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목소리

 

2025년 8월 31일. 맑고 화창한 어느 날.

 

키가 크고 훤칠한 한 남성이 지하철 승강장으로 걸어갔다. 지하철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남성은 손에 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휴대폰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알림음이 울렸다. 남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알림을 눌러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휴대폰 화면이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남성은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졌다.

 

잠시 후,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주워 들었다. 조심스럽게 화면을 확인해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남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마침 도착한 지하철에 올라탄 그는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뒤 음악을 듣기 위해 MP3 앱을 실행했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던 남성은 지하철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이어폰에서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살려 주세요.”

 

남성은 눈을 번쩍 떴다.

 

분명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섞여 들리고 있었다. 그것도 한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살려 주세요…… 제발…….”

 

남성은 당황한 나머지 서둘러 음악을 끄려고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앱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숨이…… 막혀요……! 제발 살려 주세요!”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남성은 어떻게든 음악을 끄려고 휴대폰 화면을 연달아 눌렀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의 숨소리와 비명이 점점 더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남성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하철 유리창 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바닥 자국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나였다.

 

그러나 눈을 깜빡이는 사이,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더니 어느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손바닥 자국이 유리창을 뒤덮었다.

 

남성은 숨을 삼켰다.

 

이상하게도 그 손바닥 자국들을 바라볼 때마다 누군가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움켜쥐고 서서히 힘을 주는 것만 같았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게 대체 뭐야……!’

 

남성은 필사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다.

 

그러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분명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주변에는 분명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도 아무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자신 혼자만 남겨진 것 같았다.

 

공포가 점점 더 짙어졌다.

 

그때였다.

 

갑자기 휴대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성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얘, 어디니? 지금 뭐 하고 있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익숙하고 평범한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남성은 그제야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 온몸을 짓누르던 압박감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는 어머니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리창에는 아무런 손바닥 자국도 없었다. 휴대폰의 음악 앱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았다.

 

마치 조금 전의 일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남성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분명히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남성은 한동안 방 안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이어폰을 통해 들려왔던 여자의 목소리.

 

숨이 막힌다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그 절박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계속 맴돌았다.

 

밤이 깊어지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지만, 남성은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 눈을 감기만 하면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살려 주세요…….”

 

남성은 이불을 끌어당기며 몸을 웅크렸다.

 

그 목소리는 한동안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남성은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어제 겪었던 일이 단순한 착각이었기를 바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늘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지하철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재생했다.

 

다행히 처음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평소처럼 음악이 흘러나왔고, 지하철도 별다른 문제 없이 운행되고 있었다.

 

남성은 조금씩 긴장을 풀었다.

 

그때, 한 할아버지가 그에게 다가왔다.

 

“어이, 젊은이.”

 

남성은 이어폰을 한쪽 귀에서 빼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예?”

 

“이어폰 소리가 너무 시끄러운데, 조금만 낮춰 줄 수 없겠나?”

 

할아버지의 부탁에 남성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 죄송합니다. 줄이겠습니다.”

 

그는 이어폰의 음량을 낮췄다.

 

“그래, 고맙네.”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한 뒤 남성의 맞은편 좌석에 앉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할아버지는 어쩐지 불편할 정도로 남성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에게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남성은 할아버지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시선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쯧…… 쯧쯧…….”

 

할아버지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혀를 찼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객차로 향했다.

 

남성은 멀어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사람을 왜 그렇게 쳐다봐?’

 

그는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조금 전 낮췄던 음량을 높여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살려 주세요……!”

 

어제와 똑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다.

 

남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또…… 또 뭐야!”

 

그는 황급히 이어폰을 귀에서 뽑아 바닥에 내던졌다.

 

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어폰은 이미 귀에서 떨어져 있었는데도, 여자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속을 파고들었다.

 

“제발…… 살려 주세요……!”

 

남성은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소용없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자신의 머릿속에서 직접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남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른 객차로 향했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이 지독한 목소리에서 도망쳐야만 했다.

 

그렇게 옆 객차로 이동한 순간, 그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성이 객차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어깨가 가늘게 들썩였고, 입에서는 끊임없이 흐느끼는 듯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남성은 걸음을 멈췄다.

 

‘저 여자는……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잠시 망설이던 그는 조심스럽게 여자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그러나 여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성이 다시 말을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떨며 알 수 없는 신음 소리만 흘릴 뿐이었다.

 

남성은 여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정신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

 

그는 더 이상 말을 걸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지하철 유리창에 몸을 기댔다.

 

여자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며, 몸을 떨면서.

 

시간이 흘렀다.

 

객차 안에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지하철이 달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남성은 몇 번이나 여자를 힐끗 바라봤지만, 여자는 처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서 시간이 멈춰 버린 사람처럼.

 

얼마 후, 지하철이 다음 역에 도착했다.

 

남성은 서둘러 객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한 뒤에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평소처럼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그 여자의 모습과 이어폰에서 들려왔던 비명은 아무리 애써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

 

퇴근 시간이 되었다.

 

남성이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어머니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얘야, 지금 어디니?”

 

“회사에서 막 나왔어요. 왜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말을 잇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집에…… 집에 빨리 좀 와 봐.”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인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어머니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어.”

 

“네……?”

 

남성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다니.

 

갑작스러운 소식에 정신이 멍해졌다.

 

그는 황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흐느껴 울고 있었다.

 

남성은 어머니에게 다가가 다급하게 물었다.

 

“엄마, 아버지는요? 갑자기 왜 병원에 입원하신 거예요?”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갑자기 몸이 이상해지셨대…… 그런데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더라. 검사를 해도 도대체 무슨 병인지 알 수가 없대…….”

 

어머니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다시 흐느꼈다.

 

갑자기 찾아온 원인 모를 병.

 

그리고 그 병의 정체조차 밝혀내지 못하는 병원.

 

남성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곁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남성의 머릿속에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보았던 여자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떨며 흐느끼던 긴 머리의 여자.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던 그 이상한 여자.

 

왜 하필 지금 그 여자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일까?

 

남성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지하철에서 보았던 그 여자의 모습과 어딘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두 사람이 무슨 관계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남성은 애써 생각을 떨쳐 내고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렇게 어머니를 위로한 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휴대폰 화면이 붉게 변했던 일.

 

이어폰에서 들려온 정체불명의 여자의 비명.

 

지하철에서 마주친 이상한 할아버지와 긴 머리의 여자.

 

그리고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입원한 아버지까지.

 

이 모든 일이 정말 우연일까?

 

남성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그는 결국 눈을 감았다.

 

그날 밤, 남성은 기이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희미한 안개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는 점점 짙어졌다. 곧 주변을 온통 뒤덮어 앞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남성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몸이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피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아아아악!”

 

남성은 비명을 질렀다.

 

온몸이 새빨갛게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목구멍을 태웠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몸속 깊은 곳까지 불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는 필사적으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방은 하얀 연기로 가득했고, 그 연기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성은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이 뜨거운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그러나 연기는 점점 더 짙어졌고, 몸을 태우는 듯한 열기는 갈수록 심해졌다.

 

그는 필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잼께 읽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