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간 삶의 끝에 죽음만이 기다린다는 걸 아니깐

쉬면서 실없는 한두 마디 더 주고받고
석양 한 번 더 눈에 담고

그게 결국에는 무슨 의미냐며 자조하지만
영화가 끝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과정을 보러 가

뻔한 영화가 나는 인생 같아서 좋더라
뻔하고 부질없지만, 그걸 알고 나니 왠지 마음이 더 편할 때가 있어

세상 모든 게 바보 같은 생각과 삶들로 연결되어 있고
그게 우리를 이어주잖아

세상 모든 게 시간 속에서 소모되고 고갈되는
유한하고 일시적인 것들뿐인데
그것들조차 최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
어째서 인간의 삶만 낭비되는 것이 나쁜 일인 것처럼 가르쳐져 왔을까
세상 또한 자신들을 위해서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좋은 일처럼 포장해왔을 뿐인 게 아닐까

삶의 비밀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후회하지 않을 선택들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
그리고 어차피 낭비될 시간을 되도록이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것에 있지 않을까

세상이 무언가 목적을 갖고 창조되었다면 그런 건 신이 더 잘했을 텐데
왜 굳이 나약하고, 무지하고, 불완전한 존재들에게 시키려고 했을까

책이 불타면
책은 사라지고 그곳에는 재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여
하지만 연기는 어디로 갔을까

그것이 담고 있던 정보나 에너지들
어딘가로 가버려서, 어떤 모습으로는 남아있지 않을까
시간 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져 가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인간이 기억을 하는 존재이듯
우주라고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을까
우주도 기억을 하고 꿈을 꾸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사라지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었겠지

인간이, 우주가 기억을 하는 존재인 이유는

모든 것이 나중에는 결국 사라지기 때문에

추억 속에서라도 되살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잊혀진 시간들 사이에서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기 위해
그 형상을 다시 그리고, 흩어진 연기를 모아 한 번 더 숨을 불어넣어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