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적 토지소유가 없는 것이야말로 양반과 조선시대의 실상을 밝히는 핵심”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는 동아시아라는 세계사에서 본 조선시대와 한국사의 특징을 밝히는 책이다. 저자는 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보고, 조선후기를 봉건제 해체기로 파악하는 한국역사학계의 주류 견해인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국의 근대는 19세기 개항 때부터가 아니라 소농사회가 형성되는 16세기부터이기 때문이다. 경영형 부농의 출현과 신분제 해체를 골간으로 한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지배층으로서 양반을 서구의 귀족과 동일시 한 논리로 조선시대의 발전 모델을 서유럽에서 찾으려 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조선시대 양반은 서유럽의 경우처럼 토지귀족이자 특권신분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의 양안(量案), 명ㆍ청시대의 어린도책(魚鱗圖冊), 도쿠가와시대의 검지장(檢地帳) 등 한중일 3국의 토지대장을 비교 검토한다. 미야지마 교수는 조선후기 양안(量案)과 호적대장에 양반과 평민이 나란히 토지소유자로 기재되어 있음에 주목하면서 토지귀족이 없었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사정은, 다시 말해 토지귀족 부재 현상은 세부적 차이가 있을지언정 큰 틀에서는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특권적 토지소유가 없는 것, 이것이야말로 양반과 조선시대의 실상을 밝혀내는 핵심이라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는 ‘양반’을 과연 신분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양반이란 지위는 국가의 법제적 규정도 아니고, 양반으로서의 근거나 양반들끼리의 격(格)의 상하를 결정하는 기준도 없었기에, 양반계층 내부의 경쟁이 격렬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의 ‘조선시대 신분제 논쟁’과 함께 ‘양반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등의 논문을 통해 중국의 사대부와는 다른 조선시대 양반이라는 특수한 성립과정을 살피는 가운데 조선왕조가 500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것도 양반의 존재 양식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 비교를 통해 토지소유와 국가체제, 신분제, 지배계층, 가족과 친족 등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한국의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밝히고 있다. 이는 경제사연구에 중점을 두고 사상사까지 연구를 확장해온 역사학자로서 미야지마 교수의 연구이력이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성과가 아닐까? 

“한국의 가족, 친족 결합의 특징을 동아시아 3국의 비교라는 관점에서 자리매김 해보면, 일본의 명사적 관계 그리고 중국의 형용사적 관계의 중간적 성격을 가졌다고 하겠다. 남자의 균분 상속이라는 형용사적 관계를 한편으로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장남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명사적 관계를 중시한 독특한 가족, 친족 결합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