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게에 글 처음쓴다. 처음쓰는 글인데 정보글이라 힘들다 헠헠. 그래도 힘들여 썼으니 잘 읽어주길 바란다.
처음 쓴거라 구성이나 필력같은거 딸려도 이해좀 해주라.
굵은 글씨들은 다 정사 발췌본이니까 굳이 안봐도 무방. 어차피 밑에 다 풀어놨으니께..
순욱(荀彧) 문약(文若) (삼국지 12 일러스트)
다들 삼국지 하면. 제갈슨상님이나 조조, 유관장,조운,곽가,가후 빨고 순욱 빠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
사실 알고보면 순욱이 짱인거신데..자지도 크고... 안타까워서 순욱 소개해본다.
[순욱이 어릴 때 남양의 하옹(何 )이 순욱을 기이하게 여기며 왕을 보좌할 재능이다라 했다.-위서 순욱전]
순욱은 어릴때부터 개쩌는 집안에 머리도 똑똑하고 얼굴까지 미남이어서 아주 인기가 높았었어. 특히 집안은 순자(성악설)의 자손으로 할애비부터 시작해서 백부,아비,삼촌 모두 명망이 높았다고 한다.. 부럽盧? 자지는 또 얼마나 큰지 하옹이란놈은 순욱 자지를 딱 만져보더니 왕자지라고 평가했다고 해. 물론 장난임 ㅎㅎ 왕을 세울 재능이라 해서 왕좌지재라 불렸다 하드라.
[이때 태조(조조)가 분무장군(奮武將軍)이 되어 동군(東郡)에 있었는데, 초평(初平) 2년(191) 순욱은 원소를 버리고 태조를 따랐다. 태조가 크게 기뻐하며 나의 자방(子房)이로다 라 하며, 사마(司馬) 로 삼으니, 이 때 나이가 29세였다.-위서 순욱전 ]
순욱은 원래 한복한테 초빙되서 한복한테 있었는데 대동탁연합군 해체때 원소가 한복 뒤통수 쳐서 기주뺏어먹고 말지.. 이때 원소가 순욱 꼬셔볼라고 애널서킹을 했는데, 순욱이 보기에는 원소 이새키가 뒤통수 쳐대는거 보니 안될놈이다 하면서 조조한테 감. 조조는 기분좋아서 폴짝폴짝 뛰었지.
장량하면 한삼걸이고 소하 다음으로 짱짱맨으로 취급받는 씝사기캐인데 비행기 존나태움.
아무튼 순욱은 조조 밑에서 존나 많은 업적을 세웠어. 그중 제일의 업적이라 하면 인재 피라미드가 있겠지.
순욱이 존나 쩌는집안에 얼굴도 ㅅㅌㅊ라고 위에서 말했을거야.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 칭구들이 개많았음. 시밸롬이;
순욱이 조조밑으로 가고, 지가 아는놈들 하나씩 낙하산으로 꽂아주기 시작하는데 그 새키들이


(왼쪽부터 순유,정욱,곽가 삼국지12 일러스트)
ㅎㄷㄷ하盧? 그외에도 종요,희지재,사마의,화흠 등등 위나라 문관 탑들 대부분은 순욱이 데려온거라 봐도 무방하다.
1+1도 아니고 하나사니까 막 퍼주네 가성비 킹굳인듯.
조조는 순욱 덕분에 인재풀도 넓히고 어느정도 세력의 기틀을 잡게 되지.
순욱은 조조세력 no.2로서 조조가 원정나갔을때 집지키는 역할을 거의 도맡았는데,
그 중 최고의 업적이 여포,진궁이 쳐들어왔을때 본진방어에 성공한거지.
