이 앨범 수록곡 모두를 작곡, 프로듀싱했으며, 타이틀 곡 〈라디오를 켜봐요〉는 그의 음악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던 록적인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이다. 신승훈만의 청아하고 담백한 목소리를 잘 담아내었으며, 매 앨범마다 조금씩의 음악적 변화를 시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그를 저평가해 온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국내 활동과 더불어 일본 활동도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해오던 그는 2009년 3월 Avex 이적 후 첫 정규앨범이며 일본에서 내는 2번째 정규앨범인 Acoustic Wave - Japan Special Edition(Album)를 발표했다.
- 2009년 11월 12일 신승훈은 프로젝트 앨범 '3 Waves of Unexpected Twist'의 두 번째 음반인 Love O'Clock (02nd Wave - 3 Waves Of Unexpected Twist)을 발표했다. 역시 신승훈이 전곡을 작곡, 프로듀싱 했으며, 첫번째 프로젝트 앨범이 록적인 리듬을 표현하는데 주력했다면, 이번 Love O' Clock 에서는 R&B 리듬을 바탕으로 사랑에 대한 5가지 감정(바람, 설렘, 어리석음, 버림, 외로움)을 표현하는데 좀 더 중점을 둔 앨범이다. 타이틀 곡 〈사랑치〉는 포근한 브라스 사운드를 가미하여 사랑으로 인한 어리석음이라는 감정을 잔잔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따뜻하고 고급스러운 선율을 느끼게 해준다. 2010년 3월에는 일본에서 미니앨범인 Love O'Clock (02nd Wave - 3 Waves Of Unexpected Twist)((EP) - 일본 라이센스판) Love O'Clock (02nd Wave - 3 Waves Of Unexpected Twist)((EP) for Only Shin-phony)을 발표했다.
- 2010년 9월 15일 신승훈은 데뷔 20주년 기념으로 일본에서 My Favorite을 발표했다. 이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이며, 신승훈이 직접 선택한 곡들로 채워져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신승훈은 데뷔 20주년이 되는 11월 1일, 본인이 1CD에는 지금까지 활동했던 곡과 2CD에는 후배들이 헌정하는 곡들로 채워진 20th Anniversary를 발표하였다.
2010년에 데뷔 20주년을 맞은 신승훈은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으며 국내 최정상 가수답게 음악을 향한 한결같은 모습으로 많은 타가수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도 싱글, 정규 앨범들을 발표하며 꾸준한 활동을 하면서 K-Pop의 우수성을 일본 대중들에게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주요 기록[편집]
- 아시아 유일 최단기간 1,700만장 판매[6]
- 10년 동안 (1990 ~2000) 1위를 가장 많이 한 가수(총 364주간 - 7년)
- 10년 동안 (1990 ~2000) 1위를 가장 많이 한 작곡가(총 364주간 - 7년)
- 최다 연속 밀리언셀러 (7회)
- 1집 앨범인《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14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려 데뷔 앨범으로는 처음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14]
- 보이지 않는 사랑 SBS 인기가요 14주 연속 1위 기네스 등재(92년 1월 28일부터 4월 28일까지 총 14주 동안 1위)
- 골든디스크 대상 2회 수상[59]
- 골든디스크 본상 최다 수상, 발표한 정규 앨범 모두 골든디스크 수상 (10회) [8]
가수 설명이 너무 길어지는 거 같다
워낙 한국 가요계의 전설같은 가수라 그런지
여기까지 하고 노래 소개로 들어갈게
※ 가사는 블로그에서 퍼온거 몇개 있음
#01 미소속에 비친 그대
1991년 발매된 1집 타이틀 곡이자 데뷔곡
발매 당시 엄청난 인기와 골든디스크를 차지하였다
신승훈 히트곡
미성이 일품인 신승훈의 목소리가 돋보인다
#02 보이지 않는 사랑
1991년 발매된 2집 타이틀 곡
도입부에 베트벤 가곡을 삽입하여 국내 최초 가요+클래식 접목
SBS 인기가요 '14주 연속 1위' 명불허전 신승훈 최대 히트곡'
이 곡으로 인해 가요대상 차지하였던 '신승훈'
#03 그 후로 오랫동안
1994년 발매된 4집 '그 후로 오랫동안' 타이틀 곡
이 앨범이야 말로 신승훈 최대 명반 2집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4집
지금같이 비오는 날 들으면 눈물이 날지도 모르는 그런 곡
90년대 노래들이 진짜 노래가 좋다라는 생각이 든다
20대 친구들은 노땅이라고 생각할지라도
일베엔 90년대 노래를 즐기는 애들이 많아서 신기하고 한편으론 기쁘다
'하늘이여 나를 도와줘 그렇게 울고 있지말고 내 님이 있는 곳 너는 쉽게 알 수 있잖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한 번만이라도 그대를 너를 믿을게 너의 눈물 맞으면'
가사가 진짜 이래서 싱어송라이터들이 대단하다
신승훈이 작사, 작곡을 우어..
