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les (영국)


데뷔 - 1962년 싱글 'Love me do'

멤버 - 존레논(기타2,보컬) , 폴메카트니(베이스,보컬) , 조지해리슨(기타1) , 링고스타(북)

            - 작곡은 주로 존레논이나 폴메카트니.

 

기록


빌보드 1위곡 20곡 보유

+ 폴메카트니가 다른가수 곡주거나 비틀즈 해체 후 발표해 1위한곡 10곡

= 30곡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앨범판매량. (단일앨범집계ㄴㄴ.  비틀즈의 전체적인 앨범판매량이 많단 뜻)


역대 최고위자료 지불 2위 - 폴메카트니 둘째부인 (ㅋㅋㅋㅋㅋ)





57년 고딩인 죳레논은 리버풀(콥등이out!)에서 밴드를 결성하고

폴메카트니는 다른놈 소개로 들어오게되는데 성향이 너무 다른 두새끼였지만

(레논은 쌩양아치, 메카트니도 반항아기질이 있긴했지만 비교적 얌전)


서로의 다른점에 매력을 느껴 어울리기 시작했고


조지해리슨은 후에 유명세를 좀 얻고 지역투어 중 메인기타리스트로 발탁


북쟁이 링고스타새끼는 언제 들어왔는지 잘 모르겠다. 별로 맘에안듬 아랍틱하게 생겨서



그리고 그들은 흑인델타블루스나 미국에서 역수입한 롹큰롤

카피밴드로 활약하며 독일 함부르크까지 몇년간의 원정 무대바닥 경험을 쌓음


영국으로 돌아와 리버풀의 최고인기밴드가 되어 1년에 292회 공연.


그러다가 신인발굴을 위해 돌아다니던 EMI레코드사의 자회사 직원을 만나게되고 계약 체결


62년 럽미두를 녹음하고 63년 1집 플리즈플리즈미를 발매 영국내 최고인기를 누리기 시작함

그러면서 몇몇 앨범들을 거치고 헬프(예스터데이가 수록된 앨범)까지


영국내 최고 아이돌이자 밴드였던 그들은 미국에서도 대성공을 거두고 내는 판,싱글마다 1위를 기록






Yesterday - (65년 Help 中)



하지만 그때까지 폴메카트니와 존레논의 천재성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아티스트라기보단 음반사 기획하에 있는 밴드에 가까웠음.

(물론 오늘날 공장형밴드들과 비교는 불가. 자작곡들은 이미 많았고 라이브실력이 씹넘사니까)


65년 러버소울 앨범부터 폴,존은 수많은 자작곡들을 쏟아내는데

여기서부터 비틀즈 5대명반이 시작된다


러버소울, 리볼버 , 페퍼상사, 에비로드, 화이트


이 앨범들을 발매하면서 대중적성공 뿐만 아니라 평론가들에게 예술성도 인정받게 됨.






A day in the life  (67년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中)



후반기 평소에도 음악적문제, 리더문제로 존과 폴 사이 갈등이 있었다하지만

결정적으로 존의 일뽕여친 (오노요코) 문제로 결국 허무하게 해체


후에 폴은 윙스라는 밴드를 이끌고 7곡이나 빌보드1위 랭크시키고 솔로로도 2곡이나 1위

(비틀즈시절부터 대중적인곡은 폴이 썼음)


존은 히피뽕맞고 음악은 둘째 정치판에 더 기웃기웃. (물론 플라스틱오노였나 그 앨범도 좋은 평가를 받음)

이매진같은 무정부주의적 히피곡 발표하다가(곡 자체는 아름답다.) 정신병걸린 팬 총격에 사망


조지도 나름 훌륭하게 음악적인 길을 걷다가..(대중적으로는 존보다 조지의 솔로가 더 인기많았다)

2000몇년인가에 사망


링고스타도 꽤 괜찮은 앨범을 냈었다고함. 지금은 뭐하는지 모르겠음 아랍틱해서 맘에안든다



무튼 비틀즈는 흑인블루스와 록큰롤의 짬뽕 카피밴드로 시작했지만

후에 천재성을 발휘해 장르를 가리지않는 창작력을 보여줬고


락밴드들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자체에 존나 큰 영향을 미침.












Michael Jackson (미국)



데뷔 - 1969년 잭슨파이브(66년 결성당시 마잭 한국나이 9살) 

         1979년 성인으로 컴백 앨범 'Off the wall'



기록


빌보드 1위 13곡 보유


단일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을 보유 '뜨릴러'


최초의 핫샷데뷔(발매하자마자 1위했단 뜻)곡 '유아 낫 얼론' 



66년 아버지의 주도로 형제들과 '잭슨파이브'란 팀을 결성

69년 초대형 흑인음악 음반사 '모타운'과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


아원츄백, ABC, 알비데어 와 같은 곡들을 히트시키면서 높은 인기를 누림.






