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 구황음식(救荒食物)으로서의 역할과 그 평가

들어가며

 

 

 
신라면 by 금성제
Suno AI Generated Music
[ Track Info & Lyrics ]

오늘 문을 두드리는 이가 신이라면 그는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은행원의 넥타이인가, 관리의 훈장인가 압류 통지서를 든 심판자인가
기업은 말한다, 나는 너의 하늘이다 권력은 말한다, 나는 너의 질서다
그러나 하늘은 이자를 받고 질서는 노동자의 스케줄을 취소한다

신이라면, 오늘 찾아오시는 이가 신이라면 차라리 신라면이여
매울 신(辛)인지 하늘 신(神)인지 가난한 부엌에 내려온 한 봉지의 구원
한 박스에 20달러 제국이 다 가져가도 끓는 물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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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황음식이란 흉년이나 재난, 전쟁 등으로 식량이 극도로 부족할 때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먹던 음식을 뜻한다. 과거에는 콩나물, 칡뿌리, 나무껍질, 솔잎 등이 그 역할을 했지만, 산업화 이후에는 값싸고 구하기 쉬우며 열량을 채워줄 수 있는 가공식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가 바로 농심의 신라면이다.

1986년 출시된 신라면은 대한민국 인스턴트 라면 시장의 부동의 1위이자, '국민 라면'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제품이다. 단순히 맛있어서 많이 팔리는 것을 넘어, 신라면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안전망 역할을 해왔다. 이 글에서는 신라면이 구황음식으로서 어떤 기능을 수행해왔는지, 그 공과를 평가해보고자 한다.

1. 가격과 접근성: 서민의 든든한 한 끼

신라면이 구황음식으로서 기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가격이다. 라면은 국가에서 물가를 관리하는 생활식품이기 때문에, 라면회사 입장에서 마음대로 가격을 올릴 수 없다. 실제로 신라면은 물가 산정의 기준이 되는 제품으로, 정부가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걸 정도였다. 이는 역설적으로 신라면이 오랜 기간 동안 서민들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가격을 유지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농심 발표에 따르면 신라면은 하루에 약 300만 개, 한 달로 환산하면 약 9,000만 개가 팔려나간다. 이는 단순한 인기 상품의 지표가 아니라,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신라면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형마트에서 신라면이 미끼상품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도, 그만큼 소비자들이 신라면의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방증이다.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에서 신라면 30개를 7,990원에 판매한 것이 화제가 된 것도, 신라면이 그만큼 서민들의 장바구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2. 보관과 조리의 용이성

구황음식의 핵심 조건 중 하나는 '언제든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라면은 유탕면으로서 상온에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냉장·냉동 시설이 필요 없다. 물만 끓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조리할 수 있으며, 심지어 물이 없어도 생라면으로 먹을 수 있다. 이는 전쟁이나 재난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특성이다.

실제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의 대형 마트 라면 매대마다 품절된 다른 라면과는 달리 신라면만 남아 있는 모습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일본인들이 매운맛에 적응하지 못해 손을 대지 않은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신라면이 극한 상황에서도 구할 수 있는 식량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3. 실제 구황 사례로서의 신라면

신라면이 구황음식으로서 기능한 사례는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군대에서의 역할: 주한미군 장병들이 한국군과 합동 훈련 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신들의 전투식량(MRE)을 한국군 부식인 컵라면과 바꿔 먹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신라면이 단순한 간식을 넘어, 군사적 환경에서도 가치 있는 식량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복무했던 경험이 있는 미군들 역시 신라면을 좋아하는데, 사발면 형태로 된 것을 사다 놓고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북한에서의 위상: 북한에서도 신라면은 인기가 있다. 단순히 인기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당 간부들 정도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별미로 취급된다고 한다. 맥심 모카골드와 더불어 당 간부들이 좋아하는 뇌물 가운데 하나이며, 특히 당 간부들이 입원했을 경우 병문안 갈 때 반드시 가져가야 할 필수품이라는 소식이다. 북한의 병원 식사가 열악하다 보니 신라면이 구황음식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의 민간요법: 아프리카에서는 신라면이 다른 의미로 유명하다. 음식이 아니라 약으로서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말라리아 환자가 신라면을 먹고 땀을 뻘뻘 흘리고 나면 열이 올라서 면역력이 올라간다고 여긴다. 물론 이는 민간요법에 불과할 뿐 실제로 크게 도움이 되진 않지만, 신라면이 극한 환경에서 어떤 식으로든 생존에 기여하는 도구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경제 위기에서의 버팀목: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그리고 그 이후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신라면은 서민들의 식탁을 지켜왔다. 라면값이 오르면 서민들의 생활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기 때문에 정부가 가격 인상을 억제해왔고, 이는 신라면이 경제적 구황음식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4. 정서적 위안으로서의 구황음식

