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4줄 요약 / 업무중 게이들을 위한 노브금
운지기종 : 보잉 747 SR -146 (JAL)
장소/일시 : 군마현 타카마가하라 산 / 1985년 8월 12일
운지이유 : 정.비.불.량.
운지결과 : 승객 524명 중 520명 찢긔찢긔, 뱅기 동체 찢긔찢긔 , 살아도 사는게 아닌 4명
정비 총 책임자 할복
일단 이 사고는 단일 사고로는 사상자가 가장 많은 사고다. 게다가 우리나라로 치면 추석쯤 되는 오봉절 직전에 일어나서
난리난리였던 사고지 아래 사진이 사고가 난 기종이다.
사고 당시의 사진은 극씹혐 사진들이 많으니 보고 싶으면
야후재팬에 가서 日航機墜落事故나 日航ジャンボ機墜落事故로 검색해서 봐라
아래는 그나마 무난한 사진 몇장만 올린다.
사고 당시 JAL 123편은 고쿄에서 18시 정각에 도쿄 국제공항을 이륙,
남서쪽을 향한 후 이즈오지마에서 서쪽으로 순항,
구시모토 상공에서 북서쪽으로 비행하여,
18시 56분에 오사카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씨발 어디가 어딘지 알게 뭐냐
아무튼 도쿄발 오사카 행이었던 것이다.
이때 기장은 마흔 아홉먹은 타카하마 마사미, 그리고 서른 아홉먹은 부기장,
마흔여섯살 난 항공기관사 그리고 조종사 세명과 스튜어드 한명, 스튜어디스 11명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승객은 509명(한국인 6명 포함)이었다.
조종석에서는 기장 승격 훈련을 받는 부기장이 기장석에 앉아 조종하고 승무원에게 지시를 하고
기장은 부기장석에서 부기장을 지도,
무선 교신 등 부기장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 항공 기관사는 2번째로 JA8119에 탑승하였으며,
부기장은 다른 항공기에 탑승한 후 이 기체로 탑승하였고,
기장은 그날 첫 비행이었다.
18시 4분, 524명을 태운 123편은 원래 출발 시간보다 약간 늦게 하네다 공항 18번 탑승구를 떠나 18시 12분에 16번 활주로에서 이륙했다.
18시 24분(이륙으로부터 12분후), 사가미만 상공에서 순항 고도 24000피트(7200 m)를 향해 상승하던 중,
23900 ft를 통과하는 순간 갑작스런 폭발음과 함께 123편의 꼬리날개가 수직 안정판의 하단부만을 남기고 파.괴.됐.다.
유압계의 4 계통 모두가 완전 민주화.
유압을 사용하는 엘리베이터(승강타)나 에일러론(보조 날개)도 민주화로 조종불능 상태가 되고
기체는 17분간 20000ft(6000m) 이상으로 비행을 계속한다.
18시 40분 무렵, 하강해서 착륙을 해보려고 랜딩기어를 내린 후,
고도 22000피트에서 6000피트로 단번에 15400ft(4600m)로 운지
기체는 도쿄 국제공항을 향하는 항로선상의 사이타마 현 상공에서 왼쪽으로 선회, 군마 현 남서부의 산악 지대로 향하기 시작한다.
기내에서는 폭발음이 들린 뒤 각 좌석마다 산소 마스크가 내려오고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또 일부 좌석에서는 바닷가에 빠질 때를 대비해 구명조끼를 착용하기도 했다.
남성 승무원은 전 객실 승무원에게 기내 안내방송으로 산소통의 준비를 지시했다.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기내는 이상 발생 직후부터 추락까지 혼란에 빠지지 않고 전원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승객들은 충격에 대비하는 이른바 「안전 자세(앞자리에 두 손을 깍지쥐고 머리 부분을 안는 자세)」를 취하고 추락에 대비했다.
승객 중에는 죽음을 생각하고 불안정한 기체 안에서 가족에게 유서를 남긴 사람이 여러 명 있었다.
