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정원, 그 후 5년

서시

한 정원사가 봄날의 햇살 아래 열 개의 씨앗을 심으며 말했습니다. "이 정원은 모두의 것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고, 정원사는 미소 지었습니다. 5년의 세월이 흐른 뒤, 정원의 문을 열어본 이들은 저마다 다른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첫 번째 씨앗: 공정의 나무

가장 먼저 심은 것은 '공정'이라는 이름의 나무였습니다. 정원사는 이 나무가 모든 이에게 고른 그늘을 드리울 것이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가지가 무성해질수록 그늘은 기묘하게도 담장 너머까지 뻗어나갔습니다. 정원의 문지기는 담장 밖에서 온 이들에게도 똑같은 열쇠를 건네주었고, 정원 안의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의심스레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공평함이란 때로는 경계를 허무는 일이 아니라, 누구를 들일지 가리는 일이었음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씨앗: 돌봄의 숲

'복지'라는 씨앗은 온 국민의 품을 따뜻하게 데워줄 것이라 했습니다. 과연 숲은 무성해졌습니다. 다만 그 숲의 나무들은 모두 같은 모양이었습니다—요양보호사라는 이름의 잎을 단 채, 서로를 돌보는 일에 매달린 나무들. 숲은 풍성했지만, 숲을 가꾸던 이들은 어느새 모두 숲의 일꾼이 되어 있었습니다. 돌봄의 손길은 넘쳤으나, 돌봄을 받는 이와 돌봄을 하는 이의 경계는 흐려졌습니다. 정원사는 "삼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자랑했지만, 그 나무들은 스스로 그늘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씨앗: 창조의 빈터

'창조경제'라는 씨앗은 가장 야심찬 것이었습니다. 정원사는 이 씨앗에서 새로운 꽃과 열매가 피어날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사람들은 매일 빈터를 바라보았습니다.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나도 빈터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창조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정원사는 대답 대신 새로운 씨앗을 심겠다고 말했습니다. 빈터는 여전히 빈터였고, 그 빈터를 바라보던 이들의 눈에만 잔디가 자랐습니다.

네 번째 씨앗: 신뢰의 다리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씨앗은 다리를 놓는 일이었습니다. 강 건너편과 이쪽을 잇는 다리. 그러나 다리가 놓이자 강 건너편에서 들려오던 소리는 점점 커졌고, 이쪽에서는 참수부대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다리 위를 오갔습니다. 신뢰의 다리는 사람이 오가는 다리가 아니라, 긴장이 오가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다리는 놓였으나, 다리 위를 걷는 이들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다섯 번째 씨앗: 혁신의 문

'정치혁신'이라는 씨앗은 낡은 문을 허물고 새 문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새 문은 웅장했습니다. 그러나 문이 열리자, 문 밖에서 기다리던 이들 중 낯익은 얼굴들이 줄지어 들어왔습니다. 그중에는 오래전 이 정원에서 쫓겨났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혁신이란 문을 새로 다는 일이 아니라, 누구를 들일지 가리는 일이었음을 정원사는 잊고 있었습니다. 새 문은 활짝 열렸고, 정원 안의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다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여섯 번째 씨앗: 일자리의 사다리

'늘·지·오'라는 씨앗은 일자리의 사다리를 놓는 일이었습니다. 사다리는 놓였습니다. 다만 사다리의 아래쪽 칸은 노인들의 부양 일자리로 채워졌고, 위쪽 칸은 하늘에 닿을 듯 높았습니다. 젊은이들은 사다리의 아래쪽을 오르내렸고, 대기업이라는 이름의 성문은 여전히 하늘의 별처럼 멀었습니다. 사다리는 있었으나, 사다리의 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곱 번째 씨앗: 농어촌의 등불

'농어촌 활력화'라는 씨앗은 마을의 등불을 밝히는 일이었습니다. 등불은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빛은 대기업이라는 이름의 큰 저택을 비추었고, 작은 마을의 골목길은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중소중견기업이라는 이름의 등잔은 기름이 마르지 않도록 애썼지만, 큰 저택의 샹들리에에 가려 그 빛을 잃어갔습니다.

여덟 번째 씨앗: 꿈의 정원

'행복교육'이라는 씨앗은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정원이었습니다. 정원에는 두 종류의 흙이 있었습니다.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비옥한 흙과, 그렇지 않은 메마른 흙. 같은 씨앗을 심어도 꽃은 다르게 피었습니다. 꿈과 끼를 마음껏 키우라 했지만, 꿈을 키우는 화분의 크기는 집의 크기를 따라갔습니다. 정원사는 "모두의 꿈"을 말했으나, 정원의 담장은 점점 높아졌습니다.

아홉 번째 씨앗: 보육의 요람

'맞춤형 보육'이라는 씨앗은 아이를 키우는 요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람을 흔들어줄 부모들은 결혼이라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강물이 넘쳐나는 바람에, 젊은이들은 배를 띄우지 못했습니다. 요람은 준비되었으나, 요람에 누울 아이는 오지 않았습니다. 정원사는 "일·가정 양립"을 말했지만, 가정이라는 이름의 집은 점점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열 번째 씨앗: 안전의 성벽

마지막 씨앗은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성벽이었습니다. 성벽은 높고 견고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벽의 기초 아래로 모래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성벽 위에서 노래했고, 성벽 아래에서 균열을 보았습니다. 30년이라는 이름의 긴 터널이 시작되었고, 그 터널의 끝에는 빛이 아니라 또 다른 터널이 있었습니다. 성벽은 서 있었으나, 성벽이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종시

정원사는 열 개의 씨앗을 심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열 개의 풍경을 보았습니다. 약속은 씨앗이었고, 현실은 열매였습니다. 그 열매의 맛은 씨앗의 이름과 달랐습니다. 정원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고, 문 앞에는 새로운 정원사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원의 흙을 한 줌 집어 들고,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냈습니다. 흙은 바람에 날렸고, 바람은 어디로 불어갈지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 역사는 은유로 말하지만, 은유는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만 듣는 이의 귀에 따라 다르게 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