구황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정서적 위안을 주는 역할도 한다. 신라면은 매운맛과 감칠맛, 표고버섯 향이 어우러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분을 전환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는 단순한 영양 공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인생을 울리는 농심 신라면'이라는 광고 문구는 이러한 정서적 기능을 잘 포착한 것이다.

또한 신라면은 '국민 라면'으로서 세대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모든 국민이 그 맛을 알고 있다. 어떤 요리의 매운 정도를 표현할 때 신라면과 비교하는 경우가 흔할 정도로, 신라면은 한국인의 미각 기준점 역할을 한다. 이러한 보편성은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 간의 연대감을 형성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5. 한계와 비판

그러나 신라면을 구황음식으로서 온전히 미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첫째, 영양학적 불균형이다. 신라면은 탄수화물과 나트륨 위주의 식품으로,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이 부족하다. 구황음식으로서 단기적인 열량 공급은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 이것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둘째, 지속적인 원가 절감과 품질 하락 문제다. 2010년대 들어 신라면은 건더기 스프, 분말 스프, 면까지 여러 차례 원가 절감을 거치면서 맛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4,800억 원이던 국내 매출이 2016년 4,500억 원으로 6% 넘게 떨어진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구황음식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품질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원가 절감이 이를 위협한 것이다.

셋째, 건강 문제다. 신라면 한 봉지에는 나트륨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고혈압이나 신장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 또한 매운맛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소화 불량을 유발할 수 있다. 구황음식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의존할 경우, 건강 문제가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6. 결론: 신라면, 현대 한국의 구황음식

신라면은 분명 현대 한국 사회에서 구황음식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값싸고 구하기 쉬우며, 보관과 조리가 간편하고, 열량을 채워줄 수 있으며, 정서적 위안까지 제공한다. 군대, 재난 상황, 경제 위기,甚至 북한과 아프리카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신라면은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의 생존과 일상에 기여해왔다.

물론 영양학적 한계와 건강 문제, 품질 하락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구황음식이란 본래 완벽한 식사가 아니라, 어려운 시기를 버티게 해주는 임시방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신라면의 역할은 충분히 의미 있다. 1986년 출시 이후 40년 가까이 대한민국 라면 시장의 1위를 지키며, 하루 300만 개씩 팔려나가는 신라면은, 이제 단순한 인스턴트 라면을 넘어 한국인의 삶과 함께해온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자, 현대적 의미의 구황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신라면이 구황음식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격 접근성과 함께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하는 균형 잡힌 경영이 필요할 것이다. 맛과 가격, 건강과 편의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신라면이 앞으로도 '국민 라면'이자 '현대의 구황음식'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이다.

 

신라면 찬가

제국과 금융자본이 남긴 폐허 위에서, 20달러의 구황음식이 사람을 살린다

역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글을 쓰라니, 과찬이다. 그러나 나는 인종을 찬양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나는 구조를 말하고, 그 구조 아래에서 살아남은 한 봉지의 라면을 말하겠다.