[때마침 장막(張 邈)이 진궁(陳宮)과 함께 여포(呂布)를 맞아들이자 군현들이 모두 호응했다. 순욱과 정욱은 견성을 보전하고 범(範-동군 범현), 동아(東阿-동군 동아현) 2현을 굳게 지키니 이에 태조가 군을 이끌고 돌아왔다. 여포가 당도하여 견성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자 서쪽으로 가서 복양(濮陽)에 주둔했다.- 위서 무제기]
[순욱은 장막이 반란을 일으켰음을 알고, 곧 병사를 이끌고 대비를 했으 며, 동군태수 하후돈을 빨리 불러 들였지만, 연주의 여러 성이 모두 여포에게 호응했다. 이때 태조의 모 든 군대는 도겸을 공격하고, 남겨서 수비하던 병사는 적었고, 감독하던 장수와 큰 관리들이 장막•진궁 과 많이 통모(通謀)하였다. 하후돈이 도착하자, 그날 밤에 모반하였던 자 수십인을 주살하니, 군대가 이내 평정되었다.- 위서 순욱전]
조조가 도겸과 유비 조지러 간 사이에 진궁과 여포가 장막 꼬셔서 복양에서 반란을 일으킨거지. 아직 조조의 세력이 미약한 때였기 때문에 거의 세력권 반절이 넘어갈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어. 순욱이랑 정욱은 눈치까고 방어하면서 조조한테 sos침. 결국 조조가 재빨리돌아와서 방어에 성공하고,여포와 조조는 대치상태가 됬지. 이 때 조조는 '대충 정리됬고, 도겸뒤져서 유비좆밥년밖에 없는데 서주따먹으러 가자'라는 생각으로 다시 서주정벌하러 갈려고 했었는데, 순욱이 ' 본진 정리도 안됬는데 무슨 정벌ㅡㅡ 빨리 여포나 조지고 세력안정이나 시키시죠' 이렇게 조언해서 여포랑 2년동안 피터지게 싸움. 결국 여포는 죶망하고 유비 뒤통수 치러 떠나게 되지
이 시기쯤에 또 순욱의 최대 업적중 하나인 협천자 전략이 나오게 되는데
[순욱이 태조가 권하길 옛날
진 (晉) 문공(文公)이 주(周) 양왕(楊王)을 맞이하자, 제후들이 그림자처럼 따랐으며, (한) 고조는 동쪽으 로 정벌하면서 의제를 위해 소복을 입
자 천하의 인심이 귀의했습니다. … 지금 황 제의 어가가 돌아와
있지만, 동경(東京=낙양)은 잡초가 무성합니다. 의로운 선비에겐 근본을 보존하려 는 생각이 있고, 백성들은 옛 일에 감읍해 슬픔을 더합니다.
진실로 이 때에 주상을 받들어 백성들의 여 망을 따르다면, 이는 큰 순리입니다. 지극히 공정함을 붙잡아 영웅과 준걸들을 귀복시킨다면, 이는 큰
책략입니다. 대의를 끼고 영준을 불러들인다면 이는 큰 덕입니다. 천하에는 비록 반역의 무리가 있지 만, 반드시 걱정거리가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 위서 순욱전]
장안에서 헌제 돌림빵 하던 이각과 곽사가 뒤지고 한섬과 양봉이 헌제 데리고 ㅌㅌ했다.
이 때 순욱이 '헌제 데려와서 후장빨아주고 명분 얻져 우리가 이득임 ㄱㄱ' 라고 조언해서 조조가 헌제데려와서 칙명셔틀 시킴.
이로서 조조는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누릴수 있게됬고, 조조세력을 치면 결국 황제에게 반역하는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훌륭한 고기방패가 됬지.
(한 헌제 유협. 드라마판이다)
이 때, 원소는 공손찬을 한창 조지고 세력이 강성해져 있었는 데, 조조는 원소세력이 강성해지는 걸 두려워해서 언제 쳐들어 갈지 고민하고있었어,
순욱은 '지금 원소한테 개겨봤자 우리 짐, 대장군 벼슬하나 땡겨주고 시간벌고 우리는 여포랑 장수먼저 쳐서 뒤통수맞을일이나 없애죠' 라고 조언해서 서주와 완을 정벌하고 세력을 키우게 됬지.
(관도대전. 사실상 이 전투가 천하의 주인공을 가르는 전투였다.)
관도대전때 역시 순욱은 후방에서 본진방어 및 보급역할을 했었는데, 처음 조조가 출병을 하려던 때, 출병을 적극 지지하는쪽에 있었어.
반대쪽인 공융은 '안량이랑 문추 존나쌔고 원소군 참모도 잘하고 장군들도 잘하고 땅도 넓고 못하는게 없는데 우리가 어케 이기냐, 개기지말고 가만히 있자' 라고 주장하고, 순욱은' 안량,문추 그 새키들 대가리 없이 용맹만 있는놈들임 충분히 잡을수 있음, 원소군새키들 군기빠져서 죶밥이고 책사들은 파벌있어서 제대로 못함여' 라고 맞받아치지, 조조는 이기던지던 원소를 조져야 내가 산다라는걸 알고있었으므로 공융말 좆까고 출병했지.
