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사진이 병신되어서 다시 올렸어..

 

요즘 CJ관련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아하니, 이 업계에 대해서 너무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아서 함 썰 풀어본다.

참고로 난 투자 쪽 일을 오래 했기 때문에 사업 쪽으로 알아. 자세한 세부 썰, 뭐 연예인 신변 잡기 이런 것 모름. 물어보지 마라.

솔직히 여기에 이 정도 글 쓴것 만으로도, 신상 털릴까 봐도 무섭다. 미디어 쪽 투자업계가 워낙 좁아서리..

 

차례

 

1부     영화 산업에 대해서 알아보자.

 

1부 1편   CJ Entertainment의 태동

 

                1부 2편   한국 영화 산업의 이해

 

                1부 3편   CJ 얼마나 강한가? 정말 개새끼인가.

 

현재 계획은 2 ‘음악 산업에 대해서 알아보자도 쓰려고 한다만.. 모르겠네..

2부의 예상 순서는 이러하다.

2.     음악 산업에 대해 알아보자.

 

2부 1편 디지털 음원 시장의 출발 통신사의 음원 시장 진출

 

2부 2편 한국 음악 시장의 현재 누가 한국 음악 시장을 움직이나?

 

2부 3편 로엔엔터테인먼트(멜론)이 얼마나 강한가? 누가 이 바닥의 진짜 개새끼인가?

 

 

 

재미 없을 수도 있다. 문돌이가 아니어서 글 재주도 없다.

게다가 글도 길다. 하여튼 썰 풀어본다.

 

 

1부 영화 산업에 대해서 알아보자.

  1부 1편 CJ Entertainment의 태동

 

1) 모든 시작에는 삼성이 있다.

 

시작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거들 거늬찡이 은근 오덕후인 것 알고 있지? 그리고 삼성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도 알고 있지?

삼성은 5공 때 계열 방송사 TBC를 민주화 당했지만, 해당 산업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거늬찡의 첫 이사 데뷔가 TBC였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셋째사위는 TBC PD출신인 김규씨다.(현 제일기획 고문)

그리고 김규씨의 아들은 애니모드라고.. 삼성전자 애니콜 이어폰과 케이스 만들어서 밥먹고 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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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니모드)

 

하여튼 1991년에 미국 극장 회사인 빌리지 로드쇼라는 회사가 있음.

얘들은 워너 브라더스(북미)와 골든 하베스트(아시아)와 사업 파트너였음.

당시 야들이 한국 시장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그나마 좀 멀쩡한 회사 같아 보이는 삼성전자와 파트너쉽을 맺길 원했다.

그런데 삼성은 TBC의 원죄 때문에 현 정부 눈치를 보고 있던 시점이라서, 논의는 계속하지만 적극적인 사업은 진행되질 않아.

훗날의 이야기지만 5공의 주역이던 땅크 성님과 물성님이 문민 정부 때 민주화 당하면서, 삼성의 미디어 시장 재 진출이 본격화 된다.

눈치 볼 상대가 없어진 거지.

 땅끄성님.jpg

(당해본 사람은 땅끄성님의 무서움을 안다.) 

 

 

2) 1992년도의 한국 극장 시장 : 도떼기  

 

1992년도면 한국 극장시장은 한 마디로 아날로그 앤 주먹구구.

게이들이 여자사람 없이 혼자서 쓸쓸하게 극장 갈 때 어디가니? CJ CGV, Lotte Cinema 이런데 가지?

1992년도의 한국에는 멀티플렉스가 없었다.

충무로의 명보극장과 대한극장, 종로의 단성사, 피카디리, 그리고 서울극장이 짱 먹던 시기다.

이땐 배급 시스템이란 것도 없다.

영화 제작자가 돈 끌어와서 영화 찍은 다음, 극장주에게 로비 잘 해서 극장에 자기 영화 거는 거다.

수익 배분은 어떻게 하냐고? 공정을 위해, 제작사 직원 한 명, 극장 쪽 직원 한 명이 문 앞에 서서

들어오는 관객수를 일일이 손으로 세서 돈 나눠먹던 시절임.