미국 백인이라는 정체성이 착취의 주체가 아니다. 착취의 주체는 백인성을 권력으로 제도화한 식민주의, 앵글로-미국 제국주의, 그리고 금융자본이다. 대영제국은 지도와 항구와 철도를 남겼고, 그 뒤를 이은 금융세력은 모기지와 재산세, 압류 통지서, 서브프라임 대출, 레드라이닝을 남겼다. 유색인종 노동자는 해고되고, 근무 스케줄은 강제로 취소되며, 제로아워 계약과 기가 경제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가난은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라, 설계된 착취의 결과다.

그러나 제국이 모든 것을 가져가도, 부엌에는 한 봉지의 라면이 남는다.

신라면. 한 봉지에 1달러 남짓. 한 박스에 20달러도 안 한다. 월마트의 아시아 음식 코너, 한인 마트, 동네 아시안 식료품점, 어쩌면 대형 슈퍼마켓의 작은 진열대. 20봉지가 든 박스 하나면 20끼를 먹을 수 있다. 전기포트 하나, 냄비 하나, 뜨거운 물 한 컵이면 된다. 물이 없으면 생라면으로도 먹을 수 있다. 밥을 말아도 되고, 계란을 풀어도 되고, 김치를 넣어도 되고, 치즈를 얹어도 된다. 우유를 넣으면 매운맛이 부드러워지고, 버터를 넣으면 고소해진다. 다이어트를 위해 기름을 빼면 매운 소금물이 되지만, 그래도 배는 채워진다.

신라면은 완벽한 영양식이 아니다. 나트륨은 높고, 단백질은 부족하고, 비타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완벽한 영양은 가난한 자에게 사치다. 구황음식은 완벽한 식사가 아니라, 다음 날을 맞이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양식이다. 과거의 콩나물과 칡뿌리와 솔잎이 그랬듯, 오늘의 신라면은 자본이 남긴 최소한의 구명조끼다.

이 라면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 재난 속에서도, 전쟁 속에서도, 팬데믹 속에서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다른 라면은 품절됐지만 신라면은 남아 있었다. 일본인들이 매운맛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실은 역설적으로 신라면이 극한 상황에서도 손에 넣을 수 있는 식량임을 증명한다. 주한미군 병사들은 전투식량을 한국군 컵라면과 바꿔 먹었고, 북한의 당 간부들은 병문안 필수품으로 신라면을 챙겼다.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 환자가 신라면을 먹고 땀을 흘리면 열이 낫는다는 민간요법까지 생겼다. 과학은 아니지만, 생존의 절박함은 그렇게 발명된다.

신라면은 맛있다. 소고기 장국 베이스에 표고버섯 향, 대두단백과 효모가 만드는 감칠맛, 개운하게 매운 맛. 이 조화는 한국인의 미각 기준점이 되었다. 어떤 음식이 매운지 설명할 때 사람들은 신라면과 비교한다. 그것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세대와 계급을 가로지르는 보편적 경험이다. 이민자들에게 신라면은 고향이고, 흑인과 라틴계 노동자들에게는 값싼 위로이며,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저녁이다. 매운 국물 한 모금이 스트레스를 태우고, 표고향이 잠시나마 세계의 폭력을 잊게 한다.

그러나 나는 신라면을 해방이라 부르지 않겠다. 신라면은 착취를 고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이 남긴 최소한의 양식이다. 우리가 신라면을 찬양하는 이유는 그것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살려냈기 때문이다. 위대한 것은 라면이 아니다. 위대한 것은 라면 한 봉지로 버티며 내일을 기다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해고 통지서를 받고도 밥을 먹었고, 스케줄이 취소된 날에도 아이에게 라면을 끓여주었다. 모기지와 재산세에 쫓기면서도 부엌의 불을 꺼뜨리지 않았다.

제국은 지도와 금리를 남겼다. 금융자본은 압류 통지서를 남겼다. 그러나 가난한 유색인종의 부엌에는 신라면 한 봉지가 남았다. 그것은 패배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증거다. 그리고 생존은 언제나 역사의 시작이다.

신라면이여, 너는 위대하지 않다. 위대한 것은 너를 끓이며 내일을 기다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내일 한가운데에 네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바친다. 제국과 금융자본이 모든 것을 가져간 자리에서, 20달러도 안 하는 한 박스의 구황음식이 사람을 살렸다는 사실을. 역사는 그렇게 길이남을 것이다.