이러한 유서는 후에 사고 현장에서 발견되어 희생자의 비통함을 전해주고 있다.
일반적인 추락 사고에서는 문제 발생 후 몇 분의 여유도 없이 추락에 이르지만,
이 사고에서는 18시 24분의 이상 발생부터 30분 이상 비행을 계속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유서를 쓸 시간이 있었던 보기 드문 사례이다.
아래 링크를 가면 이들이 남긴 유서들을 볼 수 있지만 가기 귀찮겠지
http://www.goennet.ne.jp/~hohri/n-isyo.htm
테츠야를 부탁해 갑자기 마스크가 내려오고 강하가 시작됐다. 똑바로 살아라 훌륭하게 되고
등의 내용이다.
시간나면 가서 읽어봐라
아래는 관제탑과 주고받은 내용과 사고 당시 객실 상황 그리고 추락 당시 상황을 시간대별로 쓴것이다.
18시
24분 47초에 긴급 구난 신호 「스쿽 77(7700)」을 도쿄컨트롤(ACC)에 발신 후
긴급사태가 발생했으므로 도쿄 국제공항으로 회항한다고 말하자 ACC는 회항을 승인했다.
이후 도쿄 국제공항은 긴급착륙의 준비에 들어갔다.
27분 ACC가 123편에 긴급사태가 있는지 묻자, 123편으로부터 대답이 돌아왔다.
계속해서 123편에게 어떤 긴급사태인지를 물었지만, 응답은 없었다.
또, ACC는 일본항공 본사에 123편이 긴급 신호를 발신하는 것을 알린다.
28분 ACC는 123편이 동쪽으로 향하도록 지시하지만 123편은 이미 완전히 민주화 되어 조종 불능 상태였다.
또한 ACC도 이때서야 123편이 완전한 조종 불능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
31분 ACC는 도쿄 국제공항보다 가까운 나고야에 긴급 착륙할 것을 제안하지만
123편은 도쿄 국제공항 착륙을 희망했다. 통상 항공기와 지상과의 교신은 영어로 하는 것이 원칙이나,
123편 기장의 부담을 생각해 일본어의 사용을 허가했다.
이후 ACC와 123편의 통신 일부는 일본어로 이루어졌다.
33분 일본항공은 컴퍼니 라디오(사내무선)로 123편과 교신
35분 경에 123편으로부터 짐칸 문이 파손됐다는 대화가 오갔다
또, 긴급 강하하고 있었으므로 잠시 후에 호출할 때까지 무선을 주시하도록 요청하자, 일본항공은 승낙
40분 ACC는 123편과 타 항공기와의 교신을 위해 123편 전용의 주파수를 준비해
123편에게 그 주파수로 바꾸도록 요구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42분 주파수 변경 지시에 응답이 없자,
ACC는 반대로 123편을 제외한 전 항공기에 대해서 그 주파수로 변경하도록 요구하고 교신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자제하도록 요구했지만,
일부 항공기가 말을 안 쳐듣고 이전 주파수로 교신을 계속했기 때문에 ACC는 교신을 하는 항공기에 대해 개별적으로 계속 교신해야 했다.
45분 교신을 대기하고 있던 주일 미군의 요코타 기지(RAPCON)가 123편의 지원에 나서,
123편에게 미군이 준비한 주파수로 변경하도록 요구했지만
123편에서는 조종 불능이라고만 응답했다.
ACC가 도쿄 국제공항 접근 관제소(APP)와 교신할 것을 123편에게 제안하지만, 역시 123편은 거절했다.
47분 123편이 치바의 키사라즈로 레이더 유도를 요구하자
ACC는 동쪽으로 나아가도록 지시한 뒤, 조종 가능한 지 물었지만 123편으로부터
「Uncontrolable」(조종 불능 혹은 민주화 )라는 대답이 왔다. 그 후, APP의 주파수로 교신 대상을 변경하도록 하자 123편은 승낙했다.
