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존나 개소리다 당장 무슬림인 본인도 초딩때 세종대왕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썻다 시진핑김정은탈레반is개새끼박고 시작한다

한국사 GOAT 무슬림들은 세종대왕을 정말 싫어할까? — 실록도 안 읽고 세종을 이슬람 혐오자로 만드는 사람들

인터넷에서 가끔 이런 주장이 나온다.

“세종은 이슬람을 탄압했으므로 무슬림들이 싫어한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실제로 세종실록에는 회회교도의 종교 의례를 폐지했다는 기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걸 부정하면 그냥 사료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조선에서 이슬람 관련 의례를 제한했다는 사실과 현대 무슬림들이 세종대왕을 싫어한다는 주장은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15세기 조선의 정책 하나를 들고 와서 전 세계 무슬림 수억 명의 인물 평가를 대신 설명해 준다는 것부터가 상당히 이상한 논리다. 심지어 세종대의 기록을 조금만 더 찾아봐도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 일단 세종이 회회인들의 종교 의례를 제한한 건 사실이다

《세종실록》 세종 9년 4월 4일, 서기 1427년의 기록을 보자.

이날 예조는 회회교도들의 복식이 일반 백성과 달라 혼인이 어려워진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회회 교도(回回敎徒)는 의관(衣冠)이 보통과 달라서, 사람들이 모두 보고 우리 백성이 아니라 하여 더불어 혼인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예조는 이어서 이렇게 건의했다.

“이미 우리 나라 사람인 바에는 마땅히 우리 나라 의관을 좇아 별다르게 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혼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건의가 나온다.

“또 대조회(大朝會) 때 회회 도(回回徒)의 기도(祈禱)하는 의식(儀式)도 폐지함이 마땅합니다.”

이에 대해 실록은 “모두 그대로 따랐다”고 기록한다.

자, 여기까지는 명백하다.

조선 조정은 회회인들의 복식에 개입했고, 궁중의 공식적인 의례에서 시행되던 기도 의식도 폐지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소수 종교 집단의 문화적 특수성을 제한하고 주류 사회에 동화시키려 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세종은 무슬림에게 아무런 제약도 가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틀렸다. 이 기록을 두고 세종을 무조건적인 종교 관용의 상징으로 포장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그러므로 무슬림들은 세종을 싫어한다”로 넘어가는 건 대체 무슨 논리인가?

역사적 인물이 특정 집단에 대해 시행한 정책과, 수백 년 뒤 그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 그 인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 둘을 연결하려면 실제로 그렇게 평가한다는 자료가 있어야 한다.

1427년의 실록은 세종대 조정의 정책을 보여주는 사료이지, 2026년 전 세계 무슬림의 세종대왕 호감도 조사 결과가 아니다. 2. 그런데 세종 즉위 초기에는 회회인들이 궁중 의례에 참여했다

고려와 조선의 회회인들은 회족이나 위구르족이 대다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 권1, 세종 즉위년 9월 27일, 서기 1418년의 기록에는 궁중 의례에 관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승도(僧徒) 및 회회인(回回人)들이 뜰에 들어와 송축(頌祝)하고 끝나면…”

여기서 회회인은 당시 문헌에서 이슬람권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명칭이다. 다만 이들을 오늘날 무슬림 전체와 정확히 동일한 범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 기록이 세종이 이슬람을 좋아했다는 증거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궁중 의례에 참여했다고 해서 왕이 그들의 종교를 개인적으로 좋아했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조선 초 궁중에서 회회인들이 의례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그러니 “조선은 처음부터 무슬림을 철저히 배척했고, 세종은 이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없애려 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 역시 기록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확인되는 역사는 훨씬 복잡하다. 궁중 의례 참여 기록이 있고, 그 뒤 종교 의례를 제한한 기록도 있다.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하는 것이 역사이지, 자기 주장에 맞는 기록 하나만 골라서 나머지를 없는 셈 치는 것이 역사는 아니다. 3. 세종은 이슬람권의 과학 지식을 활용했다

세종대의 과학사를 이야기할 때도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바로 《칠정산외편》이다.

《칠정산외편》은 이순지와 김담 등이 서역의 회회력법을 연구해 편찬한 역서다. 회회력은 이슬람권에서 발전한 역법으로, 조선은 이를 연구하고 자국의 천문 계산 체계에 활용했다.

참고 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사전》의 회회력 항목

우리역사넷,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

물론 여기서도 “세종은 이슬람을 사랑했으므로 회회력을 도입했다!”라고 주장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역법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이었고, 외국의 과학을 활용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나라의 종교까지 우호적으로 평가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반대 방향으로도 마찬가지다. 종교 의례에 제한을 가했다는 사실만으로 이슬람권의 지식까지 전면적으로 거부했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종교적 관습에 대한 정책과 외국 과학 기술의 수용은 서로 다른 문제다. 전근대 국가의 정책을 현대 인터넷식 호감·비호감 이분법에 억지로 끼워 맞추면 이런 사실들이 전부 설명되지 않는다. 4. 그래서 무슬림들은 세종대왕을 싫어하냐?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단정할 근거가 없다.

1427년의 조치를 읽고 세종의 종교 정책을 비판하는 무슬림이 있을 수 있다. 소수 종교의 의례를 제한한 조치를 현대적 종교 자유의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전 세계 무슬림이 세종대왕을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무슬림이라고 전부 같은 역사관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사를 똑같이 배우는 것도 아니다. 세종이라는 인물을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조선의 종교 정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고, 한국의 문자나 과학 기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특정 커뮤니티의 게시물 몇 개를 보고 “무슬림들은 세종을 싫어한다”고 한다면, 그건 무슬림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그냥 일부 인터넷 이용자의 반응을 전체 집단에 투영한 것이다.

반대로 무슬림들이 세종을 좋아한다고 일괄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똑같이 근거가 부족하다.

결국 이 문제를 제대로 논하려면 실제 무슬림들의 평가 자료를 살펴봐야 한다. 그런 자료도 없이 수억 명의 생각을 하나로 묶어 버리는 건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다.

즉, 까고 말해서 무슬림이 세종 싫어한다는건 아직도 이씨가 원씨 싫어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몽골 싫어한다는 뇌피셜이다. 5. 역사에서 가장 편한 방법은 기록 하나만 읽는 것이다

세종대의 이슬람 관련 역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418년 9월 27일: 궁중 의례에 회회인들이 참여해 송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1427년 4월 4일: 예조의 건의에 따라 회회인들의 복식에 관한 동화 정책과 대조회 기도 의례의 폐지가 시행됐다.

세종대: 이슬람권에서 발전한 회회력법을 연구하고 《칠정산외편》을 편찬하는 등 외부의 과학 지식을 활용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함께 성립한다.

세종을 무조건적인 종교 관용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1427년의 기록을 무시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그 기록 하나만 들고 세종을 이슬람에 대한 무조건적 증오의 상징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세종대 조정의 정책에는 분명 종교 의례 제한과 문화적 동화의 측면이 있었다. 그 사실은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곧바로 현대 무슬림 전체의 세종대왕에 대한 감정으로 연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세종이 15세기에 어떤 정책을 시행했는지는 실록으로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 무슬림들이 세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들의 실제 평가를 살펴봐야 알 수 있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무슬림들은 세종을 싫어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역사적 사실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세운 결론에 역사적 기록을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하다.

역사는 위인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기록 하나를 근거로 위인을 무조건 악인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자료를 제대로 읽고, 확인되는 사실과 확인되지 않는 주장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결론: 커뮤 뻘글보고 열불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