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맥퀸의 아버지는 서커스단의 스턴트맨이었다.
어머니는 맥퀸이 태어난 후 곧 이혼했다.
먹고 살기 위해 매춘을 하기도 했던 어머니는
홀로 키울 형편이 못 되자 맥퀸을 일찌감치 친정에 맡겼다.
거기서 맥퀸은 외삼촌 밑에서 자라게 되었다.
어머니는 재혼 후 맥퀸을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새아빠는 폭력을 휘두르던 망나니라 맥퀸은 밖으로 나돌았다.
14세에 길거리에서 몇몇 어린 양아치들과 함께 자동차 허브캡을 훔치다 경찰에 잡힌 뒤 의붓아버지에게 넘겨졌고, 의붓아버지가 그를 심하게 폭행하고 계단 아래로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뒤 맥퀸이 "다시 나한테 손대면 죽여버리겠다"는 식으로 맞섰고, 의붓아버지가 맥퀸을 통제불능의 비행청소년으로 취급해 어머니에게 법적 조치를 취하도록 압박했다. 결국 어머니가 법원 명령을 받아 맥퀸을 교정학교에 보냈다.
맥퀸은 16세 때 교정학교를 나온 뒤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하며 상선 선원, 창녀촌 삐끼, 서커스단 홍보꾼, 벌목꾼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17세 때 미합중국 해병대로 입대했다.
군 생활 동안 해병대 상관한테 대드는 등 말썽도 많이 부리고 사고도 많이 쳐서, 이병에서 일병으로 진급했다가 이병으로 강등되기를 7번이나 거듭했다.
주말 외박을 나가서 애인과 노느라 복귀 시한을 넘긴 뒤 무려 2주일간이나 안 돌아오며 탈영 상태로 도망 다니다가 결국 해군 헌병에게 붙잡혀 영창에 6주간 수감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엉망으로 군생활을 했지만, 혹한기 훈련 도중에 수심이 깊은 빙판 위를 지나가던 전차가 얼음이 깨지면서 가라앉았다.
다른 해병들은 놀라서 허둥지둥 할 때, 주변 빙판도 깨져가서 위험한 상황인데도 맥퀸이 혼자 순식간에 달려가서 다 가라앉기 직전의 전차 위로 올라가 다섯 명의 해병들을 끌어올려서 구했다. 이 일로 맥퀸은 하루아침에 부대 내에서 영웅 대접을 받게 됐다.
모범 해병들만 가는 미국 대통령 요트 호위대로 차출되어 근무하다가 1950년에 제대했다.
1952년에 뉴욕에서 연극 극단 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연기자로서 데뷔했다.
무명 시절엔 연기만으로는 수입이 충분치 않아 오토바이 경주대회에 나가 상금을 타기도 했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출연 조건으로 대량의 물품을 공짜로 줄 것을 요구하는 기행으로 유명했다.
대개 볼펜, 청바지, 일회용 면도기 같은 값싼 생필품이나 학용품 종류를 수십 상자씩 챙기곤 하여, 궁금증을 유발했는데
알고 보니 이 물건들을 한 교정학교에 기증하고 있었다.
극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맥퀸 자신도 교정학교 생활을 했고,
대성한 후에도 그 시절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꽤 나중에 다른 사람에 의해 알려진 사실이다.
스티브 맥퀸의 사망 원인은 석면과 강하게 연관된 매우 특이한 암인 흉막 중피종(pleural mesothelioma)이었다.
1979년 말 진단을 받았을 때는 암이 이미 가슴과 목, 복부 등으로 전이한 상태였다.
1980년 11월 7일 멕시코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직후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
휘귀암에 걸린 가장 유력한 원인은 석면노출이다.
맥퀸은 미 해병대 복무 시절 선박에서 석면 단열재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때 상당량의 석면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