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적자본


요즘 개나 소나 죄다 대학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연이은 경제난으로 매년 쏟아지는 졸업생에 비해 실업률은 턱없이 높고 그래서 일찌감치 마음 고쳐먹고 공무원 시험에 뛰어드는 학생들.
그렇다고 그 시험이 그리 녹녹하지 않다보니 몇 년씩 재도전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그들 가운덴 보따리 장사를 할 망정 새벽시장에 운명을 거는 젊은이들도 많다.
대학을 졸업하면 무조건 인생이 보장받는다고 생각하는가?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한 묘리로만 되어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이 갖고 있지 않는 재능 한 가지씩은 반드시 갖고 있다.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고 자꾸 허상만 쳐다보고 거기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그렇지.
자신의 재능, 심미안, 이런 것들을 먼저 찾아내야한다.
그걸로 성공을 하게된다면 그까짓 학교 간판이 무슨 대수가 되랴.
성공한 자에겐 과거사가 묻혀지게 마련이고 오히려 그러한 여건 속에서 이렇게 성공했노라는 역설이 빛을 발한다.


인간의 가치는 그 '인적자본'에 있다.
대기업 대리 직급 1년치 연봉을 월급으로 받는 모건 스탠리나 골드만 삭스의 일반사원들, 혹은 화이자나 IBM 등의 일류기업 따위의 얘기는 여기서 제하도록 하자.
초졸로 무기 교역을 하며 시간당 소모가 30만원이 넘는 항공유를 넣는 개인항공기를 타고 다니는 한인이나, 저택 주차고에 자차만 스무대가 넘는 한인들은 연간 수백만 달러를 뿌리고 다니는데, 왜 우리의 명문대학 출신들과 먹어준다는 석사학위, 박사학위까지 거머쥔 대학원 출신들의 연봉은 왜 3천만원일까?


그 답은 '인적자본'의 차이다.
인적자본의 개념은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고 팬티 한 장을 남겨 놓았을 때 그 사람에게 남아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인간됨됨이, 성격, 조직력, 창의력, 교양, 대인관계, 상황적응력 등 그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다.


팬티 한 장만 달랑 입은 윌리엄 게이츠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무에서 시작하여 사업 구상을 하고 은행을 설득하여 융자를 받고 조직을 구성하고 다시 무엇인가를 창출해낼 것이다.
팬티만 남은 이승엽은 다시 야구 방망이만 들면 돈을 벌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 팬티 달랑 한 장 입고 길거리에 섰을 때 자신의 인적자본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숙고해보자.


학벌은 인적자본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에 오직 일부일 뿐이다.
많은 남녀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학벌이 주요한 인적 자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인적자본은 학벌보다, 미모보다 더 강하고 오래 지속되며 오로지 죽음만이 그것을 빼앗아 갈 수 있다.
의식의 높이와 깊이에 비례해서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 사람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쫌생이 같은 인간이라면 기본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겠고 점쟁이가 찍어 맞추는 대로의 삶이다.
변화도 없는 과거에 뿌려놨던 씨, 그 습관대로의 인생이다.


떡국을 많이 처먹어서 이미 늦었다거나 두뇌회전 느리고 가방끈도 짧아서 나 이대로 살래요~하는 수만가지 말도 안되는 십원자리 핑계는 아예 두손 두발 다 들고 포기한 부모형제한테 먹힐지는 모르나 적어도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난 그 순간부터 좆도 얄짤 없다는 걸 언제 어디서나 망각하지 않아야한다.
말캉말캉한 대가리 더 굳어서 평생 거렁뱅이같은 월급쟁이로 윤번 돌아가듯 똑같은 매일이 반복되는 나날을 맞이하기 전에 정말 하루 한시간이라도 몸값 올리는데 시간을 투자하는 게 어떨까한다.
땀 흘리며 출자한 지금이 1년 뒤, 5년 뒤, 10년 뒤에는 열배, 백배로 늘어나게 되므로 절대 투자에 인색해서 주머니 손 집어넣고 있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대그빡이 어지간히 돌이 아니고서는 예상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가 변화할 때 새로운 운명이라는 이름의 프로듀서가 더 밝고 아름답게 수정된 각본을 들고 스스로 명품이 된 자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자기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 지금 본인이 주절대고 있는 얘기, 이런 건 즉 교만이라고 한다.
교만과 배타성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주의해야할 것들이다.
철학자 키케로의 '인간이 고쳐야 할 결점 여섯가지' 중 여섯번째.