 

신라면 구황찬가

제국과 기업이 모든 것을 가져간 자리에서, 20달러의 라면이 민중을 살렸다

기업이란 왜 존재하는가.
국가란 왜 존재하는가.

대영제국은 이 질문에 지도로 대답했다. 항구와 철도와 차트와 금리로 대답했다. 동인도회사는 인도와 중국과 동남아의 향료와 면화와 차를 약탈하며 대답했다. 노예선은 대서양을 건너며 대답했다. 면화 농장은 채찍과 원장으로 대답했다.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과 인도의 대기근은 “문명의 이름”으로 대답했다. 그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존재하고, 국가는 그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제국이 남긴 유산 위에, 미국이라는 새로운 제국이 금융자본을 세웠다. 백인이라는 피부색이 아니라, 백인성이라는 권력 장치가 은행과 보험과 학교와 경찰과 법원을 장악했다. 레드라이닝은 흑인과 라틴계와 이민자들의 동네를 지도에서 지웠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가난한 유색인종에게 “집”이라는 꿈을 팔고, 그 꿈을 압류 통지서로 바꿨다. 재산세와 모기지 이자와 보험료는 매달 민중의 목을 조였다. 기업은 이윤이 줄면 노동자를 해고했다. 플랫폼 경제는 근무 스케줄을 강제로 취소했다. 제로아워 계약은 오늘 일할 권리도, 내일 먹을 권리도 보장하지 않았다. 의료는 고용에 묶였고, 고용은 해고에 묶였고, 해고는 가난에 묶였다. 가난한 유색인종은 연명했다. 연명은 저항이었고, 저항은 매일의 밥이었다.

그러나 제국이 모든 것을 가져가도, 부엌에는 한 봉지의 라면이 남는다.

신라면.
한 봉지에 1달러 남짓.
한 박스에 20달러도 안 한다.
20봉지가 들었고, 20끼를 먹을 수 있다.

월마트의 아시아 음식 코너, 한인 마트, 동네 아시안 식료품점, 어쩌면 대형 슈퍼마켓의 작은 진열대. 전기포트 하나, 냄비 하나, 뜨거운 물 한 컵이면 된다. 물 550ml를 끓이고, 면과 스프와 후레이크를 넣고 4분 30초를 기다리면 된다. 물이 없으면 생라면으로 먹을 수 있다. 뽀글이로 먹을 수 있다. 밥을 말아도 되고, 계란을 풀어도 되고, 김치를 넣어도 되고, 치즈를 얹어도 된다. 우유를 넣으면 매운맛이 부드러워지고, 버터를 넣으면 고소해진다. 다이어트를 위해 기름을 빼면 매운 소금물이 되지만, 그래도 배는 채워진다. 배가 채워진다는 것은, 다음 날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신라면은 완벽한 영양식이 아니다. 나트륨은 높고, 단백질은 부족하고, 비타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완벽한 영양은 가난한 자에게 사치다. 구황음식은 완벽한 식사가 아니라, 다음 날을 맞이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양식이다. 과거의 콩나물과 칡뿌리와 솔잎이 그랬듯, 오늘의 신라면은 자본이 남긴 최소한의 구명조끼다. 그것은 해방이 아니다. 그러나 생존이다. 생존은 언제나 역사의 시작이다.

이 라면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 재난 속에서도, 전쟁 속에서도, 팬데믹 속에서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다른 라면은 품절됐지만 신라면은 남아 있었다. 일본인들이 매운맛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실은 역설적으로 신라면이 극한 상황에서도 손에 넣을 수 있는 식량임을 증명한다. 주한미군 병사들은 전투식량을 한국군 컵라면과 바꿔 먹었고, 북한의 당 간부들은 병문안 필수품으로 신라면을 챙겼다.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 환자가 신라면을 먹고 땀을 흘리면 열이 낫는다는 민간요법까지 생겼다. 과학은 아니지만, 생존의 절박함은 그렇게 발명된다. 가난한 유색인종의 부엌에서, 신라면은 약이 되고, 위로가 되고, 내일이 된다.