순욱이 말했다. 지금 군량이 비록 적더라도, 초와 한이 형양(滎陽)과 성고(成皐) 사이에 있던 때만 못합니다. 그 때 유방과 항우는 먼저 물러서려 하지 않았으니, 먼저 물러서는 것은 곧 세력상 굴복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께서는 1/10의 군사로서 땅을 구획지어 지키고 있으며, 그 목을 움켜쥐고 나아가지 못하게 한 지 이미 반년이나 되었습니다. 정황을 보아하니 세력이 고갈되어 필히 장차 변란이 생길 것이니, 이는 빼어난 계책을 쓸 때이므로 놓쳐서는 안됩니다.라 했다. 태조가 이내 머물렀다. - 위서 순욱전 ]
근데, 원소군이 존나 쌔서 조조군은 존나 밀리고, 군량도 다해서 거의 패하기 직전이었지. 조조는 '아 좆망했다 허도로 퇴각해서 방어전으로하자 순욱 나 퇴각할거다 문열어놔라'하고 서신을 보내는데, 순욱은 '여기서 도망가면 우리 좆망하고 다 뒤지니까 도망갈 생각하지말고 싸워라' 이렇게 답신하지. 이에 조조는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싸우기로 했어, 그리고 순우경이 지키고 있는 군량창고를 태워서 원소군을 패퇴시키지.
[6년(201) 태조가 동평(東平)군 안민(安民)현에 가 곡식을 받았는데, 군량이 적어 하북과 서로 상대하기에 부족하여, 원소가 최근 격파된 틈을 타서 그 사이 유표를 쳐서 토벌하고자 했다. 순욱이 말했다 지금 원소는 패배하여 그 군사들의 마음이 떠났으니, 마땅이 그의 곤란함을 타서 마침내 평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연주와 예주를 등지고 멀리 장강과 한수(漢水)에 까지 군사를 이끌고 갔다가, 원소가 그 나머지 무리를 거둬 들여 빈틈을 타 후방에서 나온다면, 공의 일은 성사되지 못할 것입니다.-위서 순욱전]
이에 한시름 놓게 된 조조는 군량도 없는데 유표 쳐서 군량이나 뻈자는 마음으로 유표를 칠려고 했으나 순욱은 원소 세력을 먼저 처리하고 평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이에 조조는 바로 원소를 공격하려 했으나. 곽가가 곧 있으면 원소죽고 원담이랑 원상이랑 피터지게 싸울거라고 예상하고 기다리다가 둘다 먹자고 주장했지. 조조는 곽가의 계책을 선택하여 원담과 원상을 이간질해서 둘다 쳐묵쳐묵함.
조조는 이후 유표를 쳐서 형주를 쳐먹고 동오까지 먹으려다가 연환지계 한방에 털려서 개털되고 허창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때 순욱은 본진 방어 하면서 조조세력의 여러가지 제도를 만들거나 하면서 지냈을거라 생각 됌.
근데 조조가 적벽 털리고 나서 갑자기 돌았는지 '승상 필요없고 나라하나 주시져 황제폐하' 이따구로 하면서 왕위찬탈의사를 점점 드러내게 됌.
순욱은 한왕조에 충성적인 편이었는지, 아직 협천자전략을 버리고 나라를 세우기엔 시기상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조조의 즉위를 반대함.
(드라마 '신삼국'의 한 장면, 순욱이 조조의 위왕즉위에 반대하는장면)
[『위씨춘추(魏氏春秋)』에 이르길 태조가 순욱에게 음식을 내렸는데, 열어 보니 빈 공기여서, 이에 약을 먹고 죽었다. 함희(咸熙) 2년(265) 순욱에게 태위(太尉)를 추증했다. 시호를 경후(敬侯)라 했다. 다음 해 태조는 마침내 위공(魏公)이 되었다 - 위서 순욱전 주석]
이 후, 순욱은 죽게되는데, 수춘에서 요양하다가 죽었단 말도 있고, 조조가 빈 밥그릇을 보냈는 데 이제 필요없으니 죽어라 라고 해석해서 독을 먹고 죽었단 얘기도 있어. 조조는 순욱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시호도 내리고 순욱이 반대하던 즉위도 안하고 구석과 공작작위만 받게 되지.
순욱은 제갈량이나,주유,가후에 비하여 임팩트는 적지만, 삼국지 내에서 제일 영향력 있는 인물로 봐도 무방해.
순욱을 등용함으로 인해서 조조의 친인척 일색이던 조조군 내부의 인재들의 질이 거의 수십 배 이상 좋아졌다고 봐도 무방하고,
조조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줌으로써 중원 강호들 사이의 자그마한 세력이었던 조조가 최강의 세력으로 커가는데 도움을 많이 줬지.
특히 협천자 전략은 제갈량의 융중대책과 비견될만한 전략으로 조조군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함.
그러니까 이제 삼국지 인물 누구 좋아하세요? 라고 질문 받으면 제갈슨상님이나 곽가 꼽지 말고 당당하게 순욱이 최고 아닌가여? 라고 부심부려보자.
3줄 요약.
조조군 최고의 인재 순욱.
순욱 긔여어.
곽푸치노 빨지말고 순욱빱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