가사가 어쩜..
가장 좋아하는 곡
꼭 들어보길
라이브 버전이라 약간 편곡 되기도 했는데
더 좋게 느껴진다 좀 더 세련된 느낌
#04 처음 그 느낌처럼
1993년 3집 'Shin Seung Hun Vol.3' 수록곡
3집에는 <로미오와 줄리엣>도 댄스곡으로 하나 더 있지
너무 길어질 까봐 로미오와 줄리엣은 못 넣어서 미안하다 ㅜ
성시경 '미소천사'와 약간 분위기가 비슷하다 해야하나?
신승훈 성시경은 왠지모르게 비슷하다 같이 방송에서 라이브로 몇 번 같이 해서 그런지
암튼 라이브로 들으면 훨씬 기분이 좋아지고 경쾌한 곡
승훈이형 퍼포먼스도 정말 괜찮으신듯 포근한 이미지 ㅋㅋ
#05 날 울리지마
1991년 발매된 2집 수록곡
2집이 신승훈 최대 명반이지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준 명반이지
현재도 계속 가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리메이크 되어지는 곡
#06 I Believe
이것이야 말로 아시아에 신승훈의 이름을 떨치게 하고
엽기적인 그녀하면 떠오르는 곡
이 곡은 신승훈만 소화해낼 수 있는 노래같아
신승훈의 음색과 딱 맞아떨어지는 곡
8집의 실리기까지
#07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2002년 발매된 '더 신승훈'의 타이틀 곡
[출처] 신승훈-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작성자 레몬밤
#08 엄마야
2000년 발매된 7집 Desire to Fly Sky의 수록 댄스곡
참 발라드곡만큼 댄스곡도 잘 소화해내는 거 보면 대단하다 ㅋㅋ
성시경은 미소천사 이후로 절대 댄스곡 안 꺼내는데 ㅋㅋㅋ
발라드 댄스곡 두 마리 토끼 다 잡아버리는 승훈성님
라이브로 무대 퍼포먼스 클래스 인증해주시는 승훈성님
#09 나보다 조금더 높은곳에 니가 있을뿐
1996년 5집 '신승훈 V' 타이틀 곡
이별 음악은 많지만 사(死)별을 다룬 곡들은 많지가 않지 그래서 그런지
더욱 슬프게 다가오는 곡
신승훈 본인을 아껴주던 할머니와 친한 후배가 세상을 떳을때
이것을 토대로 그들을 위로하고 감정을 표출하려고 쓴 곡으로 보여진다
09년도에 위암으로 세상을 뜬 국화꽃 향기의 주인공 '장진영'을 위해
신승훈은 청룡영화제에서 이 곡을 추모곡으로 부른다
여담이지만 장진영은 영화처럼 살다가 떠나갔네..
#10 두 번 헤어지는 일
다비치가 리메이크 했던 곡으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
한 번쯤은 들어봐도 좋은곡
#11 오랜 이별뒤에
4집 수록곡
넌 나를 잊었겠지만 난 기다리는지 몰라 너의 이별이 나의 사랑을 다시 찾을 때까지
언젠가 오랜 이별뒤에 잊혀진 나의 이름이 너의 맘 속에 되살아날 때
아직도 너를 기다리는 나에게 다시 돌아와 나의 눈물이 널 지우기 전에
[출처] 헌이뮤직-오랜 이별뒤에 - 신승훈|작성자 바람부는 날
#12 어디선가 그녀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이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
전주부분이 이상하리만큼 꽂혀서 넣어봤어
전설속에 누군가처럼 (+추가)
90년대 노래가 끌리더라
김동률, 윤종신, 신승훈
정말 최고다
가사가 진짜
아! 내가 가사 페티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