스스로 계몽할 생각조차 없는 사람들한테도 물론 할 말은 있다.
사회는 공생하고 상생해야지 되는 거 아니겠는가?
몸 속에 60조개의 세포가 있고 어울리는 놈들끼리 뭉쳐서 기관을 만들어 조화롭게 역할을 담당하며 인체를 구성하고 있고, 조화가 깨지면 병이 찾아온다.
공사판 일꾼이 있고 도때기 시장 생선장사가 있어서 기쁜 시름시름한 세상에 지휘자 역할은 못할 망정 혼자 깩깩거리며 분위기 조지는 엇박자 소리를 내지는 말아야지.


지식은 내가 아니다.
앎은 삶을 살아가는데 유용한 도구일 뿐이다.
많이 안다고 자랑할 일도 아니려니와 그것을 무기삼아서 너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상대에게 모멸감이나 수치심 열등의식을 일으켜 반감을 사는 행위를 한다면 차라리 모르니만 못하는 경우라 생각한다.



선각의 기품은 말을 안해도 저절로 우러나와 상대를 편하게 해주며 소리없이 스며들고 감화되어 저절로 변화하게끔 해주는 것이다.


2.성장통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아니 사실 이런 소망은 전 세계 어린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시시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그러한 욕구는 그런 시시한 여름 한철의 메뚜기와 같은 열병 따위와는 다른 강렬한 것이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열망을 가진 것은 어느정도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 난 주위의 또래와 많은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 난 주위와 많은 것이 달랐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사고가 정립되지 않은 나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솔직히 남들과 다르다고해서 내가 남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오히려 난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우월했다.

우리 어머니는 독일인이어서 한국인 아버지와의 혼혈인 훤칠하며 뚜렷한 이목구비의 내 외모는 주위의 짤땅만하고 못생기고 평범한 아시아 몽고리안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내 완력이나 체력은 주위의 또래보다 압도적인 편이었다. 또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성적은 항상 유지하였다. 아버지가 하는 사업으로 집도 부유하였고 소위 말하는 그래, 난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은 그런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한국이나 일본 같은 사회에서 나와 같이 무언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경외이자 곧 동시에 소외를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언제나 혼자였다.

물론 주위보다 우월한 내 스펙 때문에 사람은 언제나 바글바글했다. 그렇지만 정말 진심으로 내게 다가 오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혼자인 시간이 많아질수록 난 곧 여럿과 함께 무엇을 하기보다는 혼자 무엇인가를 하는것을 좋아했고 이렇게 점점 혼자인 것에 익숙해진 나에게 아직 어리다는 것은 혼자라는 것의 일종의 장애물과 같았다. 그렇기에 하루라도 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고 어렸을 때의 여러가지 소망중에 내 가장 강렬한 소원은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위에서 말한대로 난 언제나 어른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어른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치기로 흉내내는 정도였지만 주로 학교의 쓰레기 같은 놈들이랑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학교에 몰래 숨어 담배를 피우곤 했다. 또 가끔 여자를 꼬셔 섹스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어른의 일을 흉내낸다고 해서 어른이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른의 행위와 아직 어른이 아닌 자신의 괴리는 생각보다 컸고 그 괴리를 난 참을수 없었다.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표출되어야만 했고 그 표출은 곧 폭력으로 이어졌다. 학교에서 싸우고 방과후에 싸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또 싸웠다. 이길 때도 있었지만 지는 때도 가끔 있었다. 그렇지만 거의 주로 일방적인 폭력일 때가 많았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난 모든면에서 우월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활이 고등학교 졸업까지 비교적 줄곧 계속 되었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니 당연히 성적은 좋질 않았고 대학에 갈 성적은 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재수라도 해서 대학에 가길 원하셨지만 내가 보기엔 대학이란 별 의미없는 샌님들의 집합소일 뿐이었다.

