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오세훈 연대나 오세훈-장동혁-한동훈연대의 기본발상은 1980년대 김대중 김영삼 연합의 제도권에서는 ‘민주연합’, 대학가 운동권 논리로는 ‘민족해방 통일전선’이 원형으로 보여진다. 그 의도는 매우 심플해보인다.
원조는 피크재팬(국가적 목표 없이 자민당, 민주당 권력 교체로 혼돈)이 찍고, 세계를 휩쓰는 영국병(의원내각제로 권력교체 무한대)과 한국병(호남중심 의회에 말 안듣는 지도자 쫓아내자) 현상에서, 이를 한번 더 윤석열 쫓아낸 이재명을 1년만에 다시 기스내러 뭉치자는 발상인데, 지겹다. 유튜브 ‘유로달러 유니버시티’의 제프스나이더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권력을 교체한들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특히, ‘오동동연대’나 ‘훈훈연대’는 대놓고, 이재명의 ‘모두의 성장’에 개입된 사람을 안고 가자는 의미로서 비슷한 세계관을 깔고, 보수유권자에 추인해달라는 말이다. (적절한 비유는 상간녀를 위하면서도 법적 부인 당신을 위한거야 믿어줘, 하는 불륜남을 보는 느낌)
노무현 정권의 관료에서 이명박 정부에 계승이 있다. 한덕수 전 총리는 그렇게 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에 계승이 있다. 김동연 전 경기지사는 박근혜 때 관료다. 문재인 정부의 관료인 변양균은 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관료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모든 잣대는 이재명 정부에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제, 이재명 정부 뿌러뜨리자면서, 민주당과 호남유권자 위하는 구조 안 바꿀게, 보수유권자는 위하는 척만 해줄께.
조선일보세력은 ‘장동혁’에 대하여 눈에 가시로 본다. 이런 사고패턴은 민주연합 촛불연대의 그 밖인 윤석열 세력을 눈에 가시로 보는 논리이고, 멀리는 노론세도정치 때에 정적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오동동연대이니 훈훈연대이니 말하는 사람들의 특성은 이러하다.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와 법치주의 전부 포기한다. 조선후기 양반논리로서 각각 귀족마다 자의적인 논리로 간다. 대동단결로 얻어지는 후원(당파권력)의 요소가 자의적 행위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기제가 된다. 결국,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권’(여기서 조갑제의 ‘자유대한민국’에서 무속신앙 중심어법은, 조갑제의 용어혼란으로 보수유권자 자유침해로 나아간다. 자유권의 자유와 자유 대한민국의 자유는 상극)의 침해로 나아간다.
결국, 군사독재에서 임금중심주의의 권위주의에서 대동단결론 씨족적 집단주의의 파시즘적 요소로 바뀌는 것인데, 이재명정부의 터프 버전보다 스무스 한 버전 해준다. 그러나, 이제는 결국 똑같은 구조 안에서 지도자만 교체하겠다는 거 아닌가? 뭐가 바뀌나?
군사독재에 저항한 김대중 김영삼 연합에겐 꿈의 시대이다. 모든 것이 영어권으로 말하면 베이비부머(트럼프 세대)이되 고학력자 기준으로 짜여졌다. 여기서, 그들에게 오세훈과 한동훈의 필요성은 노무현에서 이명박, 박근혜에서 문재인, 문재인에서 윤석열, 윤석열에서 이재명으로 바뀌는 같은 구조에 사람만 바뀌는 구조를 해줄 사람이며, 장동혁의 견제는 구조가 바뀔까봐 하는 것이다.
보수주의와 서양의 자유주의적 이성에서 완전히 달아나버린 현상은 조선일보 원로기자 모두에게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전두환 시대 언론은 모든 언론이 전라도 사주 언론들도 전두환에 충성논리 박고 시작한다. 지금은 모든 언론이 호남이 주도권쥐는(호남동학 교단이 중심으로 추정되는) 대동단결 프레임을 깔고, 보수유권자를 호구화한다.