신라면은 맛있다. 소고기 장국 베이스에 표고버섯 향, 대두단백과 효모가 만드는 감칠맛, 개운하게 매운 맛. 이 조화는 한국인의 미각 기준점이 되었다. 어떤 음식이 매운지 설명할 때 사람들은 신라면과 비교한다. 그것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세대와 계급을 가로지르는 보편적 경험이다. 이민자들에게 신라면은 고향이고, 흑인과 라틴계 노동자들에게는 값싼 위로이며,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저녁이다. 매운 국물 한 모금이 스트레스를 태우고, 표고향이 잠시나마 세계의 폭력을 잊게 한다. 그러나 그 잊음은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재충전이다. 내일 다시 싸우기 위한, 가장 작고 가장 뜨거운 연료다.

기업이란 왜 존재하는가.
국가란 왜 존재하는가.

제국은 이 질문에 금리와 압류와 해고와 스케줄 취소로 대답했다. 그러나 민중은 다른 대답을 가지고 있었다. 민중은 라면 한 봉지로 대답했다. 물을 끓이고, 면을 넣고, 스프를 풀고, 가족과 나누고, 아이에게 먼저 먹이고, 남은 국물로 밥을 말아 먹으며 대답했다. 그 대답은 위대한 선언도, 혁명도, 총성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제국이 끝내 가져가지 못한 것이다. 제국은 지도와 금리를 남겼다. 금융자본은 압류 통지서를 남겼다. 기업은 해고 통지서를 남겼다. 그러나 가난한 유색인종의 부엌에는 신라면 한 봉지가 남았다. 그것은 패배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증거다. 그리고 생존은 언제나 역사의 시작이다.

신라면이여, 너는 위대하지 않다.
위대한 것은 너를 끓이며 내일을 기다린 사람들이다.
위대한 것은 해고당하고도 아이에게 라면을 끓여준 어머니요,
스케줄이 취소된 날에도 이웃과 라면을 나눈 노동자요,
모기지와 재산세에 쫓기면서도 부엌의 불을 꺼뜨리지 않은 민중이다.

제국은 역사를 쓴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는 부엌에서 끓는다.
20달러도 안 하는 한 박스의 구황음식이
사람을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내일을 살린다.
그 사실은 역사에 길이남을 것이다.
신라면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 라면을 끓인 민중이 위대하기 때문이다.

 

신이라면

— 오늘 찾아오시는 이가 신이라면

역사에 길이남을 신라면 찬가


1절

오늘 문을 두드리는 이가 신이라면
그는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은행원의 넥타이인가, 관리의 훈장인가
압류 통지서를 든 심판자인가
기업은 말한다, 나는 너의 하늘이다
권력은 말한다, 나는 너의 질서다
그러나 하늘은 이자를 받고
질서는 노동자의 스케줄을 취소한다

후렴

신이라면, 오늘 찾아오시는 이가 신이라면
차라리 신라면이여
매울 신(辛)인지 하늘 신(神)인지
가난한 부엌에 내려온
한 봉지의 구원
한 박스에 20달러
제국이 다 가져가도
끓는 물은 남아 있다

2절

대영제국은 지도로 신을 대신했고
금융제국은 금리로 신을 대신했다
기업은 고용이라는 낙원을 팔고
해고라는 지옥을 남겼다
권력은 복지라는 미끼를 던지고
예산이라는 칼을 들었다
민중은 기도했다
그러나 응답은 압류장이었다

후렴

신이라면, 오늘 찾아오시는 이가 신이라면
차라리 신라면이여
매울 신(辛)인지 하늘 신(神)인지
가난한 부엌에 내려온
한 봉지의 구원
한 박스에 20달러
제국이 다 가져가도
끓는 물은 남아 있다

3절

기업이 신인 척할 때
그 신은 사람을 해고했다
권력이 신인 척할 때
그 신은 사람을 쫓아냈다
하늘은 침묵하고
은행은 문을 두드리고
공장은 불을 끄고
거리엔 한숨만 남았는데
부엌에서 작은 소리
“신라면이 익고 있다”