그 대신 위에서 말한 어른놀이를 좀 더 즐겼다. 사람을 패고 술을 마시고, 욕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섹스를 했다. 그렇게 1~2년 정도 지내고 나니 왠지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가 꿈꾸며 그리던 어른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곧 내게 진짜 어른에서 부족한 무언가를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책임감이라는 것이었다.

그 뒤 난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아버지의 회사의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곧 아는 사람을 통해 기무장교로 입대하였다. 군 생활 중에 결혼도 하고 딸도 낳았으며 전역 후에는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그럭저럭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20대에 1700억이라면 분명 대단한 성공일테지.

그렇지만 어렸을 때에 그렇게 되고 싶어하던 말 그대로의 어른이 되었고 한국 거의 99.99%의 사람보다 우월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 난 왜 아직도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을 받는 것일까.



3.형이왔다!

국에서 대학 다니는 거 아무짝에 소용없다

난 독일 뮌헨 테크니컬 우니벨지테트에서 제발 와달라고 무릎 꿇고 비는 걸 마다하고 지금은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지금 26살이고 마누라는 하나 있다이 마누라를 만나기 전까지 사귄 여자는 60여명이고 성관계 맺은 여자는 수백 명에 달한다


에스페란토와 영어 복합 시험 엘레프엘테프에 합격했고 불어독어영어에 능하며 상해어대만어일어서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알고 이태리어영국 황실어라틴어를 공부 중이다

난 토플이나 토익텝스 같은 허접한 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불어할 줄 안다면 Quand il me prend dans ses bras Il me parle tout bas Je vois la vie en rose. 

이거 해석해봐라불어 공부했다면 수십 번은 들었을 문장이다


KDSir 이란 미국 서버전문 기업에서 월 500의적은 액수를 받고광고복권 사업으로 500, 

대리석 가공 1,000, 대리석 수출입 1,500, 부동산 500, 채권 500 대략 이런 식으로 번다

난 미국시민권을 갖고 있으므로 북한에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어서 북한 조개 수입 판매로 500정도 번다

총합 월 5천의 수입을 올린다.


10년의 킥복싱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온몸이 근육으로 번들거리고 182의 신장에 92의 체중이다

할머니가 독일인이라 외국인으로 봐도 무방하다게르만 민족으로 보이기보다 앵글로색슨족으로 보인다

사촌형이 영국 워릭대 박사과정 밟으러 갈 때 주고 간 피아트 바르케타 쿠페아버지에게 받은 베엠베 745 Li, 베엠베 540i, 

스타크래프트 쉐비밴피티 크루저시보레 콜벳 컨버터블벤츠 SL500를 가지고 있다


서울에 와서는 웨이트 트레이닝만 하게 되어서 부산 매리어트그랜드 호텔 피트니스 크럽 회원권은 친구에게 선물했다

공인무술종합 14단 짜리 놈도 나한테 덤비다 반 불구 되서 지금까지도 부산 메리놀 병원에서 1년째 치료받고 있다

우리나라 5대 백화점과 6대 호텔, 3대 골프장에서 에머랄드 VIP 회원권을 우선 발급받았다

다른 거 할 말 없다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라.


4


이거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다.

뭐라고 욕 하지마라.

우리 엄마 아빠 집 내가 태어나기 전엔 진짜 잘 나갔다.


엄마는 대구에서 제일 큰 식당엄마의 아버지는 국내 최대 금광을 캤고.

아빠는 서울에서 일본인 공장 여러개 물려받아서(친일 아니다하도 아빠가 성실해서 일본인이 다 남겨주고 갔다공장도 늘리고 했다.


아마 그땐 우리나라 10대 재벌 안에 들었을 거다.

진짜 거짓말이 아니고 돈이 넘쳐나서 항아리에 넣다가 그것도 모자라서 방 바닥 밑에 깔고 살았다.