 

배급 시스템은 1-2부에서 자세하게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지금의 CJ E&M을 이해하려면 배급 시스템을 알아야 함.

하여튼..

 

 

3)  삼성전자의 고뇌 : 미디어 산업 재진출은 부담스러운거늬?

 

1992년에 빌리지로드쇼랑 삼성물산이랑 무언가 컨택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2년 간 치밀한 내사 끝에 삼성그룹은 제일제당(이때는 한 몸뚱아리였다.)을 통해 미디어 산업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90년대 까지의 삼성전자는 일본 기업을 벤치마크하면서 성장하던 회사였는데,

일본은 80년대 중중부터 콘텐츠 비즈니스의 미래 부가가치에 눈을 뜨고 꾸준한 투자를 시도하였다.

소니의 콜롬비아 영화사, 유니버설 음반 인수, 파나소닉의 빅터 레코드 인수 등이 대표 사례.

그리고 당연스레 삼성도 해외 미디어 산업 투자를 타진한다.

 

그 타깃은 스필버그 였다.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가 디즈니와 연합하여 투자배급사를 차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해당 썰을 들은 거늬찡은 손수 스필버그를 만나 대담하기도 했다.

 

1993년의 이야기다.

거늬찡은 여러모로 삼성전자가 미디어 산업에 직접 재도전하는 형태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집안 내로는 새한 미디어 이슈도 있고, 무엇보다 땅끄 성님에게 바로 들이대는 것 같잖아.

'미디어가 돈도 될 것 같고.. 욕심도 나는데 땅끄성님은 무섭고..' 쫄은 거늬.

 

땅끄성님.jpg

(당해본 사람은 무서움을 안다.)

 

4) 이미경 비긴즈

 

당시 삼성가에서 미디어 산업에 큰 관심을 보이던 사람이 있었다. 이름하여 미키리, 지금의 이미경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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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이러고 다니신다. 보도자료용 사진 믿으면 안됨)

 

당시 이미 테레비와 라디오 잘 팔아먹던 삼성전자에게,

만년 2위 제일제당(부동의 1위가 대상, 미원 만드는 회사이며, 거늬찡의 전 사돈 집안)은 더 이상 매력 없는 소규모 사업체였다.

그나마 그 쥐꼬리만한 사업은 명목상 종손인 이재현 현 CJ회장에게 물려줘야 할 판이었다.

 

이래저래 집안의 첫째 딸인 이미경(당시 제일제당 이사)의 대우에 대해 고심이 많았던 삼성가에게

이미경이 제 발로 먹거리를 찾아 들고 온 것이다.

계륵 같은 미디어 사업을 본인이 떠맡겠다고 나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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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용아 너희 고모 봐라..)

 

 

 

여기서 잠깐.

너거들 왜 이미경 부회장이 영화판에서 먹어준다고 생각하?

CJ딸이어서? 삼성가여서? ㄴㄴ하다.

1992-3년 당시의 한국 영화판을 생각해봐라. 저긴 건실한 기업이 껴들 여지가 없는 야바위판이다.

감독 들이 제작비 대려고 재벌 2,3세들에게 여배우 성상납한다는 근거 없는 소설이 돌던 것이 당시의 소위 충무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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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야, ㅈㅈ 있어요?)

 

 

 

당시 충무로는 전형적인 도제 시장이었다.

조감독 타이틀 달고 카메라 한 번 만져보려면 최소 5년은 카메라 가방 모찌해야하는 시절.

막장 인생 충무로 제작자들 눈에 곱게 자란 재벌집 딸 이미경이 가당찮게나 보였겠?

그냥 어디서 뭘 잘 모르는 호구 하나 왔구나, 단 물이나 빨자 했겠지.’

근데 이미경 부회장은 스케일이 다른 충무로 데뷔전을 시행한다.

바로 드림웍스 독점 배급권 획득.’

 

 

 

5) 이미경 라이즈

 

삼성전자가 1993년에 스필버그와 접촉했다는 이야기는 했지?