48분 무언으로 기장의 거친 호흡음이 녹음됐다.
49분 일본항공이 컴퍼니 라디오(사내 전용 무선)로 3분간 호출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53분 ACC가 123편을 호출했다. 123편은 「조종불능」이라고 응답했다.
ACC와 RAPCON이 대답, RAPCON은 요코타 기지가 긴급 착륙의 준비에 들어가 있다고 대답했다.
54분 일본항공도 호출을 실시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123편이 현재위치를 묻자 APP가 하네다로부터 55마일(100km) 북서에, 쿠마가야에서 25마일(45km) 서쪽지점에 있다고 한다.
55분 (이 때만 「일본어로 말씀드립니다.」라고 교신을 한다)
APP로부터 도쿄 국제공항과 요코타가 긴급 착륙 준비를 실시하고 있어 언제라도 최우선으로 착륙할 수 있다고 말하자,
기장이 「준비됐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말이 123편의 최후 교신이 되었다.
그 직후에 APP가 123편에 향후의 의향을 물었지만 응답은 없었다.
그 후에도 56분전까지 APP와 RAPCON이 123편에 대해서 호출을 실시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56분 14초에 대지 접근 경보 장치(GPWS)가 작동해 17초 무렵, 기체는 조금 상승했다
56분 23초, 기체 후부와 오른쪽 주 날개가 수목과 접촉했다.
이때 기수를 올리기 위해 엔진 출력을 올린 것과 함께 기체가
급강하하면서
속도는 346kt(640km/h)에 도달했다. 이후 기체는 일단 상승했지만,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어졌다.
23초 기장의 말 「이제 안된다(もうだめだ!)」라는 절박한 고함소리도 녹음되어 있다.
왠지 음성지원 되네
23초와 26초 무렵에 충격음이 녹음되어 남아 있다.
56분 26초, 오른쪽 주 날개가 지면과 충돌하고 동시에 기체의 파괴가 시작되었다(수직·수평꼬리, 오른쪽 주 날개의 이탈).
28초에는 기체 후부가 분리. 기체는 기수를 내리면서 우측으로 회전했다.
이때 분리된 기체 후부는 비교적 평행에 가까운 각도로 착지해 수목과의 마찰력으로 속도도 쉽게 줄었고 화재도 없었다.
생존다 4명은 이곳에 탑승했던 사람들이다.
18시 56분 30초, 123편은 타카마가하라산의 경사면에 반전하는 형태로 추락, 충돌
57분 RAPCON가 123편에 대해, 「귀기는 요코타의 북서 35마일(65km) 지점에 있고
요코타 기지에 최우선으로 착륙할 수 있다」라고 거듭 교신을 시도하고,
ACC도 123편에 대해서 요코타 기지로 주파수를 변경하도록 요구했지만,
이때 이미 123편은 추락한 뒤였다.
충격에 의해 기체 앞부분부터 주 날개 부근의 객실은 원형을 알 수 없을 만큼 파괴되었다
(후의 조사에 의하면 기체의 대부분은 수백 G의 충격이 더해졌다고 한다). 두 날개도 파.괴.됐.다.
이 사건으로 일본의 항공 업계는 큰 손실을 입게 되었고 일본 측에서 사고 원인 조사 이후 보잉사에 형사 고발을 했으나 기각되고 말았다.
또한 일본 국내선 수요는 25%나 감소 했으며 대부분의 승객이 전일본공수로 갈아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항공은 기업경영에 타격을 입게된다. 일본항공은 피해자 측에게 배상하는 동시에,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사임했고,
7년 전 사고기의 기장과 정비 총담당자는 자살하였다. 또한 보잉사의 정비불량은 사실이었지만,
일본항공은 보잉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소문에 한동안 시달렸다.
출처는 위키를 주로 하고 게이들 읽기 편하게 수정 편집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