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폭동-약탈-파괴-피바다는 프랑스의 DNA … 갈등해결 시스템 없어 …
그걸 부러워하는 한국 386
- 배진영 객원 논설위원
- 전 《월간조선》 편집장
- 뉴데일리 2026-10-22

▲ 프랑스 역사에선 피냄새가 철철 넘쳐난다.
문제를 그때그때 풀지 못하고 꼭 피바다를 거쳐서 해결하곤 한다.
프랑스혁명은 결코 자랑할 만한 역사가 아니다.
사람 목을 신속하고 편하게 자르기 위해 단두대까지 발명한 위선과 모순 덩어리다.
《유혈》을《자유-평등-박애》로 위장하고 있다. ⓒ 삽화 = 챗 GTP
- ■ 프랑스만 기름값 올랐나?
지난 9월 중순 부실한 교육 인프라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프랑스 학생 시위가 10월 들어 과격한 폭력시위로 번지고 있다.
물가 상승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소외 계층이 가담했기 때문이라느니,
급증한 이슬람계 이민자들 때문이라느니,
극좌 세력의 선동이 있다느니,
러시아의 사보타쥬 공작이 배후에 있다느니 하는 말들이 돌고 있다.
프랑스 서부 리모주에서는 시위대의 방화로 140년이 넘은 시청 청사의 종탑과 지붕이 붕괴했다.
남부 리옹에서도 시위대가 시청을 점거해 시설을 파손하고, 121년 된 관광 사무소 건물에 불을 질렀다.
마르세유에서는 시위대 수십명이 “혁명이다!” 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청 청사에 침입해 시설을 파손했다.
베누아 파얀 마르세유 시장은 “이런 종류의 폭력은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폭력시위로 경찰관 150명이 다치고 폭동 가담자 최소 1200명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악화되자 국내에서도 “말끝마다 똘레랑스(관용)를 앞세우던 선진 민주 국가 프랑스에서 우째 저런 일이?!” 라는- 탄식과 경악이 터져 나오고 있다.