1994년 스필버그는 디즈니의 마이클 카젠버그, 명 제작자 폴 알렌과 손을 잡고, 드림웍스와 드림웍스SKG를 설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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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헴. 접니다 드립.. 아니 드림웍스)

 

 

 

그냥 드림웍스는 영화 투자배급사고, 드림웍스SKG는 영화 제작사이다.

내가 배급과 제작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설명해준다고 했지?

일단은 간단하게 생각해라. 투자배급사는 제작사에게 돈 대는 곳, 제작사는 영화 만드는 곳이다.

 

시간 순서를 잘 봐라.

1993년에 거늬찡은 스필버그를 만나고 온다, 아마 이후 스필버그를 통해 조카 이미경을 폴 알렌에게 소개시켜준 것 같다.

이후 이미경 부회장과 폴 알렌, 아니 삼성 그룹과 스필버그 간의 네고가 지속되었다. 그 결과는..

1995 4월 제일제당이 드림웍스 SKG의 지분 30% 투자 발표. 그 댓가로 드림웍스가 투자 배급하는 모든 영화의 한국 내 배급권 무기한 획득.

1997쉬리개봉 이전 한국영화는 쓰레기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알지?

사람들이 헐리우드 영화라면 질질 싸면서 극장 보러 갈 때다. 한국영화 : 외국영화(홍콩영화 포함)의 비중이 3 : 7쯤 하던 때지.

이런 시기에, 이미경이라는 여자가 삼성 돈으로 회사를 차렸는데,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를 국내 독점 배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나타난 거다.

단성사고, 명보극장이고, 대한극장이고, 스필버그의 영화를 자기 극장에 걸고 싶으면, 이미경을 만나서 허락을 받아야했다.

이렇게 1995년에 이미경이 화려하게 충무로에 등장한다.

삼성영상사업단과 함께.

 

 

6) 삼성영상사업단의 등장

 

이미경 당시 제일제당 이사의 주도 하에, 제일제당의 드림웍스SKG 지분 30% 취득 사실이 발표된 것이 1995 4월이었다.

같은 해 9, 삼성영상사업단이 출범한다.

 

삼성영상사업단을 기획한 것은 당시 삼성전자 비서실 이사였던 서병문씨였다.

이 사람은 삼성물산에서 신사업개발일을 하다가 정보통신 쪽에 눈을 떴다. 문화 콘텐츠의 미래가치에 대해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994, 삼성물산에서 삼성전자 비서실로 발령 받은 서병문 당시 정보통신사업 팀장은 범 삼성그룹 프로젝트, 삼성영상사업단을 출범시킨다.

삼성영상사업단은 삼성전자 비서실을 주축으로, 물산, 그리고 제일제당의 에이급 기획자들이 만든 범그룹 TFT였다.

이듬 해 1996년 독립법인으로 스핀 오프했으며, 초대 대표는 이중구 제일제당 사업개발팀장이 맡았다.

1996 9 BI 설립차원에서 삼성영상사업단㈜, 멀티미디어 사업부는 ‘CJ엔터테인먼트라는 BI를 상용하게 된다.

1996 9월 당시 CJ엔터테인먼트는 삼성영상사업단㈜ 내 사업부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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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극장에서 이거 많이 봤지?)

 

 

 

 

7) 삼성영상사업단의 충무로 지각 변동 : 멀티플렉스의 등장

 

삼성영상사업단 등장 전까지 충무로 최고 권력자는?

극장주이다. 제작한 영화를 상영할 권리를 극장주가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경규옹 같은 사람이 왜 계속 감독 입봉의 꿈을 키웠겠?

자기가 극장주를 많이 아니까. 영화 대충 만들어서 극장에 걸면 떼 돈 벌 수 있다고 생각한거지.

 

충무로 권력자 = 극장주의 공식은 삼성영상사업단의 등장으로 깨졌다.

왜냐면 이미경 제일제당 이사의 주도 하에, 드림웍스가 만드는 모든 외화는 제일제당 꼴리는 대로 배급할 수있었기 때문.