영웅신화로 만물을 바꿀 거 같이 말하지만, 매 순간 순간 언론 워딩자체는 정반대로 집단주의로 딱 세팅돼서 아무것도 못하는 허수아비다.
대동단결론 외치면서 자신들의 분파로 잇권이 될 사람만 보는 사람은 경제위기 및 시스템 한계성 생각이 없다. 군사정권에서 전두환 충성맹세 박으면 되던 잇권의 최소 10배는 커진 것 같다. 이를 안고 가자는 발상이 ‘훈훈연대’이자 ‘오동동연대’다. 기득권층 구조조정은 의제에서 완전히 빼자. 도대체, 언제까지 보수유권자에겐 개인의 기본권 보장의 억압을 전제하는 대동세상과 대동단결론을 조선일보는 보수유권자에 강요할까?
유신체제 이데올로기에 깔린 영남유교처럼, 한동훈복당론 논하는 사람의 유교어휘는 뻔하게 보수유권자에 개차반 만들고 소외시키는 유교이념을 통한 지배질서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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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핵심 문제의식은 비교적 명확해 보입니다.
당신은 단순히 "한동훈이 복당해야 한다" 또는 "오세훈-한동훈-장동혁 연대가 좋은가 나쁜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정치에서 반복되는 **"인물 교체는 있는데 구조 변화는 없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기사에서도 국민의힘 일부 중진들은 김태호, 윤상현, 권영진 등을 중심으로 한동훈 복당과 이른바 "오동동" 또는 "오동석장" 연대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기사에서 제시하는 명분은 "보수 대통합"과 총선 승리를 위한 역량 결집입니다. [chosun.com], [weekly.chosun.com]
그런데 당신의 반론은 매우 다릅니다.
요약하면:
- 통합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 왜 통합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 운영 철학은 없다.
- 인물은 바뀌는데 관료체계와 정책결정 구조는 상당 부분 연속된다.
- 따라서 "누가 되느냐"보다 "무엇이 바뀌느냐"가 중요하다.
- 그런데 언론은 구조 개혁보다 인물 연합에 집중한다.
라는 주장입니다.
이 부분은 정치학적으로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비판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민주주의에서는 원래 두 가지 관점이 공존합니다.
인물·연합 중심 정치
- 선거 승리를 위해 여러 세력이 연합
- 정권 교체 자체를 중시
제도·구조 중심 정치
- 정권이 교체되어도 무엇이 달라지는지 중시
- 관료체계, 법률, 재정구조, 권력구조를 더 중요하게 봄
당신은 후자에 훨씬 가까운 시각입니다.
그래서 "훈훈연대"나 "오동동연대" 같은 표현을 보면서도,
결국 또 사람만 바꾸자는 것 아닌가?
국가부채, 저출산, 연금, 지방소멸, 성장정체 같은 구조 문제는 누가 해결하나?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다만 글에서 제가 구분해서 볼 부분도 있습니다.
당신은 이를 조선후기 노론정치, 씨족주의, 동학, 유교적 질서와 강하게 연결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해석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반면,
- 언론이 인물 중심 프레임을 선호한다.
- 정당들이 구조개혁보다 연합정치를 강조한다.
- 정권이 바뀌어도 상당수 행정체계는 연속성을 가진다.
- 유권자들이 반복적으로 "새 인물"에 기대를 걸게 된다.
이 부분은 보다 일반적인 정치현상으로도 설명 가능합니다.
그래서 당신 글에서 가장 강한 대목은 오히려 후반부의 이 주장 같습니다.
"결국 같은 구조 안에서 지도자만 교체하는 것인데 무엇이 바뀌나?"
이 질문입니다.
실제로 기사에 나온 복당론 역시 "왜 한동훈이어야 하는가", "어떤 정책 노선을 공유하는가"보다 "힘을 합쳐야 한다"는 통합 논리가 중심입니다. [chosun.com], [weekly.chosun.com]
따라서 당신의 비판을 가장 압축해서 표현하면,
"통합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유권자는 인물연합이 아니라 무엇을 바꾸려는지 설명을 듣고 싶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점은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별개로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정치적 문제의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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