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jpg

1966년 8월 1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



비둘기가 무리를 지어 드넓은 텍사스 허공을 날아 다니고 있었다. 


책가방과 한손에는 커피를 든 채로 퍼런 들판에 누워 바람의 공기를 느끼는 학생도 있었고. 


돗자리를 깔고 앉아 부드러운 스킨쉽을 나누는 커플 학생들도 있었다. 


종종 까마귀 울음 소리가 도시의 우중충한 날씨에 한껏 분위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는 1883년에 설립된 공립 종합대학교 였다. 


당시 의학부 등 2개 학부가 개설되었으며, 8명의 교수와 221명의 학생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부지를 확장하고 새로운 건물과 시설을 확장하면서 성장했다. 



제목 없음.jpg

대학교 캠퍼스의 부근에는 나무와 알록달록한 꽃 화단으로 꾸며진 시민 공원과 아이들의 놀이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유모차를 끌며 한 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은 엄마, 벤치에 앉아 노후 걱정을 하는 노인 부부들, 지저귀는 참새 소리와 뛰 노는 아이들의 소리.


소란스러운 듯 하면서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듯한 이 도시에 엄청난 공포가 들이 닥칠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제목 없음.jpg

※ 찰스 아돌프 휘트먼 / 마가렛 


찰스 조셉 휘트먼의 아버지, 찰스 아돌프 휘트먼은 베네스다 주에 위치한 사바나 대학교에서 아내 마가렛을 만났다. 


평소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독실한 로마 카톨릭인이였다. 


그의 남편 아돌프 휘트먼은 하수구 배수관 사업을 열어 플로리다 레이크 워스로 이사했다. 



UT 타워 저격수, 찰스 Whitman.From 그의 위키피디아 페이지의 서사시 (하지만 작은) 어린 시절 사진.

※ 찰스 조셉 휘트먼의 유아시절 


찰스 조셉 휘트먼은 1941년 6월 24일에 태어났다. 


조셉 휘트먼은 아이큐가 138이상의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으며 매우 지능적인 청년 이였다. 



제목 없음.jpg

찰스 조셉 휘트먼(Charles Joseph Whitman)

1941년 6월 24일생 


어린 시절에는 피아노 레슨을 5년이상 하는 등 각종 활동을 하고 다니며 재능을 쌓아갔다. 


조셉은 총과 사냥을 좋아했던 아버지 덕분에 총기에 관심이 많았다. 


조셉의 아버지는 그에게 사격과 총기 분해법, 관리법 등을 가르켜 주었다. 



제목 없음.jpg

※ 어린시절의 찰스 조셉 휘트먼과 그의 가족들.


평소 그의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얌전하고 똑똑한 아이였으며 별다른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된 조셉은 웨스트 팜 비치에 위치한 세인트 앤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야구부에 들어가 투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평소 아버지가 조셉이 해병대에 입대 하기를 원하고 있어서 조셉은 그렇게 했다. 


1959년 7월 6일 조셉은 해병대에 입대 한다. 그는 해병대에서 평소 자신의 갈고 닦은 사격 실력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1961년 9월 15일. 


해병대 전역 후 조셉은 오스틴 대학교에서 미 해병대 장학금을 받고 기계 공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휘트먼이 대학교에 들어가서 부턴 동물을 촬영하는 취미도 생겨났다. 


한번은 친구들과 숲속에서 사슴을 밀렵하다가 체포되 총기를 압수 당하고 30일 동안 중노동 봉사 명령이 떨어졌다. 



※ 찰스 조셉 휘트먼의 해병대 복무시절 


제목 없음.jpg

※ 대학생 시절의 찰스 조셉 휘트먼과 그의 가족들. 


조용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조셉은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와 주사를 부렸다. 


그런 그의 행동을 본 아버지가 꾸짖자 조셉은 아버지를 풀장으로 밀치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 


이후에도 그는 가족들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물론 그의 친구들도 그가 왜이렇게 삐둘어 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제목 없음.jpg

※ 그의 아내 캐시와 찰스 조셉 휘트먼 


조셉은 같은 학교에 다녀 사랑에 빠진 캐시라는 아름다운 미모의 여자 캐시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교제만 해 오다가 그는 드디어 자신의 고향에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결혼을 한 뒤에는 조셉의 행동은 극도로 변해버렸다. 틈만 나면 아내를 구타하고 윽박을 지르는 등  


캐시는 그러한 조셉의 모습에 질려 수차례 가출을 하기도 했다



※ 찰스 조셉 휘트먼의 아내 캐시 


그 외에도 밖에서 행인과 시비가 붙어 쌍방 폭행으로 구치소에 가기도 하고 주차된 차량을 부수는 등 자잘한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다. 