I'll be there (가운데 메인보컬 꼬맹이가 마이클잭슨. 노래부르는거 보소;;;ㄷㄷ)



그러다가 72년 마잭은 솔로데뷔를 하게 되고 잭슨파이브는 갈등과 오해로인해 주춤.


74년에 또 새 곡을 발표해 아직 죽지않았음을 알리지만 몇몇멤버들이 모타운을 나와 해체되고

몇개월 후 '잭슨스'란 이름으로 다시 뭉친다. 하지만 큰 활동은 없고 상징적인 의미의 참여였음



그 후 음악적인 수양을 쌓고있던 마잭


78년 한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일생일대의 귀인을 만난다

그 영화의 음악감독이었던 전설적인 프로듀서 '퀸시존스'와의 첫 만남


(퀸시존스는 40,50년대 레이찰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재즈클럽의 브라스연주자로

 시작해 빌리홀리데이 , 아레사프랭클린 , 프랭크시나트라 등과 작업하며 흑인음악을 팝의 주류로 이끈 장본인.

 마이클잭슨과 작업하면서 정점을찍고 프로듀서계의 끝판왕으로 거듭나게됨)


결국에 79년 좆명반 'Off the wall' 을 발표하게된다 (개인적으로 뜨릴러보다 이 앨범을 더 좋아함)


퀸시존스는 마잭에게 훵크와 그루브를 불어넣었고 

작곡요령을 가르쳐줌.


미칠듯이 그루브한 반주와 마이클잭슨의 뛰어난 가창 그리고 파격적인 섹스어필은

세상을 놀라게했고 결국 83년 사고를 치게된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뜨릴러를 발표하고 공전의 히트를 침.

(앨범 내 모든 수록곡이 한꺼번에 차트10위권에 들어갔고 1위자리는 빌리진과 삐레-!(beat it)이 순서대로 사이좋게 냠냠)


83년 모타운25주년 공연에서 잭슨형제들은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마지막에 앵콜처럼 등장한 마잭의 솔로무대가 압권.


빌리진과 문워크를 처음으로 선보이면서

라이브와 춤을 동시에 소화함. 격렬한 노래를 격렬한 춤을추면서 선보이는 마잭의 모습은 큰 반향을 일으킨다


그와 함께 빌리진,비릿의 뮤직비디오는 음악계 '비디오산업'에 대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mtv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침.




Billie jean (83년 'Thriller 中)

92년 부쿠레슈티 투어 라이브  씨발 춤추면서 노래하는거봐라 



아 쓰기존나힘드네 무튼 87년 앨범 '배드'를 발표하고 그것도 존나 히트했음

근데 하얀 모습으로 등장한 마잭은 피부색과 동시에 여러가지 구설수에 오르기 시작했고


구설수는 결국 마잭인생의 동반자가 됨


91년 '데인져러스' 는 마이클잭슨 음악이 매너리즘에 빠졌단 비난을 듣게되지만

역시나 마잭의 대중적 영향력은 좆나게 막강해서 존나많이 팔았음



사실상 데인져러스 발매까지가 마이클잭슨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고

히트곡도 이 부분에서 거의 끊긴다. (나중에 알켈리나 테딜라일리와의 작업으로 괜찮은곡들 많이 내지만)


하지만 오프더월,스릴러,배드,데인져러스 이 4장의 앨범에 들어있는 곡들이

남긴 파급력이 워낙 막강해서 그는 2000년대까지 여러 활동을하며 '팝의 황제'로 군림했고


그 인기만큼이나 구설수와 여러 오해, 선동된 여론으로 힘든 삶을 살다갔다.


성형중독논란, 유아성폭행, 보여주기식입양 논란, 흑인임에도 인종차별주의자논란


결국엔 모두 무혐의 및 개구라로 밝혀지지만 사람들은 무혐의에 대해선 별 관심을 안가짐


2009년 약물로 인해 사망. 당시에 자살로 밝혀져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지만

11년도 주치의에 의한 의도적인 타살로 확정됨.






3줄요약


1. 비틀즈하고 마이클잭슨갖다 왜케 싸우냐 개새끼들아

2. 양쪽 성님들 다 씹천재

3. 우리에겐 용필이형님 빠운쓰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