충무로 극장주들은 저 소식을 들었을 때 순간 개거품을 물었지만 이내 안도했다.

왜냐고? 삼성영상사업단은 극장이 없잖아.

 

 

재벌 기집애가 배급권 가지고 있음 뭐하노. 결국 나한테 와서 내 극장에 영화 걸어달라고 하겠지.’라는 것이 당시 극장주 들의 마인드였다.

하지만 제일제당의 대응은 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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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나 사야할 게 있어요..)

 

 

 

 

 

1994년까지 삼성전자와 딜을 하던 극장체인 빌리지 로드쇼 기억하노?

이 딜이 삼성영상사업단을 통해 제일제당으로 고스란히 넘어갔다.

 

1996 12, 제일제당은 CJ 골든빌리지라는 합작회사를 만든다.

이 회사는 제일제당과 극장체인 빌리지 로드쇼, 그리고 홍콩 영화사인 골든 하베스트의 합작품이다.

이미경은 이 딜을 통해, 이번엔 골든 빌리지가 만든 모든 홍콩영화의 한국 내 독점 배급권도 쓸어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1996 12월 이미경과 CJ는 충무로를 뒤흔든 충격발언을 한다.

바로 제일제당은 극장 사업 진출하겠다.’는 것. 나이 좀 찬 게이들은 기억할려나? 씨넥스가 이 때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CJ골든빌리지가.. 현재의 CJ CGV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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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삼성영상사업단의 해체, CJ Entertainment의 등장

 

지금까지가 1996 12월 까지의 상황이다.

게이들아, 1997년에 무슨 일이 있었노? IMF라고 불리우는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국내를 휩쓸었지.

IMF 직전까지 미디어 산업의 실권은 삼성영상사업단 내에 있었다.

어느 정도 였냐면, 삼성이 삼성 태평로 구 삼성 사옥 내에 씨넥스 극장을 오픈해 줬을 정도임.

지금 서초동 삼성 본사, 양재동 현기차 본사 지하에 극장이 있는거다. 얼마나 삼성전자가 밀어줬는지 느낌이 오노?

 

하지만 IMF에는 삼성이고 뭐고 답없지.

본인 밥숟가락 빼앗긴 극장주들이, 촛불좀비처럼 대기업의 횡포를 운운하며 맨날 시위벌이고 투쟁하고.

1997년 말에는 사치하고 모피입는 강남 사람들 때문에 IMF가 왔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그리고 그 흉흉한 민심을 입고 이 분이 대통령에 오르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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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백단의 삼성은 1998 1 21일에 삼성그룹 개혁안을 발표하고, 멀티플렉스 사업 중단 및 미디어사업 투자 방침을 발표한다.

무려 김대중 대통령 취임일보다 한 달 전의 일이다.

이렇게 발빠르게 죽는 시늉을 하니까 김대중 시절에도 삼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거지.

(죽는 시늉할 때를 못 맞췄던 사람.)

 

 

 

때마침 삼성영상사업단이 투자한 초호화 뮤지컬 그리스가 흥행 실패하고(타이타닉 보면 안된다고, 시위하던 시절이다.)

삼성은 이를 빌미로 삼성영상사업단㈜를 해체시킨다.

특히 삼성-제일제당 간의 계열분리가 본격화되면서, 삼성이 CJ와의 선긋기에 나선 것도 컸다.

표면적으로는 형제 가문 간 중복사업을 피하겠다는 논리,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국민(영화인들)에게 욕 먹고 있는멀티플렉스 및 미디어 산업에서 발을 빼겠다는 속셈이었다.

결국 삼성영상사업단㈜은 해체하고, 해당 사업은 제일제당이 가져가게 되었다.

CJ엔터테인먼트와, CATV 캐치온(On미디어)이 제일제당에게 넘어간 것이다.

 

 

 

 

9) 대기업의 극장 시장 진출 : 막차 아직 출발 안했나요?

 

삼성영상사업단은 도떼기 시장이던 충무로에 대기업이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었다.