그의 그러한 행동 때문에 그의 가족들도 그를 멀리하는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고.




정부에서는 매달 대학 등록금 보조금으로 보내오던 250달러의 지급이 중단 되면서 혼자 자립 생활을 할 위기가 찾아온 휘트먼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사회에 대한 갈망, 엄청난 우울증으로 휩싸였다. 





1966년 7월 31일. 


 어느날 조셉은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를 살해하고는 집을 뛰쳐 나왔다. 





범행의 시작(1966년 8월 1일) 


스나이퍼에서 연기와 시계탑


다음날인 1966년 8월 1일.


손수레에 각종 총기들을 가득 실은 조셉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인 오스틴 대학교 28층 전망대 위로 올라갔다. 


전망대에 올라가는 도중 연인들을 마주치고 그는 12게이지 산탄총으로 그들을 사살했다. 


이렇게 텍사스 총기 난사사건의 최초 사망자는 연인 들이였다. 



※ 당시 범행에 사용된 각종 총기류들. 


옥상에 올라간 찰스 조셉 휘트먼은 레밍턴 M700 저격소총으로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조준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조셉 휘트먼이 범행에 사용한 총들은 M1카빈소총, M700 저격소총, 산탄총 외에도  9mm루거와 357구경 리볼버 권총도 있었다.



파일 : 레밍턴 700 BDL.jpg


이중 레밍턴 M700이 가장 많이 쓰였다고 한다. 




그는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있었으며 침착하게 장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조준 사격했다. 그의 스코프의 십자선이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에게 향해 있었다. 한 발, 또 한 발, 그가 총을 쏠때마다 공원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총에 맞을까봐 안절부절 하며 차량을 엄폐물로 삼고 근처에 있는 건물에 들어가 몸을 잔뜩 웅크렸다. 


비무장 상대로 각종 화기들로 무차별 살상을 가하는 미국 최초의 교내 총기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조셉의 시선으로 바라본 밑의 광경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이였다. 사람들은 서로 도망치기 위해 부딫치고 쓰러지고.


아빠나 엄마손을 놓친 아이들은 난생 처음보는 공포스러운 관경에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 앉기도 했다. 


지나가던 차들은 총소리에 놀라 급정차를 하거나 빨리 달리다가 접촉 사고를 냈다. 



제목 없음.jpg


조셉은 최대한 사람들을 더 죽이기 위해 눈에 불을 키며 스코프로 도망가는 사람들을 추격했다. 


그의 손가락은 방아쇠에서 물러날 줄 몰랐다. 그의 손에는 땀이 가득 찼다. 그는 소총의 그립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꽉 쥐고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셋을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죽였는지 가늠하면서. 



그의 라이플에 스코프를 통해보고 순찰


텍사스의 병원과 경찰에는 현재 사태와 관련된 민원 신고가 잔뜩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통신국 상황 본부에선 수많은 전화기들에서 벨소리가 쉴틈도 없이 직원들의 귀를 울려댔다. 


경찰차의 관경등 소리가 사건 현장과 점점 가까워 지면서 차량이 한 두대씩 도착했다. 


텍사스주 경찰과 보안관들이 협력 하면서 조셉을 사살하기 위해 그들도 조준경이 달린 소총으로 열심히 응사했다. 




엠뷸런스 6대 가량이 부상자와 사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도착했고 의료진들은 재빨리 차에 환자들을 실어 날랐다. 


조셉의 총격이 멈추기 전 까지는 이러한 상황은 계속해서 반복 되었다. 그야말로 악순환 그 자체였다. 


그의 광기어린 행동은 십수시간만에 텍사스 전국 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아직 신문지나 TV에도 나오지 않았는데 말이다.




보안관 지원 병력이 추가로 도착했고 조셉은 끝까지 옥상에서 총을 쏘며 저항하다 결국 계단을 올라온 경찰관에 의해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이렇게 93분간 15명이 사망했고 31명이 부상 당했다. 


사망자의 경우 임산부도 있어서 태아까지 포함 한다면 16명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15명으로 정정 되었다. 




사건 이후 사진들



로메로 마르티네즈

※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 시키는 경찰관 



※ 찰스 조셉 휘트먼의 시신 1.



※ 찰스 조셉 휘트먼의 시신 2. 



※ 총을 쏘아댔던 현장



※ 찰스 조셉 휘트먼의 사격 분포도. 



※ 찰스 조셉 휘트먼의 시신을 운반하고 있는 경찰관들. 



※ 한 여성이 총격을 피하기 위해 공원 동상 뒤에 숨어있다. 


※ 당시 사건의 신문기사 



이 사건은 미국 최초로 학교에서 발생한 총기테러 사건으로 이후에도 조셉의 범행을 모방한 캠퍼스 총기사고가 급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