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 믿음의 조상들과 히브리인들의 행적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드러눕던 아르메니아 일대에서 남하해 시리아 인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번제를 통해 인신공양을 타파한 후 요셉이 재상이 되었듯 힉소스 왕조 이집트로 갔다 신왕국시대 출애굽 후 광야를 떠돌아 가나안땅에 정착했지만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 이후 북이스라엘과 유다로 갈라져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흡수되었고 키루스 대제가 해방시켜 줬다지만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와 셀루시드의 위성국 신세에 짧은 자치기 하스몬 왕조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히브리어도 아닌 아람어를 사용했기에 정체성이 희미해진 상태였고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이고 다윗의 자손이라지만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으며 바울의 선교여행지들을 보면 지금의 터키와 그리스 일대인 아나톨리아와 헬라스가 초기 기독교 사회의 중심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스라엘과 예루살렘만을 강조하는 것은 종교개혁 이전 중세 서유럽 십자군들의 프로파간다인지라 천주교인도 아닌 개신교인들이 거기에 빠져 있단 것이 상당한 모순이 됨.

 

예수께서 부활 후 승천 직전 재림의 때가 언제인지 묻는 제자들에게 이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라 하신데다 무엇보다도 절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저런 사도들의 행적을 모를 정도로 성경을 읽은 적이 없으며 이슈타르같은 여신숭배와 세미라미데 여왕을 일컫는 대탕녀 바빌론이나 팔라티노와 아벤티노를 비롯한 로마의 일곱 언덕같은 여자가 앉은 일곱자리처럼 조금이라도 배경지식이 있으면 하나의 비유로 쓰였음을 알 수 있는 발췌된 예언서이자 칼뱅도 주석을 달기 포기한 계시록의 문자적인 해석에만 몰두한다는 사실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남.

 

애초에 이미 구원받았다는 믿음과 천국에 대한 자기확신이 없으니까 감사히 살아가질 못 하고 신앙을 현실에 대한 도피로 치환해 경전이자 법전이고 역사서이며 시집인 성경의 진실보단 신비주의·영지주의적 요소들과 더불어 영미 앵글로색슨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인 세대주의 신학에 몰두하는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