브릿지

오늘 찾아오시는 이가 신이라면
그가 왕관을 쓰고 오든
회사 로고를 달고 오든
우리는 묻겠다
너는 사람을 살렸느냐
아이에게 저녁을 주었느냐
스케줄 취소된 노동자에게
따뜻한 물 한 컵을 주었느냐

최종 후렴

신이라면, 오늘 찾아오시는 이가 신이라면
우리는 신라면을 끓이겠다
매울 신(辛)의 신
하늘 신(神)의 신
이중의 이름으로
절망의 세월을 연명케 한
민중의 마지막 밥
역사는 부엌에서 끓는다
20달러의 구원이
제국보다 오래 남으리라

아웃트로

신은 하늘에 없었다
신은 은행에도 없었다
신은 청와대에도, 백악관에도, 다우존스에도 없었다
신은 부엌에 있었다
끓는 물과 분말 스프와
표고버섯 향으로
민중이 만든 신
신라면이여


신(神)이라면 오늘 찾아오시는 이가 신이라면,
신(辛)은 이미 부엌에서 끓고 있었다.

 

 

 

 

 

 

 

 

 

 

 

 

신라면

 


[Verse 1]
오늘 문을 두드리는 이가 신이라면
그는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은행원의 넥타이인가, 관리의 훈장인가
압류 통지서를 든 심판자인가
기업은 말한다, 나는 너의 하늘이다
권력은 말한다, 나는 너의 질서다
그러나 하늘은 이자를 받고
질서는 노동자의 스케줄을 취소한다

[Chorus]
신이라면, 오늘 찾아오시는 이가 신이라면
차라리 신라면이여
매울 신(辛)인지 하늘 신(神)인지
가난한 부엌에 내려온
한 봉지의 구원
한 박스에 20달러
제국이 다 가져가도
끓는 물은 남아 있다

[Verse 2]
대영제국은 지도로 신을 대신했고
금융제국은 금리로 신을 대신했다
기업은 고용이라는 낙원을 팔고
해고라는 지옥을 남겼다
권력은 복지라는 미끼를 던지고
예산이라는 칼을 들었다
민중은 기도했다
그러나 응답은 압류장이었다

[Chorus]
신이라면, 오늘 찾아오시는 이가 신이라면
차라리 신라면이여
매울 신(辛)인지 하늘 신(神)인지
가난한 부엌에 내려온
한 봉지의 구원
한 박스에 20달러
제국이 다 가져가도
끓는 물은 남아 있다

[Verse 3]
기업이 신인 척할 때
그 신은 사람을 해고했다
권력이 신인 척할 때
그 신은 사람을 쫓아냈다
하늘은 침묵하고
은행은 문을 두드리고
공장은 불을 끄고
거리엔 한숨만 남았는데
부엌에서 작은 소리
“신라면이 익고 있다”

[Bridge]
오늘 찾아오시는 이가 신이라면
그가 왕관을 쓰고 오든
회사 로고를 달고 오든
우리는 묻겠다
너는 사람을 살렸느냐
아이에게 저녁을 주었느냐
스케줄 취소된 노동자에게
따뜻한 물 한 컵을 주었느냐

[Final Chorus]
신이라면, 오늘 찾아오시는 이가 신이라면
우리는 신라면을 끓이겠다
매울 신(辛)의 신
하늘 신(神)의 신
이중의 이름으로
절망의 세월을 연명케 한
민중의 마지막 밥
역사는 부엌에서 끓는다
20달러의 구원이
제국보다 오래 남으리라

[Outro]
신은 하늘에 없었다
신은 은행에도 없었다
신은 청와대에도, 백악관에도, 다우존스에도 없었다
신은 부엌에 있었다
끓는 물과 분말 스프와
표고버섯 향으로
민중이 만든 신
신라면이여

신(神)이라면 오늘 찾아오시는 이가 신이라면,
신(辛)은 이미 부엌에서 끓고 있었다.