▲ 외젠 들라크로와의 그림《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 루브르박물관
- ■《자유의 여신》 속 피투성이 시체들
하지만 원래《혁명》이란 게 그런 거고,《프랑스》란 나라가 그런 나라다.
《프랑스대혁명》이 내건《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는 아름답지만,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벌어진 일들은 -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두대에서는 숱한 사람들의 목이 잘렸고, 혁명정부에 반기를 든 사람들을 무더기로 강물에 수장당했다.
여자들이 귀족 부인의 목을 창끝에 꽂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병사들의 성기를 잘라 흔들면서 낄낄거리는 장면도 펼쳐졌다.
물론 거기에는 약탈도 뒤따랐다.
《혁명》과《폭동》은 동전의 양면인 경우가 많았다.
1830년 7월 혁명을 담은, 외젠 들라크로와의《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대개의 경우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채 한 손에는 삼색기, 한 손에는 소총을 든《자유의 여신》에게 눈길이 먼저 간다.
그 다음으로는 그녀를 둘러싼 결연한 표정의 무장한 시민들이 눈에 들어온다 (- 자유의 여신 왼쪽에 서 있는 모자를 쓰고 소총을 든 턱수염을 기른 청년은 들라크로와 자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그들의 발밑에 쓰러진 시체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오른쪽 아래의 시신들이야 민중을 탄압하며《권력의 주구》노릇하던 군인들이니 죽어 마땅하다고 치자.
그러나 그림 왼쪽 아래에 하체가 완전히 벗겨지고 치모(恥毛)까지 드러낸 채 죽어 있는 젊은 남자는 누구일까?
혁명을 일으킨 민중에게 맞아 죽은《가진 자》일까?
그들을 막으려던 군경일까?
아니면 혁명의 편에 섰다가 죽어간 민중일까?
어느 쪽이든 간에, 나는 그 시신이야말로《혁명의 광기》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 마리 앙투와네트의 참수를 묘사한 그림. ⓒ 위키백과
- ■ 목자르기 생산성 높인다고 단두대 고안한 나라
그《혁명의 광기》를 소리 높여 고발한 사람이 있다.
《군중심리》로 유명한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1912년《프랑스혁명과 혁명의 심리학》(국내에서는《혁명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라는 책에서 -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정반대로 프랑스 혁명의 폭력성을 비판하면서,
- 1789년 혁명 이후의 프랑스 역사는 실패와 후퇴의 연속이었다고 주장한다.
“행동이 현실을 경멸하면서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사건들의 물줄기를 바꾸어놓겠다고 나설 때,
그 행동은 언제나 해롭다.
사회를 갖고 마치 실험실에서 도구를 갖고 실험하듯 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의 정치적 격변은 그러한 사회적 실수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안겨주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혁명 동안에 군중의 활동을 보면 교훈적인 구석이 많다.그 기간의 군중의 역사는 모든 미덕의 뿌리를 민중의 혼에서 찾는 정치인들이 잘못되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사실들은 정반대로 국민이 문명의 바탕인 사회적 제약에서 풀려나 본능적인 충동을
따를 경우에 아주 쉽게《고대의 야만 상태》로 빠져버린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르봉이 말한《고대의 야만 상태》는 1789년 이후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1789년 대혁명 때는 물론이고,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1851년 루이 보나파르트의 친위쿠데타,
1871년 파리코뮌.
그때마다 숱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우리나라에서《역사 바로 세우기》의 모범으로 칭찬받는《나치 청산》도 프랑스의 그런《유혈 혁명》전통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사람도 있다.
많은 프랑스인들은《프랑스혁명》을 자기네 역사의 가장 빛나는 한 페이지로 기억한다.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이 일어난 7월 14일은 프랑스에서 가장 큰 기념일이다.
2024년 파리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자기의 잘린 목을 들고 있는 마리 앙투와네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르봉은《프랑스혁명》이 과연 프랑스에게 무엇을 갖다 주었는지에 대해, 무척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 그는 말한다
-
“효과적인 개혁은 혁명적인 개혁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는 과정에 매일 축적되는 사소한 개선들이다.
중대한 사회적 변화는 중대한 지질학적 변화처럼 사소한 원인들이 매일 축적되어 일어난다.
지난 40년 동안 독일 경제의 역사가 이 법칙의 진리를 놀라운 방법으로 입증하고 있다.”
르봉이 쓴《군중심리》《프랑스혁명과 혁명의 심리학》《사회주의의 심리학》은 단순히 대중의 심리를 분석한 학술서가 아니었다.
1789년 이후 120여년간《혁명》이라는《뻘짓》을 하다가 유럽 제일의 강국 자리에서 밀려나 독일의 위협에 전전긍긍하는 나라로 전락한 조국 프랑스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국민들의 각성을 눈물로 호소하는 책이었다. 그는 말한다 - .

▲ 《Le Journal du Dimanche》 기사 중에 나온 파리 올림픽 개막식 공연 중 한 장면.
자신의 잘린 목을 든 마리 앙투와네트로 분장한 가수가 《혁명가》를 불렀다. ⓒ 화면 갈무리
- ■《386세대》의 혁명 놀이
-
하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략으로 사실상 나라가 망했다가 - 간신히 살아나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
이번 학생 시위의 와중에 “혁명이다!” 라는 외침이 터져나온 것은 프랑스인들이- 여전히 중증의《혁명병(革命病)》 환자들임을 잘 보여준다.
프랑스에서 정부의 실정(失政)에 대한 항의가 곧잘 폭동으로 비화하곤 하는 것은 꼭 이슬람 이민자들이나 - 극좌세력의 선동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유전자 속에 새겨진《혁명DNA》 때문일 것이다.
지하의 르봉이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다.
그런 프랑스를 두고《왕의 목을 잘라 본 사람들》이라고 부러워하면서 “우리는 한번도 혁명을 해 보지 못한 민족” 이라고 - 속상해하던 자들이 있었다.
이른바 진보를 참칭하는 극좌《386세대》다.
그리고 그들이 21세기도 1/4이 지난 이제 와서 철 지난《혁명 놀이》를 아직도 하고 있다.
국민의 일부를《내란 세력》으로 몰아 척결 대상으로 몰아붙이면서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 남의 것을 나누어 먹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게 만들고, 폭력적으로 자기들의 주장을 강요하곤 한다.
대한민국이 처한 이런 상황과《국민이 문명의 바탕인 사회적 제약에서 풀려나 본능적인 충동을 따르는 - 고대의 야만 상태》사이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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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객원 논설위원
전 《월간조선》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