엄마 아빠는 결혼을 했고 그러다가 아빠가 다른 사업을 차렸는데 완전 말아먹고 엄마네 집 재산도 다 털어넣고 하다가 다 말아먹었다.

엄마 아빠가 부산으로 와서 임신 했다.


아빠 엄마는 존나게 싸우다가 엄마 혼자 아빠를 다시는 안 볼 작정으로 미국 큰이모 집으로 가서 나를 낳았다.

그러다가 아빠가 잘못했다고 미안하다면서 엄마를 미국으로 찾아왔단다.

난 4살 때까지 미국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태어나기 전엔 어떻게 살았는지 아나?

집 살 돈도 없어서 아파트 지하에 신문지 깔고 차가운 바닥에서 살았단다(아파트 주인 허락받고).

팔뚝만한 쥐가 돌아다니고 불빛도 안켜지고...

똥 쌀 데도 없어서 검은 봉지에 똥 싸서 밖에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단다.

아빠가 하는 사업은 다 망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아무도 동업하려 하지 않고 그러다가 지금 대덕연구단지 연구장으로 있는 작은 삼촌이 얼마 쥐어줘서 집을 구하고 포장마차를 하게 됐다.


*작은 삼촌은 옛날에 음료수 회사에 있었다써니텐 알제그거 우리 삼촌이 만든거다.


포장마차하다가 경찰때문에 도망간 적도 많았고 빚쟁이들 와서 개판치고 간 적도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유치원 다닐 때까지도 빚쟁이들 오기도 했다.

...


그러다가 심성 고운 조직폭력배가 아빠를 돕게 됐다.

아빠가 옛날에 돈칠갑으로 이름 날렸다는 소식 어떻게 듣고 뒷조사 다 했단다.

성실한 사람인지 능력은 있는지 다 조사하고 조폭 아닌 일반인 한 명이랑 그 조폭이랑 동업하게 됐다.


아빠를 포함한 세명이서 미국 신시네티로 건너가 대리석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시작한지 1년도 안되서 모든 빚을 다 갚았고(그때가 내가 5살 때였다.) 약 10개월만에 돌아온 아빠의 덕택으로 우리는 다시 서울로 가서 면목동에 꽤 괜찮은 집을 사게 됐다.


사업 같이 하는 조폭의 연줄로 닿은 이태리 사람의 도움으로 아빠는 이태리로 갔다.

거기서 로마스톤(대리석 회사다사장의 자금 지원으로 중국 하문(씨아먼)에 대리석 지사를 내고 아빠는 지사장이 됐다.


사업이 번창하니까 롯데랑 한진 중공업에서도 약간의 자원을 지금했다.

순식간에 우리 집 재산을 불어났고 아빠는 자신의 순수 자금으로 독일에 지사를 내려고 했으나 독일은 대리석 전부를 프랑스에서 구입하기 때문에 그건 실패로 돌아갔다.


재산의 반 정도를 날리고 다시 남미로 갔다.

거기서 꾸에뽀스인가 하는 곳에 지사를 내는 데 성공하고(그 나라 이름이 갑자기 생각 안난다자그마한 택시 회사도 차리게 됐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지금의 한국 다임러 크라이슬러 지사장과 손 잡고 여기저기에 건물을 짓고 아파트 자금 지원을 하고 이익을 먹기도 했다.


아빠가 여행과 운동을 좋아해서 전국 곳곳에 콘도와 스포츠센터를 지었다.

지금 우리 집 자산이 1700억인데 자랑 같지만 이거 진짜다(우리 동네(강남구)엔 자산 1000억 넘는 놈 수두룩 하다.).

위의 얘기도 진짜고.

난 그저 이 글을 통해 우리 집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또 사람 인생은 한순간에 변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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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진짜인건지 헷갈리네 ㅋㅋ


대단한사람인데 사실이면 ㅋㅋ ...부럽기도하고 나도 이런식으로 내 능력을 빵빵키워야겟다는 생각도함






[출처] 성장통(씨벌교황 편)|작성자 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