미국, 홍콩 투자사와의 직거래를 통해 한국 내 영화 배급권을 확보하였고,

멀티플렉스라 불리우는 거대 극장을 재벌이 주도하여 설립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욕을 혼자 다 쳐먹고, 삼성은 해당 시장을 떠났다.

남아있는 제일제당과 이미경은, 업계 사람들이 보기엔 설탕장사와 작은아버지(거늬찡) 잃은 공주님일 뿐이었다.

 

 

 

그렇게 이 바닥에, 정신 못 차린 기업들이 둘 들어왔다. 대우와 오리온.

 

1998대우는 대우영상사업단을 설립하여, 미국 UCI 시네마와 JV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메가박스라는 멀티플렉스 체인 사업을 시작한다.

1996년 오리온 그룹은 휘하 소니뮤직코리아를 통해, 일본식 투자배급사 미디어플렉스를 설립한다.

오리온 그룹은 미디어플렉스를 통해 CATV 시장에 진출한다.

너거들은 미디어플렉스㈜라고 하면 감이 잘 안오겠지?

미디어플렉스㈜의 영화사업부도 독립 BI를 가지고 있다. ‘쇼박스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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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쇼박스야. 익숙하盧?)

 

 

 

다들 잘 알다시피 1999년 대우그룹은 운지하고, ‘메가박스는 오리온 그룹 내 미디어플렉스㈜ 내 극장사업부로 흡수된다.

여기까지가 2000년의 시나리오.

훗날의 이야기지만 CJ CGV 2009년에는 메가박스마저 인수해버린다.

오리온 내 CATV도 CJ 미디어로 흡수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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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 병신 설문조사를 보고 계십니다. 메가박스, 프리머스 모두 CJ CGV 겁니다.)

 

1998년 삼성영상사업단이 해체된 후, 삼성 돈으로 영화 열심히 찍던 강제규 감독은 단적비연수의 실패로 빚더미에 앉는다.

그리고 강제규 필름의 모든 판권을 CJ Entertainment가 인수하면서, CJ Entertainment는 다시 충무로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2000 CJ Entertainment가 우회상장에 성공하면서, 화려하게 한국영화계의 넘버원을 선언한다.

 

CJ Entertainment Shell이 되었던 회사는 S&T글로벌이다.

이 회사는 아이엠컨설팅그룹이 설립한 회사로, 아이엠컨설팅 그룹은 현재 한국 문화계를 주름잡는 CJ창업투자 설립에 기여한다.

 

 

 

 

다음편 예고 : 한국 영화 산업의 이해

 

여기까지가 2000년 시점의 한국영화계.

 

1.     삼성영상사업단은 극장주 중심의 충무로 산업 구조를 변화시키고 해체

2.     삼성영상사업단 해체에는 제일제당과의 계열분리 및 IMF 탓이 컸다.

3.     삼성영상사업단 시절부터 꾸준히 활약했던 이미경 당시 제일제당 이사가 CJ엔터테인먼트의 얼굴

4.     이미경 당시 제일제당 이사는 드림웍스 딜, CJ골든브릿지(CJ CGV의 전신) 설립 딜을 주도했다.

5.     삼성영상사업단이 떠난 자리에 오리온 그룹(쇼박스)이 치고 들어가면서, 대기업의 영화시장 진출이 본격화 되었다.

 

CJ Entertainment1998년부터 2005년까지 한 일.

1.     CJ는 드림웍스 투자를 통해 미국 영화 독점 배급권 획득

2.     CJ는 멀티플렉스 사업을 통해 국내 극장주 독식

3.     CJ는 젊은 제작자 한 명을 작정하고 밀어줘서, 기존의 충무로 제작자를 다 죽여버림.

: 이 제작자가 바로, 싸이더스를 만든 차승재이다.

차승재가 싸이더스를 통해 제작한 영화는 모두 CJ Entertainment가 돈을 댔다.

 

 

재밌노? 재미 없으면 뭐 다음편 안쓰고..

다음편에선 이미경 부회장의 운지 스토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